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이 세상의 왕이야.
  여기서는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2.
  내 밥그릇은 언제나 가득 차 있어.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나면
  가벼운 몸단장을 시작해.

  3.
  나는 내 세상을 천천히 둘러봐.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안 돼.
  나 없이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거든.

  4.
  내가 슬플 땐 구름이 함께 슬퍼하고,
  내가 기쁠 땐 해님도 함께 웃어줘.
  모든 건 나를 따라 움직이지.



  5.
  그런데 말이야.
  요즘 날 귀찮게 하는 게 하나 생겼어.

  6.
  그 녀석만 보면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돼.
  내 눈과 발은 이미 걔를 쫓고 있거든.
  하지만 늘 닿을 듯 말듯 놓쳐버리지.

  7.
  그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날 괴롭혀.
  나는 내 세상을 돌볼 여유가 점점 없어졌어.

  8.
  그날도 난 그 녀석을 쫓아
  온 구석을 다 헤집고 다니고 있었어.

  이번에는 꼭! 잡고 말 테다!

  9.
  (꽈악)
  니야야야야야야옹!

  10.
  아파.
  이 녀석을 물었는데 왜 내가 아픈 거지?!
  이 녀석…… 이 나한테 있는 거였어?

  세상의 왕인 내가 나한테 속은 거야?!

  11.
  부끄러움이 가득 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내 꼬리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왕이라니……
  나는 그저 혼자 있고 싶어졌지.
 


  12.
  많은 밤들이 지나갔어.
  이젠 해님도 구름도 날 잊은 듯해.
  나는 문득 바깥세상이 걱정돼
  밖으로 나가보았지.

  13.
  어라?
  내가 없어도 세상은 멀쩡했잖아!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멀찍이 서 있었어.
  귀 끝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어.

  14.
  나는 이제 신경 쓸 게 별로 없어졌어.
  하루 종일 늘어지게 낮잠을 자도,
  세상은 나름대로 흘러갔거든.
  내가 뭘 하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

  15.
  나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
  내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은 언제나 새로운 일들로 가득해.

  16.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왕이야.
  제멋대로 움직이는 꼬리가 멋진 고양이야.


김희경

그림책을 좋아하고, 만듭니다.
마음대로 되는 것과 안되는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