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물은 역시 ‘베개’일 수밖에 없네요.(웃음) 누구나 잠들 때 베개를 베고 잠들고 꿈을 꾸잖아요. 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베개를 베지는 않지요. 각자 선호하는 높낮이가 다르고 베개를 베는 방식도 다양해요. 《베개》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채로 잠들지 못하고 외롭게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 모두가 저희 잡지에 머리를 맞대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편안하게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잡지를 만들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문학이, 문학잡지가 농담처럼 친근하게 여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야 문학과 문학잡지를 가까이 둘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 우리가 만드는 《베개》가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으로 독자에게 다가서길,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베개》에게 ‘문학/하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문학’보다 ‘문학/하기’에 주목하고 싶어요. 보통 문학이라고 하면 텍스트를 떠올리고 작품성을 따져들게 되잖아요. 물론 텍스트는 중요하지만, 텍스트를 완성하기까지 다양한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적으로 방황하고 노력하는 삶의 결 속에 무언가 작품이나 그것의 성공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또 텍스트가 나온 다음엔 그것을 다루는 자세와 방식, 즉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희는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만들고 싶었어요. 어떤 규모나 이득보다는 동행한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고 문학하는 삶을 모두가 가질 수 있길 바란 거죠. 그동안 문학의 무게중심이 텍스트에 있었다면 이제는 텍스트가 나오게 된 맥락 전체를 중시하는 질서를 추구해보자는 뜻에서 ‘하기’에 힘을 준 것입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중요한 건 등단 여부가 아니라 쓰는 행위 자체가 아닐까요. 바둑에 비유한다면, 《베개》는 꼭 이기려는 바둑이 아니라 문학 안에서 미약한 형세로나마 돌 하나 정도를 단정하게 놓아보자는 마음으로 만드는 잡지입니다.

   《베개》를 만드는 구성원 중에는 예고를 졸업하고 문창과를 나와 오랫동안 등단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는데요. 문학에 따라붙는 권력이나 권위, 등단 제도의 문제, 문단 내 성폭력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문학/하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랫동안 믿어온 문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부터 ‘문학/하기’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문학/하기’에 대한 생각은 잡지를 만드는 저희 안에서도 의미가 다 다를 것 같아요. 《베개》 1호를 만들면서 저희가 가진 마음은 계속해서 쓰게 하는 힘, 어떤 응원을 글을 쓰는 사람들과 잡지를 통해 나누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등단 여부를 떠나 글을 싣고자 하는 분이라면 투고를 통해 작품을 받았어요. 모든 작품을 싣기에는 지면에 한계가 있어서 부득이 반려할 때는 글을 싣지 못하게 된 사정을 적어 한 명 한 명에게 메일 드렸어요. 메일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작품을 쓴 이가 무엇에 닿으려고 했는지를 상상하는 것이었어요. 저희의 기준에 비추어 이 작품은 어떠하다 혹은 좋지 않았다 등의 평가를 내리는 게 아니라, 작품을 쓴 사람과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의 어떤 부분이 이해가 어려웠는데 작품을 쓸 때 이런 것을 상상하거나 의도한 게 맞는지 되묻는 식이었어요. 반려하는 메일임에도 항의하는 답변은 하나도 없었어요.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감동적인 답변을 많이 받았고 《베개》를 응원하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이런 과정도 《베개》의 ‘문학/하기’인 것 같아요.



《베개》

창간년월: 2017년 5월
발행주기: 반연간
구성원: 권경욱, 김가을, 나하늘, 유승연, 조원규
facebook.com/begaeda


독립문예지 베개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