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모퉁이가 보이는 골목에 앉았습니다. 오른쪽으로 향하는 모퉁이는 내가 앉은 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타는 버스 중 가장 짧은 모델을 떠올려봅시다. 맨 뒷좌석에서 버스 전면 유리창까지의 거리 정도라 여기면 될 듯합니다. 우리가 각자 겪은 가장 짧은 버스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거리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저기 저 즈음에, 오른쪽으로 돌아나갈 수 있는 모퉁이가 있으니까요.

   골목을 살펴보겠습니다. 내 키보다 조금 높게 지은 담벼락 사이에, 내 키만 한 폭으로 놓인 골목입니다. 골목치고는 제법 넓지요. 그래도 골목은 골목입니다. 네, 골목은 골목입니다. 골목을 둘러싼 담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주먹 크기의 홈이 나란히 세 개 뚫린 벽돌을 쌓고 또 쌓아 시멘트로 얇게 바르듯 덮은 뒤, 원색과 흰색을 우중충하게 뒤섞은 페인트로 칠한 벽일 뿐입니다. 곳곳이 벗겨져 있어서 마지막으로 칠하기 전에 어떤 색이었는지 보이는군요. 비가 내리면 선명하게 살아나는 이끼도 넓게 붙어있습니다. 제법 낡은 담벼락이란 뜻이죠. 그래도 평범한 담벼락일 뿐입니다.

   고개를 뒤로 돌려, 모퉁이 반대쪽을 보니 역시 평범한 담벼락으로 막혀있습니다. 막다른 길입니다. 막다른 길은 일종의 암시이자 복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감의 단서이기도 하죠. 잠시, 잠시, 잠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불안해집니다.

   다시 모퉁이를 봅니다. 내가 어딘가로 가려면 저 모퉁이를 반드시 지나쳐야 합니다. 나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왜 모르는 것일까요? 내가 앉아있는 막다른 길로 들어서려면 저 모퉁이를 반드시 지나왔을 터인데,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모퉁이 너머에는, 불행하게도, 지루하고 평범한 담벼락이 아주 멀리까지 좌우로 도열해 있고 그 끝에 또 다른 막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모퉁이를 돌자마자 쾌청하고 온화한 날씨가 펼쳐진 어느 휴양지와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다른 길이 있는지 휴양지가 있는지 거세당한 길고양이 농장이 있는지 히말라야가 있는지 나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막다른 길이라는 단어와 휴양지의 이미지와 길고양이의 상실감과 히말라야를 내가 어째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나는 다짜고짜 이 골목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이나 태양처럼, 그저 어딘가에 놓여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단지 놓이게 된 곳이,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모퉁이가 보이는 막다른 골목일 뿐이지요. 따지고 보면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정신을 차리거나 기억이 시작된 어느 지점부터, 그저 어딘가에 놓여있었을 것이란 뜻입니다. 하긴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기나 할까요.

   아 참, 깜빡할 뻔했네요. 내가 앉은 의자를 소개하겠습니다. 플라스틱 의자입니다. 술집 테이블에서 의자가 모자라면 우울한 표정의 점원이 잽싸게 빼 오는 의자 있잖습니까. 등받이도 없고, 너무 많이 겹쳐놓으면 아래에 깔린 녀석 몇이 서로 껴안은 채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 의자 말입니다. 의자는 사십구점오 퍼센트의 확률로 파란색이고 같은 확률로 빨간색인 것도 잘 알죠? 파란색과 빨간색 중 어떤 색을 좋아합니까? 파란색을 좋아한다고요? 그렇다면 의자는 빨간색으로 해두죠.

   이 허술한 의자는 다소 불편하기 때문에 앉은 사람이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바닥에 주저앉거나 서 있거나 서성거리는 일이 아무래도 훨씬 피곤하기 때문에, 이 의자에 앉는 것이 최선입니다. 물론 드러누워 쉴 곳은 필요합니다. 잠깐만요, 마침 옆에 좁은 문이 있네요. 저 문을 열면 어떤 방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아까 주변을 둘러볼 때에는 왜 좁은 문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요? 맹세컨대 미처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신이 이 정도 실수는 기꺼이 용서할 수 있는 아량 정도는 가진 사람이라 믿습니다. 그럼, 잠시 방을 살펴보고 나오겠습니다.

   오, 이런. 오, 맙소사. 그렇군, 역시, 그랬어. 그래, 그런 것이었어. 아무렴, 그렇고말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락한 방입니다. 단정하게 개켜 구석에 둔, 얇고 가벼운 차렵을 덮고 잠들기 적당한 온도였지요. 게다가 잘 볶은 보리로 우려낸 구수한 보리차가 담긴 주전자도 있었습니다. 나는 자리끼로 보리차를 꼭 마셔야 하기 때문에 저 방에 저 주전자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알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야 내가 저 방으로 들어가서 마음 편히 쉴 수가 있습니다.

   어찌 됐든 방 안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드러누워야 하니, 한 가지 꼭 말해야겠습니다. 아까 의자를 빨간색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불쾌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친해지고 싶어서 던진 농입니다. 내가 여기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뿐인데, 이왕이면 친밀한 관계가 좋지 않겠습니까? 내 의도를 잘 알아주길 바랄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시, 잠시, 잠시.

   자, 보십시오, 의자는 사실 파란색입니다. 단 한 순간도 빨간색이었던 적이 없어요. 내가 앉은 이 의자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입니다. 이제 마음이 좀 풀렸나요? 그런 의미에서 잠시 저 방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겠습니다. 동의해줘서 고맙습니다.

   좋은 시간입니다. 좀 쉬었습니까. 식사는 했는지요.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 없는 소식이 있습니다. 자, 이걸 보십시오. 눈을 잠시 붙인 뒤 물을 마시려 주전자를 들었더니, 그 밑에 쪽지가 하나 있더군요. 두 번 접혀있던 쪽지에 무엇이 적히거나 그려져 있는지 보기 위해 한 번 펼쳤다가, 당신과 함께 확인하기 위해 그냥 들고나왔습니다. 여기 두 번 접혔던 흔적이 남았지요? 그럼 어디 한번 펼쳐보겠습니다.

   기린이군요. 네, 기린입니다. 기린이라고 적혀있어요.

   사실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 몰래 보고 왔거든요. 잠이 덜 깨 아직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대면서, 특히 왼쪽 눈을 더 열심히 비볐지요, 아무튼 두 번 접힌 쪽지를 두 번 펼쳐서 확인한 뒤 도로 한 번 접었습니다. 이번에도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쪽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미리 확인했습니다. 쪽지에 적힌 ‘기린’이 나쁜 소식인지 좋은 소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나쁜 소식이었다면, 이를테면 ‘너희 모두 죽고 말리라’ 따위의 자명하고 흔해빠진 예언이었다면 나 혼자 읽고 말았겠지요. 쪽지를 찢어서 방구석에 처박아놓거나 곧바로 씹어 삼켰을 것입니다. 불쾌하거나 불행한 사람이 둘인 것보다는 하나인 쪽이 낫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제 쪽지에 적힌 기린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기린을 보게 된다는 뜻일까요? 기린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기린이 제 발로 저기 저 모퉁이를 돌아 이 막다른 길로 오게 될까요? 아니면 내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저 모퉁이 너머를 살펴야 하나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기린을 만들어야 할까요? 방에 들어가서 기린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찾으면 되겠죠? 성체 기린 암수 한 쌍이면 되는 걸까요? 만드는 것조차 아니라면 기린 흉내를 내야 하나요? 지면에 네 발을 딛고 목을 길게 주욱, 하고 늘이면 될까요? 흉내를 내려면 소리도 내어야 할 텐데 기린은 어떻게 웁니까? 잠시, 잠시, 잠시.

   잠시, 귀를 기울여 봅시다. 들립니까? 다그닥다그닥, 하는 소리가 들리나요?

   조금 더 집중하여 귀를 기울여 보세요. 다그닥다그닥, 하고 들리지 않습니까?

   기린이 오는 소립니다. 틀림없이, 기린이 네 발로 땅을 박차며 다가오는 소리입니다. 들리지 않는다고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린이 더욱 가까워지면, 당신도 쉽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어쨌거나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린에 대해 떠들면 기린이 오는군요.

   기린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은 사람들이 하도 많이 써서, 요새 쓰는 경우가 잘 없지요. 나는 모든 표현에 일종의 ‘사용 한도’가 있다고 믿는 편이라 일찍이 너무 많이 사용된 표현들은 어느 시기부터 쓰이는 빈도가 빠르게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반대의 예로, ‘기린은 말해야 온다’ 정도의 속담을 만들어 볼까요. 이 표현은 당장엔 좀체 쓰는 사람이 없겠지만 ‘사용한도’를 모두 채우는 운명을 가졌다면 머지않아 모두가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용 한도’를 모두 채우기 위해서, 짜장면이 늦게 올 때도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하고, 얼어붙은 골목길에서 넘어졌을 때도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하고, 잡채 볶을 준비를 하면서 식용유 대신 식기세정제를 프라이팬에 뿌렸을 때도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짝사랑해온 상대에게 고백할 때도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하고, 당신이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겨두었을 때도 ‘기린은 말해야 온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그리될 것입니다.

   잠시만요. 다그닥다그닥, 하는 소리가 더욱 커지지 않았습니까. 아직 못 듣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더욱 열심히 기린을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기린을 무서워합니다. 기린은 기다란 자주색 혀로 날카롭고 큼직한 가시가 촘촘히 박힌 아카시아 나뭇가지에서 이파리를 잘도 긁어먹기 때문입니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그런 시도를 하면 치유하기 몹시 어려운 중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존재를 두려워하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린이 무섭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나를 무서워하겠군요. 나처럼 이렇게 혼잣말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할 테니까요. 내가 무섭지 않다고요? 당신도 충분히 가능하단 말입니까? 하긴, 우리는 이야기를 실행할 줄 알도록 설계되어 있긴 하죠. 인정합니다.

   기린과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언젠가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짧은 글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방 안에 그 글의 복사본이 한 장 나뒹굴고 있더군요. 잠시, 잠시, 잠시.

   그래, 여기, 여기에 있군.

   자, 여기 가지고 나왔습니다. 나에게 글을 건네던 사람이 이 글을 짧은 소설이라 일컫던 것이 떠오릅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윗니 중 하나가 송곳니로 자라나 입술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온 기린이 있다. 유쾌한 기린이다. 설거지도 곧잘 하고 육식을 삼가며 도무지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송곳니 하나가 입술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온 기린은, 오직 이 녀석뿐이다. 세상에서 유일하다. 지금부터 이 기린을 송곳니 기린이라고 부른다. 송곳니 기린이 술집에서 친구 기린과 술을 마시고 있다. 둘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다. 송곳니 기린은 파란색 의자에 앉았고, 친구 기린은 빨간색 의자에 앉았다. 허술한 의자 때문에 둘은 다소 불편해 보인다. 둘이 앉은 테이블을 담당하는 점원 또한 불편해 보인다. 원래 테이블의 의자는 모두 같은 색이었는데, 하나를 다른 색으로 바꿔 달라고 기린 두 마리가 고집을 부린 통에 창고에서 의자 하나를 새로 빼 왔기 때문이다. 마침 다른 색깔의 의자는 가장 바닥에 있어서, 위에 얹힌 의자와 부둥켜안고 좀체 분리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자가 분리되었을 즈음 점원의 하의와 앞치마는 먼지로 범벅이 되었는데 막상 새로운 색깔의 의자를 받은 기린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점원을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를 깔고 앉았다. 점원의 불편한 기색은 타당한 것이다. 그것을 개의치 않는 두 기린은 어느새 소주를 각각 두 짝씩 비웠다. 기린은 크니까 소주를 많이 마신다. 성체 기린에게 소주 한 짝은 인간 성인에게 소주 한 병 정도 된다고 여겨 계산하는 것이 수월하다. 두 기린의 주량은 소주 한 병 반, 아니, 소주 한 짝 반이기 때문에 이미 만취한 상태다. 목이 자꾸 옆으로 꺾여서, 이미 형광등 다섯 개를 깨 먹었다. 송곳니 기린은 오른쪽 귀가 건너건너 테이블에서 주문한 오뎅탕 국물에 젖었고 다른 녀석은 주방 앞에 나열되어 있던 삼 리터들이 맥주 피처가 왼쪽 뿔에 거꾸로 꽂혀있다. 송곳니 기린은 눈이 자꾸 감기는 듯하다. 친구 기린의 얼굴이 몹시 흐리게 보이고, 자꾸 제육볶음과 내장탕이 당긴다. 육식을 자제하기로 굳게 다짐한 약속을 지켜내느라 애쓴다. 이따금 애꿎게 송곳니만 긁는다. 그럴 때마다 친구 기린이 자신을 놀리는 듯, 송곳니를 긁는 시늉을 한다. 짜식, 송곳니는 나만 가지고 있다고. 그는 오이를 통째 와삭와삭 씹으면서, 어서 아카시아가 제철인 여름이 와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리듯 덧붙인다. 친구 기린이 듣는 둥 마는 둥 해도 송곳니 기린은 잊지 않고 옛날얘기를 읊는다. 코끼리와 축구를 했는데 코끼리가 코로 공을 다루는 바람에 핸들링이니 헤딩이니 대판 싸웠던 사연이 끝나고, 왕년에 당수로 코뿔소의 코를 한 번에 쳐냈네 말았네 떠들기 시작할 무렵 친구 기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인마, 어디 가냐. 송곳니 기린의 혀 꼬인 질문에 친구 기린이 대답한다. 나는 이제 가련다. 못 버티겠다. 여긴 내가 사마. 매몰차게 돌아선 친구 기린에게 화가 나서, 송곳니 기린은 악다구니를 쓴다. 인마, 어디를 먼저 가느냐. 안 된다. 아니 된다. 친구 기린은 대답도 않고 계산을 하고 술집 출구를 나선다. 야, 인마! 송곳니 기린의 일갈에 친구 기린이 뒤돌아본다. 친구의 입술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보인다. 송곳니 기린은 정신을 잃는다. 이상의 정보로 아까 점원이 빼 온 의자의 색깔을 맞추시오.

   이상이 이른바 짧은 소설의 전문입니다. 작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생각해보자면, 물론 나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혹시, 당신입니까?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 짧은 소설을 쓴 사람이라면, 내 읊조림이 너무 작위적이고 지나치게 소설스럽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문득 근본적인 회의가 듭니다. 기린을 부르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요? 소설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부 기린은 육식을 즐기므로 제육볶음이나 내장탕을 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육식 기린은 우리에게 충분히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제육볶음과 내장탕을 탐하는 잡식동물이라고 해서 살육을 즐기는 것은 아니라고요? 제육볶음 및 내장탕을 애호하는 인간 중 돼지의 멱을 따고 그 사체를 적당한 크기로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요? 네, 타당한 반론이긴 합니다. 다만 식육에서 비롯된 위협을 배제한다손 쳐도, 다가오는 기린이 어떤 기린인지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뺨을 때리는 데 특화된 손이 서른 개 정도 달린 기린이면 어떻게 합니까. 벌써부터 뺨이 얼얼하군요. 아니면 헹가래를 잘 치는 기린일지도 모릅니다. 내게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공중으로 던져질 때마다 내 존재와, 내 존재를 둘러싼 모든 것을 저주하게 될 테지요. 혹은 고막에서 피고름이 나올 만큼 잔소리가 심한 기린이면 어떡하죠. 일단 나는 마지막이 가장 두렵습니다만.

   이런 연유로 기린을 부르는 일이 옳지 않은 일, 그른 일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막다른 골목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장 할 수 있는 짓이 이것뿐인데 말이죠. 기린이 아직 오지는 않았지만, 기린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기린을 부를 따름입니다.

   다그닥다그닥, 소리가 조금 커졌죠? 안 들린다고요? 여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나저나 얘기했다시피 내가 앉은 의자가 다소 불편합니다. 잠시 쉴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잠시, 잠시.

   좋은 시간입니다. 좀 쉬었습니까. 식사는 했는지요. 이번에도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 없는 소식을 전하려 합니다. 이번에는 쪽지를 본 것이 아니고, 제가 자다 깬 직후 떠오른 재미난 생각에 대한 내용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가 기린 안에, 기린의 속에 갇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터무니없지 않다고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린의 내부가 진실한 모습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기린을 해부하는 것을 보았다고요? 기린을 닮아서 거대하고 길쭉한 내장들이, 위장이며 간이며 쓸개며 허파에 심장 신장 방광 기타 부속 내장이, 다 들어차 있었다고요? 글쎄요, 그건 우리가 기린의 배를 가르는 순간 갑자기 생겨난 모형들일지도 모릅니다. 그 모형들은, 기린에게 내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이 배반당하는 것을 썩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누군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린의 배를 가르기 전에 기린의 배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존재는 그 속에 있는 존재뿐일 터인데, 지금 우리는 얼마든지 그러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오른쪽으로 꺾인 저 모퉁이에서 침에 범벅이 된 아카시아 이파리가 기린의 한 입 단위로 쏟아져 들어올 때가 있겠지요. 아카시아 덩어리는 공중에서 가만히 머무르다가 문득 기린의 똥으로 바뀌어 이 좁은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의 근거입니다. 이해하겠습니까?

   나아가서, 유명한 신화에서 등장하는 트로이의 목마는 나무로 된 말이 아니라 살아있는 기린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당신처럼 기린의 내부에는 내장이 들어있지 사람이 들어있을 리가 없다는 오만한 믿음이 트로이성 안으로 기린을 불러들였고, 그 대가로 트로이 사람들이 연합군에게 정복을 당했다는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트로이 사람들은 고통받으면서, 정교하고 섬세하게 만든 내장 따위 굶은 들개들에게나 던져줘라, 하고 외쳤을 것입니다만, 당신이라면 뭐라고 외쳤을까요.

   모든 것이 기린의 모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기린 속에 갇힌 상태로 자꾸만 기린이 다가오는 것을 열렬히 바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달리 시도할 수 있는 방도가 없습니다. 간악한 기린일지언정 부르는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난처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떠벌린 것은 아닙니다. 기린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우리의 뜻을 충실히 따르던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기린 속에 갇혀있을 확률은 우리가 평범한 골목에 존재할 확률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으니 염려치 말길 바랍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단서는 기린뿐이고 기린의 접근을 유도하는 것이 내 모든 행위에서 최우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길 바랍니다. 그래도 곤란하게 만든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의지해야 하는 사이가 아니겠습니까.

   악수를 청해주어서 대단히 고맙습니다만 나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맙소사, 당신은 나를 보고나 있긴 합니까. 한 번이라도 보았습니까. 잠시, 잠시, 잠시. 아까 내가 좁은 문을 빠르게 발견하지 못해 뒤늦게 그 존재를 알려준 것을 당신이 용서했으니 나도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이제 나를 제대로 보길 바랍니다.

   보다시피 나는 기린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 이 골목은 내 몸통 안입니다. 좁은 문은 내 항문인 셈이고 모퉁이는 내 목구멍으로 나아가는 길목 정도가 되겠지요. 이를테면 내가 좁은 문으로 들락거리는 것은 내가 내 항문을 들락거리는 일이고, 그 말인즉슨 제 꼬리를 물고 속으로 삼키는 거대한 구렁이처럼 괴상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잠시, 잠시, 잠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밑이 욱신거리는군요. 농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 모습이 기린이라니, 허풍도 이런 허풍이 또 있겠습니까.

   내 모습을 똑바로 보기 위해, 나를 되짚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는 골목을 살피며 좁은 문도 발견할 줄 알고, 의자에도 앉을 수 있습니다. 담벼락보다 낮은 키에 자고 일어나면 보리차를 마시지요. 그렇습니다. 나는 두툼한 엉덩이가 달린 인간의 하체를 화분으로 삼으며 가지마다 이파리 대신 렌즈가 촘촘히 매달린, 어린 아카시나무입니다. 자다 일어나면 보리차를 잘 흡수하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좁은 문을 열려면 손이 있어야 합니다. 비로소 고백하지만, 좁은 문의 손잡이는 둥글거든요. 게다가 보리차를 부어 마시기 위해 주전자를 들 때도 손이 필요합니다. 잠시, 잠시, 잠시. 나는 두툼한 엉덩이가 달린 인간의 하체를 화분으로 삼으며 가지마다 이파리 대신 렌즈가 촘촘히 매달린, 어린 아카시아인데, 가장 굵은 가지를 베어낸 자리에 둥근 손잡이를 돌릴 수도 있고 주전자를 들어 내용물을 따를 수도 있는 기계손을 달아놓았습니다. 그런데 기계손을 달아놓으면 당신이 아까 악수를 청했을 때 손이 없다고 얘기한 바가 거짓말이 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말도 해야 하고 생각도 해야 하고 좁은 문을 들락거려야 하고 종이를 찢고 삼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짓 또한 관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잠시, 잠시. 나는 당신과 형상이 같을지도 모릅니다. 그쪽이 서로 덜 불편하고 덜 낯설지 않겠습니까. 내 모습을 보기 위해 당신이 거울을 보는 것은 제법 수월하고 현명한 방법이라 사료됩니다. 무엇인가를 자꾸 덧붙이지 않아도 당신의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많습니다. 못 하는 일이 없는 몸이라고 불러도 될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물론 나는 당신의 형상, 당신의 몸이 어떠한지 모릅니다. 무슨 뜻인지 압니까?

   이제 악수를 해볼까요. 아까는 내가 뒷짐을 지고 있느라 내 손이 궁둥짝 위에 있었다고 여기라는 뜻입니다. 네, 좋습니다. 적당한 힘으로 쥔 채 리드미컬하게 흔드는 것이 악수를 제법 잘 배웠군요.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잠깐, 들립니다. 들려옵니다.

   다그닥다그닥, 들립니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지만, 당신의 둔한 청각을 고려하여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기린이 머지않은 곳에 있습니다. 머지않은 곳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 언제쯤 도착하게 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기린이 최대한 빠르게 여기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갖다 바쳐서라도 그리하고 싶습니다. 기린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린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도무지 버텨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기린! 제발, 부디, 기린!

   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 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기린!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리이 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

   숨이 찹니다. 목이 아프고 머리가 띵하군요. 얼굴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습니다. 식은땀이 흐르는데, 이런 기능도 있는 몸입니까? 잠깐, 쉿, 쉿. 다, 그, 닥. 기린은 지금 지척에 있습니다. 멈춰 서서는, 숨을 고르듯 발굽으로 바닥을 느리게 치는 소리입니다. 아무래도 저 모퉁이 너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왜 저 모퉁이 너머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불안합니다. 다, 그, 닥, 소리는 계속 들리는데 왜 나타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무슨 말이든 좀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렇게 몇 시간이고 입을 닫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지 않습니까.

   나는 지쳤습니다. 작은 방에 들어가서 쉬다 나올 것입니다. 당신의 동의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럼 이만.

   그래! 그런 것이었군! 그런 것이었어! 그럼 그렇지! 그렇고말고!

   놀라지 말고 듣길 바랍니다. 잠시, 숨을 좀 고르겠습니다. 후우, 후우, 후우. 기린은 지금, 좁은 문 너머 작은 방에 있답니다. 한번 들어봅시다. 다, 그, 닥. 기린이 무료한지 제자리걸음을 하는군요. 모퉁이 방향이 아니라 틀림없이 좁은 문 너머에서 들리지 않습니까? 다, 그, 닥. 안 들린다고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기린은 저 좁은 문 너머에 틀림없이 있는걸요. 내가 당신에게 짓궂은 농담을 많이 늘어놓긴 했지만, 지금만큼은 당신의 농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들리면 들린다고 사실대로 알려주길 바랍니다.

   안 들린다고요? 오, 어쩔 수 없군요. 그게 농담이든 진담이든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틀림없이 기린이 왔으니, 어서 환대를 준비합시다. 기린이 저 좁은 문을 통해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멋지게 꾸미기 위해 마음을 합쳐봅시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없는 기린을 어떻게 반기냐고요? 없는 기린이 어디에 있습니까? 기린은 있습니다. 여기 좁은 문 안에 있습니다.

   제발, 부디, 그만하기 바랍니다. 내가 당신에게 지껄인 모든 농담에 대해 사과하겠습니다. 대신 당신도 당장 농담을 그만두기 바랍니다. 좁은 문 너머 작은 방에 기린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을 하는 것입니까. 불쾌하기 짝이 없고 괘씸합니다. 어서 기린을 기껍게 맞이할 준비나 하지요. 빌어먹을 당신이 가진 망할 재주 중에서는 유용한 것이라곤 잘난 악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 잘난 악수를 기린에게 건넬 준비나 하라 이 말입니다.

   왜 나를 못 믿습니까? 의자의 색깔 때문인가요? 아니면 내가 몸을 자꾸 바꿔댔기 때문입니까? 지금 당신 앞에서 외치는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저 방에 기린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나를 미워해도 좋습니다. 나에게 욕설을 퍼부어도 좋습니다. 다만 저 작은 방 안에 기린이 있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없어도 그야말로 그저 존재하는 사실이자 진실입니다. 모든 믿음은 태생적으로 배반당할 운명을 안고 존재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좁은 문 너머에 있는 기린을 믿을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존재를 부정할 것입니다. 그래요, 나는 없어도 됩니다. 하지만 기린은 저기 틀림없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린이 여기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고, 그 첫걸음이 바로 좁은 문 안에 기린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정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시, 잠시. 기린을 보고 오겠습니다. 무슨 수가 생길지도 모르지요.

   오, 맙소사, 오, 이런, 이럴 수가. 그러고야 말았어, 그러고야 말았다고!

   결국 이러길 바랐던 것입니까? 이 골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이제 비로소 완성될 찰나에 당신의 불신이 모든 것을 망쳐놓았습니다. 그만둡시다. 당신의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내 상실감과 울분은 차마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다투는 사이에 기린은 가버렸단 말입니다. 따다그닥따다그닥, 기린이 질주하는 소리, 우리에게서 끊임없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리죠? 기린이 떠났습니다. 아, 당신은 들을 수 없겠지요. 속은 참 편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린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기린을 위해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이왕이면 툰드라, 열대우림, 자연사박물관 등으로 새지 않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도로처럼 너무 딱딱한 길을 잘 피하여 성한 네 무릎을 유지한 채 세렝게티로 돌아가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기린이 여정을 겪는 동안 세렝게티가 파괴되지 않기를, 기린의 입맛에 가장 최적화된 품종의 아카시아가 번성하기를, 잠시, 잠시, 잠시, 기도합시다.

   그나저나, 그건 그렇고.

   자, 남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는 기린이 오지 않거나, 왔다가 떠나버리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다그닥다그닥, 그저 멀어지는 소리만 들립니다.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나는 속수무책입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저기 모퉁이가 있습니다. 엿 같고 유일한 모퉁이가 저기에 있습니다. 나는 결국 저 모퉁이로 다가가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중대한 도전이자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기린을 기다리며 잠시나마 안온함을 느꼈던 나의 세계,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모퉁이가 보이는 막다른 골목이 곧 끝장이 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에서 부디 웃고 울며 슬퍼하고 화내고 당황스러워하면서 오만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끝끝내 행복하게 살아남길 바랍니다. 의자는 선물입니다. 건투와 무운을 빕니다. 그럼 이만.

박창용

‘나’를 혹은 ‘어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무엇’을 해체하거나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곡괭이 혹은 등불로 삼을 만한 도구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도구 중 하나는 아무래도 소설을 위시한 글이 될 것이고, 당장 닥치는 대로 사용하면서 필요에 따라 다듬고 바꾸는 식으로 겨우 부여잡고 나아가겠지요. 요즘은 툰드라 위에서 텃밭을 일구기 위해 호미를 들고 선 기분인데 언 땅을 걷고 나면 암반이 나온다고들 합디다. 아무렴, 수월한 시절이 있을 리가요.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