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어 늘어서 있는 글자들, 문장들을 읽어나가다보면, 그것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을 읽어나가는 눈길에 의해 일정한 속도가 부여되기 때문에, 어딘가로 천천히 나아가는 열차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관념의 열차, 이미지의 열차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 열차에는 어떤 존재들이 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그 글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 미리 정해져 있다거나 그것이 우리의 능력에 비례한 만큼 정확하게 혹은 훼손된 채로 수신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글을 읽을 때, 우리가 이미 읽었던 어떤 문장들 혹은 그것이 변형된 채로 나의 상상과 결합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문장들이, 읽고 있는 문장의 앞뒤로 줄지어 늘어서거나 그것이 다른 궤도로 들어서도록 유혹합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글의 의미는 형성되고 경험됩니다. 독서의 열차가 한 권의 책 바깥으로 빠져나가 다른 책의 다른 문장들에 연결되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 다른 책의 다른 문장들은 또 얼마나 제각각의 방향과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독서의 열차가 탈선하여 어느 순간 우리가 더이상 책을 읽지 않는 채로 다른 생각으로 빠져드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 그 다른 생각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열차들이 줄지어 다니거나 교차하거나 서로를 탈선시키는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많은 열차들이 각자의 상상 속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그것을 문자화하는 것, 언제든지 우리가 그 열차들 가운데 하나에 올라탔다가 다른 열차로 갈아탈 수 있도록, 무수한 문장의 열차들이 지나가는 환승역을 마련해두는 것, 이를 통해 더 많은 열차들의 운행이 서로를 불러일으키도록 자극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하려고 노력했던 일,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입니다.


  혁신 속에서도 문학잡지가 반드시 지켜야 할 문학적 가치란 무엇일까요?


   다른 잡지의 편집위원에는 창작자나 편집자가 섞여 있기도 하지만 지금 《문학동네》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비평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중심은 비평입니다. 이 말은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 비평은 작품에 대한, 작품에 의한 비평입니다. 비평이란 한 작품에 대해서 최대한 깊이 생각하고 또 가능한 한 오래 고민하는 일이고, 그래서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왜 있어야 하고 왜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입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문예지란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비평’이 거주하는 공간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다른 잡지에는 없거나 드물게 있는 유형의 글인 작가론과 작품론을 많이 싣습니다. 저희는 독자가 해당 시기에 어떤 작가와 작품에 대해 가장 자세하고 섬세하게 말하는 글을 읽고 싶을 때 그 글을 《문학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에 대한 응답이 충실하면 할수록 이 ‘리액션’으로서의 비평은 결국 ‘액션’으로서의 비평이 될 것입니다. 이런 비평은 작품에 개입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무엇을 이끌어내고, 또다른 글쓰기를 발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동네》

창간년월: 1994년 11월
발행주기: 계간
구성원: 권희철, 남다은, 문강형준, 신형철
mun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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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