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울렸어요.
  “진아, 부탁이 있어. 현이 좀 데려올래? 엄마가 좀 늦을 거 같아. 곧장 데리고 와서 간식 먹으면서 기다려.”
  6시가 넘었어요. 진이는 나갈 채비를 했지요. 현이는 6시 반에 끝나거든요. 혼자서 현이를 데리러 가는 건 처음이었어요. 진이는 어깨를 쫙 펴고 문을 나섰어요. 마치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으쓱으쓱했어요. 어린이집 앞에 서자 발표하러 앞에 나간 것처럼 떨렸어요. 진이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어린이집 벨을 눌렀어요.
  “누구세요?”
  진이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큰 소리로 말했어요.
  “유, 현, 데리러 왔어요. 현이 누나예요.”
  문이 열리고 현이가 방글거리며 뛰어나왔어요. 신발을 신으면서 목을 빼고 진이 뒤를 쳐다봤어요.
  “엄마는?”
  진이는 현이 손을 잡으며 말했어요.
  “엄마 좀 늦으신대. 누나랑 가자.”
  어린이집 선생님이 진이한테 의젓하다고 칭찬했어요. 진이는 쑥스럽게 웃었어요. 현이는 입이 쑥 나왔고요.
  현이는 타박타박 발소리를 크게 내며 걸었어요. 진이는 현이가 어디로 갈까봐 손을 꼭 잡았어요. 현이는 손을 비틀어 빼려고 했어요. 걸음도 천천히 걸으면서 몸을 뒤로 쭉 뺐어요. 진이는 현이 손을 더 꼭 잡고 걸었어요.
  겨우겨우 집에 들어왔어요. 진이는 현이 손을 놓고 손목을 주물렀어요. 현이는 그대로 달려가 장난감 상자부터 엎어놓았어요. 와르르 장난감이 마루로 쏟아졌어요.
  “야!”
  진이는 얼른 가서 현이를 잡았어요.
  “손부터 씻어야지.”
  현이는 진이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몸을 숙였어요. 진이는 현이를 꽉 잡고 목욕탕으로 갔어요. 현이는 투덜거리면서 손을 씻었어요. 현이가 다 씻자 수건으로 물기를 꼼꼼히 닦아줬어요. 엄마처럼요.
  진이는 빵하고 오렌지주스를 식탁 위에 올려놨어요. 빵을 보자 현이는 냉큼 식탁 앞으로 갔어요. 의자에 앉지도 않고 빵을 덥석 집었어요. 진이는 현이 옆에 있는 의자를 빼면서 눈짓을 했어요. 현이는 못 본 척 서서 빵을 한입 베물었어요. 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자에 앉아 빵을 먹었어요.
  갑자기 현이가 빵을 내려놨어요. 눈을 반짝이며 진이를 쳐다봤어요.
  “누나, 우리 엄마 마중 가자!”
  “마중?”
  “나가서 ‘짠!’ 하고 엄마 놀래주자.”
  현이는 진이 손을 잡고 흔들며 졸랐어요. 진이는 곤란한 표정으로 현이를 봤어요.
  “안 돼. 엄마가 간식 먹으면서 집에 있으라고 했어. 그리고……”
  현이는 진이 말을 끊고 말했어요.
  “엄마 버스 내리는 데까지 가보자. 응? 응? 으응?”
  진이는 현이 눈을 보고 고민했어요. 사실 진이도 나가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들었어요. 이사 온 후로 동네를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엄마 말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어요.
  현이는 바로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어요. 진이도 주춤거리다가 현관으로 갔어요.
  “버스 정류장만 가서 엄마 기다리는 거야. 다른 데 가자고 하면 안 돼.”
  진이가 현이한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어요. 현이는 자기 새끼손가락을 진이 손가락에 걸고 흔들었어요.
  진이는 머릿속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을 그려봤어요. 엄마 따라서 몇 번 가봤으니까 잘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집을 나서면 왼쪽에 편의점이 있어요. 편의점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놀이터가 있고, 놀이터 지나서 오른쪽으로 가면 찻길이 나와요. 그 찻길을 건너서 다시 왼쪽으로 가면 큰 사거리가 나오고, 버스 정류장이 있지요.
  현이는 진이가 손잡을 새도 없이 먼저 뛰어나갔어요. 나가자마자 바로 편의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렸어요. 진이가 현이 손을 잡아당겼어요. 골목으로 들어서자 현이는 놀이터로 뛰어가려고 했어요. 진이가 손을 꽉 잡고 있는 바람에 멈춰 섰지요. 현이는 놀이터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어요.
  “누나, 그네 한 번만, 딱 한 번만 타고 가자.”
  진이는 그 자리에서 버티면서 말했어요.
  “약속했잖아! 버스 정류장만 가는 거야.”
  현이는 시무룩해져서 꼼짝도 안 했어요. 조금씩 조금씩 놀이터 쪽으로 움직였어요. 진이는 현이한테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그때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진이를 불렀어요. 진이네 반 아이들이었어요. 진이가 대답을 하며 손을 흔드는 사이 현이는 쌩 놀이터로 뛰어들어갔지요. 진이가 얼른 따라갔지만 현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현이는 냉큼 그네에 올라탔어요.
  진이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어요. 친구들을 보니 모래집을 만들고 있었어요. 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친구들한테로 뛰어갔어요. 현이한테는 다른 데 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르고서요. 현이는 신이 나서 놀이터를 뛰어다녔어요. 진이도 친구들과 모래집을 만들었어요.
  진이랑 친구들은 모래밭 가득 모래 마을을 완성했어요. 다들 손을 털며 일어나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진이도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휴대폰이 없었어요. 아마 집에 놓고 온 모양이에요. 현이가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정신없이 따라 나왔었지요.
  “아, 맞다. 현이!”
  놀이터를 둘러봤지만 현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진이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현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찾았어요. 아이들이 현이가 길고양이를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줬어요. 진이는 아이들이 가리키는 골목으로 뛰어갔어요.
  처음 와보는 골목이었어요. 골목길을 쭉 들어가다보니 갈림길이 나왔어요. 진이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거렸어요. 오른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소리를 따라갔어요.
  다행히 현이가 있었어요. 진이 속 타는 마음도 모르고 웅크리고 앉아서 고양이랑 놀고 있었어요. 진이는 소리를 질렀어요.
  “야! 혼자 와버리면 어떻게 해.”
  현이는 진이를 돌아보고 웃었어요. 진이는 기가 막혔지요.
  “누나, 호양이야!”
  놀이터에서 자주 봤던 고양이였어요. 호랑이처럼 갈색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서 호양이라고 불렀어요. 엄마랑 올 때면 먹이를 챙겨다주곤 했었지요. 진이는 현이를 한번 흘겨보고 호양이한테 아는 척하며 손을 흔들었어요.
  “누나, 호양이 귀엽지. 우리가 데려다 키우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오기나 해.”
  현이는 일어날 생각을 안 했어요.
  “호양이 혼자 두고 어떻게 가. 그치 호양아, 형아랑 놀고 싶지?”
  “아니야. 우리 호양이는 씩씩해서 혼자 있을 수 있지?”
  호양이가 진이를 쳐다봤어요. 눈이 맑았어요. 눈을 보고 있으니 진짜로 혼자 있기 싫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진이는 머리를 흔들었어요. 현이가 호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아까도 호양이가 나랑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온 거야.”
  진이는 현이를 일으켰어요.
  “알았으니까 빨리 가자. 호양아, 다음에 만나!”
  현이는 진이 손을 잡고 가면서도 뒤돌아 손을 흔들었어요. 호양이가 길게 울었어요.
  이상했어요. 갔던 길을 그대로 돌아 나오는데 놀이터가 보이지 않았어요. 낯선 골목만 계속 이어졌어요. 이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멈춰 섰어요. 다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주위를 살폈어요. 모르는 길이었어요.
  진이는 진땀이 났어요. 현이를 잡은 손에서도 땀이 나서 미끄러웠어요. 현이가 손을 쑥 빼고 앉아버렸어요.
  “나, 다리 아파. 버스 정류장은 언제 나와?”
  진이는 현이한테 불쑥 화를 냈어요.
  “너 때문에 길 잃어버렸잖아!”
  현이는 놀란 표정으로 진이를 쳐다봤어요. 눈을 끔뻑거리면서 입을 씰룩거렸어요.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어요. 진이도 울음이 나오려고 했어요. 하지만 현이 손을 꼭 잡고 다부지게 말했어요.
  “아냐. 찾을 수 있어. 금방 큰길 나올 거야.”
  현이한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진이한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정말? 누나 찾을 수 있어?”
  진이는 어깨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길을 물어보려는데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어요. 진이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길을 되짚어갔어요. 아무래도 호양이랑 헤어지고 나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나봐요.
  진이가 우왕좌왕하자 현이가 겁먹은 소리로 말했어요.
  “누나, 호양이한테 다시 가보자.”
  진이는 가만히 서서 방향을 생각해 보았어요. 호양이랑 헤어졌던 곳도 어디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현이는 계속 이쪽으로 가보자, 저쪽으로 가보자면서 진이를 더 힘들게 했어요, 벌써 주위는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현이가 뛰어갔어요.
  “호양아!”
  달빛 아래 호양이가 서 있었어요.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현이가 호양이한테 말했어요.
  “호양아, 버스 정류장 어디로 가야 해?”
  진이는 현이가 하는 대로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왠지 호양이가 길을 알려줄 것만 같았거든요. 호양이가 진이랑 현이를 빤히 보았어요. 아까처럼 맑은 눈으로요.
  “야아옹!”
  현이 표정이 밝아졌어요.
  “누나, 호양이가 ‘따라와’ 이래. 맞지, 호양아?”
  호양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 걸어갔어요. 현이는 호양이를 따라갔어요. 진이는 어찌해야 하나 망설였어요. 별다른 방법도 없었어요. 현이는 이미 호양이를 따라 저만치 가고 있었어요. 진이도 그냥 호양이를 따라가보기로 했어요. 호양이는 길고양이니까 길을 잘 알지 않겠어요?
  호양이를 따라서 아무리 가도 모르는 길이었어요. 진이는 멈춰 섰어요.
  ‘바보같이 지금 뭐 하는 거야? 호양이가 길을 알려줄 리가 없잖아. 쟤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현이는 가다가 돌아서서 진이한테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었어요.
  “누나, 빨리 와. 호양이가 기다리고 있어.”
  진짜로 호양이는 서서 진이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야옹, 야아옹!”
  “어서 따라와! 이러잖아. 누나.”
  현이는 다른 때도 호양이 말을 다 알아들었어요. 엄마랑 진이한테 호양이 말을 해석해줬지요. 마치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처럼요.
  진이가 발을 떼자 호양이는 다시 뒤돌아서 걸어갔어요. 현이는 폴짝거리며 진이 손을 잡고 흔들어댔어요.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겁을 먹었던 것도 잊어버렸나봐요. 진이는 그래도 현이 덕분에 덜 무서웠어요.
  골목 끝이 보였어요. 버스가 휙 지나갔어요. 큰길인가봐요. 앞서가던 호양이가 골목 입구까지 가더니 돌아섰어요. 진이는 현이 손을 잡고 골목 밖으로 뛰어갔어요. 호양이는 고갯짓을 하면서 울었어요.
  “야아아옹!”
  현이는 호양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며 소리쳤어요.
  “저쪽이야!”
  진이도 돌아보고는 소리쳤어요.
  “찾았다. 저기가 버스 정류장이야.”
  진이랑 현이는 손을 맞잡고 팔짝팔짝 뛰었어요. 진이는 눈물까지 찔끔 나왔어요. 현이는 호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진짜로 호양이가 길 가르쳐줬네. 호양이 똑똑하다. 그치, 누나.”
  “야아옹, 야옹!”
  “애들아, 안녕! 이러네. 우리 집에 같이 가면 좋을 텐데.”
  현이는 금방 시무룩해졌어요. 진이는 현이 손을 잡고 말했어요.
  “얼른 가자. 엄마 오실라.”
  현이는 호양이한테 손을 흔들었어요. 진이도 인사했어요.
  “빠이빠이!”
  “안녕!”
  호양이는 골목으로 들어갔어요. 현이가 호양이 뒤에 대고 소리쳤어요.
  “호양아, 고마워.”
  호양이가 뒤를 한번 돌아보더니 길게 ‘야-옹!’ 하고 울었어요. 어느 순간 호양이는 달빛 속으로 사라졌어요. 마치 달빛이 호양이를 데리고 간 것 같았어요.
  현이가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진이는 계속 멍하니 있었을 거예요. 진이랑 현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어요. 손을 꼭 잡고요.
  버스가 한 대, 두 대, 세 대나 지나갔지만 엄마는 내리지 않았어요. 진이는 가슴이 콩콩거렸어요. 혹시라도 엄마가 집으로 갔을까봐요. 엄마가 먼저 갔다면 지금쯤 엄청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휴대폰을 놓고 나왔으니 연락도 할 수 없잖아요. 게다가 캄캄해서 집까지 찾아갈 자신도 없었어요.
  또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섰어요. 진이랑 현이는 고개를 쑥 내밀고 버스를 쳐다봤어요. 버스에 타려는 사람들 때문에 뒤로 밀렸어요. 현이는 정류장 긴 의자 위에 올라가서 발돋움을 했어요.
  조금 뒤에 현이가 소리쳤어요.
  “엄마다!”
  진이도 발뒤꿈치를 들고 콩콩 뛰었어요. 창문으로 엄마 모습이 보였어요. 진이는 휴 한숨을 쉬면서 웃었어요.
  버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내렸어요. 진이랑 현이는 엄마한테 가서 안겼어요. 엄마를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진이가, 다른 쪽에는 현이가 손을 잡고 셋이 나란히 걸어갔어요. 달빛이 세 식구를 따라가며 비추었어요.

이신영

오랜 시간 어린이와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제가 쓴 동화를 어린이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와 ‘진격의 동화방’에서 동화를 공부하면서 《어린이와 문학》에 동화를 발표했고,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어요. 글벗들과 십 년째 동화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2024년 첫 동화집 『1학년은 처음이야』를 출간했습니다.

「엄마 마중 가는 길」은 저의 두 아이를 모델로 쓴 이야기예요. 맞벌이 엄마, 아빠 때문에 어려서부터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야 했어요. 아이들의 어린 시절 한 부분을 엿보듯 그려내고 싶었어요. 아이들끼리 있는 시간에 엄마, 아빠는 모르는 비밀을 만들기도 할 것 같았어요. 저는 흥미로운 일들을 메모하는 공책이 있어요. 공책을 훑어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영상을 보듯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흘러갔어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도와주는 길고양이. 일상의 판타지 요소로 어린이가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2025/04/02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