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꼭꼭 숨어라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빠 말처럼, 잠이 올 때까지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보기도 했고, 양을 세어보기도 했다. 고모는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모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가서 텔레비전을 켜고 소리를 줄였다. 밤사이, 잔뜩 쪼그라들었던 햇빛이 창밖에서부터 스며들었다.
엄마, 아빠가 형을 데리러 간 지 보름이 지났다. 엄마는, 금방 올 거야, 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사이에 두고 고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나에게 용돈을 주었다. 나는 용돈을 받았지만 아빠, 엄마가 출발하자마자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입 안에 공기를 크게 머금었다.
고모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고모가 회사에 가는 길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줬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엄마에게 보냈다. 불을 켜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졸음이 밀려왔다. 밤새 잠들지 못한 게 거짓말인 것처럼. 점심쯤 깨어나면 답장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엄마의 답장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책상에 배어 있는 방향제 냄새가 곁을 맴돌았다. 잠결에 친구들 목소리가 들렸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귀에 물이 들어가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몇 교시가 됐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한층 넓게 들어오는 햇볕이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친구들의 소리가 다시금 멀어졌다. 누군가 책상을 치고 지나가지만 않았더라면 햇볕의 부드러움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머리를 돌려 누웠다. 여기는 해가 쨍쨍하다.
잠에서 깼을 땐 점심시간이었다. 짝꿍이 점심을 먹으라고 내 등을 흔들었다. 잠을 설친 탓에 밥을 먹는 게 힘들었다. 나는 급식을 반이나 남겼다. 소풍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엄마가 싸 준 김밥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후 수업 시간에는 영화를 봤다. 나는 휴대전화를 힐끔거렸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엄마의 휴대전화는 자주 꺼져 있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비어 있는 윤호의 자리를 힐끔거렸다. 윤호는 가족을 따라 형을 데리러 갔다. 나도 윤호처럼 엄마, 아빠를 따라가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친구들을 봤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운동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지만 그 틈에 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급식을 반이나 남긴 탓에 배가 고팠다.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해야 할 시간을 벗어났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어른스러운 척 말하던 형이 생각났다.
나는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햄버거 가게에서 세트 메뉴를 먹고 피시방에 갔다. 게임에 접속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 되어 게임을 했다.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지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었다. 나는 채팅창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쪽지로 날아오는 욕을 지우고 게임을 껐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고모가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다.
골목 사이사이에 핀 개나리를 구경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한 바퀴만 돌 생각이었으나, 나중에는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골목 사이를 걷는 사이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우리집에 가는데 걱정할 게 뭐람.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남의 집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갔다. 열린 문틈으로 비어 있는 침대를 보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밀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내가 형과 함께 쓰던 방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날 아침, 형은 간식 몇 개를 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비닐 포장된 문어발이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다. 침대는 고모집에 가던 날 아침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고, 휴지 조각이나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닐을 벗기고, 침대에 누워 문어발 다리를 뜯어 물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동안, 익숙한 색깔의 벽지가 보였다. 이불과 베개가 폭신하면서도 시원해서, 잠투정을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내내 잠을 잤지만, 그랬다. 나는 양손으로 베개를 끌어안았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기라도 하듯.
스르르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캄캄했다. 10시가 넘었다. 나는 휴대전화 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고모였다. 고모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걸까.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남은 문어발을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영영 못 만나면 어쩌지. 형과 함께 온다고 했는데.
고모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고모를 따라서 차에 탔다.
자동차는 우리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엄마는 내가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반대로 집에 있지 못했다. 고모는 운전을 하면서 엄마, 아빠가 바쁠 거라고 했다. 고모가 다니는 회사도 정신이 없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이 아이를 데리러 간 탓에, 내일부터는 고모가 다른 사람들 몫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고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갔다고 느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봄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형을 데리러 간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자동차 가로등이 길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가로등 불빛이 쏟아질 뿐, 사람들이 없어서 나를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창문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두 달 전에도, 집집마다 불이 꺼져 있던 것 같았다. 무얼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물어보면 소풍이 취소되어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재미있었니?’ 엄마가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고모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고모가 코코아를 타왔다. 나는 컵을 움켜쥐고 후후 입김을 불었다. 코코아에서 올라온 김이 흩어졌다. 고모는 내가 모르는 친척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고모의 때문에 티브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코코아를 마시고 이빨을 닦았다. 세수를 하려다가 세면대에 받은 물에 얼굴을 밀어넣었다. 숨을 참기 힘들었다. 조금 더 참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금방 얼굴을 뺐다. 숨을 참다가 들이 킨 수돗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런대로 삼킬 만했다. 나는 세면대 물을 버렸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얼굴을 담갔던 공간이 드러났다.
방으로 돌아가니 이불 위에 고모가 둔 돈이 있었다. 내일은 뭘 사먹을까 생각했다. 오늘은 햄버거를 먹었고, 어제도 햄버거를 사먹었다. 가게에 햄버거 종류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돈을 가방에 넣고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학교에서도 잠을 자고, 집에서도 잠을 잤는데, 고모집에만 있으면 잠을 자는 게 힘들었다.
이럴 바엔 집에 있는 게 나을 텐데. 혼자서 잘 기다릴 수 있는데.
여전히 답장이 없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다가 아빠와 엄마와 형의 휴대전화에 번갈아가며 전화를 했다.
휴대전화는 모두 꺼져 있었다. 며칠 얼굴을 보지 못한 것뿐인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옷을 걸어두고, 이불과 베개를 정리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동안에는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게 된다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칭찬을 해줄지도 모른다.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을 켰다. 고모가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리를 줄이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다가 고모가 거실로 나오면 채널을 바꿨다. 바꾼 채널에서는 만화영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고모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줬다. 교실 불을 켜지 않고 책상에 엎드렸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땐, 윤호가 와 있었다. 윤호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형을 찾은 걸까. 나는 윤호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윤호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집으로 갔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윤호네 형이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설친 탓에 몽롱하게 귀를 덮은 소리들이, ‘윤호’라고 말하려는 내 목을 콱 막았다.
수업을 마치고 햄버거를 사먹었다.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였다.
‘조금 이따가 전화할게.’
나는 한참 동안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윤호네 형이 돌아왔다는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학교에 왔을 때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게 미안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제 먹다 남은 문어발이 주머니 안에서 부스럭거렸다.
편의점에 들러 문어발 하나를 더 샀다. 마음 같아선 초콜릿도 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다. 조금 더 싼 햄버거를 먹을 걸 하고 후회를 했다. 문어발 두 개를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꼭 쥐었다. 구겨진 포장 비닐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찔러댔다. 까끌까끌한 손바닥의 느낌을 놓치지 않은 채, 뛰었다.
“서윤호, 놀자.”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윤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윤호네 집까지 뛰어오면서 흘린 땀을 훔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전화라도 미리 해볼걸 그랬나 싶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윤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작게, 안도의 숨이 나왔다.
우리 형과 윤호, 윤호의 형,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던 기억이 났다. 윤호나 내가 술래가 되면, 형들은 비겁하게도 한 곳에 숨지 않았다. 형들은 자리를 옮기며 우리를 골탕 먹였다. 골목을 구석구석 헤집은 뒤에 못 찾겠다고 외치면, 이미 찾아보았던 곳에서 나오곤 했다. 때로는 우리가 찾을 수 없게, 위험한 곳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형들이 우리보다 힘이 세고 빨랐기 때문이다.
윤호는 오랫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 형, 고모, 아침에 아무도 없는 교실. 고개를 끄덕이는 윤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엄마랑 아빠는, 형들보다 힘이 세니까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나는 윤호에게 물었다. 윤호도 대답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들이 궁금했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젠 뭐 하지?”
윤호가 물었다.
“글쎄, 피시방이나 갈까?”
나는 이기지 못한 게임이 생각났다. 윤호와 편을 먹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윤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발개진 얼굴로 내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기라도 할 듯.
“반칙이야.”
나는 윤호의 뒤를 쫓았다. 윤호네 집에서 놀이터를 지나, 골목을 지나, 우리 집을 지나…… 집 근처에서 보았던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보이는 골목마다 노란 빛이 가득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뜀박질을 멈췄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다. 형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집에 가려면 조금 더 걸릴 거라고 말했다. 나는 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린다는 엄마의 말이 꼭 거짓말 같았다. 엄마에게 가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대신에 윤호가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다행이네.”라고 했다.
“응. 엄마, 근데 전화기 켜놓으면 안 돼?”
엄마는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개나리를 찍었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연노랑 꽃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고 나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리고 뛰다가 멈춘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윤호를 불렀다. 뜀박질을 할 때는 몰랐는데, 주머니를 꽉 채운 문어발 두 개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문어발을 꺼내 나누어 먹었다. 윤호가 손에 든 문어발을 먹으며 개나리의 노란 빛깔을 향해 외쳤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윤호의 목소리가 한 떼의 노랑 무리들 사이로 퍼졌다. 딸꾹질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입 안에 공기를 가득 머금고 숨을 참았다. 숨을 뱉어내며 윤호를 따라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한 발 들고 나와라.
못 찾겠다. 꾀꼬리. 한 발 들고 나와라.”
한참을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가서 텔레비전을 켜고 소리를 줄였다. 밤사이, 잔뜩 쪼그라들었던 햇빛이 창밖에서부터 스며들었다.
엄마, 아빠가 형을 데리러 간 지 보름이 지났다. 엄마는, 금방 올 거야, 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를 사이에 두고 고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나에게 용돈을 주었다. 나는 용돈을 받았지만 아빠, 엄마가 출발하자마자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입 안에 공기를 크게 머금었다.
고모집에서 지내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고모가 회사에 가는 길에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줬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엄마에게 보냈다. 불을 켜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으면 졸음이 밀려왔다. 밤새 잠들지 못한 게 거짓말인 것처럼. 점심쯤 깨어나면 답장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엄마의 답장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책상에 배어 있는 방향제 냄새가 곁을 맴돌았다. 잠결에 친구들 목소리가 들렸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귀에 물이 들어가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몇 교시가 됐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한층 넓게 들어오는 햇볕이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친구들의 소리가 다시금 멀어졌다. 누군가 책상을 치고 지나가지만 않았더라면 햇볕의 부드러움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손가락으로 귀를 파고 머리를 돌려 누웠다. 여기는 해가 쨍쨍하다.
잠에서 깼을 땐 점심시간이었다. 짝꿍이 점심을 먹으라고 내 등을 흔들었다. 잠을 설친 탓에 밥을 먹는 게 힘들었다. 나는 급식을 반이나 남겼다. 소풍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엄마가 싸 준 김밥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후 수업 시간에는 영화를 봤다. 나는 휴대전화를 힐끔거렸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엄마의 휴대전화는 자주 꺼져 있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에게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비어 있는 윤호의 자리를 힐끔거렸다. 윤호는 가족을 따라 형을 데리러 갔다. 나도 윤호처럼 엄마, 아빠를 따라가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친구들을 봤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나는 운동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지만 그 틈에 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급식을 반이나 남긴 탓에 배가 고팠다.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해야 할 시간을 벗어났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어른스러운 척 말하던 형이 생각났다.
나는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햄버거 가게에서 세트 메뉴를 먹고 피시방에 갔다. 게임에 접속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 되어 게임을 했다.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지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었다. 나는 채팅창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쪽지로 날아오는 욕을 지우고 게임을 껐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고모가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다.
골목 사이사이에 핀 개나리를 구경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한 바퀴만 돌 생각이었으나, 나중에는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골목 사이를 걷는 사이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우리집에 가는데 걱정할 게 뭐람.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남의 집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갔다. 열린 문틈으로 비어 있는 침대를 보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밀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내가 형과 함께 쓰던 방이었다. 수학여행을 가던 날 아침, 형은 간식 몇 개를 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비닐 포장된 문어발이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다. 침대는 고모집에 가던 날 아침처럼 잘 정리되어 있었고, 휴지 조각이나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닐을 벗기고, 침대에 누워 문어발 다리를 뜯어 물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동안, 익숙한 색깔의 벽지가 보였다. 이불과 베개가 폭신하면서도 시원해서, 잠투정을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내내 잠을 잤지만, 그랬다. 나는 양손으로 베개를 끌어안았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기라도 하듯.
스르르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캄캄했다. 10시가 넘었다. 나는 휴대전화 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고모였다. 고모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엄마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은 걸까.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남은 문어발을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영영 못 만나면 어쩌지. 형과 함께 온다고 했는데.
고모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고모를 따라서 차에 탔다.
자동차는 우리집에서 점점 멀어졌다. 엄마는 내가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반대로 집에 있지 못했다. 고모는 운전을 하면서 엄마, 아빠가 바쁠 거라고 했다. 고모가 다니는 회사도 정신이 없다고 했다.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이 아이를 데리러 간 탓에, 내일부터는 고모가 다른 사람들 몫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고모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갔다고 느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봄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형을 데리러 간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자동차 가로등이 길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가로등 불빛이 쏟아질 뿐, 사람들이 없어서 나를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창문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두 달 전에도, 집집마다 불이 꺼져 있던 것 같았다. 무얼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물어보면 소풍이 취소되어 영화를 봤다고 말하는 게 전부일 것이다. ‘재미있었니?’ 엄마가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고모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고모가 코코아를 타왔다. 나는 컵을 움켜쥐고 후후 입김을 불었다. 코코아에서 올라온 김이 흩어졌다. 고모는 내가 모르는 친척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고모의 때문에 티브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코코아를 마시고 이빨을 닦았다. 세수를 하려다가 세면대에 받은 물에 얼굴을 밀어넣었다. 숨을 참기 힘들었다. 조금 더 참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금방 얼굴을 뺐다. 숨을 참다가 들이 킨 수돗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런대로 삼킬 만했다. 나는 세면대 물을 버렸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얼굴을 담갔던 공간이 드러났다.
방으로 돌아가니 이불 위에 고모가 둔 돈이 있었다. 내일은 뭘 사먹을까 생각했다. 오늘은 햄버거를 먹었고, 어제도 햄버거를 사먹었다. 가게에 햄버거 종류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돈을 가방에 넣고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학교에서도 잠을 자고, 집에서도 잠을 잤는데, 고모집에만 있으면 잠을 자는 게 힘들었다.
이럴 바엔 집에 있는 게 나을 텐데. 혼자서 잘 기다릴 수 있는데.
여전히 답장이 없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다가 아빠와 엄마와 형의 휴대전화에 번갈아가며 전화를 했다.
휴대전화는 모두 꺼져 있었다. 며칠 얼굴을 보지 못한 것뿐인데,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튿날 아침.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옷을 걸어두고, 이불과 베개를 정리했다. 엄마, 아빠가 없는 동안에는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집에 오게 된다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칭찬을 해줄지도 모른다.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을 켰다. 고모가 일어날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리를 줄이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다가 고모가 거실로 나오면 채널을 바꿨다. 바꾼 채널에서는 만화영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고모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줬다. 교실 불을 켜지 않고 책상에 엎드렸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땐, 윤호가 와 있었다. 윤호는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형을 찾은 걸까. 나는 윤호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윤호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집으로 갔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 윤호네 형이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을 설친 탓에 몽롱하게 귀를 덮은 소리들이, ‘윤호’라고 말하려는 내 목을 콱 막았다.
수업을 마치고 햄버거를 사먹었다. 콜라를 마시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였다.
‘조금 이따가 전화할게.’
나는 한참 동안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봤다. 윤호네 형이 돌아왔다는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학교에 왔을 때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게 미안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어제 먹다 남은 문어발이 주머니 안에서 부스럭거렸다.
편의점에 들러 문어발 하나를 더 샀다. 마음 같아선 초콜릿도 사고 싶었지만 돈이 부족했다. 조금 더 싼 햄버거를 먹을 걸 하고 후회를 했다. 문어발 두 개를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꼭 쥐었다. 구겨진 포장 비닐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찔러댔다. 까끌까끌한 손바닥의 느낌을 놓치지 않은 채, 뛰었다.
“서윤호, 놀자.”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윤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윤호네 집까지 뛰어오면서 흘린 땀을 훔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윤호의 이름을 불렀다. 전화라도 미리 해볼걸 그랬나 싶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윤호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작게, 안도의 숨이 나왔다.
우리 형과 윤호, 윤호의 형, 그리고 나까지. 넷이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던 기억이 났다. 윤호나 내가 술래가 되면, 형들은 비겁하게도 한 곳에 숨지 않았다. 형들은 자리를 옮기며 우리를 골탕 먹였다. 골목을 구석구석 헤집은 뒤에 못 찾겠다고 외치면, 이미 찾아보았던 곳에서 나오곤 했다. 때로는 우리가 찾을 수 없게, 위험한 곳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형들이 우리보다 힘이 세고 빨랐기 때문이다.
윤호는 오랫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엄마, 아빠, 형, 고모, 아침에 아무도 없는 교실. 고개를 끄덕이는 윤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엄마랑 아빠는, 형들보다 힘이 세니까 금방 찾을 수 있겠지?”
나는 윤호에게 물었다. 윤호도 대답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들이 궁금했지만,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젠 뭐 하지?”
윤호가 물었다.
“글쎄, 피시방이나 갈까?”
나는 이기지 못한 게임이 생각났다. 윤호와 편을 먹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윤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발개진 얼굴로 내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멀리, 아주 멀리까지 가기라도 할 듯.
“반칙이야.”
나는 윤호의 뒤를 쫓았다. 윤호네 집에서 놀이터를 지나, 골목을 지나, 우리 집을 지나…… 집 근처에서 보았던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보이는 골목마다 노란 빛이 가득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뜀박질을 멈췄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있는 곳은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다. 형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집에 가려면 조금 더 걸릴 거라고 말했다. 나는 맑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내린다는 엄마의 말이 꼭 거짓말 같았다. 엄마에게 가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대신에 윤호가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엄마는 “다행이네.”라고 했다.
“응. 엄마, 근데 전화기 켜놓으면 안 돼?”
엄마는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개나리를 찍었다. 엄마는 모를 것이다. 연노랑 꽃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고 나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리고 뛰다가 멈춘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윤호를 불렀다. 뜀박질을 할 때는 몰랐는데, 주머니를 꽉 채운 문어발 두 개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문어발을 꺼내 나누어 먹었다. 윤호가 손에 든 문어발을 먹으며 개나리의 노란 빛깔을 향해 외쳤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윤호의 목소리가 한 떼의 노랑 무리들 사이로 퍼졌다. 딸꾹질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입 안에 공기를 가득 머금고 숨을 참았다. 숨을 뱉어내며 윤호를 따라 외쳤다.
“못 찾겠다, 꾀꼬리. 한 발 들고 나와라.
못 찾겠다. 꾀꼬리. 한 발 들고 나와라.”
주서요
씁니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