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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과 공원을 산책했다. 입구에 ‘보호수’라는 나무가 있었다. 우리는 이 나무가 공원 일대를 보호해주었으면 하는 제의적인 의미에서 보호수가 된 것인지, 아니면 이 나무를 오래도록 보호하자는 실천적인 의미에서 보호수가 된 것인지 궁금했다. 보호수의 가장 큰 둥치는 기울어진 채 단단한 철선으로 맞은편 땅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쓰러지지 말라고 고정해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이 말했다. “그냥 보내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누가 내 머리끄덩이를 하루 종일 잡아당긴다면……” 대체 어떻겠느냐고 맞장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호수는 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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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돌이 개에게 희망이나 사랑이 같은 이름을 붙여주면서 희망아 사랑아 하고 부르면 정말 희망과 사랑이 올 것처럼. 희망 위에 사랑이 내려앉을 것처럼 가슴이 부풀다가도. 내가 희망이나 사랑을 말한다는 사실이 멋쩍게 느껴지는 오후에.

  나와 동생은 보호수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걷는다.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우리는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려오는 아이도 지나치고, 나란히 서서 지는 해를 찍고 있는 여학생들도 지나친다. “멀다.” “그래, 멀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말이 없고 이것이 보호수의 신성한 기운인가봐…… 하는 농담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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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이와 사랑이의 진부한 이름만큼이나 오래된 풍습. 카리브해의 어느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태반과 탯줄을 땅에 묻고 그 자리에 묘목을 심는다. 잘 자라라. 썩지 말고 베이지 말고. 내 몸에서 자란 커피나무의 열매라면 고소한 부끄러움. 아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물을 줘도 자라지 않는 식물이 있다면 그 식물의 이름은 나의 두번째 태명일 거라고. 동생은 맨발로 자갈을 밟으며 간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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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졌네. 칠흑이 무성하네. 보호수보다 더 큰 나무가 보호수를 내려다보네. 그뒤로 더 큰 나무가. 그뒤로 또다른 나무가.
  그늘 위에 그늘이 내리면 더 검은 그늘.
  언젠가 나는 그게 사실인지 실험해보기 위해 뒷산 무덤에 두 발을 딛고
  올라섰고
  정말 더 깊고 움푹한 그늘이 생겨 그 안에 얼른 피 묻은 탯줄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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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몸치여서 이곳에 온 거야. 다 키운 다음 베어가려고 만든 숲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박자 타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소문으로 죽는 사람 없을 테고. 동생과 나는 멀리 걸을 생각 없이 멀리 걷고. 그러나 아무도 떠돌지 않고. 떠돌다가 돌에 맞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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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졸업식 날 같은 반 친구들끼리 롤링 페이퍼를 써줬어.
  내 롤링 페이퍼에는 치마 입은 졸라맨이 그려져 있었지.
  나는 한 번도 치마를 입은 적 없었는데.

  목 잘린 풀에서 피어오르는 비린내와
  흙이 부서지고 뭉치며 내는 소음들.

  우리는 발 삐끗하지 않고 멀리 갔다.
  무덤이 보여도
  돌아가지 않았다.

강지수

2024년 문화일보,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느리게, 비뚜름한 마음과 쉽게 좌절하는 마음을 가지고 뒤로 걷고 있습니다. 그때 나를 지나치는 풍경과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 장면이 나의 과거나 현재,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집니다. 그 암시를 어떤 증거 삼아 시를 쓰는 것 같다고 요즘 저는 생각합니다.

2025/04/02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