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음악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쓰였다. 음반을 제작하는 일에 관해 다루고 있다.

웹진 《비유》는 한국어로 된 문학 신작과 언어 텍스트 기반의 창작물을 소개하며, 관련 담론을 생산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기본적으로는 문학과 텍스트를 다루지만 지면 중 한 코너인 ‘판도: 기획을 기획하다’에서는 보다 넓은 장르를 다루기도 한다. 이 코너는 김신식의 여는 글에 따르면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기획 과정에서 찾아볼 데이터”1)를 생산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나는 이를 무언가를 창작하고 발표하고자 하는 이들이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레퍼런스를 만드는 일이라고 이해했다.
  모든 일에는 ‘대개 이런 프로세스에 따라 이루어진다’라고 할 수 있는 부분과 ‘이러저러한 상황 때문에 이렇게 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를 보편성과 특수성이라 나누어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1986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십대 후반부터 ‘홍대 앞’ 인디씬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주로 포크, 록, 인디팝에 기반한 음악들을 다루어왔고 큰 상업적인 성과를 거둔 적은 없지만, 어찌 되었건 음악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2019년부터 독립음악 프로덕션 오소리웍스라는 음악 제작사를 운영해왔고, 이곳을 통해 여러 음악가의 음반을 제작, 발표해왔다. 이 정도가 나의 기본적인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 기반해 음반을 만드는 데 필요한 보편적인 프로세스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1. 보편적인 프로세스

음반 제작의 보편적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a. 프리 프로덕션
- 작곡, 작사, 편곡
- 음반 기획 및 예산, 자금 조달, 추진 일정 등에 관한 계획 세우기
- 연주자, 협업자 섭외
- 레코딩을 위한 리허설, 레코딩을 위한 가이드 데모 만들기

b. 프로덕션
- 레코딩

c. 포스트 프로덕션
- 믹싱
- 마스터링

여기까지는 주로 음악과 관련된 것들이다. 음악 이외에도 거쳐야 할 프로세스가 있다.

- 음반 디자인
- (뮤직) 비디오 제작
- 프로필 사진 촬영
- 라이너 노트 제작
- 프로모션 및 마케팅
- 온·오프라인 배급
- 쇼케이스 기획·운영
- etc.

간추리면 이렇다. 음반의 성격이나 규모 등에 따라 빠지거나 추가되는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지만, 대개는 이런 과정을 거친다.

음반 제작을 위해서는 실행해야 하는 일의 가짓수가 많다. 각 과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도 다르다. 이를테면 작곡, 작사, 편곡 과정에서는 음악 창작과 관련된 역량이 필요하다. 레코딩과 믹싱, 마스터링에서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기술적 측면에서의 유능함이, 음반 디자인에서는 디자인 역량이, 라이너 노트 제작에서는 텍스트를 다루는 역량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정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를 전체적으로 잘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 또한 필요하다.
  드물게 이 모든 과정을 혼자 수행할 수 있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일시적으로라도)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 것이 수월하다. 물론 팀에 재능 있는 동료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급부가 있어야 할 것이고, 또 팀을 운영하는 그 자체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용도 존재한다.
  노래는 혼자 짓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노래는 언제나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밀려오고 흩어진다. 우리의 기억 속에만 흐릿하게 존재하게 된다. 음반을 만드는 일은, 그 순간을 붙잡아 어딘가에 고정하는 일이다. 순간 속에 존재하는 것과 이를 붙들어 고정하는 일이 같을 수는 없다. 이 점을 잘 인지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2.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한정된 지면에서 상술한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다루는 것은 무리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음악 없이 텍스트로만 풀어내는 데서 오는 한계도 있다. 때문에 내가 작업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원칙에 대해서만 쓰고자 한다.
  요새는 음원을 내는 일이 쉬워졌다. 크게는 두 가지 변화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집에서 레코딩하는 일이 매우 쉬워졌고 이미지나 비디오를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둘째, 개인이 채널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누구나 직접 자신의 채널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팔로워들과 곧바로 소통할 수 있다.
  D.I.Y로 음원을 내는 일도 예전보다 더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애플뮤직은 2022년 10월, 서비스되는 음원이 1억 곡이 넘은 것을 알리는 기사2)에서 “1960년대에는 매년 5,000개의 앨범이 새로 발매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는 (…) 매일 20,000명 이상의 가수와 작곡가가 애플뮤직에 새로운 노래를 제공하고 있다”고 썼다. 그 모든 음악이 충분히 다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모든 음악의 가치가 동등한 것도 아니다. 거의 대다수의 음원은 발표되었으나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그저 데이터베이스 속에 머무르기만 한다. 극소수의 음악만이 청취자와 만난다. 그보다 더 극소수의 아티스트만이 스타가 된다.

직업이 음악 프로듀서인 만큼, 아티스트에게 프로듀싱 의뢰를 자주 받는다. 일단 의뢰를 받으면 그 아티스트에 관해 가능한 한 꼼꼼히 살핀다. 데모와 이전에 발표한 음원들을 들어보고, SNS도 훑어보고, 최대한 살필 수 있는 것은 다 살핀다. 그후 내가 이 음반을 만드는 데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생기면 만난다. 만나서 보다 세세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마다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그래서 이 음반 내서 되고 싶은 게 뭐예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에 따라 뭔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은 시작이다. 나는 이에 관해 계속 묻는다. 이 음반이 뭔지, 이 음악은 뭔지, 이 멜로디는 뭔지, 이 가사는 뭔지, 계속 묻는다. 이것들을 모아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대개 언어 또는 비언어적 기호(symbol)의 교환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기호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도 상당수 존재한다. 음악이 듣는 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이야기’는 돋보이고, 기억되기 위한 핵심적인 장치 중 하나다. 이를테면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의 데뷔작 ‘김일성이 죽던 해’에서, 우리는 부러 멋 부리지는 않지만, 자신이 세운 준칙에 따라 살아가는 어떤 이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천용성 <대설주의보> 뮤직비디오

선과영과 작업할 때의 일화도 소개하고 싶다. 선과영은 음악가 복태와 한군으로 이루어진 듀오다. 둘은 결혼했고, 슬하에 세 자녀가 있다. 2011년에 결혼했고 나와 음반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결혼하기 전부터 음악가였고 결혼한 후에도 계속 음악가로 살았으나 아이를 키우느라 바빠서 도무지 음반을 낼 수 없었다. 그러다 2022년에 그들의 첫 음반 ‘밤과낮’을 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직장의 휴일은 월요일이었다. 우리는 월요일마다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기타를 쳤다. 복태는 자신들이 부부라는 사실, 그리고 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 전부터 선입견을 품게 될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작업은 몇 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절반 정도가 지났을 때, 고심 끝에 복태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가 부부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아이가 있는 것도 당연해. 왜냐하면 너희가 부르는 노래들이, 그런 맥락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거 같아.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게 이상한 게 아니잖아. 너희가 이미 나이가 들었다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야. 오히려 나는 그럼에도 너희가 음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고,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선과영의 데뷔 음반 ‘밤과낮’의 슬로건은 “우리 세대를 위한 우리식 성인가요”였다.

선과영 <해가 지고 바람 불면> 뮤직비디오


3. 손 가는 대로 막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오히려 / 짧은 극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 말고도 장치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침묵, 공백, 헐거움 등의 방식을 통해 표현하지 않는 것 역시 음악의 중요한 장치 중 하나지만, 심지어는 그마저도 어떻게든 표현이 되어야 의미를 가진다.)
  ‘싱글’은 통상 한두 곡을 담은 작은 음반을 뜻한다. 한두 곡뿐이기 때문에 더 간결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우리가 대개 음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EP나 앨범 단위다. EP는 네 곡에서 여섯 곡 정도가, 앨범은 여덟 곡 이상이 실린다. 모든 곡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잦다. 음반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기고, 이것이 모여 작은 세계를 이룬다. 그래서 나는 음반을 만드는 일을, 소리로 작은 세계를 만드는 일이라 자주 표현한다. (또는 세계에 대한 관점을 담는 일이라 쓰기도 한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에 대한 대략의 상(image)을 잡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 등을 연결하고 확보하는 과정이라면,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는 이를 실제로 구현해내는 단계다.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은 마치 영화에서의 촬영과 편집, 이후의 후반 작업이 그러하듯이 예술적인 동시에 매우 기술적인 개입이 요구되는 단계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레코딩은 연주나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이고, 믹싱은 이를 섞는 것이고, 마스터링은 마지막으로 균형을 다시 잘 잡아서 완성본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만 쓰면 알 듯 말 듯하기 때문에 나는 이 과정을 요리하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먼저 어떤 음식을, 어떤 맛을 내고 싶은지 정한다. 그 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적절한 조리법을 찾는다. 좋은 재료를 준비한다. 각 재료의 맛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이것들이 한 접시에 담겼을 때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조리한다. 그것을 담아낸다. 소금이나 향신료를 추가해 간이나 특정한 향을 입히기도 한다. 먹기 좋게 담아낸다.
  일반적인 요리의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상의 요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굉장한 실력을 갖춘 요리사가 내놓는 정찬보다 때로는 집에서 늦은 시간 홀로 끓여먹는 라면이 더 맛있을 수 있다. 재료가 꼭 잘 다듬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고기나 김치, 두부 같은 것들을 손 가는 대로 막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오히려 진국인 경우도 있다. 다름은 있지만 요리 간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끔찍하게 맛없는 음식도 존재한다. 모든 음식, 그리고 음악의 가치가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첨예한 부분인 탓에 여기까지만 쓴다. 어찌 되었든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울리는 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잘 쓰일 수 있도록 조리되어야 한다. 여기서 ‘잘’은 그것이 어떤 요리인지에 따라 다르다. 이는 거의 원칙에 가까운 이야기다. 원칙만 잘 지키려는 마음만 있어도 우리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비유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음반이고, 음반의 주된 재료는 아무래도 소리다. 첫 파트에서 서술했듯, 소리는 밀려오고 흩어지는 무언가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무언가의 끝이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아쉽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무언가가 흩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종종 짧은 극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프로덕션 과정에 임한다. 공간과 시간, 인물과 사건을 상상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이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 공간은 어딜까. 그 공간은 밝을까, 어두울까. 추울까, 따뜻할까. 좁을까, 그렇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이 그 안에 있을까. 노래 부르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씩 미소를 짓고 있을까, 아니면 어딘가 쓸쓸해 보일까. 악기 하나하나를 캐릭터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 타이밍에 우아하지만 어딘가 비꼬고 싶은 마음이 드는 플루트가 들어와야지. 이 시점부터 전체를 보드랍게 감싸주면서 온도를 올려보자. 이쯤에서 불이 다 꺼지고 딱 정가운데에 선 보컬만 핀라이트로 비춰주는 거야.
  여러분들도 이런 상상을 해보면서 내가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한 다음의 몇 곡을 들어주었으면 한다.

전유동 <호수> 리릭비디오

단편선 순간들 <오늘보다 더 기쁜 날은 남은 생에 많지 않을 것이다> 뮤직비디오


4. 적정기술과 적정음악

우리가 음반을 제작하며 겪는 일 중 일부에 관한 생각을 두루뭉술하게나마 몇 자 적었다. ‘음악 이외에도 진행되어야 하는 프로세스’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너무 길어지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나는 어떤 ‘시작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적정기술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한 공동체가 가진 특정한 문화·정치·환경적인 요인을 고려해 만들어진 기술을 뜻한다. 주로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저비용으로 삶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되는 기술에 이런 이름을 붙이곤 한다. 몇 가지 예시를 들자면,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충격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해 저장할 수 있는 축구공을 지급해 낮에는 자유롭게 가지고 놀고, 밤에는 그 힘으로 배터리를 사용한다거나, 항아리 속에 젖은 모래를 채운 후 수분이 증발하면서 만들어지는 냉각 효과를 통해 간이 냉장고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적정기술이 도입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원이 넘쳐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은 너무 거대한 이슈인 탓에 음악을 그에 빗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개념을 만났을 때 나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적정함이란 개념이 도입될 수 있을까’를 떠올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와 우리의 작업은 지속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와 동료들, 그리고 어떤 씬을 공유하는 이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공통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성과를 내기 싫어하거나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음악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라도 노력하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거나, 또는 그 정도는 못 되더라도 다음 작업이나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 정도는 보전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불행히도 데이터와 통계가 증명하는 것은, 대부분의 음악가가 그 수준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이다.3)
  이 글의 서두에 나 자신이 마주한 현실적인 조건에 관해 약간의 정보를 기술했다. 요약하자면,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아주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창작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던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투잡, 쓰리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다. 다행인 것은, 여러 일을 전전한 탓에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많고 때문에 일을 구하기가 아직은 비교적 수월하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D.I.Y로 음악을 만들어온 탓에 음악과 음반을 만드는 일에 있어,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났다는 장점도 있다. 정말 잘하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일단 임시방편으로라도 무언가를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낄 수 있는 비용이 많다.
  사람들이 내게 자주 질문하는 것 중 하나는 ‘왜 그리 바쁘게 사냐’는 것이다. 나는 어쩐지 답하기가 곤란하다. 별 뜻이 있어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이미 몸에 익어서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나의 경우에는 내 몸뚱이였다. 내 몸뚱이를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내는 것이 내가 적정함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물론 이렇게 살지 않아도 계속 음악을 해나가는 음악가가 많다. 다른 길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나의 한계다. 각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적정함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적정함을 찾아내야 한다. 글 말미에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단편선

단편선은 한국의 음악가이자 음악 프로듀서다. 아방가르드와 팝이 뒤섞인 동양적인 사운드와 한국의 옛 가요에 기반한 특유의 발성이 시그니처로, 특히 자신의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을 통해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록 음반 부문을 수상하는 등, 이름을 알렸다. 음악가 외에도 작가, 활동가, 프로듀서, IT 기획자 등 다양한 필드에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9년 프로덕션/에이전시인 오소리웍스를 런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는 회기동 단편선의 ‘백년’ ‘처녀’, 단편선과 선원들의 ‘동물’ ‘뿔’,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가 있으며 『DIY 뮤직 가이드북』을 함께 썼다.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를 프로듀싱한 것을 계기로 음악 프로듀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천용성의 ‘수몰’, 선과영의 ‘밤과낮’, 전유동의 ‘관찰자로서의 숲’, 소음발광의 ‘기쁨, 꽃’ 등 다양한 음반을 함께 만들었다. 프로듀싱하거나 제작한 음반 중 천용성, 선과영, 소음발광의 음반이 제17회부터 제20회에 걸친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포크 음반, 최우수 록 음반 등 총 7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2025/03/05
72호

1
김신식, 「애환보단 데이터가 필요하다: 판도를 시작하며」, 《비유》 64호. 바로가기
2
레이철 뉴먼, 「1억 곡 달성을 기념하며」, 애플 뉴스룸, 2022년 10월 3일. 바로가기
3
뉴시스, 2021년 12월 31일 기사, ⟨예술인 평균 연수입 755만원…코로나로 3년 전보다 526만원 감소⟩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