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군인 무역가의 아내



   꼭지에 닿는 건 모두 내 것이 아니다
   우툴두툴한 벽지도
   거기 새겨진 남의 자식 키 눈금도

   그가 숨을 뱉을 때 나는 숨을 참는다
   입을 맞아도 입을 막고
   눈을 맞아도 입을 막았다

   발목이 손잡이처럼 쓰였다

   동물처럼 귀를 낮추고 엎드렸지만
   아무리 깊은 구석에서도
   이름을 부르면 흔들고 말았다
   한번 달린 꼬리는 저항하지 않는다

   아래층이 인터폰에다 주먹을 흔들어도
   내가 뛴 게 아니다 나는 뛰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지만 내 집이 아니다

   나는 어부 군인 무역가의 아내
   떠돌아다닌다
   매일 사라지고 또 깨어난다
   차가운 새 벽지 위에서

   이번 집은
   바다가 보이면 좋겠다
   총이 있으면 좋겠다
   팔 것이 있으면 좋겠다





   새끼에게



   잠은 오고 잠은 안 와

   밤새 울더라 사람의 아이처럼
   느린 새벽의 유튜브에서
   빙글빙글 도는 재생처럼
   방문을 열어줘도 들어오지 않고
   깜깜함에 대고 입을 벌려
   모르니까 있는 힘껏

   아침은 눈알처럼 뻑뻑하지
   밥그릇 물그릇을 채워줘도
   한 입도 못 씹고 앉아있어
   어미와 일찍 떨어졌어도
   젖의 평온은 기억나
   허공을 눌렀다 놨다
   눈을 감고 싶고 꿈을 꾸고 싶다가도

   다시 일어나 울어
   알 수 없는 것을 기다리느라 견딜 수 없어서

   나도 그래 토토 나도 그래
   나도 슬픈 걸 주워먹었어
   껍질의 일부를 함께 토했어
   몸이 확신했어
   창밖의 새가 그건가
   문밖의 발소리가 그건가
   두려움도 사냥도 없이
   울어 그리움에 화가 나서
   내가 여기 있다고
   여기 와 달라고
   그리고 나면 잠을 잘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다음의 확신이 있을 줄 알았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사람의 어미는 가르쳤지
   시간이 버릇없는 건 그렇게 키워졌기 때문일까
   너의 뜻과 상관없이
   잠은 오고 배는 나와
   중성의 평온이
   앞발에 흘러내려
   허공을 눌렀다 놓을 뿐
   낮이고 밤이고
   잠이 오고
   기다리는 게 아무것도 없게 될 거야

정다운

평생 이사를 다녔다. 지금은 암만에 있다.

2021/06/29
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