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목소리
3화 침묵
동굴 안에 숨으면
벽들이―말하기 시작한다네―
우주는 내 존재를 보이게 하는
강력한 틈이 있는 것 같다네―1)
서로의 역할을 바꿔 대화록을 낭독하였다. 다른 사람의 말을 소리 내 읽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의 말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니 내가 한 말이, 그리고 내 자신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낭독 후 우리는 대화록에서 각자 단어를 골라 시를 만들어보았다.
소곤거리면서 슥 삭 슥 삭
(침묵 20초)
외로워 보여
(침묵 5초)
(침묵 9초)
(침묵 5초)
(침묵 5초)
쫘 악
어떡하지?
움켜쥐니까 삐져나오는 고백
옅어질 회색빛 죄책감
(침묵 7초)
정윤은 대화록에서 ‘침묵’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정윤은 말을 잇기 힘들면 멈추었고 미선은 말이 없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지켜주었다. 말을 가득 채우지 않아도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미안
생략
미
안
미
안
미
안
미
미안하다고 한다구요?
죽음이 잃어버렸는데
원래 없는 말인데
(침묵 9초)
(침묵 5초)
(침묵 4초)
완벽하게 한번 취해보시겠어요
언니 잘 지내?
좀 취해보시겠어요?
다가오는 창백한 잡소리
괜찮냐고 귀찮게 하는 죄책감
도망가야겠다 귀엽게 숨는 일상
이렇게 가까이에서
……죽을 말
……죽을
다
……죽은
나
벽들이―말하기 시작한다네―
우주는 내 존재를 보이게 하는
강력한 틈이 있는 것 같다네―1)
미선
‘꿈’에 관해 우리가 나눈 대화(2화 참조)를 타이핑해 가져왔어요. 다시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정윤
생생하게 기억나는 말도 있고 내가 이런 말을 했었나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아요. 말들이 섞이고 지워지고 새로 태어나고…… 대화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미선
저는 대화록을 다시 읽어보니 여기에 우리가 못다한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에게 건넨 말을 불러 모아서, 또다른 의미의 말들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정윤
좋아요,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리라는 예감이 드네요. 그럼 먼저 대화록을 읽어볼까요? 미선씨가 나의 말을, 내가 미선씨의 말을 읽기로 해요.
서로의 역할을 바꿔 대화록을 낭독하였다. 다른 사람의 말을 소리 내 읽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의 말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니 내가 한 말이, 그리고 내 자신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낭독 후 우리는 대화록에서 각자 단어를 골라 시를 만들어보았다.
표정이 없는 공포
소곤거리면서 슥 삭 슥 삭
(침묵 20초)
외로워 보여
(침묵 5초)
(침묵 9초)
(침묵 5초)
(침묵 5초)
쫘 악
어떡하지?
움켜쥐니까 삐져나오는 고백
옅어질 회색빛 죄책감
(침묵 7초)
미선
정윤씨가 쓴 시는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처럼 느껴져요. ‘공포’의 표정을 억지로 지어내지 않아서 더 인상적인 것 같고요. 저도 잠깐 그 표정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정윤
‘공포’라는 감정 혹은 그 단어가 저에게는 인격을 가진 한 사람, 어떤 아이처럼 느껴졌거든요. 의인화해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미선
표정이 없는 아이에게 표정이 있다면 이렇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공포를 침묵으로도 표현한 듯이 다가오는데, 이보다 더 어떻게 공포의 표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고요.
정윤
공포라는 이 아이가 저는 몹시 불편하고 무서운데요. 시에 이렇게 넣어보니까 좀 귀엽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걸 숨기고 있는 그런 상태 있잖아요. 자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살짝 불거지면서 삐져나오고 마는 상태요. 시를 다 쓰고 보니, 공포라는 게 ‘그렇게 무시무시하진 않은데?’ 싶어지는 듯했어요.
미선
공포나 두려움은 실체가 잘 안 보이니까 더 무서워지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시를 만들면서 정윤씨가 그 실체를 포착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공포라는 말이 덜 무섭게 느껴지네요.
정윤
제목을 ‘대화’로 했다가 이렇게 저렇게 단어의 조각을 맞춰보고 ‘표정이 없는 공포’로 바꿨어요. ‘침묵’이란 단어는 제일 마지막에 시의 구절로 넣은 거예요. 지금 나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요. 공포의 실체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확 터져나오잖아요. 침묵을 중첩시키면서 그런 심정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미선
정윤씨의 말을 들으니 “움켜쥐니까 삐져나오는 고백”이라는 구절이 더 이해가 되고 와닿네요. 침묵과 침묵 사이에 있는 “외로워 보여”라는 말도 공포를 비집고 나오는 ‘진짜’에 가까운 한마디로 들렸어요. 시에 ‘침묵’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썼는데, 정윤씨에게 이 단어가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가 있을까요?
정윤
대화록을 읽는 중에 ‘침묵’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데 굉장히 위로되더라고요. 대화 녹음을 다시 들었을 때도 사이에 깃든 침묵의 시간을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말하고 있을 때보다도 더 특별한 시간인 거 같더라고요. 짧은 시간이지만. 공포를 말하면서 ‘침묵’이라는 단어를 시에 쓴 건 침묵이 공포 그 자체도 되고, 공포의 실체가 밝혀지고 해소되는 순간이 곧 다가온다는 징표도 되는 것 같아요.
미선
침묵. 사실 견디기 힘들죠. 뭐라도 채우면서 그 시간을 벗어나려고 하잖아요. 마치 공포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은 것처럼.
정윤
맞아요, 그런데 우리 둘이 대화를 하면서는 이런 침묵의 순간들을 미선씨나 저나 기다려주고 존중해주고 하잖아요. 그런 시간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일반적으로 대화라는 게 계속 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잖아요. 침묵을 같이 지켜주는 거 참 쉽지 않잖아요. 다그칠 수도 있는데.
미선
저도 녹음으로 들으면서도 그렇고 대화록으로 다시 읽으면서도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짧은 침묵 속에 굉장히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고 느껴졌어요.
정윤은 대화록에서 ‘침묵’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정윤은 말을 잇기 힘들면 멈추었고 미선은 말이 없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지켜주었다. 말을 가득 채우지 않아도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쓸데 모르겠는 상상
미안
생략
미
안
미
안
미
안
미
미안하다고 한다구요?
죽음이 잃어버렸는데
원래 없는 말인데
(침묵 9초)
(침묵 5초)
(침묵 4초)
완벽하게 한번 취해보시겠어요
언니 잘 지내?
좀 취해보시겠어요?
다가오는 창백한 잡소리
괜찮냐고 귀찮게 하는 죄책감
도망가야겠다 귀엽게 숨는 일상
이렇게 가까이에서
……죽을 말
……죽을
다
……죽은
나
정윤
미선씨가 쓴 시를 보면서 좀 놀랐어요. 우리 대화에서 나눈 말들을 가지고 이렇게 시를 만들 줄 몰랐어요. 가장 먼저 눈에 띈 말은 “취해보시겠어요”라는 말이에요. 술을 마시고 취해보겠다는 뜻으로 쓸 거란 상상을 전혀 못 했거든요.(웃음)
미선
네, 원래는 정윤씨가 카메라 설치할 때 저에게 자세를 취해보라는 뜻에서 했던 말이었죠. 저는 우리가 같은 단어를 시에 사용한 게 재밌었어요. ‘침묵’이라는 단어가 제 시에도 있고 정윤씨 시에도 있어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시의 비슷한 위치에 ‘죄책감’에 대한 시행도 나오고요. 정윤씨는 죄책감을 “빛깔”로, 저는 “소리”로 표현해서, 마치 두 시가 연작처럼 느껴졌어요.(웃음)
정윤
저는 미선씨 시가 냉소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미선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는 대로 단어를 골라서 조합했거든요. 그런데 시가 완성되어 가면서 ‘내가 지금 냉소로 가득 차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왜 그런 상태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어요.
정윤
미선씨의 마음 상태가 시를 통해 제게도 느껴졌어요. 질문을 바꿔볼게요. 지금 미선씨에게 일상은 어떤 모습이에요?
미선
비현실적이에요. 그다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권태롭고 지겹고 뭔가를 참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정윤
“귀엽게 숨는 일상”이라는 구절에서처럼 미선씨에게 일상이 얄밉게 구는군요. 미선씨의 것인데도, 일상의 생생함이 미선씨로부터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것 같아요.
미선
맞아요, 나를 좀 괴롭히는 느낌이에요.
정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요? 언제부터인지 되짚어본다면?
미선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그래온 것 같아요. 다만 이 시를 만들면서 한 생각은,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후로 그에 얽힌 제 감정, 그러니까 어떤 냉소, 죄책감, 농락당한 것 같은 느낌, 분함 같은 감정이 시에 들어 있어요.
정윤
“죽음이 잃어버렸는데”라는 구절이 그런 미선씨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죽음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죽음이’ 잃어버렸다는 표현이요. 죽음을 하나의 대상처럼 바라보고 있어서 눈에 띄고, 그에 대한 어떤 원망감이 엿보이기도 해요. “미안하다고 한다구요?”라는 물음은 미선씨의 말투가 상상이 가요.
미선
그 물음은 제 본심 같아요. 제가 말하지 못하는 진심. 그런데 어디에다가 물어야 하는지를 몰라.(웃음)
정윤
미선씨가 말한 것처럼 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 죽음에 대해 드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읽혀요.
미선
모든 죽음이 그렇겠지만, 설명도 없고 친절하지도 않을 뿐더러 번복할 수도 없고 절대적이잖아요.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죽음은 숙명인데, 알지만 화가 나는 거죠.
정윤
그렇죠. 그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당한 거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저는 죽음을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데, 죽음은 일방적으로 ‘네가 받아들이든가 말든가’ 이런 식으로 찾아오는 것 같아요. 한편 저는 “언니 잘 지내?”라는 구절에 계속 사로잡혀 있어요. 우리가 나눈 대화 중에 이런 말이 있었나 싶고요.
미선
정윤씨 친구가 “언니 잘 지내?” 하고 가끔 안부를 물어오곤 한다고, 지난번에 이야기해줬었죠. 그 부분에서 가져온 말이에요.
정윤
그 친구가 살아 있을 때 나한테 해주던 말이 미선씨 시에 이렇게 들어가니까…… 마음이 덜컹했어요. 종종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너는 잘 지내?’ 하고 그 친구에게 맘속으로 안부를 묻곤 하거든요. 미선씨가 많은 문장 중에 “언니 잘 지내?”라는 말을 골라내 시를 쓴 건 미선씨도 떠나간 동생의 목소리를 기억하기 때문이겠죠.
미선
제가 되게 듣고 싶은 말인가봐요.
정윤
먼저 간 사람을 항상 안쓰럽게만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이렇게 나에게 안부를 물어줬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미선
사실 동생이 정말로 “언니 잘 지내?” 이렇게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단번에 대답 안 나올 거 같아요. 잘 못 지내고 있다고 느끼니까…… 다시 생각해보니까 “잘 지내?”라는 말은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말이라기보다, 자기 안부를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아닐까요? “잘 지내? 나는 잘 지내.”라는 인사요. 생략된 말이, 침묵 속의 말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두 개의 목소리
안미선은 그림을 그리고, 안정윤은 영상을 만듭니다. 미선과 정윤은 죽음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기록합니다. 마치 산책길을 거니는 사람들처럼, 예쁜 돌을 주우면 보여주고 낯선 소리를 들으면 멈춰 서서 같이 귀 기울였다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2019/03/26
16호
- 1
- 에밀리 디킨슨, 「시 891. 잘 듣는 내 귀에 나뭇잎들이」, 『디킨슨 시선』, 윤명옥 옮김, 지만지, 2011, 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