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땀에 젖어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을 고쳐쥐었다. 미련한 놈. 아버지의 목소리가 앵앵대는 모기처럼 내 귓가를 맴돌았다. 네 엄마 때문도 아니고 나 때문도 아니야. 네가 나약해빠진 놈이기 때문이지. 아버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엉덩이 위에서부터 쭉 뻗은 꼬리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내가 나약해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야생동물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자주 봤다. 지적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풀어줄 웃음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여유시간은 무한의 영역에 있었으므로 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 동물 프로그램은 지루했다. 그 지루함이 필요했다. 내가 얼마나 지루한 삶을 사는지 수시로 자각하고 싶었다. 졸음을 참으며 화면을 보는데 텔레비전 속 캥거루가 몸을 일으켜 섰다. 꼿꼿하게 허리를 편 채 두 발로 선 캥거루가 앞이나 뒤로 넘어가지 않게 지탱하는 것은 캥거루의 긴 꼬리였다. 꼬리를 포함한 땅을 디디고 선 것들이 삼각형을 이루며 안정적인 균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캥거루는 자신의 적과 싸우기 위해 뒤의 두 발을 마저 들었다. 캥거루는 꼬리로 섰다. 오직 꼬리만으로!
    꼬리가 달린 나를 상상했다. 제법 괜찮을 것 같았다. 캥거루 꼬리 같이 단단하고 굵직한 꼬리가 내 두 다리 중간 즈음의 엉덩이 위에서 쭉 뻗어나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도 꼬리로 중심을 잡을 수 있겠지. 마치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꼬리는 캥거루의 꼬리처럼 생겼지만 그보다는 약간 더 가는 것으로 엉덩이 바로 위에서부터 쭉 뻗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낮잠 자는 고양이의 꼬리처럼 자유자재로 까닥거리며 움직였고 비쩍 마르고 늙은 두 다리 사이에 자리하여 굳건하게 버티고 서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꼬리는 허구한 날 픽픽 쓰러지던 어린 내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버지는 꼬리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했으나 내가 보기에 꼬리를 단 아버지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나는 반고리관인지 달팽이관인지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그 이상이 무엇인지 잘 감지하지 못하겠으므로, 정확히 뭐에 이상이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서술어를 바꿀 필요가 있다. 나의 반고리관 혹은 달팽이관, 그것도 아니면 전정기관에는, 이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 나는 대략 삼십 분 주기로 쓰러져 넘어졌다. 힘없이 고꾸라져 아픈 머리를 문지르고 일어날 때마다 아버지의 꼬리가 간절했다. 나는 끊임없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나와 그렇지 않은 아버지가 다른 이유가 꼬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아버지는 자주 비틀거릴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쓰러지지 않는 아버지와 쓰러지는 내가 다른 점이라고는 꼬리뿐이었다.
    언젠가는 꼬리 대신 나무막대를 엉덩이에 붙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린 나무들이 쓰러질까봐 나무토막 세 개를 몸통 주변에 대어 버티고 서 있도록 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세 개까지는 필요 없다. 나는 이미 두 다리가 있으니까 내가 쓰러지려고 휘청할 때면 쓰러지지 않도록 뒤에서 버텨줄 나무토막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아버지더러 나무토막을 구해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걸 어디서 구하냐며 화를 냈다. 나는 적당히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것 중 하나를 뽑아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럼 나무막대 하나를 빼앗긴 그 나무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럼 난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날 결국 아버지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가며 나무토막 하나를 빼왔다. 나는 아버지가 같이 구해온 노끈을 이용해 내 허리에 나무토막 윗부분을 대고 칭칭 감았다. 비스듬히 잘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나무토막은 마치 두 다리 사이의 다리가 아주 길어진 것 마냥 아래로 뚝 떨어져 길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균형을 잡는 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무토막과 함께 쓰러지느라 엉덩이가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뒤로 쓰러지면 나무토막이 버텨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기껏 뒤로 쓰러지려 애썼더니 어차피 쓰러지는 건 마찬가지였고, 나무토막 위로 주저앉은 엉덩이뼈의 고통으로 눈앞이 새하얘졌던 것이다.
    결국 진짜 꼬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어지럼증을 느껴도 안정적으로 두 다리와 함께 땅을 지탱하며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줄 꼬리. 나는 꼬리를 달기 위해서 ‘유전공학 연구소’라는 판자를 걸어놓은 불법 시술소를 찾아갈 결심을 했다. 시술소에는 타인의 시선을 피해 무언가를 떼어내거나 변형시켜야만 하는 사람들이 다녔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몸의 절반이 동물의 피부로 이뤄져 있거나 손에 물갈퀴가 달렸거나 머리가 두 개 달린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온다고 했다. 그들은 얼굴을 가리고 그 낡은 병원 건물로 숨어들어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곳의 유일한 의사이자 원장은 의사 면허가 박탈된 뚱보였는데, 140킬로그램의 거구를 간신히 운신하며 수술을 집도하곤 했다. 아버지는 불법으로 운영하는 그 시술소인지 병원인지 구분이 애매한 곳에서 병원장의 유일한 직원으로 일했다.
    꼬리를 달겠다고 결심한 것을 아버지에게 말하자 아버지는 안색을 굳혔다.
    “꼬리를 달아서 뭘 하려고 그러는 거냐. 꼬리가 있다는 건 괴물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야.”
    “지금의 나보다 더 나쁜 상태의 괴물은 아닐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휠체어나 타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나는 휠체어를 타고서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아이가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 일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었다. 내 두 다리는 표준 체형에 가까울 정도로는 튼실해 보였고 부상을 입었거나 장애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손으로 바퀴를 밀다가 팔이 아파질 때면 발로 땅을 쓱쓱 밀며 가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쟨 뭐야,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꼬리를 달면 너는 더욱더 집에만 갇혀 있게 될 거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어차피 지금도 갇혀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내 두 발로 오랜 시간 동안 밖을 걸어보고 싶었다. 온전히.
    “꼬리를 달면 많은 게 변할 수 있다.”
    “정 아니면 다시 떼면 되잖아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붙이는 순간 꼬리는 네 몸의 일부가 되는 거다.”
    나는 아버지를 상대로 계속 꼬리를 달겠다고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 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한 번도 그것을 토해낸 적은 없었다. 다만 속으로 생각했다. 이럴 때 엄마가 있었더라면 내 편을 들어주었을 텐데. 문득 언제나 왼쪽 눈 아니면 오른쪽 눈두덩이 시퍼렇던 엄마가 떠올랐다. 미안해, 아들. 미안해. 엄마는 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만큼 아무 의미 없는 말도 없었다. 짧은 욕설보다도 더 목적성이 없는 단어들이었다.
    “꼬리를 다는 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추가하는 것뿐이지만 떼는 것은 내 일부를 없애는 거다.”
    “그래서 꼬리를 다는 수술보다 떼는 수술이 더 어렵다는 거예요?”
    “한 번 꼬리를 달겠다고 마음먹고 꼬리를 단다면 다시 그 꼬리를 떼어내는 일이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지.”
    “그래도 붙이고 싶어요.”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는 나와 길게 대화한 적이 많지 않았고, 원활한 협상을 하는 법도 몰랐다. 아버지는 잠시 말없이 나를 보았다. 기분이 나쁠 정도로 빤히 보는 시선에 불편해졌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겠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으며 말하는 도중에도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는 아버지의 꼬리를 보고 있었다. 불균형을 균형으로 바꾸어주는 세번째 다리를. 나는 다른 어떤 꼬리보다 아버지의 꼬리를 가지고 싶었다. 사막 쥐의 꼬리는 너무 가늘었고, 고양이의 꼬리는 너무 유연했으며, 개의 꼬리는 너무 짧았다. 아버지의 꼬리만큼 적당해 보이는 꼬리도 없었다.

    언쟁 다음날, 시술소를 찾아갔다. 땀을 줄줄 흘리는 병원장 앞에서 그 당시 열세 살이던 나는 꼬리에 대한 내 생각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병원장은 내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 꼬리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너 꽤 많은 동물들이 꼬리로 균형을 잡는다는 걸 알고 있니?”
    나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장은 내 이론을 심각하게 들어주었지만 수술은 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우선 첫째로, 내가 아버지의 도움 없이는 수술비를 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로, 내가 갖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꼬리는 후천적으로 얻게 된 것인데, 쉽게 잘라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다. 괜히 잘랐다가는 아버지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거였다. 또 셋째로는, 그 꼬리는 제거 수술을 할 필요가 없는데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으로……
    “아버지 꼬리가 원래 있던 게 아니에요?”
    더 듣지 않고 병원장의 말을 대뜸 잘랐다. 병원장은 말이 잘린 게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옆에 있던 도넛 하나를 입에 쑤셔넣었다.
    “오 년 전에 생긴 거잖니.”
    말하는 병원장의 입에서 도넛 가루가 튀었다. 언제부터 아버지에게 꼬리가 있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 년 전 일이라는데 도통 꼬리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사이 병원장은 자기가 치료한 환자들의 잘된 경우와 잘 안된―그러니까 저승의 강을 건넌― 경우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결국 꼬리를 달지는 못했다.
    꼬리를 달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나쁜 짓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시작한 나쁜 짓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악랄한 거짓말을 하려고 애썼다. 조에게 너희 어머니가 자살을 했다고 하거나, 규에게 너희 아버지가 마트 직원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봤다고 하는 둥의 거짓말. 한 달이 지나자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왔다. 아버지는 내가 한 거짓말들을 나열하는 담임 앞에서 몇 번이고 되물었다. 쓰러지는 것 때문이 아니라고요? 쓰러지기 때문이 아니란 말입니까? 쓰러지는 것 때문은 아니라는 거죠? 당황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준비한 말이 쓰러지는 것에 대한 말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쓰러지는 것에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까?
    아버지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아이들 대부분에게 뇌 이상이 있다며, 내가 정신지체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다. 너는 그런 아이들에 비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다행인 편이지. 뭐가 다행이라는 건지 나는 잘 몰랐다. 아버지가 하는 훈계를 들으며 나는 내가 왜 남들보다 조금만 더 노력해야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일단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나는 남들보다 더 노력하려고 했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되었다. 담임이 교장과 불륜관계라고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쫓겨나자 아버지는 원래보다 열 배는 냉정해졌다.
    이후로는 거짓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단순 절도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많은 시간대의 슈퍼마켓에 가서 초코바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두 개를 계산해서 도둑으로 몰리지 않는 방법이나 물건을 엄청 많이 산데다가 좀 둔해 보이는 중년 여자의 물건들 사이에 내 것을 끼워 넣고 바로 뒤에서 계산해 중년 여자가 짐을 챙길 때 내 것을 계산한 물건들과 함께 챙기는 방법 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서는 비어 있는 가정집에서 금품을 털어오기도 했다. 방범창을 달지 않은 집 베란다로 넘어들어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걸릴 것 같은 순간에 발작처럼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실수였다고 밀어붙이는 것도 꽤 효과가 좋았다. 감옥에 갈 생각은 없었다. 내게는 처벌이 아니라 딱 그 이전, 죄까지만 필요했다.
    아버지는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을 터였다. 내 범죄 종목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나는 삼십 분마다 픽픽 쓰러지는 나로서도 할 수 있는 점점 더 심각한 악행을 찾아 돌아다녔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나를 말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검은 복면을 뒤집어쓰고 돌아온 나를 곁눈질로 흘낏 보기만 했다. 아버지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물어보면 꼬리를 달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생각이었는데, 아버지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의 사돈의 팔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버지라면 나를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나쁜 짓은 전부 했다. 범죄를 잘 저지르려면 똑똑해야 한다는 생각에 닥치는 대로 챙겨본 텔레비전이나 책들이 꽤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는 수시로 책을 주문해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학업을 이어갈 생각인가 싶었겠지만, 내가 아무리 두꺼운 철학책 따위를 보고 있었다고 해서 그게 내 졸업장이라든가 학위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제법 똑똑해졌고, 또 제법 깔끔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꼬리는 생기지 않았다. 매일 거울 앞에서 확인해보아도 척추뼈 한 마디가 더 생겨 불쑥 튀어나온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이 전부 틀린 것이었던지 회의를 느꼈다. 물론 나는 내가 하지 않았던 한 가지 다른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실 나는 가장 적합한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꼭 그 범죄여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는 내게 정말 절박하게 가지고 싶은 것이었고, 기필코 갖겠다며 생의 반을 꼬리에만 매달려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말고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결국 나는 포기했고, 그런 내게 신물이 났다.
    나는 폭력을 증오합니다. 나 그렇게 자랐잖아요, 아버지. 꼬리를 달지 못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고 나는 아버지에게 패악을 부리며 술을 마셨다. 내 술주정을 듣고 나서 아버지는 내게 이대로 묵과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듯했다. 아버지는 괴상하게도 복면을 쓴 나보다도 폭력을 증오한다고 외쳐대는 내게 더 진저리를 냈다. 다음날 아버지는 내게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에 들르라고 했다. 스무 살에 다시 만난 병원장은 두 다리의 힘은 멀쩡한데 균형을 잃고 모로 쓰러지는 내 증상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더니 대뜸 귀에 있는 어떤 기관의 문제라고 말했다.
    “어느 기관이요? 달팽이관? 반고리관? 아니면 전정기관?”
    “그중 하나에 이상이 있는 거죠.”
    나는 내 병명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물었지만 그는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다. 병원장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잘 찾아왔어요. 이런 건 일반 병원에선 원인도 모르는 병이거든.”
    일반 병원에서 왜 발병했는지 원인을 모른다는 것은 맞는 말이긴 했다. 이비인후과에선 내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사람이 쓰러지는데 문제가 없다니요? 내가 묻자 나이 든 의사가 자기가 알게 뭐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몇 군데를 더 들러보았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내겐 치료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곳만 제외하고는. 그러나 열세 살이 아닌 스무 살의 나는 정말 여기서 수술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얼마간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병원장과 함께 내 수술을 밀어붙이는 통에 얼떨결에 수술대인지 안마의자인지 모를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열세 살에 왔을 때는 안 된다더니 왜 지금은 수술을 해주냐고 묻자 병원장이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성년이잖아요.”
    돈도 내고, 라는 이어진 작은 목소리는 그냥 흘려들었다. 그날 나는 수술을 받았다. 꼬리를 다는 수술인 줄 알고 받았는데 그게 아니라 균형감각이 좋아지는 수술이었다. 귀밑에는 아직도 수술 자국이 남아있다.
    수술은 최고 난이도의 어려운 수술이라고 했다. 그만큼 두 번은 못할 비싼 수술이었다. 아버지가 그 병원의 직원인 관계로 직원 할인 20퍼센트를 받았지만 그래도 비쌌다.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이전에 삽십 분마다 한 번씩 균형을 잃었다면 이제는 한 시간 삼십 분 정도마다 한 번씩 균형을 잃게 되었을 뿐이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삼십 분이나 마찬가지다. 삼십 분은 한 시간 삼십 분에 비해 한 시간이나 적은 것 같지만 결국 한 시간 삼십 분은 삼십 분보다 한 시간 더 많아진 것에 불과했다. 아버지는 다시는 수술을 시켜주지 않겠다고 했다. 비싸기도 했고, 같은 부위를 두 번 수술하면 위험하다는 병원장의 경고 때문이기도 했다. 병원장은 이 결과가 처음부터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차라리 꼬리를 달아줄 것이지. 나는 이왕 비싸야 할 거라면 그 편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비싸고 위험해도 한번 더 시켜주세요. 이번엔 꼬리를 다는 수술로. 아버지를 졸랐으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럼 나는 어떻게 돈을 벌어서 먹고사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너는 원래 돈을 잘 벌 것 같지 않은 상이라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발끈하여 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어쨌든 내가 다시 수술 받을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말했다. 신발을 신던 아버지가 비틀거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와는 다르게 쓰러지지 않고 꼬리로 얼른 균형을 잡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때 균형을 잘 잃는 내가 어쩌면 아버지의 유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버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바로 코 고는 아버지에게로 향하기 이전까지의 내 삶이다. 쓰러지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잃은 나는 집에 박혀서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그저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공기보다도 존재감 없이 존재했다. 아버지는 소파와 일체화된 듯한 나를 흘낏흘낏 보고 지나칠 뿐이었다. 종국에는 그 시선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소파를 보는 시선이라고 믿게 될 지경이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시선이라기보다 저 소파에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시선이라고 하기 더 알맞은 눈빛이었다.
    “술 많이 먹지 마라.”
    내가 술병을 들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간혹 내게 말을 걸기도 했다. 술을 많이 먹지 말라니. 나는 윌슨병에 걸린 아들을 죽인 윌슨병에 걸린 아버지에 관한 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죽이지 못할 터였다.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것이 잠이 들었다가 깨는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누워만 있었다. 할일 없이 무기력하게 있으면서 유일하게 일어날 때는 술을 마실 때뿐이었다. 아버지는 만취한 내게 한 시간 삼십 분가량마다 넘어지면 어차피 주변 사람들도 다 한 시간 삼십 분 이전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일 텐데 뭐가 창피해서 못 나가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왜 창피하지 않다면 굳이 넘어져야 하냐고 되물었다.
    아버지가 나를 내버려둔 채 자기 꼬리를 흔들어대며 출퇴근을 반복하던 어느 날, 오늘, 나는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영화를 한 편 봤다. 거기에는 엄마와 꼭 닮은 중년 여자가 나왔다. 어렸을 때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얼굴은 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미화되어 있었는데, 그 미화된 모습이 텔레비전 속 여자와 같았다. 중년 여자는 기차를 타고 이십 년 만에 제 딸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중년 여자는 아기를 낳자마자 아기에게 영숙이라는 이름만 대충 지어준 채 유기했다. 그런데 하필 그 중년 여자의 얼굴이 내 엄마와 닮아 있었다. 무거운 전체 줄거리와 달리 영화의 장르는 가족코미디였다.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년 여자가 자기가 버린 아기를 이제와 만나겠다고 가는 아주 뻔뻔하고 추악한 서사를 담고 있는데 어째서 장르가 가족코미디라는 말인가. 저 중년 여자는 아기를 버린 여자 주제에 왜 내 엄마―미화된―를 닮았나.
    엄마가 양 눈두덩에 보라색과 퍼런색의 멍을 달고서 웃었다. 잘 자라, 내 아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란 희미해지는 법이지만 그 여섯 자만은 수백 번을 곱씹었다. 나는 중년 여자의 얼굴을 더 보지 않고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순간 이곳과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엄마를 닮은 중년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작정 도망을 쳐야할 것 같았다. 아무도 발 디딘 적 없는 곳으로.
    내가 밖으로 나간다면 아버지는 아마 기립박수를 칠 것이다. 저 진상이 드디어 내 소파에서 비켜주네, 하고. 그러나 갈 수가 없었다. 내게는 버스비만큼의 돈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지갑을 훔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하지 않았다. 뭘 해도 꼬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딱히 범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아졌다. 게다가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 하나만으로 뛰쳐나가더라도, 설령 돈이 있다고 해도, 어디로 도망을 간단 말인가.
    “어디 갔다 왔냐.”
    내가 어정쩡하게 현관에 서 있자 퇴근하고 돌아오던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말없이 서 있기만 하자 아버지가 순식간에 십 년은 늙은 듯한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나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집이 떠나가라 악을 썼다.
    “아버지 때문이잖아!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라고!”
    술을 마신 아버지가 엄마를 때렸다. 손으로, 발로, 구둣주걱으로, 야구방망이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 나를 가진 엄마를 때렸다. 엄마 배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맞을 때 나도 엄마와 함께 아버지에게 맞았다. 그때 귀를 아주 세게 맞았는데, 그때부터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양수 안에서 나는 자주 균형을 잃었고 뱅뱅 돌다 탯줄과 뒤엉키기도 했다.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는 항상 어지럽고, 무섭고, 소심해 있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탓이었다. 도망치지도 않고 때리는 대로 맞은 엄마의 탓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나서도 엄마를 때렸다. 가끔은 나도 몇 대 맞았다. 엄마가 감싸주었기 때문에 많이 맞진 않았다. 미안해. 내 아들. 맞는 건 엄마인데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엄마였다. 잘 자라. 내 아들. 엄마는 날더러 잘 자라고 했다. 잘 자고 일어나자 거실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혀 잘 자지 못한다. 엄마는 나를 포기했다.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그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거기서 내가 의미를 획득한 것은 오로지 ‘꼬리를 얻는 방법’뿐이었다. 벽에 박은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자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경멸하듯이.
    “미련한 놈. 네 엄마 때문도 아니고 나 때문도 아니야. 네가 나약해빠진 놈이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나약해빠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에게 증명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가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얼마나 절박하게 균형을 잃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는지. 얼마나 꼬리를 가지고 싶었는지. 나는 내가 여덟 살일 때 이후로 쓰인 적이 없던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열세 살에 병원장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오 년 전엔 엄마가 죽었어요. 내가 여덟 살 때 말이에요.”
    왜 아버지의 꼬리가 오 년 전에 생겼을까 고민하다보니 오 년 전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 생각났다. 병원장에게 말하자 열심히 환자들에 대해 떠벌리던 병원장이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 다음부터 꼬리가 자란 거예요. 왜일까요. 이유를 아세요?”
    병원장은 그 이유에 자신은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병원장에게 조금도 관여할 필요가 없으니 단지 ‘말해’달라고 했다. 병원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 엄마가 죽었기 때문이겠지.”
    방망이가 자꾸 땀에 미끄러져서 바지에 손을 닦았다. 코 고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엉덩이에서 이어진 꼬리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했던 대로만 하면 내게도 꼬리가 생길 것이다. 아버지가 생겼는데 나라고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내가 무얼 했든지 그동안 나는 나약한 방법만을 시도했다. 나는 폭력을 증오합니다. 미안해, 내 아들. 나 그렇게 자랐잖아요, 아버지. 잘 자라, 내 아들. 내 목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나는 아버지의 곁에 섰다. 나는 방망이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리쳤다.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저 마구 내려치기만 하면 되었다. 퍽,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누군가를 가해하는 일은 지나칠 정도로 별것 아닌 일이었다. 아버지는 작은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사람을 패는 소리 사이에 분노에 찬 욕설이나 고통의 신음이 섞이는 일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또 아버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꼬리가 제 의지가 있는 것처럼 마구 몸부림을 쳤다. 미친 듯이 꼬아대며 발작을 일으켜대던 꼬리가 어느 순간 기운을 잃었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비명인지 내 비명인지 알 수 없었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나는 평소처럼 모로 쓰러졌다. 쓰러진 와중에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내 엉덩이 부근을 더듬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때가 됐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여태까지 아무 소리도 없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날 보며 말하고 있었다. 한기가 들었다. 나는 연거푸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도 기를 쓰고 일어나 섰다. 아버지는 자신의 마른 팔을 기괴하게 비틀어 자신의 뒤에 붙은 꼬리를 잡았다. 꼬리를 가볍게 당겼다. 꼬리가 아버지와 한 몸이었던 게 아니라 마치 단추 하나로 매달아놓기라도 했던 것처럼 가볍게 툭 떨어졌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히쭉 웃었다.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얼굴 근육이 일그러진 것은 맞지만 원래 아버지가 의도한 표정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옆으로 누운 채의 아버지가 내게 꼬리를 내밀었다.
    “자, 이제 네 거야.”

한보라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흥미로움이란 대부분 ‘공감이 가는 낯섦’과 상통한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흥미로움이든 간에 70매 분량의 소설 중 단 한 장면이라도 이 부분은 개성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매력이 없다. 그래서 항상 억지로라도 재미있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2017/12/26
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