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에 잎이 무성하고 둥근 열매가 맺혀 있다. 나무 밑동과 뿌리는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걸어나갈 듯이 튼튼해 보인다. 새 한 마리가 날아드는 나무 아래로 잡풀, 버섯, 돌 따위가 무성하다.

2004년 키프로스의 무덤에서 여자와 함께 발견된 동물은 인간에 의해 사육된 최초의 고양이로 판명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만 년 전부터 고양이는 허기지지 않은 인간에 의해 고의로 살해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저승엔 단 한 마리의 고양이도 살지 않는다.
  기괴한 미궁들을 빠져나가는 방법도 묘안, 즉 고양이의 눈 속에는 들어 있지 않을까.
  키프로스라는 단어를 사이프러스라고 읽으면 지중해로 둘러싸인 거대한 영토가 한 그루의 나무 안에 담긴다. 노송 또는 편백으로 번역되던가. 사이프러스의 성스러운 고독 속에 인간은 묘지를 쌓고 구성진 곡소리를 남겼다.
  “사랑하는 이여, 나 죽으면 슬픈 노래 날 위해 부르지 마세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마시고, 그늘진 사이프러스 나무도 심지 마세요.”1)
  파라오의 무덤 안으로 기어들어간 관광객들은 고양이를 살해하면 사형으로 처벌했던 이집트 풍습에 대해 듣는다. 죽은 인간의 무덤에 고양이가 산 채로 묻힌 게 아니라 죽은 고양이의 무덤에 인간이 산 채로 묻히던 시절이었다. 병들어 죽은 고양이의 진혼을 위해서 주인은 눈썹을 말끔히 깎은 채 삼 개월 동안 묘지를 지켜야 했다.
  지난겨울 나도 고양이와 함께 묻혔다. 죽은 나에게 묘안을 건네주기 위해 고양이를 산 채로 묻은 것인지, 아니면 죽은 고양이가 허기에 시달리지 않도록 나를 산 채로 묻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아니면 고양이와 환유되는 나만이 묻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Q는 내 몸속의 공허를 고양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에티오피아의 계곡에서 최초의 현생 인류인 루시의 유골이 발굴됐을 때 최초의 고양이도 함께 찾아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허기지지 않은 인간에 의해 고의로 살해됐다는 증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상,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세상이 너무 지겨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눈앞에 살아 움직이든지, 아니면 만 년 동안 무덤 속에 갇혔든지 간에 고양이는 늘 결핍과 갈등을 상기시킨다.
  최초의 고양이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뭘까. 고양이가 죽은 조상들과 신들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은 차마 그것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했을 테니,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나와 함께 묻혀 있는 고양이의 이름은 트로츠키다. 러시안 블루라는 학명으로부터 Q는 고작 그런 이름을 찾아냈다. 그 이름에는 박해와 혁명, 그리고 광기의 비릿한 피냄새가 묻어 있다. 그리하여 트로츠키의 예측대로 자본주의가 저절로 붕괴하는 미래에 나는 고양이의 등에 업혀 무덤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소설 『검은 고양이』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벽처럼 꼿꼿이 서 있지 않고 아래층의 천장과 위층의 방바닥 사이에 누워 있어서 출퇴근하는 Q의 구둣발에 매일 온몸을 짓밟히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누워 있었더니 욕창이 생겨날 지경이다. 하이힐을 너무 신고 싶다. 최초의 하이힐은 새의 뼈와 깃털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직립보행 이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하이힐을 선택하겠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여자를 실존의 정점에 올려놓는다. 곧추서서 캣워크를 하는 여자의 표정에는 마치 지구의 모든 문명을 다른 시공간으로 실어 나르는 우주인의 비장함까지 배어 있다. 그런데도 인류의 10대 발명품에 하이힐 포함되지 못한 까닭은 남성우월주의 역시 인류의 10대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의 하이힐을 만들어 신은 건 남자였고, 말을 타고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남미 대륙을 이륙한 나는 이곳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의 통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수천 켤레의 하이힐을 우연히 목격한 순간 여행 계획을 바꿨다. 그건 루시 이후로 여자 조상들이 남긴 화석 같았고, 모두 신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오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이백여 켤레를 사 모았지만, 아직도 신어보지 못한 것들이 훨씬 많다.
  나 같은 외국인 장기 체류자는 나그네새로 분류될 수 있겠다. 철새와 나그네새의 다른 점은, 전자는 기착지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지만, 후자에겐 출발지와 목적지만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관찰되는 새의 30퍼센트가 길을 잃었다는 설명을 듣고 매우 놀랐다.
  길고도 노란 발가락을 곧추세우며 해안을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새가 발견된다면, 내게서 떨어져 나간 넋새로 간주해도 좋겠다.
  이제는 출발지와 목적지마저 모호해졌으니, 나는 새를 닮은 나무나 그 나무에서 떨어져 세상을 부유하는 씨앗으로 퇴화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할머니는 인간이 되고 싶은 나무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셨는데,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물고기 대신 나무로 바꾼 것 같다.
  스웨덴 출신의 의사는 하이힐 산업이 전파된 경로를 따라 조현병 환자들의 숫자도 늘어났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데이터를 잘못 분석했을 수도 있다. 부유한 서구 사회에서 하이힐을 많이 소유한 여자가 정신과 상담을 자주 받는다는 진단은, 권태가 가난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상식을 확인하는 데에만 유용할 따름이다.
  게다가 최근에 의해 새롭게 번역된 『신데렐라』에는, 여왕이 되면 굳이 걸어다닐 필요가 없다는 어머니의 꾐에 넘어가 제 발가락과 뒤꿈치를 각각 잘라가면서까지 유리 구두에 발을 쑤셔넣는 두 언니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포악한 비둘기를 보내 언니들의 눈동자를 파먹게 만든 주인공이 등장해, 하이힐의 해악을 과장하며 여자를 가사노동으로 옥죄려 했던 남성우월주의자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나이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Q는 내가 자신보다 10센티미터나 높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걸 몹시 싫어했으므로 그와 외출할 때마다 나는 하이힐은커녕 밑창까지 들어낸 납작구두를 신어야 했다. 게다가 자주 벗겨졌기 때문에 나는 허리를 굽힌 채 Q보다 뒤처져 걸어야 했는데, 둘 사이의 거리만큼을 그는 존경심으로 이해하고 흡족해했다.
  그토록 굴종했건만 끝내 사랑받지 못하고 나는 발목에 차꼬와도 같은 손목시계를 찬 채 차가운 콘크리트 속에서 Q에 의해 양생됐다.
  거푸집 속에 콘크리트를 붓고 굳히는 작업을 양생(養生)이라 하는데, 예전엔 사흘이 소요됐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틀 이하로 줄어들었다. 옛 건물이 지진이나 화재에 견뎌낼 수 있었던 까닭이 어린아이나 처녀의 뼛가루가 건축 자재에 섞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부언낭설(浮言浪說)은 아직도 건축업자들 사이에서 술안주로 회자된다.
  작년 겨울 Q는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아 도시 외곽에 삼층 짜리 단독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일층은 거실과 주방과 손님방, 이층은 침실과 서재, 그리고 삼층은 결혼 후 태어날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계획됐다. 오랫동안 아파트의 층간 소음에 시달린 그는 천장과 방바닥을 이웃과 더이상 나누어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사 기간과 건축비가 예상보다 많이 늘어나자 설계도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삼층을 없애는 대신 옥탑방과 지하방을 추가해 세입자들까지 채워넣어야 했다. 임대차 계약서엔 권리보다 의무 조항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나의 몸까지 나누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천장과 바닥의 콘크리트 곤죽 속에 합성수지 조각들을 일정 간격으로 찔러넣었더니 층간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특수 도료까지 바르고 나자 집은 세 부분으로 완벽하게 분리됐다. 그래서 경찰들은 초음파검사기까지 동원하고도 끝내 내 시신을 찾아내지 못한 채 빈손으로 철수해야 했다.
  내 발목에 차꼬처럼 채워진 손목시계는 건전지를 바꿔 끼우거나 태엽을 감지 않고서도 무한히 시간을 순환시킬 수 있다. 하지만 팥죽처럼 끓고 있는 콘크리트 속으로 던져진 자에게 시간은 무한히 순환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다가 기어이 고갈되는 하수(下水)와 같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자맥질을 멈추고 몸을 길게 뻗어 시간의 힘을 감지하려고 노력했지만, 합성수지 가득한 콘크리트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게 죽음과 대결했는지 고고학자에게만큼은 알리고 싶어서 몸을 힘껏 비틀고 구부렸다.
  말랑말랑한 힘2)이 내 몸뚱이를 양생하는 동안 목뼈가 부러지고 무릎뼈는 문드러졌겠으나 통증이 너무 거대해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자에게서 청각이 가장 나중에 사라진다는 풍문에 집중했다. 하지만 달팽이관은 이미 돌덩이로 막혀 구원의 통로가 되지 못했다. 결국 내 몸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기능이라곤 사유뿐인데, 내 얼굴이 천장과 바닥 중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사유의 재료는 크게 달라질 것 같았다.
  내 발목 부근에 콘크리트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을 나는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라고 부른다. ―놀랍게도 그 시계의 상표는 고양이의 눈을 본뜬 것이니 Q는 이집트의 풍습에 따라 나와 고양이를 함께 묻은 셈이다.― 그것은 집을 관통하는 소음과 진동을 삼키며 자라날 것이고 이따금 내 내장 속에서 빠져나온 벌레들로 식도락도 즐길 것이다.
  아날로그시계는 새벽 3시와 오후 3시를 구분할 수 없고 어둠에 취약하며 무겁기까지 하지만, 일정한 간격의 하이힐 굽소리를 쉼 없이 쏟아내면서, 무한한 우주에 대해 경외감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원하는 만큼의 사건들로 유한한 인생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러면 바이털 사인은 다시 나른한 리듬을 되찾고 즐거운 망상이 날아오른다. ―그래서 무너진 탄광이나 건물에 갇혀 공포를 견뎌낸 생존자들은 대개 아날로그시계를 차고 있다.― 그러면 이백여 켤레의 하이힐을 나눠 신은 지네들이 잠든 Q의 배 위에서 밤새 무도회를 연다.
  Q는 세입자들과 계약할 때마다 자신이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어서 작은 소음에도 심정지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겁을 줬다. 심지어 나에게도 경고하고 싶었는지 내 무덤 위를 맴돌면서 발을 굴렀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장미 향기나 사이프러스 그늘에서 삼림욕을 즐긴 적도 없었다.
  이제야 Q가 왜 층간 소음을 극도로 싫어하는지 알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아파트에도 몇 기의 무덤들이 천장과 방바닥 사이에 숨겨져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쉬지 않고 노크하거나 발로 차거나 이를 갈았지만, Q를 제외한 거주민들은 온종일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산송장 상태로 귀가했으므로 그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아파트가 조만간 재개발이 시작된다고 하니 곧 그들에게도 정의로운 안식이 찾아가기를.
  지하방으로 신혼부부가 이사 왔을 때만 하더라도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가 머지않아 말랑말랑한 혀와 고막을 되찾게 되리라는 기대로 부풀었다. 이국에서 새로 발명된 사랑의 체위를 새벽까지 연습하느라 벽과 기둥을 모조리 흔들어댈 것이고, 내 몸 어디에선가 작은 뼛조각이 떨어져나와 신혼부부의 꽃잠에 섞일지도 모른다. 악몽을 뜯어먹고 산다는 악어3)의 습격을 받고 잠에서 깬 그들이 환지통 속으로 사라진 갓난아이를 찾기 위해 꽃자리 여기저기를 파헤치다 보면 삽날 끝에 고양이의 몸이 닿아 ‘I’m hungry’라고 울지 않을까.
  희망의 주검조차 섞여 있지 않은 현실에서 사랑은 사치일 따름이다. 아침 5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계속되는 가난과 허기와 노동으로 신혼부부는 너무 일찍 늙고 말아서, 처음엔 성욕과 식욕을 빼앗기더니 나중엔 말과 생각까지 휘발하고 말았다. 집의 냄새를 맡자마자 그들은 그림자처럼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잠이 들었다. 어쩌다 평소보다 일찍 깨어난 날에는 비몽사몽간에 서로의 몸을 더듬었으나 시내버스 첫차 시간을 확인하다가 절정에서 굴러떨어져 어색한 포옹이나 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그들이 황급히 지하방을 빠져나가면 나는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를 통째로 삼키고 뱉기를 반복했다.
  첫눈이 내리고 일주일쯤 지나서 옥탑방으로 젊은 음악가가 이사 왔다. 살림살이라곤 두 계절의 옷가지들과 기타 두 대, 소설책 몇 권, 식기 몇 개와 컴퓨터가 전부였다. 모든 예술이 여자와 독주(毒酒)에서 태어난다고 믿는 그가 매일 밤 부랑자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기괴하고 음란한 의식을 치러댈 것이고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의 음산한 울음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에 깊은 영감을 받아 그는 훗날 전설이 될 노래를 반 시간 만에 작곡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겨울에서 늦봄까지 그를 찾아온 손님이라곤 고작 다섯 명을 넘지 않았고 그들마저도 지하철 막차가 끊기기 전에 되돌아갔다. 불친소처럼 잘 길든 습관은 그의 일상을 짊어지고도 비명 한 마디 내지르지 않았으므로 그의 노래는 세상을 울리지 못했다.
  음악가가 떠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Q는 젊은 여자와 그녀의 부모를 옥탑방의 쓸쓸한 기운 속에다 쓸어넣었다. 이삿짐 속에 아이들 한둘 정도는 끼어 있길 기대했던 나는 또다시 실망했다. 야생동물 같은 아이들이 격렬한 놀이를 시작할 때마다 나와 고양이들은 고요히 누워 있지 못할 것이다. 작은 틈새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그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물건들을 찾아내는 귀재들이다. 그들이 불러들인 화마(火魔)가 이 건물을 둘로 쪼개놓는다면 복숭아 씨앗 같은 나와 고양이들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년 시절의 습성이 완전히 거세된 노인들은 밥냄새가 날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방바닥에 누워서 간신히 숨소리만 이어갔다. 그들의 딸은 매일 새벽에 집을 나서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그러고는 한 시간가량 물소리와 울음을 번갈아 흘려보내다가 마치 다이빙 선수처럼 잠 속으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하지만 나처럼 죽은 자를 좌절시키는 건 희망으로 부풀리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관련된 진실을 모두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걸 영원히 기억할 수도 있다. 결핍이 없는데 변화가 어찌 가능할 것이며, 이미 가득 차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뭘 어떻게 실패한단 말인가.
  그래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다면, 매일 두 번씩 거의 같은 시간에 옥탑방 여자의 하이힐 굽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Q가 고양이라고 불렀던 내 몸속의 공허와 내가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라고 부르는 발목 부근의 빈 곳 전체가 뜨거워졌고, 조물주가 단 한 명의 인간에게만 허락한 부활의 기적이 내게도 일어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한 인간의 죽음은 모든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똑같은 물질 안에 고유한 특징들을 숨기고 있는 이상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하찮은 물증만으로도 사건의 전모와 살인자의 정체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 설령 Q가 나의 모든 털을 깎아내고 피부와 핏줄을 걷어내며 이빨과 손톱과 동공을 뽑아냈다고 한들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나의 머리카락 한 올, 손톱 한 조각, 지문 한 점, 그리고 타인의 기억은 Q가 단죄될 때까지 그의 불안감을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를 말랑말랑한 세계 속으로 던져넣고 집에 돌아온 직후에야 Q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노잣돈으로 바쳤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것은 브루나이 국왕이 매년 크리스마스 기간에 전 세계 이백여 명의 스쿠버다이버들에게만 개방하는 바닷속을 열 시간 이상 잠영한 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기념품으로, Q는 자신의 의사 면허증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다. 일주일에 세 시간씩만 손목에 차고 다닌다면 영구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지만, 양생이 끝나 말랑말랑한 힘이 사라지면 층간 소음이 억제될 것이니 침대에 누워서 초침 소리를 듣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사춘기에 『검은 고양이』를 읽고 크게 전율했던 Q는 안전을 핑계로 내게서 트로츠키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불순한 의도를 감지한 그것은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렸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노동자들이 공사 현장으로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나와 트로츠키를 한꺼번에 팥죽 같은 콘크리트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면서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트로츠키만큼은 나를 버린 채 지옥을 스스로 빠져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 온몸에 묻은 콘크리트가 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현관을 고양이 조각상으로 장식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끝내 지옥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Q는 주변에 떨어진 막대기를 집어들고 팥죽을 휘저으면서 새알 같은 그것을 건져내려고 애쓰다가 노동자들의 인기척을 듣고 범죄 현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트로츠키를 보고 크게 안심했다. 그리고 살인 충동과 관련된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면서 환각을 경험했다고 자위했다. 내가 그에게 비밀로 한 채 러시안 블루 수컷 한 마리를 더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내 몸에서 더이상 대마 씨앗이 맺히지 않은 까닭은 내가 아이를 잉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Q에게 그 사실을 알릴 기회를 엿봤지만, 나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그에게 그 소식은 이별의 구실로 사용될 것 같아서 머뭇거렸다. 똑똑한 아이를 낳는 법을 읽다가 나는, 자신이 갖고 싶은 아이의 숫자만큼 고양이를 부적에 그려서 지니고 다니던 고대 이집트 풍습을 알게 됐다. 아이들에겐 형제자매가 최고의 유산인 만큼, 부적을 만드는 대신 고양이 한 마리를 더 입양해서 레닌이라고 명명했다. 오해하지 마시라, 트로츠키를 암살한 건 레닌이 아니라 스탈린이다. Q가 예고도 없이 집에 들이닥칠 때마다 나는 창문 밖으로 트로츠키를 급히 내보냈다가 그가 떠나면 그걸 다시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Q는 고양이의 우아한 자유를 욕실에 제한시키는 조치로도 모자라 성대를 잘라내고 중성화 수술까지 직접 집도했다. 그 결과 레닌은―트로츠키는 집 밖에서 화를 피할 수 있었다―이웃에게 전혀 해롭지 않은 생명체로 거듭났으나 유감스럽게도 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트로츠키가 안방에서 매일 밤 나의 무력감을 위로하는 동안에도 레닌은 냉장고나 사료 포대 주변을 서성거렸다. 직물 쿠션처럼 변해가던 레닌은 어느 일요일 오후 방 청소하던 Q의 발길질로 왼쪽 뒷다리를 평생 절뚝거리게 됐고 더이상 Q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혁명가 레닌은 뇌일혈로 쓰러져 병상에서 평온하게 죽었다.― 현실을 교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로 Q는 나까지 박제할 방법을 은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도 나는 살의를 감지하지 못한 채 태아의 허기를 삶의 위안으로 여기고 손에 잡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삼켰다. Q는 내가 삼키는 것들이 원죄로 쌓인다고 믿고 나를 학대했다. 술에 취한 그의 폭력에 혼절과 하혈이 반복됐다. 그러는 사이 태아가 핏덩이로 내 몸에서 흘러나갔는데도 나는 한참 동안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더이상 내 몸속에서 씨앗이나 아이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Q의 더러운 욕망을 몸속에 채워넣어야 했다.
  새로운 집의 우아한 안주인이 되기 위해 나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강요당했다. Q가 트로츠키라고 알고 있는 레닌도 살을 빼지 않는다면 결코 이삿짐에 실릴 수 없었다. 나의 결심을 돕는답시고 Q는 냉장고와 사료 포대를 통째로 내다버렸다. 그러고는 집에서의 모든 화식(火食)을 금지했다. 나는 전쟁 포로처럼 물 일곱 잔과 사과 한 개, 아몬드 열 개로 하루를 버텼는데, 어떤 날은 화장실까지 걸어갈 기운조차 없어서 누운 채 방바닥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트로츠키에겐 이틀에 한 번씩 50그램의 닭고기가 허락됐으나 그걸 레닌과 몰래 나누어 먹어야 했기 때문에, 목에 매달고 있는 번역기의 액정에 온종일 ‘I’m hungry’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레닌은 쇠창살과 바닥을 갉아대다가 이빨과 손톱을 모두 잃었는데도 Q에게 순응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의 풍장(風葬) 끝에 나와 두 마리의 고양이는 음식 냄새를 공포로 받아들이게 됐다. Q는 15센티미터 높이의 감색 하이힐을 선물해 나를 감격시켰으나,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발가락을 모두 구부린 채 균형을 잡으려면 또다시 3킬로그램 이상의 몸무게를 덜어내야 했다. 그랬더니 일층 천장과 이층 바닥에 사이에 숨을 수 있을 만큼 납작해지고 말았다.
  우아한 캣워크를 할 수 없게 된 레닌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고 그것이 집 안에서 터질까 봐 걱정된 Q는 자신의 범행 계획을 앞당겨야 했다. 토요일 아침 노루잠에서 덜 깬 나는 무의식적으로 레닌 대신 트로츠키를 품에 안고 Q를 따라나섰다. 내가 앞으로 살게 될 신혼집의 건설 현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나는 고양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나,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트로츠키를 품밖에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트로츠키가 레닌 대신 암살당한 것이다. 만약 레닌을 품은 채 팥죽 같은 콘크리트 속에 빠졌더라면 나는 식곤증으로 노곤해진 노동자들의 악몽 위로 풍선을 움켜쥔 채 떠올라 Q의 완전범죄를 고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레닌이 아닌 트로츠키와 함께 이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서 놀이동산에서 헬륨 풍선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나는 팔을 뻗어 트로츠키의 꼬리를 영원히 찾고 있다.
  죽고 나니 고양이 언어 번역기 없이도 트로츠키의 이야기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고양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언어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엉터리 번역기 때문에 부당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주인의 목덜미를 물어뜯지 않은 건 두고두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내가 자신의 이야기에 정확히 반응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 그것은 내게 더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고 있다.
  팥죽 같은 콘크리트를 너무 많이 삼킨 데다가 몸 안팎을 감지할 감각기관이 단단히 굳어서 나와 트로츠키는 이 집의 수명이 다할 때까진 결코 허기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살이 찌지도 않을 테니 주기적으로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도할 필요는 없다. 결핍이 사라지면서 사유가 멈췄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잘게 나뉘어 흩어지는 죽음은 나와 트로츠키에게 언제쯤 가능할까.
  이미 죽은 내가 여전히 외롭고 불안한 걸 보면, 죽음은 소멸이나 파괴와 관련된 사건이 아니라 그저 몸속으로 흐르는 시간의 방향이 바뀌는 현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결국 나는 이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의 뇌처럼 변신해 집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손목시계엔 녹음 기능이 내장돼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의 작동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손가락은 더이상 내게 없다.
  나의 죽은 몸속으로 열대어처럼 헤엄쳐 다니는 시간은 대부분 옥탑방에서 건너왔다. 특히 녹초가 돼 새벽에 돌아온 여자가 벽이나 바닥을 흔들면서 구역질하는 동안 나는 카타르시스를 여러 번 경험했다. 타인 앞에서 억지로 삼켜야 했던 것들을 뒤늦게나마 뱉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인간의 심신은 약보다 독을 더 빨리 흡수한다.
  아무것도 쏟아낼 수 없는 날에 여자는 이따금 의자 위로 올라가 들보에 가죽 허리띠를 묶고 그걸 제 목에 감은 다음 방바닥으로 뛰어내렸는데, 가짜 상표가 교묘하게 지워진 허리띠는 여자의 절망을 일 초도 채 들고 있지 못하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쳤고 그때마다 한 달 남짓의 시간이 내 몸속에 채워졌다. 그녀의 거듭되는 실패가 너무 안타까워서 트로츠키는 자신의 꼬리로 그녀의 목을 슬그머니 감고 당겼으나 그녀의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급히 풀어줘야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녀는 아무 때나 일생을 멈춰 세울 의지를 단련하고 죽음까지의 거리를 측량하기 위해 그런 방법을 단련하는 것 같았다.
  지하방의 신혼부부에겐 시간을 거의 빚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각자 야근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그들은 납골당처럼 음산하게 변한 집 대신 찜질방으로 퇴근해서 몸뚱이를 갱엿처럼 녹였다 굳히길 반복했다. 가난 덕분에 권태를 모르니, 권태를 해결하려고 서로를 살해하진 않을 것이다.
  일본어에 엔요노 카타마리(遠慮のかたまり)라는 표현이 있다. 서로 사양하는 바람에 남겨진 음식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물론, 그렇게 남겨진 사람에게도 사용 가능하다. 가령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던 두 명의 연적이 갑자기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경우, 양자 선택의 고통에 빠져 있던 여자는 두 번의 이별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자가 죄책감을 홀로 떠안은 채 오랫동안 세상의 멸시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M과 Q, 그리고 C는 나와의 친밀함을 요란하게 자랑했지만 정작 나에게 그들은 실패한 사랑의 피험자에 불과했다. 실패를 예상하고 사랑을 시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랑에 실패한 이상 굳이 그들을 기억할 이유가 없었고, 완벽한 타인이 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M과 Q는 자신의 실패를 내게 보상받으려 했으니, 전자는 자신을 죽이고 후자는 나를 죽이는 방식을 각각 선택했다.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던 비밀은 하나같이 하찮았으나, 파괴력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그걸 감추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했다. 모두가 이미 나눠 가진 비밀은 제멋대로 변형돼서 아무리 맞춰보아도 진실로 완성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죽음으로 재촉할 순 없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옮겨갈 건물을 완성하자 Q는 망각으로써 연민과 후회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나무의 성정을 지닌 나는 이별 통보 따위에 전혀 상처받지 않는데도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내 주검 속에 강제로 묻으려 했다.
  여섯 명과의 인연만으로도 인류 전체와 연결될 수 있는 개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결국 지구 전체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기계 장치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기록하는지 생각해 보면 완전범죄란 코끼리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습지를 통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 코끼리를 뒤따르면서 흔적을 지우려 해도 그의 발자국이 남는다. 전쟁이나 전염병, 자연재해 같은 재앙에도 한 세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Q는 몹시 괴로웠을 것이다.
  Q는 내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머지않아 자살하거나 혐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소견서를 의사 친구로부터 받아냈다. 그리고 콘크리트 양생이 끝났을 무렵 경찰서에 나의 실종을 신고했다. 최초의 신고자가 가장 유력한 범인일 수 있다고 배운 경찰은 Q의 알리바이와 채무 관계와 보험 계약 현황을 세심하고도 은밀하게 조사했다. 그가 마약 사범인 C와 자주 접촉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Q의 범죄를 확신했다. 하지만 용의자의 불순한 동기나 수상한 언행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물증만 잔뜩 확인했을 뿐이다. ―Q는 의사로서 환자를 차별하지 않고 돌보며 그의 개인 정보를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항변하면서, 수년 전 자신의 병원으로 찾아온 연쇄살인마의 치질을 치료해주었더니 다음 날 자수했다고 으스댔다.― 결국 경찰은 외교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살인자 대신 실종자를 찾는 데 집중했고 나의 생사를 애써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이모의 의견에 따라 반년 동안 태업하다가 미제 사건으로 등록했다.
  그래도 나를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목격자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남미 대륙에서 건너와 열 살 아이처럼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은 흔치 않았기 때문에 고작 눈인사를 나눈 사람들조차 나를 오랫동안, 그리고 정확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뒤늦게 나타난 목격자에 의해 앞선 자들의 증언이 완벽히 부정됐고, 명백한 증거를 확인한 이상 경찰은 이전의 보고서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Q의 병원에 십 년 넘게 근무한 간호사의 변덕스러운 증언 또한 Q의 범죄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내가 트로츠키를 품에 안은 채 콘크리트 무덤 속에 갇히는 광경을 직접 봤다는 목격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그는 경찰과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없을 만큼 늙고 사리에 어두웠다. 노인들의 눈에 새로운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의 주장 역시 『검은 고양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값비싼 건물을 부술 만큼의 확신과 용기가 없었던 경찰은 초음파검사기를 빌려와 몇 곳을 건성으로 조사하고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길거리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나와 트로츠키의 불행으로부터 기적적으로 도망친 레닌은 아직 살아 있을까. 살아 있다면 우리를 위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도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서 나왔다.
  Q의 몸에서 쏟아져나오는 대마 씨앗의 분량은 충분하지 않았지만, 품질만큼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Q는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를 데리고 암스테르담이나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 한다. 거기서 병원을 개업하고 원인 모를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대마로 만든 진통제를 처방해줄 것이다. 만약 마지막 퍼즐까지 풀게 된다면 불치병의 환자들이 스스로 대마 씨앗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종균을 접종해주거나, 제약회사를 직접 설립해 앰플을 대량으로 유통할 수도 있다. 그의 재력과 명성을 전해 들은 화가나 수집가가 몰려와 자신의 소장품을 팔려 하겠지. 그때는 피카소의 진품 정도는 돼야 그의 사무실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옥탑방의 온도는 바깥 날씨에 따라 크게 변했기 때문에 음지식물과도 같은 부모를 위해 여자는 이사할 기회를 엿보았다. Q는 내게서 빼앗은 하이힐을 그녀에게 선물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하이힐은 현실보다 더 높거나 낮은 세상으로 오르내리는 데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 매끈한 보도 위를 캣워크로 걸을 때나 주목받는 것이다. 불운과 비애가 중첩되는 날 하이힐을 신고 걷다보면 마치 달 위에 버려진 우주인처럼 무기력과 외로움을 느끼다가 무호흡 증상에 빠져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강제로 신겨진 내 하이힐이나 내 발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의 쓸모는 정확히 같다.― 결국 그녀는 어느 날 밤 세간을 그대로 놔둔 채 부모를 데리고 옥탑방을 맨발로 내려간 뒤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열대어 같은 시간이 더이상 채워지지 않을 테니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는 조만간 아사할지도 모른다.
  만약 나의 악몽이나 트로츠키의 저주가 옥탑방의 여자에게도 비상한 능력을 주입했다면, 그녀가 떨어뜨리고 간 씨앗들에서 착암기 같은 뿌리가 자라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내 몸속에 봉인돼 있는 물기와 영양분까지 도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막의 나무들은 지상으로부터 수십 미터 아래까지 뿌리를 뻗을 수 있을 만큼의 갈증을 지녔다고 들었다.
  나의 라만차 기사는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를 타고 하루에 두 번씩 저승을 소요하면서 죽음의 사신에게 끌려간 나를 찾고 있지만, 정작 내 울음소리를 듣진 못한다.
  하이힐이나 손목시계 없이도 불편 없이 사는 지하방의 새댁이 첫눈이 내리기 나흘 전, 잠을 자다가 갑자기 발작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남편은 한참 동안 꿈의 안팎을 구별할 수 없어서 누워 있었다. 아내의 등을 두드리면서 그는 아버지가 되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곧 아내의 입속에서 모래 같은 토사물이 쏟아져나오자 남루한 저녁 식사가 일으킨 복통 정도로 여기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다음 날 아침에 새댁은 한 시간 남짓 소리를 듣지 못했고 오후엔 두 시간 동안 앞을 보지 못했으며 저녁 무렵 항문 주위로 몰려든 통증 때문에 쓰러져 기어이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직 의사는 병명을 추정하기는커녕 자신이 직접 확인한 증상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일어난 발작으로 규정하며 소화제와 진통제만을 처방했다. 응급실에 다녀온 지 이틀 뒤 똑같은 증상이 나타났으나 새댁은 더이상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씨앗들을 쓰레기봉투에 가득 담아 집 밖에 내놓았는데, 귀가하다가 그걸 발견한 Q는 몹시 흥분해 방 안으로 들고 와 풀어보았다. 고급의 대마 씨앗이 분명했다. 자신의 대마 씨앗 생산량은 크게 줄어들고 은행 대출금의 압박은 더욱 커지는데 간호사마저 남편과의 이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참에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마치 피카소의 선물 같았다. Q는 자애로운 집주인으로 변신해, 산모와 태아에겐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므로 거처를 지하방에서 옥탑방으로 옮겨주고 월세까지 낮춰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리터 쓰레기봉투를 씨앗으로 채워 제공해준다면 사하라 사막에서 녹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단체에 후원금과 함께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삿날 Q는 신혼부부의 세간을 직접 들고 날랐을 뿐만 아니라 나의 하이힐을 새댁에게 선물로 건네기까지 했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름한 추억만으로 뜨거운 죽음에 맞서고 있는 수도승을 상상한다. 죽비 소리 같은 모래바람이 그를 흔들어 깨울 때마다 사리와도 같은 씨앗들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곧 푸른 그늘과 알싸한 냄새가 그를 허공으로 밀어올린다. 숲은 파문처럼 천천히, 그러나 끊어지지 않고 빽빽하게 퍼져나가 겨울을 건너가는 철새들에게 발견되고 그것들을 쫓던 캐러밴도 도착한다. 잠시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계가 유지되지만, 인간의 탐욕이 발동하면서 전쟁이 일어나고 숲은 불탄다. 폐허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그 수도승 주위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몰려와 철조망을 두르고 보초를 선다. 그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는다. 수많은 인간의 피와 살을 모랫바닥에 쏟아부었는데도 숲이 다시 울창해지지 않는 까닭은 므두셀라 증후군에 걸린 수도승에게서 더이상 사리와도 같은 씨앗들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결국 그 수도승을 살해하고 사막 밖으로 떠난다.
  나의 발목에 채워진 손목시계는 새댁의 밭은기침 소리와 신랑의 잔걸음 진동으로 다시 작동하고 있지만 시곗바늘이 한 바퀴를 도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출구를 모른 채 나선형으로 흐르는 시간은 머지않아 내 몸속 여기저기에다 블랙홀을 만들 것이며 여전히 사유는 가능하나 아무것도 축적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가 유한하고 반복되는 이유이다.― 블랙홀 안에서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건 결코 불가능할 테니, 그 속으로 내가 완전히 빨려들어가는 순간 Q의 완전범죄는 승리할 것이다.
  옥탑방으로 옮겨간 신혼부부는 열기를 참지 못하고, Q가 지방 출장을 간 사이에 야반도주했다. 이전의 세입자와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쓰레기봉투 하나 남기지 않고 자신들의 세간을 모조리 챙겨갔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씨앗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돈벌이를 위해 이곳보다 따뜻한 곳으로 옮겨갔거나 반대로 치료를 위해 더 추운 지방을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동굴처럼 텅 빈 옥탑방에서 걸어나온 Q는 마치 조만간 그곳에 묻히게 될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힘없이 웃었다. 이 모든 불운이 이 집 한가운데 묻혀 있는 나와 트로츠키 때문인 것 같아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다가 문득 행복한 생각이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나와 트로츠키가 이 집 한가운데 호두알처럼 묻혀 있는 한 누구든 옥탑방이나 지하방에서 반년 정도 지내게 되면 대마 씨앗을 생산해낼 능력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소출을 손쉽게 착취할 수 있는 가축들로 그곳을 채워넣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Q는 구청에서 진행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두어 차례 참가한 뒤 지체 장애인 네 명을 옥탑방과 지하방에 각각 두 명씩 채워넣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교류가 없고 병원에 자주 드나들 수도 없는 세입자들은 온종일 방 안에 머물면서 재봉질하거나 택배 상자를 포장했다. 그들에게 월세를 면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퇴근길에 이따금 그들의 방에 들러 간단한 검진을 하거나 음식을 나눠줬기 때문에 Q의 선행에 대한 칭송은 먼 곳까지 퍼져갔다. 그래서 하마터면 나 역시 그의 죄책감이 선량한 의지로 승화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식물과도 같은 상태의 세입자들에게 건너오는 미약한 소음과 진동으로는 블랙홀의 불안감을 전혀 제압할 수 없었다.
  이사 온 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세입자들에게선 아무런 소출도 쏟아져나오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불행 속에 갇혀 있다보니 종균에도 쉽게 감염되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급해진 Q는 하루가 멀다고 세입자들을 만나 검진했으나 희망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더위와 가뭄으로 고지대에 수돗물 공급이 자주 끊기면서 세입자들의 불평이 이어졌다. 처음엔 일당을 주고 수리공을 불러 일일이 대응했으나 요구사항이 점점 늘어나자 Q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선의를 의심받을 만한 언행으로 구청 공무원에게서 불편한 충고까지 들은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세입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그리고 이 집을 대마 씨앗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려던 망상을 버린 채 병원에서 가까운 곳에 셋집을 구해 이사했다. 이곳에 호두알처럼 박혀 있는 나와 트로츠키가 발견되는 걸 걱정해 이 집을 팔거나 세를 주지 않은 채 비워두었다. 이웃이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음산한 소문을 흘린 이도 Q였다. 그래서 반년 동안 내 무덤을 찾아온 것이라곤 레닌의 자손들이 전부였고, 그들은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내 발목에 매달린 손목시계를 한참 동안 핥다가 돌아갔다.
  직립보행의 인간은 콘크리트 속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데, 남미 대륙의 밀림에 사는 나무는 일 년에 4미터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원래 그 나무는 마야의 공주였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림 깊숙이 사냥을 나갔다가 적국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전쟁 대신 화해를 간청하기 위해 공주는 왕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지하 감옥에 갇힌다. 이 소식을 들은 적국의 왕자는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왕국을 찾아와 공주를 구출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 때문에 가족이 살해되고 왕국마저 파괴됐다는 사실로 괴로워하던 공주는 결혼식 전날 밀림으로 도망쳐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그뒤로 그 나무에겐 걷는 능력이 생겼다. 지상에 드러나 있는 뿌리는 중세 프랑스 귀부인들의 철제 치마틀―파니에(Panier)―처럼 둥글게 펼쳐져 있어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장마나 가뭄이 이어지면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기존의 뿌리는 잘라내면서 이동한다. 바위나 웅덩이에 닿아 더이상 전진할 수 없을 때도 뛰어난 균형 감각을 발휘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벌목과 화재로 밀림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면 그것들은 밀림 쪽으로 이동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걷는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면 불행한 사건에 대비해야 한다고,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 부모는 어린 내게 가르치셨다.
  평년보다 훨씬 따뜻한 봄이 이어지면서 여태껏 발견된 적 없는 동식물이 매일 새롭게 보고됐다. 무리에서 이탈한 것들도 낙오자 대신 방문자의 지위를 얻었다. 새롭거나 불가해한 상황들은 모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외국에서 건너와 저급 일자리를 채운 이주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에서도 여전히 환대받지 못했다. 온종일 가구 공장에서 톱밥과 접착제 속에서 일하고 있는 아프리카 청년 두 명이 5월 어느 날 부동산 중개업자를 앞세워 내 무덤을 찾아왔다. Q가 그들 앞에서 옥탑방의 문을 열었을 때 시멘트 바닥을 뚫고 자라난 나무들이 보였다. 양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다행히 그런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은지 세입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참았다. Q는 그들을 데리고 지하방으로 내려갔다. 철문을 열자 습한 열기와 악취가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점등하는 백열등이 늦게나마 켜졌을 때 방 한가운데엔 프랑스식 치마를 두르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기둥처럼 서 있었고, 그것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방바닥이 파헤쳐져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설명하기에도 그 나무는 너무 거대하고 낯설었다. 그것은 누구의 몸에서 쏟아져나온 씨앗에서 태어났을까. Q는 정수리로 번개가 떨어져 자신의 인생을 단번에 중지시켜주길 기대하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손목시계를 두른 발목뼈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반짝거렸다. 그러자 아프리카 청년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내 무덤을 빠져나갔고, 부동산 중개인의 하이힐 굽소리가 뒤따라 사라졌다. Q는 자신이 나무에 붙들린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이십여 분 뒤 중무장한 경찰들이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이런 이야기도 『검은 고양이』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에드거 앨런 포가 잔인하게 살해한 적 있는 그의 아내일지도 모르겠다.
  새로 짓는 집의 구조와 전경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고양이만을 데리고 점심시간에 공사장을 몰래 방문했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양생 중인 콘크리트 늪에 빠져 질식한 것 같다고 주장하던 Q는, 일 년에 고작 이백여 명의 스쿠버다이버들에게만 허락되는 손목시계가 어떻게 내 발목에 채워져 있는지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팥죽 같은 콘크리트 속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우연히 그걸 발목에 차게 됐다고 추측했던 나 역시, 어쩌면 트로츠키가 인간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그걸 번역기처럼 내 발목에 채웠을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검은 고양이』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가 아직 남았다. 경찰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의 천장과 방바닥을 부수면서까지 수색했지만, 발목뼈 이외의 나와 트로츠키의 유골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무의 우듬지가 천장을 뚫는 순간 트로츠키가 먼저 부당한 죽음에서 깨어났고 내게 다가와서 내 몸에 붙어 있던 합성수지들을 이빨로 긁어냈다. 몸을 겨우 뒤집은 나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 내가 손목시계를 찬 고양이라고 부른 공간 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리고 나무의 텅 빈 중심을 타고 뿌리까지 미끄러져 내려와 무덤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도시는 이미 걷는 나무들이 남긴 구멍들 위에 떠 있어서 당장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미궁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구멍들을 통과하는 데 트로츠키의 묘안(猫眼)은 매우 유용했다. 어둠과 침묵과 허기 속을 오랫동안 헤매다가 구멍 밖으로 나가보니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나의 아버지이자 마야의 위대한 왕은 나의 실패한 사랑을 애도하고 새로운 사랑을 축원했다. 그리고 걷는 나무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땅을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하이힐을 한 짝만 신은 채 그곳을 우아하게 걸으면서 트로츠키에게 영원한 자유를 약속했다.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무들을 위해 그것은 여전히 언어 번역기를 목에 차고 ‘I’m hungry’를 연발했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기억하시고, 당신이 원하신다면 잊으세요.”4)

김솔

2012년 한국일보로 등단해서 여섯 권의 소설집과 일곱 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2025년에도 장편소설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책은 『말하지 않는 책』과 『행간을 걷다』이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키친 문학’에 필적하는 ‘투고 문학’의 대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적 있다.

Walking Tree 시리즈는 네 편의 단편소설 연작으로 완결됐고, 첫번째 작품 「변신」은 2014년에, 두번째 작품 「퍼플 케이크」는 2023년에 발표했다. 세번째 작품은 발표하지 않을 계획이어서, 네번째 작품을 여기에 싣는다.

2025/04/02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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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로제티,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중. 원문은 이렇다.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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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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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밀어넣어진 나는 곧 낡고 더러운 침대와/ 마주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그 불면의 늪에/ 빠져 괴로워했으리라 침대에는 몸부림치다 패인/ 웅덩이가 무슨 얼룩처럼 널려 있다 어쩌면 침대에는/ 그 악몽을 물어뜯고 산다는 악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송찬호, 「나비의 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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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로제티, 「나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중. 원문은 이렇다.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