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났다. 내 인생도 끝난 거다. 오늘부터 미술학원을 못 간다니…… 대신 매일 ‘영어 회화 집중반’이랑 ‘예비 중1 수학반’을 가야 한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지하철 타고 대학 다니려면 지금도 한참 늦었다고 했다. 아빤 학원 스케줄이랑 내 공부 시간표를 만들어 가족 대화방에 올렸다. 엄만 새 교재 둘 자리가 없다며 내 그림을 모조리 갖다 버렸고. 하아, 숨을 크게 몰아쉬어도 가슴이 답답하다. 그냥 다 귀찮다.
   전학생도 사는 게 귀찮은가 보다. 아직 여름인데 땅에 끌리는 펑퍼짐한 청바지에 긴 팔 회색 티를 입고 오다니. 머리 모양은 더 가관이다. 새카만 철수세미로 대걸레를 만들면 저럴까? 헬멧과 삼각김밥의 중간쯤 되는 모양이다. 거기다 검정 뿔테안경까지 썼는데 앞머리가 안경의 반을 덮는다. 놀림 꽤나 받을 것 같아.
   “선생님! 걔 남자예요, 여자예요?”
   “딱 보면 모르냐, 중성이잖아!”
   와하하하, 타당, 탕탕! 반 애들이 책상을 치며 웃는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니까 더 크게 떠든다. 전학생은 돌아서서 칠판을 바라봤다. 사각, 토독, 스윽. 전학생이 내는 분필 소리가 또박또박 들린다. ‘닥치고 환호해라, 이 악당들아!’라고?
   “나는 모하나. 여자다.”
   애들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선생님도 같이 잘 지내자며 웃는다. 왜 다들 웃지? 화내야 하는 거 아닌가? 모하나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국활 교과서와 스티커 북을 꺼낸다. 스티커 북엔 크고 작은 스티커가 빼곡하다. 낙서 된 스티커가 많은데, 쓰인 말들이 다 ‘조용해’, ‘말 들어’, ‘닥쳐’ 같은 거다. 그중 한 개를 자기 책상에 붙인다. ‘절대 조용’. 전학 온 첫날부터 조용히 공부만 하겠다는 건가?
   쉬는 시간에 애들이 모하나에게 몰려들었다. 어쩜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냐며 말을 하다 말고 조용히 갔다. 선생님도 ‘환경판 좀 네 그림으로……’ 하더니 그냥 갔고. 모하나가 언제 그림을 보여줬지? 난 못 봤는데. 아무튼 모하나 근처만 가면 다들 조용해졌다. 모하나도 조용했다. 7교시가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안 했다. 성격이 모난 건지, 원래 말이 없는 건지. 나도 스티커 북이랑 칠판에 한 낙서가 궁금했지만 안 물어봤다. 말하기가 싫었다. 그냥 다 귀찮다. 엄마 아빠가 보낸 톡도 읽기 싫다.
   <창의 수학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수학학원 차 갈 거야. 꼭 그거 타, 걸어가면 늦어.>
   <학원 도착하면 사진 찍어서 보내고.>
   수학학원 차가 미술학원 앞을 지나갈 때, 눈을 꽉 감아버렸다. 빨리 오늘이 끝나면 좋겠어.

   어제 잠을 많이 잤는데도 졸리다. 아침부터 배가 살살 아프더니 4교시가 시작하자마자 팬티가 확 젖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조용히 왼손을 들었다. 수업 중간에 화장실이나 보건실에 갈 때 보내는 신호다. 선생님보다 먼저 알아챈 남자애들이 키득댔다. 진짜 싫어. 보건실에서 생리대도 넉넉하게 빌리고 약도 타서 먹었다. 그래도 배가 점점 더 아팠다. 점심을 반도 못 먹고 버렸다. 보건실에서 쉬고 싶은데 깐깐쟁이 창의 체육 선생님이 그러라고 할까?
   “선생님, 저…… 보건실…… 에 좀……”
   “응? 안 들려, 좀 크게 말해 봐.”
   “염소, 생리 터졌대요!”
   남자애 둘이 소리치며 도망갔다! 울컥, 화가 치미는데 눈물이 먼저 난다. 여자애들 몇몇이 화를 냈지만 체육 선생님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든다.
   “저기서 수업하는 거 보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 다시 말해.”
   “그게 아…… 니……”
   “좀 참아보고 말하라니까. 앉아서 보는 것도 못 하니?”
   선생님은 더 듣지도 않고 가버렸다. 투둑. 참을 새도 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생리도 싫고 남자애들도 싫고 체육도 싫다. 체육 선생님이 제일 싫다. 생리하면 얼마나 힘든데…… 크흡, 흡, 콧물을 들이켜도 계속 난다. 휴지도 없는데 어쩌지? 툭. 돌돌 말린 휴지 뭉치가 손등에 떨어졌다.
   “둘째 날이라 힘들군. 보건실 가야겠다.”
   모하나?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뭘 꺼낸다. 엄지손톱만 한 동그라미 스티커 5개. 그중에 하나를 떼었다. 모하나는 체육 선생님의 옷을 잡아당기면서 슬쩍 스티커를 붙였다. 체육 선생님은 우리를 보더니 대뜸 인상부터 쓴다.
   “또 왜?”
   “선생님, 저 생리하는데요. 양이 너무 많아서 체육 못 하겠어요.”
   “둘 다 한다고? 진짜?”
   “하아…… 이렇게 더운 날 생리까지 하는데 체육은 해서 뭐하나 싶네요.”
   순간, 째려보던 체육 선생님 눈동자가 바르르 떨렸다. 눈이 풀려 흐리멍덩해지고 입은 헤에 벌어진다.
   “맞아…… 체육은 해서 뭐하나…… 쉬는 게 낫…… 지. 둘 다…… 보건실 가.”
   체육 선생님은 느릿느릿 말하곤 돌아섰다. 모하나는 성큼성큼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진짜 가도 되는 거야? 나도 슬그머니 모하나를 따라갔다.
   모하나는 보건실 침대에 엎드려서 스티커 북에 끄적이고 있었다. 뭘 저리 열심히 쓸까? 모하나는 내가 보는 걸 눈치챘는지 스티커 북을 덮었다.
   “미, 미안.”
   모하나는 한마디 대꾸도 안 한다. 괜히 막 떨리네.
   “있잖아…… 아까 휴지, 고마웠어. 그런데, 체육 선생님한테 붙인 스티커, 그거 나중에 혼나지 않을까?”
   “왜 혼나? 그냥 별 그림 스티커인데.”
   “아니야, 너 스티커 잘못 붙였어. ‘보내라’라고 쓰여 있었어, 내가 분명히 봤어.”
   모하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경 속 작은 눈을 더 게슴츠레 뜬다.
   “그게 보였다…… 고?”
   “아이참, 똑똑히 봤다니까.”
   “너, 정체가 뭐냐?”
   “아, 나 모르는구나? 나는 염소영이야. 네 옆에 앉은……”
   “어떻게 ‘메시지’를 봤냐고, 그건 나만 볼 수 있는데!”
   모하나가 계속 째려본다.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올 것 같다. 모하나가 스티커 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우울력자’다. 우울을 지배하지.”
   “어…… 엉?”
   “난 내가 쓴 메시지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다 귀찮아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다가 결국 생각이 멈춰서 하려던 걸 못 하게 되지. 그때 상대방 정신을 내 뜻대로 조종한다. 필요하면 더 어마어마한 일도 수행한다.”
   얘가, 얘가, 정신이 나갔네. 뭘 조종해? 그럼 진짜로 체육 선생님이 ‘보내라’ 스티커 때문에 우릴 보내줬겠네. 어제 칠판에 한 낙서 때문에 애들이 박수 치고, ‘절대조용’ 스티커 때문에…… 진짜…… 로…… 조용했나? 진짜?
   “나, 나 좀 도와줘!”
   “싫은데. 귀찮다.”
   “안 도와주면 네 우울 스티커 비밀 다 말해버릴래!”
   커헝, 콧물까지 튀어나오는 콧방귀! 모하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콧물을 손등으로 훔친다. 스티커 북을 곱게 닫더니 일어선다.
   “가자.”
   “나…… 도와줄 거야?”
   “내 메시지는 그림으로 나타난다. 다들 그림인 줄 안다고. 그런데 어째서 너는 메시지를 글로 보는지 알아야겠다.”
   모하나는 진짜 능력자였다! 담임 선생님한테 스티커 두어 개를 붙이니 선생님 눈이 멍하게 풀리면서 조퇴하라고 했다. 난 심장이 하도 뛰어서 터질 것 같았는데 모하나는 태연했다. 이런 식으로 수업을 빼먹은 게 처음이 아닌 건 분명하다.
   학교 밖 모하나는 수다쟁이였다, 혼잣말이긴 했지만. 고추장이 파란색이었다면 개운한 맛이었을까, 오늘 세상은 터키 그린이구나 등등. 모퉁이에 쭈그려 앉아 보도블록 틈새에 난 풀을 들여다보고, 눈을 감은 채 팔을 벌리고 한참을 서 있었다. 그 바람에 집까지 10분이면 올 걸 40분도 넘게 걸렸다.
   “다시 말하는데, 난 도와주러 온 거 아니다. 네가 메시지를 글로 보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온 거다.”
   “알았어. 그 전에 이것 좀……”
   나는 침대 밑에 숨겨둔 스케치북을 꺼냈다. 모두 세 권, 간신히 빼돌린 애들이다.
   “원래 엄청 많았는데, 어제 엄마 아빠가 다 버려서 이게 전부야. 캔버스에 그린 건 더 멋졌는데……”
    모하나는 천천히, 아주 꼼꼼하게 그림을 들여다봤다. 실눈을 뜨고 보다가, 거꾸로 놓고 보다가, 손바닥으로 조금 가리고 보기도 했다. 입맛을 다시기도 했고 슬며시 웃기도 했다. 모하나가 보는데 왜 이리 떨리지? 손바닥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염소영, 네가 어째서 메시지를 본 건지 알았다. 넌 나랑 동류군.”
   “동…… 료?”
   “동류,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어우 야, 그래도 난 머리는 빗고 다녀. 너랑은, 아…… 미안.”
   “사과할 필요 없다. 나도 빗고 다닌다, 머리털. 아무튼, 동류가 분명하다. 네 우울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 도와달라면서.”
   “우……울? 맞아, 나 우울해! 엄마 아빠가 내 그림에 관심 없거든, 미술학원도 끊었어. 중학교 가기 전에 영어 수학이나 더 하래. 미대 가는 건 돈 많이 들어서 안 되고, 미대 나와도 그림으로 못 먹고 산대. 난 그림 그리는 게 좋은데…….”
   “그럼, 그려라. 왜 우울한 거냐?”
   “난 잘 그리고 싶거든. 그러려면 학원에 다녀야 되잖아.”
   “꼭 학원엘 다녀야만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거냐?”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우리 엄마 아빠한테 스티커 좀 붙여줄래? 수학학원은 다녀서 뭐 하나, 아니면 영어 공부는 해서 뭐 하나 이런 거. 응?”
   “싫다. 그건 네 우울을 돕는 방법이 아니다.”
   “하나야, 그러지 말고……”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살면 좋다. 나한테 떼쓸 시간에 부모님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라.”
   “그럴 방법이 있으면 미술학원을 끊었겠어? 네가 좀 도와주라, 응?”
   “이런, 이런. 배가 고프군. 빨리 집에 가야겠는걸.”
   “라, 라면, 라면 먹을래? 대왕크림빵도 있어!”
   “내가 끓여도 되냐? 난 내가 끓인 라면만 먹는다.”
   모하나는 물에 김칫국물 두 국자를 넣고 끓였다. 펄펄 끓을 때 고기만두 6개랑 면과 수프를 넣었다. 칼칼한 냄새가 목구멍을 콕, 찌른다. 탕탕탕탕, 모하나는 어른처럼 도마소리를 내며 파를 썰었다. 계란 2개를 풀고 송송 썬 파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치즈도 2장 올렸다. 만두김치더블치즈라면 완성! 다 먹자마자 바로 모하나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냥 담가 놓기만 하면 되는데……”
   “아니다. 우울을 지배하는 자, 밥값은 해야지.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에 모으냐?”
   “모, 모르는데?”
   “허어, 퍽도 자랑스럽겠다. 음식물 쓰레기 정리할 줄 몰라서.”
   “야! 너 진짜 재수 없……!”
   헙, 이런. 모하나는 묵묵히 설거지만 했다. 화 많이 났나? 아니지, 자기가 먼저 재수 없게 말했잖아. 하지만 그래도…… 어쩌지, 그냥 미안하다고 할까? 고민하는 새 설거지가 끝나버렸다.
   “하나야, 저기…… 아깐 내가 미안. 못 되게 말해서 미안해.”
   “아, 아니, 아니다. 내가 재수 없게 말한 거 맞다. 내가 미안하다.”
   모하나 볼이 빨개졌다. 내 볼도 저럴까? 우린 같이 히히, 웃었다.
   “너도 능력자다. 동류라는 건 그 뜻이다.”
   “내가 능력자…… 라고?”
   “내 눈엔 네 능력이 보인다. 아직은 많이 약하지만.”
   “진짜? 내 능력이 뭔데?”
   “힌트 하나 주지, 난 네 그림이 좋다. 나머진 네가 알아내도록.”
   모하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뒤도 안 보고 돌아갔다. 별나도 보통 별난 애가 아니야.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다. 내 그림 좋다고 용기 주는 걸 보면. 어떤 그림이 좋다고 한 걸까?
   나도 내 나무 그림은 좋다.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뛰어가는 나무, 바다를 떠다니는 나무, 물을 하도 먹어서 배가 물이 된 나무, 거꾸로 자라는 나무. 다 내가 혼자 생각해 낸 ‘염소영표 나무’다. 그릴 때 가슴이 막 울렁울렁하고 웃음이 나고 그랬는데. 그렇게 재밌는 그림을 포기해야 하나? 미술 선생님도 멋지다, 재밌다, 소영이가 선생님보다 훨씬 잘 그린다고 했는데. 학원 안 다니면 그림을 못 그리나? 학원 끊으면 그림도 포기해야 하나? 포기하면 뭐…… 하지? 그래, 포기해서 뭐 하냐! 몽실몽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침 6시까지 못 잤더니 온종일 졸렸다. 혹시 모하나한테 ‘잠 깨’ 스티커를 얻을 수 있을까 슬쩍 봤더니, 모하나는 아예 대놓고 엎드려서 자고 있다! 선생님의 슬리퍼엔 ‘깨워서 뭐 하나’ 스티커가 붙어 있고. 세상 부러운 능력이네.
   모하나는 6교시까지 다 끝나고 집에 갈 때 되니까 일어났다. 난 모하나한테 우리 집에서 또 라면 먹자고 했다. 비빔라면 잔뜩 있다고 하니까 자기가 먼저 앞장섰다. 비빔라면을 끓여 김치랑 오이를 잔뜩 넣고 맛나게 먹었다.
   “하나야, 오늘은 내가 설거지할게. 넌 다른 걸로 밥값 낼래?”
   “말해봐라.”
   “핸드폰 좀 들어 줘.”
   “왜, 무거워서 못 들겠냐?”
   “아이참! 동영상 찍어야 되니까, 네가 핸드폰 좀 들어 달라고!”
   밤새 생각해 낸 계획을 털어놨다.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 SNS에 내 그림 올리고 응원받기, 응원받은 걸 엄마 아빠한테 보여주면서 미술학원 보내달라고 하기. 모하나는 음침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으, 떨려. 심장이 하도 세게 뛰어서 머리까지 쿵쾅거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염소영입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6학년 여자아이예요.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못 다니고 있어요. 부모님은 제가 영어나 수학 공부를 더 많이 하길 바라세요. 안 그러면 중학교 가서 고생한다고. 그래서 좀 우울해요, 사실은 많이요. 왜냐하면 그림을 그리는 게 정말 좋거든요. 신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물론 망치면 속상하지만…… 여러분, 제 그림을 보고 응원해주세요.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요. 잘 부탁합니다.”
   꾸벅, 인사까지 마치자 모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모하나가 더 진지한 것 같다. 웃음기 없는 모하나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난다. 나무 그림 사진도 찍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바닥에 놓고 찍으니까 그림자 때문에 어둡게 나왔다. 의자에 스케치북을 걸어놓고 찍었다. 다섯 장밖에 못 찍었는데 여섯 시가 다 됐다. 학원 세 개를 몽땅 빼먹었네.
   “염소영, 난 이제 갈란다.”
   “안, 안 돼! 더 도와주면 안 될까? 나 SNS 할 줄 몰라.”
   “얼씨구! 내가 좀 알긴 안다만, 그렇게까지 널 도와줘야 하는 이유가 뭐냐?”
   “우, 우린 같이 밥, 밥도 먹고…… 아, 비밀! 서로 비밀도 공유하고…… 맞다, 내 우울이 도와 달랬다며! 책임을 져라, 우울을 지배하는 자여.”
   “그럼 저녁밥 먹은 다음에 해도 되냐? 나 김치볶음밥도 잘 만드는데.”
   “좋아!”
   “하루에 안 끝날 거다. 내일도 너희 집에서 밥 먹어야 될 텐데……”
   “모레도 와, 응?”
   모하나가 활짝 웃는다. 웃을 때 왼쪽 볼에 보조개가 생기는구나. 꼭 만두인형 같아, 귀여워.
   학교가 끝나면 내내 모하나랑 같이 있었다. SNS 계정은 뚝딱 만들었다. 인사 동영상을 제일 먼저 올렸다. 그림은 첫날에만 두 장 올리고 나머지는 매일 한 장씩 올렸다. 매일 새로운 볼거리를 올려야 사람들이 계속 올 테니까. 와 준 사람들이랑 친구를 맺었다. 3일 만에 친구가 60명이 넘었고 ‘좋아요’도 많이 받았다. 응원 댓글도 많이 달렸다. 힘내라,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좋지만, 그림 멋지다는 댓글이 제일 좋았다! 내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난댔다. 밤에도 댓글을 읽고, 댓글에 댓글 다느라 바빴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미술학원에 못 가서 우울할 틈도 없었다. 우울은커녕 신이 났다. 엄마 아빠한테 들키기 전까진.
   “염소영, 너 오늘 뭐 했어?”
   “응? 학, 학원, 학원에 갔다…… 왔…… 지요.”
   회사에서 오자마자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아빠도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쟤가 아주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자기 맘대로야, 정말! 너, 내내 학원 빼먹었다며? 어쩜 그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 엄마가 좋게 말하니까 안 무섭지? 네 맘대로 막 해도 될 것 같지?”
   “소영아, 학원은 엄마 아빠가 정말 열심히 알아보고 의논해서 결정한 거야. 그동안 미술학원이다 뭐다 하고 싶은 거 실컷 했잖아, 이젠 철 좀 들어야지.”
   “근데, 저기…… 아빠……”
   “아니, 변명 그만! 엄마 아빠한테 해야 할 말은 그게 아니잖아.”
   “잘, 잘…… 못 했어요. 이제, 이제 안…… 안 그럴게요.”
   엄마 아빠는 한숨을 내리 쉬더니 안방으로 가버렸다. 눈물이 안 멈춘다. 이제 진짜 포기해야 하나…… 아니, 포기하더라도 엄마 아빠한테 내 SNS는 보여줄래! 내가 이렇게 그림을 좋아한다고, 나 그림 그리고 싶다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다고! 지금 당장…… 은 말고, 내일 보여주자. 모하나한테 ‘쫄지 마’ 스티커 달라고 해야겠다.

   모하나는 혀를 쯧쯧 찼다. 만두떡볶이 만들어 먹기로 하고서야 ‘쫄지 마’ 스티커를 얻었다. 모하나가 만두떡볶이를 만들어줬지만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스티커 붙여봤자 하나도 소용없네! 간도 심장도 쪼그라져 없어진 것 같아.
   “염소영, 빨리 보내면 안 되냐? 나 이제 집에 가고 싶다.”
   “잠깐, 잠깐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SNS에 올린 내 그림은 모두 11개, ‘좋아요’를 다 합치면 308개, 응원 댓글은 165개. 이 정도면 엄마랑 아빠한테 보여줘도 되겠지? 엄마 아빠가 이걸 보면 좋아할까? 공부 안 하고 딴짓했다고 더 혼나는 거 아냐? 그래, 내일 보내자. 내일 학원 갔다 와서 보내야지. 핸드폰을 끄려는데, 전송했습니다…… 라니?
   “으아아아아아악, 나 뭘 누른 거야!”
   내가 보낸 메세지에 읽음 표시가 들어왔다. 엄마, 아빠 둘 다 읽었어!
   “쿨하게 받아들여. 우울을 지배하는 자, 그 정도 쿨함은 필요하다.”
   “야, 우울을 지배하는 자는 너잖아! 난 아니라고오오오!”
   <소영아, 이게 다 뭐니?>
   아빠가 묻는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성공 못 해도 괜찮…… 겠지? 맞아, 미술학원 못 다녀도 그냥 그리면 되잖아. 괜찮은 거 맞지? 그래도 엄마 아빠 톡은 못 읽겠다. 모하나한테 읽어달라고 하고 난 눈을 꼭 감았다.
   “소영이 그림이 이렇게 멋있었구나. 엄만 왜 몰랐지 물음표. 이제 너네 아빠. 그러게, 나도 몰랐어. 웃는 눈 두 개. 어쩐지 신이 난다, 느낌표 세 개. 막 행복해져. 우리 딸 그림 우리끼리만 보기 아깝다. 번쩍이는 하트 뿅뿅. 야, 너네 엄마가 폭풍 톡 날리는데 계속 내가 읽어야 되냐?”
   모하나가 핸드폰을 눈앞에 들이댔다. 오늘 가족회의 하자는 엄마의 톡!
   “하나야, 희망이 보여! 미술학원엔 안 보내줘도 그림 그리지 말라고는 안 할 것 같아. 도와줘서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다행이군, 네 능력이 제대로 발현된 것 같다.”
   “능력은 무슨, 난 너 같은 능력자 아니야. 그냥 내 그림을 보고 엄마 아빠 기분이 좋아진 거……?”
   “맞다, 그거다.”
   “진…… 짜? 진짜로 내 능력이 그거야? 기분 좋게, 신나게 만드는? 그림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모하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내 SNS의 그림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문이소

열세 살, 이제 슬슬 부모로부터 독립을 시작하네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모두들 나를 발견하고 너를 지지하는 우정을 경험하길!

2019/07/30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