잡지
8회 자음과모음
《자음과모음》에게 문학잡지는 ‘책장’입니다.
책장은 언제든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도록 가까이 놓아두는 생활 속 가구에요. 처음엔 비어 있겠지만 원하는 대로 채워나가는 재미도 있죠. 꼭 보기 좋게 배열될 필요도 없어요. 취향대로 혹은 우연히 나열되는 대로 배치하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무늬가 그려질 테니까요. 원할 때 꽂혀 있는 아무 책이나 꺼내서 페이지를 펼칠 수도 있고, 다른 책으로 쉽게 바꿀 수도 있죠. 액자는 한번 작품을 넣으면 쉽게 교체하기 어려운 폐쇄적인 구조이지만 책장은 그렇지 않아요. 《자음과모음》은 작품을 전시해두고 바라보기만 하면서 문학을 위대한 고전으로 고정시키는 액자가 아니라, 여러 언어와 담론들, 잡지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한 다양한 종류의 여러 말들이 함께 포개어지고 나열되는 책장이면 좋겠어요. 문학에 대한 기대는 다양할 수 있지만 우선은 흥미와 재미를 기반으로 좀더 맘 편하게 접근할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읽는 이들의 생활에 직접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때 문학잡지란 여러 언어와 읽는 이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겠지요. 앞으로도 《자음과모음》은 읽는 행위 자체가 가진 원초적 즐거움을 독자에게 전하는 장소가 되고자 합니다.
《자음과모음》이 만나고 싶은 독자는 어떤 독자인가요?
저희가 만나고 싶은 독자는 특정한 모습으로 형상화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문학 독자’라는 고정된 모습이나 정체성을 특정하기도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평소에는 문학과 무관한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동시대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독자, 그리고 우연히라도 《자음과모음》과 접속했을 때, 자모가 가지고 있는 문학에 대한 유동적인 태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진 독자라고 할까요? 특히 그동안의 한국문학을 지나치게 진지한 것, 어려운 것, 고급한 것처럼 바라보거나 취급해온 태도가 문학 자체를 동시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에서 멀어지게 하고 좁은 영역에 고립시켜왔다고 생각해요. ‘문학은 어떠한 것’이라는 규정된 정의를 이미 가지고 있어서 그 정의와 어긋나는 문학을 거부하는 것은 현재의 문학잡지에게도, 독자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 가능한 문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시도하고 여러 작품 경향을 확보할 수 있길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장르문학이나 문학 이외의 여러 매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히 다루어야겠죠. 따라서 자모가 만나고 싶은 독자는 《자음과모음》이라는 잡지가 수집하는 여러 형태의 언어나 문학적 변종들을 만날 때마다 역동적으로 반응해줄 수 있는 독자인 것 같아요. 문학이 이미 정해진 카테고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여러 교차점 속에서 창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듯, 독자와의 만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자음과모음》이라는 장소에서 뻗어나가는 다양한 가지들과 접촉할 때마다 다르게 생겨나는 ‘재미’를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저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요.
《자음과모음》
창간년월: 2008년 가을
발행주기: 계간
구성원: 박권일, 박인성, 배상민, 심진경(이상 편집위원), 김정환, 황광수(이상 자문위원), 김정은(담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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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