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



   가을엔 편지를 쓰다 말고
   넷플릭스를

   친구들의 얼굴 위로 낙엽들이 마구 덮였고

   겨울 내내 넷플릭스를 봤다

   소비에트가 나오는 미국 드라마

   귤과 책과 담요가 있던 겨울을 지나

   잃어버린 장갑과 잃어버린 사람이 재가 된 겨울을 지나

   눈 쓸고 보일러 켜고 수면양말 신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1)

   이 패러다이스를 우울한 영화처럼

   넷플릭스를 본다

   북구에는 눈이 내리고
   여기도 내리고
   화면 속에서도 내리고

   끝이 없다 넷플릭스는

   인간은 도대체 몇 번 정도의 겨울을 알고 있을까2)

   질문한다

   넷플릭스는

   인간은 도대체

   봄이 오면

   인간의 얼굴을 지겹도록

   넷플릭스처럼





   F/W



   검은 외투와 구두가 필요했다
   봄가을 여름 겨울
   모두

   검은 옷이 많아져
   나중엔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구나
   알게 되고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우산도 쓰지 않고
   순서도 차례도 지키지 않고
   황급히
   어디론가
   바쁘게

   우물쭈물하다가

   차를 끓였다
   텔레비전을 켰다

   돌을 던지고 세계를 끝내는 사람이
   울고 있었다

   우는 사람을 남겨 두고
   다음 세계가 바로 시작되었다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여자는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나를 본다

   창밖엔 무언가
   무서운 것이 있는 것 같다

강성은

시를 씁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자랑이 되고 싶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자랑이 되는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여기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머물고 싶은 곳이길 바랍니다. 시처럼.

2020/01/28
26호

1
김수영
2
다니카와 슌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