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비상계단 / 고양이 보호자
비상계단
1
밤을 샌 적이 있다
큰 토끼가 명령했기 때문에
작은 토끼는 종종 그런 적이 있다
2
깜깜하고 차가운 하늘에
조각달이 비뚜름하게 걸려 있다
작은 토끼의 눈에
큰 토끼는 깨진 왕관을 쓴 왕처럼 보였다
활활 타오르는 집을
깊은 눈동자에 밤새도록 담으면서
작은 토끼는 조금씩밖에 자랄 수 없었다
3
더 강한 다리를 갖고 싶어요
이 밤을 겅중겅중 건너뛰고 싶어요
지난밤
지지난밤
멀고 먼 밤에도
그건 작은 토끼의 꿈이었다
숨죽이고 지나는 밤이
어린 토끼들에게 있는 일이다
고양이 보호자
동생이 다치고 알았다
어디에나 계단이 있다는 것
입원이 길어지고 또하나 알았다
잠든 거인의 등을 밀듯
복도 끝 철문을 힘주어 밀어내면
거기 누구든 계단처럼 구부리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는 것
간이침대에 엎드린 채
언니들은 보호자로서 오늘 일을 받아쓴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밟아 다음 층에 닿듯이
저기 저 얼룩 고양이가
긴 꼬리를 물음표처럼 구부린 채
작디작은 발로 길을 만들어 걷듯이
하얀 해가 새로운 장면을 밝히듯이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고
언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생의 이마를 닦고 야옹 웃는다
남지은
두 편의 시는 깜깜하고 축축합니다. 하나는 아파트 비상계단에 숨어 있던 밤을 떠올려 그렸습니다. 그때 깜박이던 전등이 어린 저를 드러내기도 숨겨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몇 년 전 구로의 한 어린이병원에서 마주했던 장면과 근래의 생각을 겹쳐 그렸습니다. 병동과 치료센터의 아기들, 곁을 지키는 곤한 몸들의 이야기가 저의 어딘가에 묻어 있습니다. 작은 존재가 더 작은 존재에게 받는 보호와 사랑을 제가 할 수 있는 문학으로 들려주려 합니다.
2021/02/23
3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