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단한 비유이긴 하지만 저희가 청탁한 글이나 독자분들이 투고한 글이나 결국 누군가에게 전달되기 위해서 잡지라는 하나의 우체통 안에 모이는 글이잖아요. 저희 잡지를 읽는 독자는 하나의 우체통 속에 모인 다양한 사연을 보는 거니까요. 또 우체통을 바라볼 때 대부분 사람들은 우체통 자체보다는 저 속에 어떤 이야기들이 모여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들잖아요. 잡지라는 게 일단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매호 잡지를 만들기 전에 원고 청탁을 하고 취재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주 하는 생각이 모든 글에는 인연이 있다는 거예요. 원고 청탁을 할 때, 아니면 취재를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날 때 자연스럽게 ‘글 인연’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되고 쓰게 되더라고요.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전화나 메일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는 분들을 포함해서 잡지를 만드는 일은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요. 글과 글이 만나서 결국 사람의 관계를 지어내는 거죠. 또 잡지라는 건 어떤 기간을 갖는 매체잖아요. 글을 청탁하고 그 원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그걸 다시 책으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하는 그 기간이요. 그 정해진 기간에 보내고 도착하는 글들이 만들어내는 설렘이 있지요.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글을 매개로 만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설레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잡지는 우체통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덧붙여 말한다면, 《월간에세이》는 병원 내에서 병리실험실의 역할을 생각해요. 다른 분야에 비해서 중요하거나 긴급하게 생각되지 않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는 끝까지 남아야 하는 어떤 장소라는 점에서요. 그게 문학 혹은 문학잡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희가 잡지의 현장에서, 혹은 이 사회에서 병리실험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생각이 창간 후 30년 동안 한 번도 결호를 내지 않고 계속 해온 힘인 것 같아요.


  필자를 고르고 청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가능한 볼 수 있는 모든 글을 읽어보고, 그 글을 기준으로 원고를 청탁하려고 해요. 문학잡지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동원해서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어요. 필자의 인지도나 그런 외부적인 조건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사람의 글을 먼저 보고 판단하는 편이에요.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일 수 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진심이나 진실, 그런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요. 또 그 글이 《월간에세이》의 색깔에 맞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여기서 색깔이라는 건 어떤 정치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글과 그 글에 들어 있는 감성의 결이라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정의 내릴 수 없는, 정의 내려지지 않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하나의 ‘시도로서의 장르’라고 할까요. 한국적인 의미에서의 수필은 일반적인 정의를 갖잖아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삶에 대한 철학을 끌어내는 글 같은. 그런데 에세이는 그런 것만은 아니죠. 가령 대학입시 과정에서 요구되는 에세이도 있잖아요. 에세이는 다른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시도로서 쓰이고 읽히는 글이 될 수 있어요. 특히나 요즘 시대에서는 에세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글들을 지칭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요. 저희도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의미에서 ‘에세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해보려고 해요. 포토 에세이나 그림 에세이도 있는데, 필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을 함께 싣는 거죠. 이때 글과 그림, 글과 사진 중에 어느 것이 주고 어느 것이 부수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 그것들이 어우러져서 ‘에세이’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니까요. 저희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계속 살려가는 상태에서, 한국적 수필의 의미에 더해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에세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아울러보려고 해요. 때문에 마치 사금을 캐듯이 단행본이든 다른 매체를 통해서든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글들을 찾아보고 청탁을 드리고 있어요.



《월간에세이》

창간년월: 1987년 5월
발행주기: 월간
구성원: 이연복(발행인), 원종성(편집주간), 김신영(편집장), 이조윤(편집위원), 설명숙(편집디자인)
www.essayon.co.kr


월간에세이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