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할 거야?”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은호의 옷이라도 잡아 뜯어말리고 싶은 걸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은호는 도통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온갖 걱정을 담은 머리가 무거워 고개가 빙그르르 돌아갔다. 지끈지끈한 게 두통까지 오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호는 내게 아무것도 아닌, 같은 반 남자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걱정하게 될 줄이야.
   “비아 누나들이랑 약속인데 지켜야지.”
   그래, 이 모든 게 비아에서부터 시작된 거였지. 우리 둘 다 비아를 영영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비아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오늘의 무드는 한여름의 멜론…… Harry styles -〈Water melon sugar〉’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찍은 셀카 사진과 함께 글을 업로드했다. 곧 하트 알림이 여러 번 울렸다. 예상했던 대로 괜찮은 반응이었다. 쌓여가는 하트를 보자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동네방네 떠들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인스타는 인기가 있는 편이다. 팔로워, 300명. 13살에 이 정도면 아이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될 만큼은 되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분위기 있는 셀카와 좋은 음악 추천 컨셉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 어플로 보정할 대로 보정한 사진과 유튜브를 뒤지고 뒤져 찾아낸 음악을 올리면 언제나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네 인스타에 올라온 노래들 다 좋아라는 말을 들으면 별거 아니라는 듯 웃었지만, 속으론 좋아 미치는 게 나 주소연이었다. 물론, 인스타를 하면서 잃은 것도 있긴 했다. 그것은 바로 내 취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보다는 있어 보이는 노래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나는 설령 케이팝을 듣더라도 인스타엔 팝송만 듣는 거처럼 올리는 식이었다. 영어 가사에서 주는 느낌이 인스타 감성을 제대로 자아내서였다. 난 원래 팝송엔 별 관심도 없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좋아요를 위해 그 정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 역시 인스타였다. 인스타에 올릴 노래를 찾아 유튜브 음악 채널들을 훑던 참이었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은 느닷없이 내게 비아의 무대 영상을 추천해주었다. 조회 수가 간신히 1000을 넘은 그 영상 속에서 비아는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비아의 모습은 뒤로 가기를 누르려던 내 손가락을 잠시나마 멈추게 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노래라는 것이…… 심하게 별로였다.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 멜로디에 사랑해, 넌 내 전부야 같은 뻔한 노래 가사까지. 게다가 초등학생인 내가 봐도 촌스러운 화장과 무대의상은 절로 한숨을 불렀다.
   이 언니들 얼마 못 가 묻히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진짜로 뒤로 가기를 누르려고 할 때였다. 영상 속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은 순식간에 굵어져 갔다. 동영상 속 관객들은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무대에서 멀어져갔다. 제대로 된 공연장이 아니라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라는 희한한 대회 오프닝 공연이라 가림막도 제대로 없는 모양이었다. 공연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빗물은 진한 눈화장을 한 비아들의 얼굴에도 직격으로 쏟아져 내렸다. 검은 눈물을 흘리게 된 다섯 명의 비아들은 처음엔 그저 어리둥절한 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비아는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짧게 하더니 이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한껏 미끄러워진 무대에 발을 삐끗해도 비아는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완벽하게 무대를 완성해냈다. 비를 피해 무대에서 멀어진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지만, 짜릿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강아지 영화를 봤을 때처럼 울컥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눈물, 콧물을 쭉쭉 뽑아냈었다) 나는 이 뭣 모를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비아의 영상을 찾아보고 비아의 노래들을 들어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아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비아의 멤버는 세미, 유지, 로하, 아인, 란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그중에서 세미와 유지, 아인은 18살, 로하와 란은 19살이었다. 다섯 모두 아이돌답게 예쁘장하게 생긴 언니들이었지만, 스타일링은 역시 봐도 봐도 구렸다. 노래 역시 귀에 쏙쏙 박히는 느낌이 없었다. 이런 건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닌데 싶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느새 내 핸드폰엔 비아의 화보 사진이 배경화면이 되어있었고 플레이리스트엔 비아의 노래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러니까, 비아는 완전히 내 스타일이었던 거였다. 대체 내가 왜 이러지 싶다가도 비아가 생각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아를 검색하고 사진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들을 수밖엔. 그러다 보니 비아는 어느새 내 삶에 스며 있었다. 휴지가 물에 적셔지듯 나는 비아의 매력에 빠져 갔다.
   비아에 대해 알아갈수록, 비아의 매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노래도 구리다, 구리다 했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었고 리더 란이 쓴 가사는 시 같았다. 아쉬운 건 비아 멤버들이 직접 만든 노래가 매번 타이틀곡이 안된다는 거였다. 아니, 비아의 소속사 사장은 누구길래 이렇게 감이 없을까. 내가 사장이라면 절대 비아를 이렇게 놔두지 않을 텐데. 홍보도 더 열심히 하고, 앨범도 자작곡들로 쫙 돌리고…… 세상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방금까지 내가 소속사의 운영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사실이 놀랍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원래 다 이런 걸까. 내 일도 아닌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게 일상이 되는 게 당연해지는…… 나는 이걸 사랑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비아와 사랑에 빠진 나와 달리 사람들은 여전히 비아를 좋아하지 않았다.
   “와, 나는 이런 애들 왜 데뷔하는지 모르겠어. 딱 봐도 망할 각이 나오잖아.”
   “각이 너무 선명해서 베일 듯.”
   우연히 아이들 사이에서 비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비아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그저 노래하고 싶어 데뷔한 게 죄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맘은 없었다. 그렇게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기껏 해봐야 너는 왜 그런 그룹을 편드냐고 비웃음만 들을 게 뻔했다. 더군다나 인스타엔 온갖 있는 척 다하며 팝송만 소개하는 나라면 누구보다 더 큰 비웃음을 살 터였다.
   남몰래 비아를 덕질하는 게 일상이 됐을 즈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비아의 신곡 〈온 세상〉이 교실 한가운데서 울려 퍼진 것이다. 〈온 세상〉은 밀리터리 컨셉으로 활동하게 된 노래로 비아가 세상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명곡이었다. 퀄리티도 나쁘지 않고 비아 모두 컨셉에 찰떡처럼 잘 맞아서 흥행할 거라 예상했지만, 큰 반응을 못 얻고 있는 비운의 노래이기도 했다. 여하튼 이렇게 선명한 음질의 비아 노래를 학교에서 들을 수 있다니. 나는 이 작은 기적이 어디서 일어난 건지 알아보기 위해 눈을 재빨리 굴렸다. 내 눈길의 도착지는 은호의 자리였다. 은호는 늘 얌전하게 공부만 하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별 관심 없던 은호에게 조그만 관심이 싹트는 듯했다.
   “아, 미안. 얘들아. 나 혼자 조용히 듣는다는 걸 이어폰을 깜빡해버렸네.”
   은호는 자신의 태블릿을 서둘러 끄며 멋쩍게 웃었다. 작은 실수에 알맞은 작은 사과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할 따름이었다.
   “노래 딱 들어봐도 구리네. 누구 노래냐?”
   건들건들한 폼으로 반 남자애가 물었다. 그 말에 은호는 담담하게 “비아.”라고 답했다.
   “코딱지는 꼭 코딱지 같은 거 좋아하네. 아무도 안 좋아하는 게 아주 똑같아.”
   예상대로 아이들은 낄낄거리며 은호를 비웃었다. 아이들의 눈엔 비아도 은호도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코딱지는 은호의 별명이었는데 언젠가 어떤 애가 은호가 코 파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생긴 별명이었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은호는 그대로 코딱지로 불리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은호는 그런 별명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애란 거였다. 은호는 남들이 자기를 코딱지라고 부르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말도 안 되게 숙제를 해달라고하거나 앞에서 노래까지 부르며 놀리면 딱 한 마디 했다.
   “진심, 그러지 마.”
   은호의 그 한 마디에도 괴롭힘이 멈추지 않으면 은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그러면 은호를 못 괴롭혀 안달인 애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은호의 말대로 진심 그러지 않을 수밖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은호를 괴롭히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코딱지란 별명 앞에 진심을 붙여 진심 코딱지라고 놀리기도 했다. 코딱지마저 진심으로 팔 녀석이라나, 뭐라나. 코딱지야 팔 수도 있지 하는 게 내 생각이었지만, 그런 걸 말하면 괜히 쓸데없이 정의로운 척한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었다. 이럴 땐 무조건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비아랑 관련된 일이라 그런지 표정 관리가 쉽게 되지 않았다. 자꾸 찡그려지는 얼굴을 숨기려 괜히 스트레칭을 하는 척 고개를 휙휙 돌리던 내가 곧바로 아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소연아, 너는 비아 어떻게 생각해?”
   “나? 나는 딱히 별생각은 없는데. 노래 제목이 온 세상이던가…… 밀리터리 컨셉에 재즈풍 리듬의 조합이 어지러운 느낌이야.”
   의심을 안 받으려고 한다는 게 괜한 말까지 보태 어버버 해버렸다. (사실, 밀리터리 컨셉에 재즈풍 리듬을 섞은 실험적인 시도 자체가 좋았던 거였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내 대답에 그런대로 만족한 눈치였다. 역시 음악 전문가라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영어 이동 반 수업 때였다. 생전 나와 가까이 앉아본 적도 없던 은호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아까 비아 노래가 별로라고 해서 따지러 온 건가 싶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은호는 상냥한 목소리로 나긋나긋 말했다.
   “소연아, 너 비아 팬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너무 놀라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까지 했다. 아마 누군가 내 얼굴을 봤다면 땡볕에 몇 시간은 있다가 온 애 같다고 생각했겠지.
   “넌 아까 비아 신곡 노래 제목을 알고 있었어. 탑 100에 타이틀도 안 드는 아이돌의 노래 제목을 바로 맞춘다는 건 적어도 관심이 있단 거지. 게다가 노래 만으론 컨셉이 뭔지 알 수 없잖아. 하지만 넌 이번 신곡 컨셉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어.”
   원래 공부 잘하는 놈들은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건가. 나는 헛소리 말라며 덤덤한 척했지만 침을 꿀꺽 삼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은호는 내 침 넘기는 소리를 가만히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결국 비아에 대한 내 마음을 에둘러서 은호에게 말해주었다.
   “아까는 주위 눈이 있어서 별로라고 했다만…… 사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구나. 오프라인에서 나처럼 비아에 관심 있는 사람 본 건 처음이야.”
   은호는 나에게 이글이글한 동지애를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비아의 팬이라는 줄로 돌돌 묶여 은호와 한 묶음이 되긴 싫었다.
   “너처럼은 아니고.”
   내 말에 은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이 녀석, 성실한 모범생인 줄 알았더니 아침에 핸드폰도 안 냈단 말이야? 나는 은호의 새로운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것 봐. 이번에 비아의 팬클럽이 정식으로 만들어지려고 해. 데뷔한 지 좀 됐으니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한다는 게 너무 신나는 거 있지? 지금 팬클럽 이름 공모 이벤트도 하는 중이야.”
   팬클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단 이야기가 살짝 나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름을 공모 중이라니. 나는 나보다 더 빨리 비아의 새 소식을 알아 온 은호가 진성 덕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벌렁대는 콧구멍을 가리려 손가락으로 괜히 콧잔등을 쓸며 물었다.
   “나도 이벤트에 참여해보려고.”
   “네가?”
   “응. 이름도 다 생각해뒀어. 불빛이라고.”
   “불빛? 왜 불빛인데?”
   원래 팬클럽 이름이란 게 이름 자체도 예뻐야 하지만, 그것보단 의미가 중요한 법이었다. 어른들이 뭘 할 때마다 걸고, 넘어지는 ‘명분’이란 게 곧 그런 거였다.
   “누나들이 비아인 게 한자로 날 비에 아이 아 써서 비아잖아. 근데 악플러들이 금방 꺼질 그룹이라고 연예계에 뛰어든 나방 같다 놀리더라고. 그래서 그걸 반대로 생각해봤어. 나방이라고 놀리는 걸 멈출 수 없다면 팬인 우리가 불빛이 돼서 나방을 감싸주면 어떨까 하고 말이야. 나방을 죽이는 불빛이 아닌 힘이 되어주는 불빛. 어때, 괜찮지 않아?”
   이 녀석, 꽤 하는데. 은호의 아이디어는 정말 괜찮았다. 비아 언니들도 불빛이라는 팬클럽 이름을 들으면 웃으며 좋아할 거 같았다.
   “나쁘지 않네. 되면 좋겠다.”
   “그치? 그치!”
   은호는 벌써 자기의 아이디어가 된 거처럼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얘가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애였구나. 나는 지금껏 은호가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늘 가만가만 별다른 표정도 없던 녀석이었는데. 은호의 기가 막힌 팬심에 내 마음이 다 몽글몽글해졌다. 괜히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네가 꼭 되길 바랄게.”
   “고마워.”
   은호는 자기가 힘이 들 때마다 누구도 아닌 비아의 노래가 힘이 돼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물론, 그 노래는 회사에 만들어준 비아의 타이틀곡이 아니라 비아의 리더 란이 만든 노래였다) 그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알기에 은호의 마음이 어떤 맘이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은호는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비아의 라이브 무대를 보고 팬이 됐다는 이야기도 보탰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웠다. 생각해보면 뻔하디뻔한 계기였지만 여하튼 나랑 비슷한 루트로 비아의 팬이 됐다는 게 그저 즐거웠다. 우리는 서로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은밀하게 만나 코인 노래방에서 비아 노래를 부르며 우정을 쌓아갔다. 은근 까다로운 성격 탓에 특별한 단짝이 없던 내게 은호는 우연히 찾아온 선물 같았다. 마치, 비아가 그랬던 거처럼. 은호는 비아의 노래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화면을 보지 않고도 노래 가사를 척척 외워 불렀다. 심지어 춤동작까지 슬쩍슬쩍 따라 했는데 그 모습은 두 눈을 온전히 다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춤솜씨에는 영 재능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같은 팬으로서 작은 박수를 쳐주는 성의를 보였다. 그때마다 은호는 내게 꼭 한마디를 했다.
   “너한테 인정받는 기분이라 진심 좋다.”
   대체 그놈의 진심이란 게 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은호의 입에서 진심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으’하고 신음을 토했다. 그 낯부끄러운 말을 듣고 있기가 괴로워서였다. 요즘 누가 그렇게들 진심으로 산다고. 하여간 은호는 특이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갈 즈음, 은호는 정말 깜짝 놀랄 소식을 들고 왔다. 자신의 아이디어 ‘불꽃’이 비아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 됐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팬클럽 이름을 짓다니. 그건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와, 리얼 말도 안 돼.”
   나는 은호 앞에서 기쁜 티를 숨기지 않았다. 맘 같아선 어렸을 때 방방을 타고 놀던 거처럼 천장이 머리에 닿아라, 뛰고 싶을 지경이었다.
   “미쳤다, 미쳤어……”
   넋을 놓은 내 입은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나를 은호가 초원에서 날뛰는 말 달래듯 진정시켜주었다.
   “워, 워.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무려 팬클럽 이름을 네가 만들었는데! 이건 그러니까, 네가 역사를 쓴 거나 다름없어. 비아의 역사를 말이야!”
   “알지, 알아. 근데 난 내가 될 거 같았어.”
   “그건 또 무슨 자신감이야? 뜻이 좋아서?”
   “그것도 있는데. 내가 공약을 내걸었거든.”
   공약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약이란 건 연예인들이나 음악방송에서 내 거는 거 아닌가? 대체 무슨 공약을 내 건 거람. 궁금증을 품는 것도 잠시, 은호의 입에서 답이 흘러나왔다.
   “불빛이 공식 팬클럽 이름이 되면 춤 인증 영상 올리기로 했어. 비아처럼 옷도 입고.”
   “비아 옷을 입고 춤을 춘다고……? 어디서? 언제?”
   “점심시간에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춤춘 거 찍어서 공식 카페에 올릴 거야.”
   “미친 거야?”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이건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 은호의 공약은 말 하나하나가 불가능한 미션처럼 들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비아의 춤을, 은호가. 말도 안 돼! 은호를 말려야만 했다. 여기서 내가 은호와 친해졌고 아니고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원수만 아니라면, 말리는 게 도리였다.
   “은호야, 이건 진짜 하면 안 되는 일이야. 만약, 네가 그거 하지? 그럼 애들이 얼마나 놀릴지 생각해봤어?”
   “안 해본 건 아니야. 근데 그래도 이건 나랑 비아 누나들 그리고 비아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나눈 약속이잖아. 이런 약속을 저버릴 순 없어.”
   나는 은호가 뽀얀 볼살을 출렁이며 비아의 춤을 추는 모습을 잠깐이나마 상상해보았다. 풉.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어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다. 방금 내가 할뻔한 반응을 백 명이 더 넘게 한다면 그건 심각한 일이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철로 만들어진 애라고 하더라도 백 명의 비웃음을 받으면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은호의 팔까지 잡았다. 은호의 오동통한 팔목을 쥔 내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힘이 꽉 들어갔다.
   “안 돼, 안 된다고.”
   “난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중에 카페에 가입해서 댓글만 좋게 달아줘.”
   내게 선플을 부탁하며 미소 짓는 은호의 얼굴에서 나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을 언뜻 본 거 같았다. 아니, 우리 집은 불교니까 보살님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은호의 사랑은 무언가를 초월한 사랑 같았다. 나는 은호만큼 비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진심으로 비아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 난 비아를 정말 좋아하지만, 은호의 사랑에 비하면 내 사랑은 가벼운 먼지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에 나 자신이 초라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바로 지금, 은호가 운동장에 서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은호를 말렸지만, 은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는데?”
   은호를 말리기 위해 내가 생각해두었던 제일 모진 말을 뱉었다. 하지만 은호는 여유롭게 고개를 저었다.
   “네 말대로 아무도 몰라줄 수도 있지. 어쩌면 비아 누나들조차도 말이야. 하지만, 난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 팬클럽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을 안 지킬 순 없잖아. 약속을 안 지킨 순간부터 비아에 대한 내 진심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 말을 끝으로 은호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래, 그놈의 진심. 왜 안 나오나 했다. 대체 그 진심이란 게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걸까. 나는 진심이란 단어를 속으로 여러 번 되뇌었다. 몇 분 후 화장실에서 나온 은호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짧은 금발 머리 가발을 쓰고 있었다. 눈두덩이는 갈색과 검은색으로 얼룩덜룩 엉망진창으로 메이크업이 되어있었는데 스모키 메이크업을 시도한 거 같았다. 입술은 선명하게 붉은 레드였다. 거기에 카고바지와 검은 민소매까지…… 은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내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선플 달아준다는 약속 잊지 마!”
   은호는 쥐 잡아먹은 입술로 종알거리더니 운동장으로 뚜벅뚜벅 잘도 걸어갔다. 나는 도무지 그 모습을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들어와선 절대 창문 밖을 내다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려는데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왜인지 이유는 뻔했다. 안 돼, 안 돼. 소연아, 밖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비아의 음악 소리까지 희미하게 들렸을 때, 나는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은호는 태블릿으로 비아의 노래 반주를 틀어놓고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불안정한 노래 톤과 어설픈 몸짓이었지만, 내 눈엔 대단하게만 보였다. 은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코딱지 대박이다. 아, 폰 내지 말걸! 저걸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야 하는데.”
   반에서 힘 좀 쓰는 아이들이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애들이 폰을 안 가지고 있단 게 개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깟 좋아요가 뭐라고 사람을 바보 만들려고…… 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것도 잠시였다. 나 역시 인스타에 좋아요 때문에 별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들을 올리던 게 떠올랐다. 인스타에 올라가 있는 내 거짓말들. 그저 좀 있어 보이는 노래 중에 내가 온전히 들은 노래들은 몇 개 되지도 않았다. 누구나 다 거짓말을 하니까 이런 거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은호의 춤을 보니 그런 게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진심이란 게 무엇인지 조금 알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 진심이란 걸 가지고 싶어졌다.
   “소연아, 코딱지 진짜 왜 저런다니? 노래도 이상한 거 틀어놓고 말이야.”
   한창 낄낄거리던 아이들이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저번처럼 어버버 거리며 거짓말하는 바보가 되긴 싫었다.
   “이상한 노래 아냐.”
   “뭐?”
   “이상한 노래 아니라고. 진심.”
   아이들이 나를 향해 뭐야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나는 더는 바보처럼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인스타 계정을 삭제할 생각까지 하고 교실 밖을 향했다. 삭제가 아니라면 비아의 글이라도 올려야지. 난 비아를 좋아하고 비아의 노래를 듣는다고. 비아의 노래는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해야지. 결심을 마친 순간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코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은호가 보였다.
   나는 은호 옆에 서서 함께 비아의 춤을 췄다. 영상으로 이미 백번도 더 넘게 본 춤동작을 내가 못 따라 할 리 없었다.
   “기다렸어. 불빛 1기 주소연.”
   은호는 내가 올 줄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했다.
   “됐고, 춤이나 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장대비처럼 우리에게 쏟아졌다. 상관없었다. 노래가 끝나지 않는 이상, 우리의 춤은 계속될 테니까. 내 안에서 불빛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전여울

사랑이란 이름 아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이 작품을 쓰게 됐습니다. 거기에 애틋함까지 더해진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2020/07/28
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