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13회 창비어린이
《창비어린이》에게 문학잡지는 ‘고양이’입니다.
사진 속 고양이는 편집위원 중 한 명이 기르고 있는 청소년 고양이 ‘마루’입니다. 마루는 어미와 둘이서 길에서 살다가 재작년 초에 구조되어 함께 입양되었습니다. 지금은 게으르고 느긋한 집고양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안전한 실내생활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야생동물로서의 본능도 여전히 남아 있어 엉뚱한 짓을 하곤 합니다. 어린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린이에게는 절대 안전한 삶이 필요하지만 그들의 자유와 본능을 억누르기만 해서도 안 되니까요. 고양이를 모시는 것과 어린이를 모시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이 일을 결코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동청소년문학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통해서 어린이의 말과 마음과 생각을 소중하게 모시고자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가 자유로운 고양이처럼 마음 놓고 어슬렁거리고 힘껏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문학의 공간을 찾고 고민합니다. 아동청소년문학을 다루는 문학잡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렵지만 행복한 일입니다. 언제나 집사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아동문학의 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어린이책의 호황기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있습니다. 새로운 문학적 감각과 지향점을 선보인 걸작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이 시기에 창작된 좋은 한국 창작 아동문학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이 슬슬 청년이 되어 그때 먹은 뽕잎을 비단실로 뽑아낼 때가 된 듯합니다. 어린이들은 내내 어린이가 아니라 금방금방 자라서 어른이 되고, 수용자에서 곧 창작 주체로 나서기도 합니다. 이것이 늘 재미있고 기대를 품게 합니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볍씨를 베고 죽는다는데 우리 문학, 문화의 볍씨가 아동문학 아닐까요.
한국 아동문학의 첫번째 가능성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꿋꿋한 발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안전도 지켜주지 못하는 부패한 사회, 여전히 존재하는 방치와 폭력, 날마다 모습을 바꾸며 줄 세우기식 경쟁에 몰두하는 가혹한 입시제도 속에서도 어린이들은 자신의 힘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냅니다.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믿고 있습니다. 두번째 가능성은 어린이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는 작가들입니다. 아동문학 작가들은 어린이의 자리를 궁금해하고 돌보고 사랑하면서 오늘도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어린이 인권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 나서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부디 글만 쓸 수 있도록 편안히 자리로 돌려보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가능성은 문학을 읽는 일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 독자들입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고 많은데도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우리의 가능성입니다. 아동문학은 부모님과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문학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척 지루해하면서도 여전히 책을 펼치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아동문학은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어린 시절에 문학에서 발견한 즐거움은 평생을 갈 것이기 때문에 이건 가장 멋진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죠.
《창비어린이》
창간년월: 2003년 6월
발행주기: 계간
구성원: 김민령, 김지은, 박숙경, 오세란(이상 편집위원), 한지영(담당편집), 문경미, 천지현(이상 편집)
www.changbikids.com
창비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