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입술 색 연해진다고 이런 거 바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라우쉬 에메랄드 로즈핑크 12호’가 내 입술 색을 망쳐놓는다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입술이 또렷하고 예뻐 보이는데, 바르지 말라고 빼앗는 건 예뻐질 권리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너 앞으로 용돈 없을 줄 알아!”
   이건 인정. 문제집을 살 돈으로 틴트를 샀기 때문이다. 문제집이 6,000원, 틴트도 6,000원.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방과후 활동인 연극 수업에서 공연할 연극의 주인공을 뽑는 날이다.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려면 틴트를 발라 작은 입술을 도톰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늘 오디션도 가지 마!”
   그건 싫다. 이번에는 꼭 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번에 주인공으로 뽑히면 내년에 있을 구민 회관 연극 대회에 나갈 수 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보겠지? SM에서 열렸던 키즈 모델 선발 대회 예선을 통과한 선희가 나의 가장 큰 라이벌이다. 내 꿈은 모델이 아니다. 내 꿈은 배우다. 하나도 부럽지 않다.
   “그 문제집 없는데?”
   문구점 사장님이 책장을 살펴보며 말씀하셨다.
   “벌써요? 오늘 꼭 가지고 가야 되는데요? 저 그럼 어떻게 해요?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다 나갔지 뭐야. 요즘 단원 평가 기간인 모양이지?”
   문구점 사장님이 계산대 앞에 있는 사탕 바구니에서 자두 사탕 세 개를 건네주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탕이다.
   “저 밑에 있는 문구점에 가봐. 아마 거기에는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아저씨.”
   저 밑에 있는 문구점이 어딘지는 알고 있다. 정말 싫은 마귀할멈 같은 할머니가 사장으로 있는 곳인데, 여기보다 더럽다. 물건도 뒤죽박죽으로 쌓여 있고, 먼지도 풀풀 날린다. 친구들도 거의 그 문구점에 가지 않는다.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이름도 신호등 바로 앞에 있어서 ‘신호등 문구점’이라나. 문구점 이름에서조차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짜증이 났다. 하지만 사장님이 주신 자두 사탕을 깨물어 먹다보니, 금세 신호등 문구점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 수학 문제집 주세요.”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랑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 순간은 그때를 대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 카드 안 받아. 현금으로 내려면 사”
   카드라니, 나는 초등학생인데! 뭐 저런 개념 없는 할머니가 다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 6,000원이요. 문제집 주세요.”
   최대한 화를 참고 친절하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카메라가 날 찍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6,500인데? 무슨 6,000원. 여기 가격표 안 보여?”
   “삼성 문구점 아저씨는 6,000원 받으시던데요?”
   “여기는 신호등 문구점이야. 여기는 6,500원 받아. 싫으면 그냥 가든가.”
   열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겨울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게 보였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디션 시간까지는 약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여유가 있었지만, 미리 가서 연습도 하고 화장도 다시 해야 한다. 할머니와 싸우지 않고 500원을 더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용돈 받는 것을 금지 당했고, 돈을 모아 파운데이션과 아이펜슬을 사려면 단돈 500원도 소중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네? 저 6,000원밖에 없으니까 그냥 주세요.”
   “안 된다니까. 6,500원이라고.”
   “할머니! 6,000원에 달라고요!”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할머니는 대꾸도 없었다. 그냥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너 아이라인 번졌다. 너 같이 눈이 작은 애들은 눈 밑을 길게 빼서 그려야지, 그게 뭐냐? 요즘 애들은 화장도 잘하고 다니던데, 넌 아직 멀었구나?”
   눈도 작고, 코도 작고, 입도 작은 내 얼굴이다. 요즘 얼굴에 여드름도 하나씩 올라온다. 너무 신경 쓰인다. 텔레비전에 눈이 작은 연예인들이 간혹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공을 하는 인기 있는 사람들은 큰 눈에 얼굴 생김새도 뚜렷한 편이다. 그래도 기죽지 말자. 배우다운 당당함을 보여줘!
   “그래요, 나 눈도 작고 얼굴도 못생겼어요! 그래서 뭐요! 두고 보세요! 오늘 오디션에 꼭 합격해서 연극 주인공이 될 거라고요! 할머니가 뭘 알아요! 네!”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마음속에서는 그동안의 설움이 스쳐지나갔다. 주인공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을 때 나를 보던 선생님의 얼굴이 생각났다. ‘네가 할 수 있다고? 그 얼굴로?’ 하는 표정이었다. 순간 손을 내릴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손을 들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할머니를 보며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깡다구도 있고, 내 스타일이네, 너! 마음에 들어.”
   할머니가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칭찬하셨다.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할머니를 노려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죽지 않으려고 눈에 더 힘을 주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뒤로 돌더니 냉장고 안에서 마스크 팩 하나를 꺼내셨다. 황금 마스크 팩이었다. 투명한 비닐에 담겨 있어 황금색이 도드라져 보였다. 엄마가 동창회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 전날에 붙이고 자던 팩이었다. 나도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엄마는 비싸다며 써보지도 못하게 하셨다.
   “주인공 할 자격이 있어. 암! 그렇다면 이게 필요하겠네. 이거 한번 얼굴에 붙여봐.”
   나는 마스크 팩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원하는 얼굴을 가질 수 있습니다’ ‘피부 탱탱’이라는 흔하디흔한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할머니는 팩을 가져가 ‘척’ 하고 뜯어내더니 내 얼굴에 ‘턱’ 하며 붙여주셨다.
   “차갑잖아요. 할머니! 그리고 화장 다 지워진다고요!”
   “가만히 있어봐. 이걸 붙이면 말이야. 아주 예쁜 얼굴을 가질 수 있지.”
   “이거 저한테 팔려고 사기 치시는 거예요?”
   “사기라니! 한번 실험해볼래?”
   할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찌이익 문이 열리더니 지호가 들어왔다. 내 눈이 작다고 놀리긴 하지만 준비물도 잘 빌려주는 좋은 녀석이다.
   “할머니, 수학 문제집 하나 주세요. 어라, 보배를 여기서…… 여기서……”
   “어라. 지호네?”
   “김보배. 너 오늘 오디션이라고 힘주고 온 거야? 세상에!”
   “응? 아하, 마스크 팩 한번 붙여봤어. 이거 하면 피부가 좀 좋아진다고 해서. 어때?”
   “마스크 팩을 어디에 붙였다고?”
   “얼굴에 붙였잖아. 안 보여?”
   “응, 안 보이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너 오늘 엄청, 진짜, 와, 말이 안 나온다.”
   지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다 못해 불그스름해졌다. 그러곤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보배야, 우리 늦었다. 오디션의 생명은 시간 엄수라고! 빨리 가자!”
   지호는 내 팔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설명서를 꼭 자세히 읽어봐야 해! 알았지? 비닐 케이스도 버리지 마.”
   할머니가 윙크를 하며 내 주머니에 비닐 케이스를 찔러넣어 주셨다. 지호가 늦었다며 급하게 문을 열었다. 나는 6,500원을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예쁘다고? 예뻐졌다고? 나는 마스크 팩을 떼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보배야, 너 오늘 눈이 엄청 예쁜 거 알아? 눈동자가 똘망똘망해.”
   “네가 원래 웃을 때 보조개가 있었나?”
   오디션 대기실에 앉아 있는 친구들이 계속 나를 보며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관심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마음이 콩닥콩닥거렸다. 대기실에서 대사를 연습을 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한 줄도 외울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마스크 팩을 떼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계속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서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선희가 다가왔다.
   “보배야, 립 틴트 뭐 쓰냐? 곧 있으면 내 차례야. 나 좀 빌려줘.”
   선희가 부러운 듯 말을 걸었다. 나는 틴트를 빌려주기 싫었다. 선희는 늘 웃으면서 무언가를 요구해서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고는 뒤에서 내 욕을 한다. 괜히 빌렸다는 둥, 색깔이 별로라는 둥. 인상을 쓰고 싫다는 내색을 했다.
   “역시! 보배야, 고마워. 잘 쓸게.”
   “나도, 나도 한 번만 발라보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틴트를 잡으려고 안달이었다. 어랏? 나는 눈을 찌푸렸는데? 왜 틴트를 가져간 거지? 담임선생님도 공개적으로 ‘오늘 보배가 오디션 보려고 준비를 많이 했나보네. 아주 예쁘다.’라고 말씀하셨다.
   “20번부터 30번까지는 삼십 분 있다가 할게요.”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몰려오는 친구들을 피해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틴트를 돌려 달라고 해야 하는데 걱정이었다. 일단 접어둔 대본을 펼쳐들었다. ‘데이빗, 죽지 마. 삼촌 대신 내가 사과할게. 힘을 내. 미안해, 데이빗.’이라는 대사가 쓰여 있었다. 『내 친구 강비 데이빗』이라는 동화를 각색한 ‘좀비 놀이공원의 대모험’이라는 연극이었다. 주인공 루미 역할을 뽑는데 방과후 수업을 듣는 여자애들이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주인공을 할 수 있을까? 대사가 잘 외워지지 않았다. 엄마랑 아침에 싸운 데다가 눈물 연기까지 하려니 힘들었다. 연기에는 진심이 담겨야 하는데, 오늘따라 내 말 속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
   화장실 문을 닫고 변기에 앉아 손거울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말했던 눈썹이며 입꼬리며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마스크 팩을 붙인 얼굴만 계속 보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지호가 나를 놀리는 줄로만 알았다.
   “꼬르르륵.”
   생각해보니, 오늘 먹은 게 자두맛 사탕 밖에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일단 마스크 팩을 뗐다. 그리고 다시 비닐 파우치 안에 곱게 넣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두번째 사탕을 꺼내 먹었다. 마스크 팩을 붙이고 있을 때는 정말 답답했다. 뭘 먹을 수도 없고 입 근육을 움직일 수도 없어서 경련까지 일어났다. 심지어는 눈을 잘 뜰 수조차 없었다. 입 안의 사탕을 혀로 굴리며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다. 우르르 몰려 있던 친구들이 갑자기 내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호호, 기분 탓이었나봐. 째진 눈 여사, 화장 기술이 늘었다! 조심하자, 화장발!”
   선희가 내 틴트를 돌려주며 말했다. 손거울을 보니 마스크 팩이 벗겨진 못생긴 내 얼굴이 보일 뿐이었다.
   “째진 눈 여사가 아니라 화장발 여사로 바꿔야겠는걸? 연극에 주인공이 우는 장면도 있던데, 그 눈으로 눈물이나 흘릴 수 있겠어?”
   미리는 계속 오디션 대본을 읽어보며 비아냥거렸다. 내 차례가 끝날 때까지 속에서 솟아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 있을까?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자. 아무것도 아닌 듯 태연하게.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는 아직 이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
   일부러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보건실로 갔다. 침대 옆에는 거울이 걸려 있었다. 누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핀 후 천천히 마스크 팩을 살펴보았다. 마스크 팩 뒤에는 이 팩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었다.

    황금 마스크 팩의 비밀
   첫번째. 이걸 붙이는 동안 정말 예뻐집니다.
   두번째. 먹지 않아도 배부릅니다. 예뻐졌으니까요. 따라서 뭘 먹지 않아도 되겠지요?
   세번째. 웃을 수밖에 없어요. 웃는 얼굴이 제일 예쁘니까요.
   네번째. 한 시간 이상 붙일 시 구매로 간주합니다. 영원히 함께해요.

    이건 설명서도 아닌데 뭐지? 궁금했다. 이미 할머니한테서 얻은 건데? 구매로 간주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혹시 많이 비싸다는 건가?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나는 비닐 파우치에 있는 팩을 다시 붙였다. 마스크 팩이 찰싹 하고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 안에 누가 있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보건 선생님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차마 마스크 팩을 뗄 시간이 없었다.
   “세상에, 우리 학교에 아역 배우가 다닌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쁘구나?”
   보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 마스크 팩을 쓰면 나는 내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웃을 수밖에 없다. 보건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 마스크 팩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보건 선생님이 문을 나서자마자 거울 속에 비친 내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뗐다 붙였다, 뗐다 붙였다. 아휴!”
   세상에! 거울 속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마스크 팩 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너 같은 애는 처음이야. 구매를 할 거야, 말 거야? 빨리 결정해.”
   “뭐야! 네가 진짜 말하는 거야?”
   나는 거울을 보며 말했다. 너무 놀라 목소리가 절로 커졌다.
   “다 듣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기는. 뭐긴 뭐야. 내가 너고, 네가 나지.”
   “사람들이 자꾸 나를 예쁘다고 하는데, 나는 마스크 밖에 안 보여. 내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너만 네 아름다운 모습이 안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너를 여신이라고 생각해.”
   거울 속 마스크 팩을 쓴 나는 거만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 너 하나만 마스크에 갇혀 살면 간단해. 이제 곧 오디션이야. 어떻게 할 거야?”
   마스크 팩 안에서 갇혀 살아야 한다니,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최고로 예쁘다고 여긴다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네 얼굴을 최고라고 생각할 거야. 걱정 마!”
   황금 마스크 팩이 점점 얼굴을 조여왔다. 피부가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웃을 수밖에 없어. 불편해”
   나는 눈을 찌푸렸다. 그래도 표정을 볼 순 없었다.
   “원래 웃는 얼굴이 제일 예쁜 거 너도 알잖아. 앞으로는 친구들이 못생겼다고 놀리지도 않을 거야.”
   황금 마스크 팩이 내 얼굴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코끝이 차가웠다. 얼굴에 닭살이 돋았다. 얼굴이 점점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영원히 이렇게 함께 사는 거야. 완벽하게 살 수 있어.”
   황금 마스크 팩이 얼굴에 완벽하게 달라붙고 말았다. 거울 속 내 눈, 코, 입은 모두 사라지고 마스크 팩만 남은 것이다. 평생 마스크 팩만 보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지? 마스크 팩을 붙였을 때였나? 오늘 마스크 팩을 쓴 이후로 즐거운 일이 있었나? 나는 계속해서 생각해보았다. 주머니를 살펴보니 주머니 속에 자두맛 사탕이 하나 남아 있었다.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십 분 남았어. 조금 있으면 오디션이지? 어떻게 할 거야? 빨리 결정해. 계속 예쁜 모습으로 살 거지?”
   마스크 팩이 자꾸 재촉했다. 나는 이 사탕도 먹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그리고 찡그리고 못생긴 표정도 지으면서 살고 싶었다.
   “보배야, 오늘 학교 연극 주인공 따내면 바로 SM 키즈 모델 선발 대회에 나가자. 선희 코를 납작하게 밟아줘, 응? 구 분 남았다.”
   마스크 팩을 쓴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며 들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평생 황금 마스크 팩만 보면서 살 자신이 없었다. 내가 내 원래 표정을 보지 못한다면, 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웃는 연기만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배우일까? 그 와중에 벌써 내 눈, 코, 입이 그리워졌다. 영원히 마스크 팩 안에 갇혀서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마스크 팩에 손을 댔다.
   “난 이미 너야. 네 피부라고! 너! 이거 뜯으면 엄청 아플걸?”
   마스크 팩이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얼굴에 찰싹 하고 붙어 있어서 떼어내면 많이 아플 것 같았다. 마스크 팩에 뚫린 두 구멍 사이로 내 두 눈이 보였다. 그 눈을 보고 용기를 냈다. 나는 마스크 팩을 손으로 잡았다.
   “너 진짜 그럴 거야! 보배, 너 이제 다시는 예뻐지지 못할 수도 있어!”
   “나는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
   손으로 마스크 팩을 확 뜯어 바닥으로 버렸다. 그 순간에도 마스크 팩이 내 손을 꽉 물까봐 걱정이 되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마스크 팩은 스스로 투명해지더니 이내 흐릿하게 변하며 사라졌다. 거울을 보니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이 보였다.
   “다행이다! 다시 못생긴 내 얼굴로 돌아왔어! 째진 눈아 반갑다!”
   너무 기뻐서 손으로 얼굴을 살짝살짝 때리면서 말했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반듯한 눈썹, 약간은 튀어나온 입술, 그리고 그렇게나 싫었던 째진 눈까지도 모두 다 내 것이었다.
   “보배야, 뭐 하는 거야. 조금 있으면 네 차례야!”
   지호가 화장실 밖에서 소리쳤다. 문을 열어보니 지호가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맞다. 지호는 이번 오디션 진행 요원이었다.
   “너 울었어? 연극 연습하느라고?”
   “아니야.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나는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보배, 너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까지 연기 연습을 할 줄은 몰랐어.”
   지호는 감탄한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지호의 눈빛을 외면한 채 서둘러 강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려가는 동안 계속 생각했다 ‘울어야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로 울어야지. 거짓된 표정은 짓지 말아야지.’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지호가 대단하다고 말해줘서 조금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만큼은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소리치며 대기실 문을 열었다. 두 명이 대기하는 교실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차분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대본을 꺼내들었다. 그동안 대사만 외우고 화장하는 데만 급급해서 정작 연극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연극의 주인공은 낡은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삼촌을 둔 루미다. 연극은 루미 삼촌이 놀이공원에 많은 사람들을 오게 하려고 좀비들을 캐스팅한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미는 여러 좀비들 중 어린 좀비 한 명이랑 친해지고, 삼촌의 마수에서 순진한 좀비들을 구출해주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친구 좀비인 데이빗이 죽고 만다. 연극 내용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오디션을 보는 장면은 바로 데이빗이 죽는 장면이었다. 연극의 주된 스토리를 알고 나니, 마음이 더 슬퍼졌다. 그래서 대사를 한 줄 한 줄 집중해서 외울 수 있었다. 누가 내 옆에 와서 앉는 줄도 몰랐다.
   “하하, 데이빗 죽지 마, 푸하하, 삼촌 대신 내가 사과할게. 힘을 내. 미안해, 데이빗. 호호호.”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들어 옆쪽을 바라보았다. 차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예쁘다고 소문난 옆 반 은하가 와서 연극 연습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슬픈 장면인데, 전혀 슬퍼 보이지가 않았다. 은하는 계속 웃기만 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벌떡 일어났다.
   “하하하, 호호호.”
   은하의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런 은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각 교실에서는 아이들 저마다의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죽지 마’라는 말과 웃음소리가 섞여 들리자 소름이 돋았다. 나는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붙잡으며 강당으로 들어갔다.
   강당 문 앞에 도착해 문을 활짝 열고 소리쳤다.
   “선생님, 은하가 이상해요. 이상하다고요!”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강당에는 황금 마스크 팩을 붙이고 있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오디션을 보려는 모든 아이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날씬하고 귀엽다고 소문난 나연이도 마스크 팩을 붙인 채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데이빗, 눈 좀 떠봐. 데이빗’이라며 오디션 대본을 읽고 또 읽고 있었다. 웃는 로봇들처럼 말이다.

김효진

어린이 친구들이 서로 비교하지 않으면서 상처받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이 동화가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동화와 드라마 쓰기를 사랑하는 글쟁이로 살겠습니다. 요즘 「내 친구 강비 데이빗」이라는 장편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빨리 소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