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3년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그것은 인류가 좀비에 대해 상상했던 모든 것 중 최악만을 모아둔 것 같았다. 우선, 좀비는 느리지 않았다. 목표에 근접하면 순간적으로 뛸 줄 알았다. 그리고 강력한 전염성으로 물리자마자 좀비화되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또한 인간을 먹는 것보다 전파가 목적인 듯 식사에 열중하는 시간 낭비가 없었다. 무엇보다 비말감염이 큰 문제였는데, 여의치 않으면 침을 뱉어대는 좀비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순식간에 전 세계가 좀비 바이러스로 초토화됐다. 급하게 저항한 인류는 무력했고, 이틀 만에 전 인류의 과반이 좀비가 되었다. 인류의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군사적 대응보다는 숨기에 바빴다. 결국, 전 세계 인류의 90% 가까이 좀비화된 이후에야 세상은 조금 조용해졌다.
   살아남은 인류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남극에 지어진 대한민국 바이러스 연구소가 오염되지 않은 건 천운이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자료들이 모였고, 천재 공 박사를 필두로 좀비 치료제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부작용 따위의 임상 실험을 할 여유가 없었다. 공 박사는 미완성 치료제 1차를 지구 대기 중에 살포해버렸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났을 때, 지구의 좀비 사태는 종료를 맞이했다.
   살아남은 모든 인류가 좀비 바이러스에 면역이 생겼다. 물리든 침이 묻든, 어떻게 해도 사람들은 좀비로 변하지 않았다. 여기서 뜻하지 않은 또다른 효과가 일어났다. 전 세계의 모든 좀비도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좀비의 공격성이 모조리 사라졌고, 좀비 특유의 부패 현상도 거의 사라졌다. 좀비들은 그저 멍하니 걸으며 태양을 쬐고, 입을 벌려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마실 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인류는 좀비들을 공포가 아닌, 동정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얌전한 좀비들을 보며 사람들은 목소리를 냈다.

   “저들을 우리가 구해야 합니다!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야만 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언제 발작할지 모르는 좀비들을 다 태워버려야 한단 말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후 좀비 완전 면역력이 연일 검증되고, 인류의 승리가 대대적으로 홍보되면서부터는 좀비 구조 쪽으로 대세가 기울었다. 사실, 10%도 안 남은 인구수의 영향도 있었다. 이 폐허가 된 세상을 다시 복구시키기 위해선 인력이 많을수록 좋았다.
   좀비를 구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번에도 남극 바이러스 연구소가 중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천재 공 박사가 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다만 그가 남긴 마지막 유산으로 연구한 결과 좀비의 부패를 막고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은 가능해졌다.
   남극 연구소를 통해서 전 세계로 좀비 관리 매뉴얼이 뿌려졌다. 한데, 현실적으로 좀비를 신경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폐허가 된 세상을 재건하기에도 바쁜 시국에, 좀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관리한다? 70억 이상의 좀비를? 산 사람이라도 살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 주장했다.

   “좀비 사태로 무너진 인류 사회를 재건하는 데 좀비를 이용합시다!”

   무슨 말인가 싶었던 그 의견은 자세한 내용과 함께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최초로 제안한 아이디어는 ‘좀비 러닝’이었다. 러닝 머신형 전기 생산 기구 위에 좀비를 걷게 하자는 거였다. 말하자면, ‘좀비력 발전소’를 만들자는 이야기!
   그 아이디어는 진지하게 검토해볼 수밖에 없었는데, 세상이 무너진 이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전기문제였기 때문이다. 2030년의 원전 합의로 전 세계의 모든 원전은 자연재해를 대비한 자가폐쇄 기능이 장착된 상태였고, 좀비 사태 때 모든 기능을 스스로 폐쇄한 상태였다. 원자력 발전이 사라진 지금, 세계 재건을 위한 전기 생산은 답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좀비를 이용하자?

   “어차피 좀비는 지금도 의미 없이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발전에 이용하자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 남극 연구소의 매뉴얼에 따르면 최소 영양분만 공급해주면 좀비는 영원히 지치지도 죽지도 않고 걷기가 가능합니다. 24시간 발전이 가능한 발전소가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지금 각국에서 좀비를 수거 관리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어차피 여력이 없으니 시간만 끌다가 모두 죽게 내버려 둘 생각 아니었습니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좀비에게 이용 가치가 있다면, 오히려 역으로 그들을 구하게 될 겁니다!”

   세계를 향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사회 재건보다 좀비를 최우선으로 구해야 한다는 극단 인권론자들도 어느 정도는 수긍할 정도였다. 행동은 공산권 국가들이 가장 빨랐다. 당장 좀비력 발전을 시작했고, 다른 국가들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결국 인권 문제를 접어두고, 전 세계의 국가들이 좀비력 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으로 순식간에 건설이 가능했는데, 전기 생산 구조가 무척이나 단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순물 하나 남지 않아 그 어떤 발전소보다 친환경적이기까지 했다. 빠르게 효과를 보기 시작하자, 각 국가가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좀비 회수에 나섰다. 좀비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렇게나 거리에 쌓여있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각 나라의 좀비력 발전소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수많은 좀비가 닭장 같은 칸 안에 빽빽이 들어차 끝없이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낮은 천장으로 그런 층이 수십 층이다. 좀비의 몸에는 관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24시간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는 소화나 배변 활동 등의 잉여행위가 필요 없는 직접 영양소 투입이라 화장실도 없었다. 누군가는 좀비 발전소를 준 무한동력이라고도 부를 정도였다.

   그 힘을 토대로 인류는 빠르게 사회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여유가 생기자 좀비에 대한 연구도 다방면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수많은 인권 단체들이 바라는 ‘좀비=>인간화’ 연구보다 ‘좀비=>공산품화’ 연구가 더 규모가 크고 자금 지원도 많은 게 현실이었다. 좀비력 발전이 세상에 가져다준 충격은 좀비라는 존재를 하나의 커다란 자원으로 인식게 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자원을 단순 전기 발전에만 쓸 것인가? 각종 좀비 아이디어가 세상에 탄생하기 시작했다. 좀비만 들을 수 있는 유도 신호음의 발명이 신호탄이었는데, 그것으로 좀비의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게 되자 수많은 쓸모가 생겨났다.
   당연히 인권 단체들은 그런 이용을 반대했지만, 좀비력 발전소를 막지 않은 이상 명분이 없는 일이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국가 경제력을 위해서 일부러 좀비에 대한 연민을 쉬쉬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각종 미디어는 어느새 좀비를 인간이 아닌 자원의 시각으로 비추고 있었다.
   한번 체계가 잡히기 시작하자, 좀비는 그 국가의 경쟁력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추운 나라에 상태가 좋은 좀비가 많았는데, 그것이 곧 경제력으로 이어졌다. A급 좀비를 수출하는 것만으로도 큰돈이 벌릴 정도로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좀비 공산품화 사업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성장시킨 사람이 바로 최초의 러닝 아이디어를 낸 남자 ‘두석규’였다. 놀랍게도 그는 이 세상을 구한 영웅들인 남극 연구소 출신의 과학자였고, 그 명성을 토대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뒤, 두석규의 좀비 기업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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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 공 박사의 사망 이후 가장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업가가 된 두석규의 아들 ‘재준’은 어릴 때부터 마당 좀비를 보며 자랐다. 그의 집 마당은 항상 좀비가 걷고 있었고, 어렸던 그는 아버지에게 물었었다.

   “아빠 저 아저씨는 뭐야?”

   그러면 아버지는 그의 말을 정정해주곤 했다.

   “저건 아저씨가 아니라 좀비란다.”
   “좀비?”
   “그래. 아저씨는 아빠 친구들이 아저씨고, 저건 그냥 마당용으로 설계된 좀비란다. 저기 발뒤축에 보면 잔디깎이용 칼날이 보이지? 마당 좀비가 걷기만 해도 잔디가 저절로 깎이는 거지. 또한 마당에 짐승이 들어오는 것도 막아주는, 아주 편리한 좀비란다.”
   “편리한 좀비?”
   “그래. 되게 꼼꼼히 돌아다녀서 신기하지? 그건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장치들이 방향을 유도하기 때문이란다. 좀비만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소리를 한 번씩 내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는 건데,”

   아버지의 자세한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재준은 그게 아버지의 자부심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재준은 이상했다. 내 눈에는 아버지 친구랑 똑같은 것 같은데 왜 좀비라는 걸까? 가끔 술에 취해 귀가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마당 좀비의 모습이 뭐가 다른 건지, 재준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재준은 집 밖으로 돌아다닐 나이가 되면서부터 좀비의 개념을 점점 알게 되었다. 좀비는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도시의 거리에는 좀비 전용 도로 위의 수많은 배달 좀비가 장바구니를 메고 가게와 집을 오가고 있었다. 논밭에는 허수아비 좀비가 걸어다니며 참새를 쫓고 있었고, 건설 현장에도 좀비들이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가정, 학교, 회사, 현장, 써먹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좀비가 이용되고 있었다. 나중에 더 컸을 때는 음지에서 좀비를 이용한 매춘 행위도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됐다. 다만, 좀비를 이용한 매춘만은 모든 정부가 철저하게 단속했다. 매춘이라는 건 좀비를 인간으로 대하는 행위였고, 그런 인식은 좀비를 공산품화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좀비의 이미지는 같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어야 했다. 그래야만 정부는 좀비력 발전소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재준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런 점을 더 크게 느꼈다. 솔직히 학교에서 복도를 닦거나 잔디를 깎는 등의 일을 하는 좀비의 움직임은 무척 비효율적이었다. 거의 좀비 사용이 유행하기 때문에 쓴다는 느낌이었는데, 어쩌면 교육 현장에서부터 좀비가 도구에 불과하다는 시선을 익히게 하기 위함 같았다.

   재준은 교육과정에는 없는 좀비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런 마음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강해졌다. 이 세상은 잘못되어있다! 같은 인간인 좀비를 이렇게 이용해서는 안 된다! 대학에서 해부나 의학 실습용으로 좀비를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과 좀비가 똑같다는 증거가 아닌가?

   재준은 대학교에서 어떤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좀비 해방 전선’이란 이름의 좀비 운동권 동아리였다. 그의 아버지가 좀비 공산품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걸 감안하면, 무척이나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사실상 할 수 있는 활동은 미미했다.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바꾼다는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사장되는 추세였고, 좀비를 위한 인권운동도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재준은 그게 답답하고 화가 났다. 왜 세상은 이 당연한 불의를 모른 척하는 건가! 결국 그는 과학자였던 꿈을 버리고 좀비 인권 운동에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재준이 대학 밖에서 만난 좀비 공산품화 저항 세력은 무척 볼품없었다. 그들은 좀비력 발전을 절대 악으로 정의하며 맞섰는데, 그 때문에 전기 사용 최소화 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군집은 원시적이었고, 그 옛날 히피 문화를 방불케 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저항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그들 대부분이 ‘가족 좀비’를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좀비 공산품화 저항 운동은 대부분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시작하곤 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좀비를 공산품 취급해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가끔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양반들은 그냥 제사를 치른 다음에 가족 좀비를 팔아넘긴다더군요. 어차피 이미 죽었다고, 저건 그냥 시체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이해는 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래도 우린 차마 그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재준은 그들과 어울리며 더욱 좀비를 구해야겠단 마음이 강해졌다. 가족 좀비를 애달프게 보살피는 그들의 모습은, 역시 좀비는 인간이란 신념을 굳건하게 했다. 재준은 세상 어디보다 더 편한 저택을 버리고 전기 없는 그곳에서 그들과 생활을 함께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저항 세력의 아이콘이었다. ‘좀비 공산품화의 선두주자인 두석규의 아들!’ 그 타이틀만으로도 그의 목소리는 힘이 실렸다. 이미 재준은 아버지와 대화를 안 한 지 오래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남극 연구소 비운의 천재였던 공 박사의 후배 남자가 접근해왔다.

   “자네 아버지도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언제나 이인자였지. 공 박사님의 숨겨진 연구 성과를 자네 아버지가 대부분 가져갔단 사실을 아나?”
   “아니 그런?!”
   “자네 아버지는 아직도 현역으로 연구를 계속한다지? 자네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았네. 좀비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시키는 게 목표라던데, 이미 꽤 연구도 진척이 됐다고 말이야? 자네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군.”

   재준은 그 칭찬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의 성과는 전혀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어떤 연구를 하든 그저 장사꾼에 불과했다. 재준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남자는 은밀히 말했다.

   “자네 아버지의 연구실에는 그 어느 곳보다 좀비에 대한 많은 연구 자료가 있을 거야. 자네가 혹시 그 자료를 빼돌려줄 수 있겠나?”
   “예?”
   “우린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네. 여전히 남극의 멤버들은 좀비의 인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거기에 자네 아버지의 연구 자료가 더해진다면, 분명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네. 공 박사님의 연구 성과를 가져간 자네 아버지의 자료라면 더욱이.”

   재준은 심각해졌다. 아버지의 자료를 내가 빼돌린다? 그래도 될까?
   남자는 재준의 두 손을 붙잡아 진지하게 부탁했다.

   “자네 밖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 좀비력 발전소의 그 지옥 같은 풍경을 보았나? 닭장에 빼곡히 들어찬 그들은 모두 원래 인간이네! 부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우릴 도와주게나. 더는 인간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도록! 부탁하네! 자네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고, 영웅일세!”

   결의를 굳힌 재준은 남자의 손을 덧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요.”
   “아아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재준은 대의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를 배신하기로 했다. 그게 옳으니까.

   정말 오랜만에 저택으로 돌아온 재준은 며칠간 아버지의 비밀 연구실을 기웃거렸다. 어차피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가 거의 집에 없었기 때문에 작업은 수월했다. 며칠간의 탐색으로 공략법을 알아낸 재준은, 아무도 모를 새벽에 비밀 연구실에 침입했다.
   연구실 메인 컴퓨터로 향한 재준은 가장 강력한 보안으로 숨겨진 폴더를 해제했다.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파일을 복사하던 재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세상에……!”

   아버지의 연구는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좀비에 대해서 이렇게나 많은 걸 연구했단 말인가? 이윽고 가장 중요한 폴더를 확인한 정재준은 경악했다.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대략 80% 수준으로 가능하지.”
   “!”

   화들짝 놀란 재준이 돌아본 그곳에서 아버지가 그를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준은 얼른 컴퓨터에서 핸드폰을 빼들며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파일을 어디로 보낼 생각이냐.”

   놀라있던 재준은 곧 얼굴을 굳히며 되물었다.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게 정말입니까?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공개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태연한 아버지의 대답에 재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버지!”
   “이제 와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려 무엇하겠느냐? 이미 늦었다.”
   “뭐라고요?”

   눈을 치켜뜨는 재준을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밖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다 알고 있다. 그들은 아마, 일부러 네게 접근했을 거다. 이 나의 아들이니까. 어린 넌 영웅 심리에 빠져 이런 일까지 저질렀을 테고.”
   “그게 무슨!”
   “어쩌면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널 인질 삼아 내게 협박을 가할 생각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 그들은 정말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순수? 야만인들이다 그들은. 넌 지금 네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지를 봐야만 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데요?”

   발끈하는 재준을 보며, 아버지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 자들에게 넘어가 이 세상을 대혼란에 빠트릴 생각이냐? 내 자료를 그들에게 넘기겠다고? 인제 와서 좀비들을 모두 인간으로 바꾼다고? 전 세계의 좀비력 발전소가 모두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다른 모든 좀비 산업을 무너뜨려 수백만의 실직자를 만들겠다고? 진심이냐?”
   “그렇다면요?”
   “어리석구나. 이 세상에 지옥이 펼쳐질 거다.”
   “아니요, 옳은 세상이 될 겁니다.”
   “그럼 이건 어떠냐? 수많은 나라가 좀비를 수출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사람이 거금을 주고 좀비를 구매했다. 그들이 산 좀비는 어떻게 되지? 사유재산인 그것들은? 아, 그래. 네가 좀비들을 인간으로 되돌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이는구나. 잘 생각해봐라. 이 세상에 자기 재산을 순순히 포기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재산 취급한단 말입니까!”
   “그럴까? 사람이 사람을 생각했으면 애초에 좀비력 발전소 같은 게 만들어졌겠느냐? 그들은 아마 인간이 된 좀비들을 사유재산이라며 노예처럼 부릴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오히려 그들은 더 좋아할걸? 멍청하게 걷기만 하던 좀비가 아닌, 시키는 일을 더 잘할 노예가 생겼으니까!”
   “그런……”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말했다.

   “재준아. 이 아버지가 왜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지 않는지 아느냐?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그 끔찍한 세상을 말이다.”

   아버지의 슬픈 표정에 재준은 망설였다. 아버지는 천천히 접근했고, 손을 내밀었다.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던 재준은 손에 든 스마트폰을 아버지에게로 천천히 옮겼다. 그러나 직전에 멈칫하여 물었다.

   “정말 그런 생각 때문에 이 연구를 밝히지 않은 겁니까?”
   “그렇단다. 어차피 좀비는 한정 자원이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다. 그때 역사에 전 인류가 악인으로 남는 것보단 나 혼자 악인으로 남고 싶구나.”

   재준은 아버지의 단호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요? 아버지의 목적이 단순히 돈을 더 버는 것이라면요?”
   “무슨 말이냐 그게. 난 그저,”
   “근데 왜 제가 본 아버지의 연구 자료에는 인간화가 단계별로 나뉘어있는 거죠? 그 폴더들을 분류한 이유가 뭡니까? 혹시 이미 개발은 끝냈지만, 조금씩 시장에 풀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건,”
   “아버지가 인터뷰에서 그랬죠. 다음 목표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좀비라고.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목표가 그 폴더들입니까?”

   아무 말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재준은 스마트폰의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지금?!”

   재준은 확신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와 달리 저는 인간을 믿어요. 인간은 절대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지 않습니다. 그런 지옥은 절대 펼쳐지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는 허탈하게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재준을 돌아보았다. 그는 아들의 단호한 눈빛을 한동안 마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네 신념이냐. 그래, 그렇구나. 내 아들은 나보다 더 나은 인간이구나.”
   “아버지……”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는 뒤돌아 연구실을 걸어나갔다. 문을 나서기 직전, 아버지는 아들을 돌아보았다.

   “넌 좀비 사태 이후에 태어난 신세계의 아이다. 너는 좀비 사태 이전의 구세계를 본 적이 없지. 난 보았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절대 노예로 부리지 않을 거라고? 인간을 믿는다고? 넌 몰라.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했는지……”

   힘없이 고개를 흔든 아버지가 연구실을 나갔다. 남겨진 재준은 갈 길 잃은 좀비처럼 오랜 시간을 멈춰 서 있었다.

김동식

좀비는 순수한 악입니다. 인간은 참 입체적인 악입니다. 어떤 괴물을 가져다붙여도 인간보다 악할 수 있을까요? 저도 인간입니다. 한번 인간의 입장으로 좀비의 악이 되어보았습니다.

2020/12/29
3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