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18회 소녀문학
《소녀문학》에게 문학잡지는 ‘펜, 칼, 방패’입니다.
《소녀문학》을 만들면서 ‘미칼펜결’이라는 배지를 함께 제작한 적이 있어요. 이 배지의 이름은 “미다스의 손을 거쳐 우리는 칼과 펜으로 결의하였다네.”라는 뜻의 줄임말이에요. 저희에게 문학잡지라고 하는 것은 쉽게 내면화시킬 여지가 있는 룰(rule)들의 막을 뚫는 도구에요. 어떤 관습이나 규범뿐 아니라 사소한 삶의 방식이나 습관 같은 것 역시 삶을 가능성을 제한하고 서로의 대화를 가로막는 것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봐요. 문학이 이런 작은 규칙들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면, 문학잡지는 소동을 일으키는 목소리들을 담아낼 수 있는 장소가 되겠죠. 처음 《소녀문학》을 만들 때, 소수자나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문학잡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로고에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일반적으로 문학을 상징하는 ‘펜’이 가진 날카롭고 위협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칼’을 추가하게 되었어요. 즉 저희에게 《소녀문학》은 펜이자 칼인 것이지요. 물론 칼이 항상 좋은 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죠. 위험한 도구이니까요. 그래서 문학잡지란 칼이자 펜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서로 이야기하는 토론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약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학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을 애써 나누지 않는 방법이 중요할 것 같아요. 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서나 독서를 하는 행위에서는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는 조금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약자들의 목소리는 심지어 작가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담고 있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의 이런 위계를 최소화하고 그 경계를 흐리는 것을 중요한 문학적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 해석에 대해서도 어떤 틈을 벌려놓고, 그래서 작품 밖과 작품 안을 같이 분석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뒤섞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좀더 구체적으로 작품 내적으로 들어가본다면, 약자의 목소리를 듣거나 묘사할 때 약자들의 삶의 방식을 고정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이루어진다면 안 된다고 봐요. 이를테면 퀴어소설을 쓸 때, 반드시 퀴어로 정체화한 사람이 주인공일 필요가 없는 것이고, 퀴어가 나온다고 해도 연애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요. 퀴어문학의 목표는 퀴어의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퀴어적인 것을 다 같이 공유하자, 퀴어니스는 다양하고, 그 다양성을 즐기고 때로는 해체시키는 놀이를 함께 하자는 제안인 것 같아요. 이 제안의 방식이 하나의 공식으로 굳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녀문학》
창간년월: 2016년 10월
발행주기: 비정기
구성원: 육일, 하림, 민지, 은설
sonyeomunhak.com/xe/
@sonyeomunhak
소녀문학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