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우는 죽었어. 연희는 자동차 시트 위에 발을 올리고 있는 은지에게 말했다. 아홉 살 은지는 10만원짜리 브랜드 운동화와 무릎께까지 오는 살구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연희는 운전대에서 한 손을 떼고 머리를 쓸어올렸다. 은지는 몸을 틀어 말했다.
   “영우는 아기잖아.”
   내비게이션의 기계 음성이 반복해서 제한 속도를 알렸다. 연희는 엑셀을 밟고 있던 발을 살짝 들어올렸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은지는 굽힌 무릎을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와중에 자동차 글러브 박스와 은지의 발이 부딪혔다. 검은색 글러브 박스 위에 회색 먼지로 된 신발 밑창 자국이 새겨졌다. 그것을 흘끔 본 연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은지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여기? 여기가 어디야?”
   은지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물었고 연희는 경기도 여주라고 대답했다. 연이어 밥은 먹었느냐, 언제쯤 도착할 것 같으냐는 질문이 은지의 입을 통해 전달되었다. 연희는 자신이 아는 만큼만 짧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통화를 끝낸 후 은지는 연희에게 노래를 틀어도 되냐고 물었다. 십 분 후면 휴게소에 도착할 거였다. 연희는 알겠노라고 대답했지만 노래를 틀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은지는 다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다리를 흔들거나 의자 위에 발을 올려 앉기를 반복했다. 연희는 은지를 바라보다 숟가락 위에 밥을 절반 정도 떠 입안에 넣었다. 연희는 스물네 살 이후로 항상 같은 몸무게를 유지해왔다. 밥을 많이 먹은 날은 다음 끼니를 먹지 않거나 활동량이 많은 운동을 했다. 임신을 했을 때도 마른 팔다리를 유지했다. 잔병치레가 많아 연애시절 남편은 약통 안에 영양제를 넣어 선물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약통 안에는 새로운 종류의 영양제들이 채워졌다. 연희는 살이 찌는 것보다 이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여러 번 물을 나눠 마셨다.
   짧은 식사 시간을 가진 뒤 연희와 은지는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은지는 바닐라아이스크림콘을 손에 쥔 채 핥아먹고 있었다. 자동차와 가까워져 가자 연희는 음식을 다 먹고 타자고 말했다. 주위를 돌아봤지만 마땅히 앉을 곳이 없었다. 은지가 여기 앉자고 가리킨 곳은 화단 옆에 놓인 커다란 돌덩이였다. 평평한 돌 위에 연희와 은지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 엉덩이를 반씩 붙이고 앉았다. 연희는 휴대전화를 켜서 여러 번 시간을 확인했다. 가을바람이 불었다. 연희의 가늘고 긴 머리카락이 은지의 뺨을 때렸다.
   “이모는 나 춤추는 거 처음 보지?”
   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는 다섯 살 때부터 발레를 배웠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연희는 고개를 돌려 은지의 작은 발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토슈즈. 발 안 아파?”
   은지는 아이스크림 과자 기둥을 깨물어 먹으며 대답했다.
   “아파.”
   은지는 등판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곧이어 못 참겠다는 듯 몸을 움직였다. 계기판에 달린 버튼을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연희는 아무거나 만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은지는 손을 내리며 노래 틀어준다고 했잖아, 작게 말했다. 연희가 라디오를 틀자 최신 댄스 음악이 흘러나왔고 은지는 흥얼거리며 가사를 따라 불렀다. 연희는 발에 힘을 주어 엑셀을 밟았다.
   영우가 죽기 전, 연희는 육아 박람회에서 영우의 생일 선물을 미리 사놓았다. 양복을 갖춰 입은 판매원은 여우 인형을 추천했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100퍼센트 유기농 순면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했다. 인형은 49제때 배냇저고리와 갖가지 옷가지들과 함께 불태워졌다. 연희는 반쯤 타들어가는 인형을 내려다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확실히 뭔가 달라. 연기도 적게 나고 냄새도 역하지가 않잖아.”
   톨게이트에 다다르자 차들이 밀렸다. 은지는 가방에서 시디를 꺼내 이걸 틀어달라고 했다. 연희는 라디오를 끄고 시디박스 안에 시디를 넣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은지는 두 팔을 위로 뻗어 기다란 타원을 그렸다. 다섯 손가락들이 머리 위에서 우아하게 펼쳐졌다. 그러다 갑자기 힘없이 팔을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시작하는 게 가장 어려워. 음악보다 내가 늦지?”
   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은지를 데려다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 못지않은 일일 코치가 되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출장을 떠났다.
   “다시 봐줄게. 해봐.”
   연희는 다시 음악을 껐다 켰다. 은지는 입으로 하나 둘 셋 넷을 센 뒤 팔을 올렸다.
   “느린 게 아니라 빠르네.”
   “빨라? 내가?”
   연희는 미리 손 안에 쥐고 있던 지폐를 톨게이트 직원에게 내밀었다. 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되물었다. 연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렇다니까, 대답했다. 은지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연희를 흘끔흘끔 보았다. 연희는 차선을 변경하여 앞 차를 추월했다. 음악이 다섯 번 정도 반복 재생 될 때 은지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이모 이 곡 좋아하지?”
   “내가?”
   “이모가 좋아하던 곡이라던데. 엄마가.”
   연희는 기억을 더듬었다. 입술을 동그랗게 내밀고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자 8단조의 화려한 리듬이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좀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리듬이었다. 그제야 연희는 아, 건조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기억을 떠올렸다. 남편이 없는 날이면 혼자 즐겨듣던 클래식 곡이 있었다. 언젠가 우연히 이런 모습을 본 언니는 연희에게 임신하니 음악 취향도 바뀐 것이냐고 물었다. 연희는 그게 임신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다. 더이상 그 곡의 이름과 작곡가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흐르던 차분한 리듬의 선율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희가 좋아하던 곡은 이 곡이 아니었다. 연희는 음악을 껐다. 은지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도로 옆 민둥산들이 스쳐지나갔다. 은지는 한쪽 볼을 유리 창문에 붙여 지나간 것들을 눈으로 쫓았다. 차 안에는 허브향과 은지의 옷에서 나는 진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뒤섞여 나고 있었다. 연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허브는 지난날 남편이 사다준 방향제였다.
   이혼을 하자고 한 것은 남편이었지만 소송을 건 것은 연희였다. 연희와 남편은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식탁에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무대의 핀 조명처럼 노란 조명이 그들을 내리비췄다. 남편은 집 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말했고 연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았다. 남편의 짧고 두툼한 손가락은 비엔나소시지처럼 보였다. 남편은 주말 드라마를 즐겨보았다. 연희는 남편이 연출하고 있는 모든 상황이 진부했다. 남편은 말했다.
   “영우를 볼 때마다 당신을 닮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특히 눈.”
   연희는 남편의 시선을 피한 채 미간을 찌푸렸다. 영우는 가느다랗고 쌍꺼풀 없는 눈이었지만 연희에게는 크고 진한 쌍꺼풀 있었다. 연희는 고개를 숙이면서 영우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배를 가르고 회복실로 옮겨진 후에야 만난 영우는 발갛다 못해 흙빛이었다. 누군가 흙으로 갓 구워온 도기 인형이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았다. 간호사는 떠넘기다시피 영우를 안아 건넸다. 조막손만한 얼굴에서 여러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가 보였고 남편이 보였고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선생 얼굴이 보였다. 홀로그램 스티커와도 같은 그 얼굴을 보면서 연희는 현기증을 느꼈다. 간호사에게 다시 돌려줄 때는 조막손만한 그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간호사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연희는 깨달았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잃어버린 초점을 되잡기 위해 연희는 눈을 감았다 떴다. 우회전을 하라는 내비게이션 음성이 들려왔다. 핸들을 돌리면서 은지를 흘끔 바라봤다. 은지는 숨죽은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차 문에 기대어 차체의 흔들림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 스프링처럼 갑작스럽게 튕기듯이 몸을 일으킨 뒤 퐈, 숨을 내뱉었다.
   “나 죽을 뻔 했어, 이모.”
   연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은지를 바라봤다.
   “오십칠 초 동안이나 숨 참고 있었다고.”
   연희는 은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랑하는 건가, 웃어달라는 건가.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연희의 가슴팍을 향해 은지가 손을 뻗었다. 놀란 연희는 핸들을 손에 쥔 채 팔을 움직였다. 잠깐이었지만 자동차는 중앙 차선을 벗어났다.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소리쳐 물었다. 은지는 옷에 벌레가 붙어 있었다고 둘러말했다. 은지가 울상을 짓고 있는지 화가 나 토라져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연희는 차선 사이만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다.
   대회가 열린 곳은 청주대학교였다. 주차장은 이미 반쯤 채워져 있었다. 연희가 주차 자리를 살피는 동안에도 차들은 계속해서 들어찼다. 은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연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건너편에서 은지 또래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트렁크를 열자 갇혀 있던 열기가 얼굴을 훅 때렸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트렁크 안에는 검은색 짐 가방 두 개가 나란히 실려 있었다. 언뜻 들어봐도 가방은 무거웠다. 연희는 은지에게 가방 하나를 들라고 했다. 은지는 머뭇거리다 두 손으로 가방을 들었다. 연희와 은지는 화살표를 따라 강당 지하로 내려갔다. 대기실은 강의실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구석마다 대형 스피커와 조명들이 쌓여 있었다. 스무 명 남짓의 아이들이 부모를 앞에 세워놓고 옷을 입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연희는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서였다. 그런 연희를 지나치며 은지는 성큼성큼 걸어가 칠판 앞에 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옆 자리의 짐짝들을 발로 밀어버렸다.
   가방 안에는 비닐 진공 팩들로 가득했다. 간식거리들이 틈 사이에 간간히 쑤셔져 있었지만 대부분 옷과 화장품이었다. 팩 겉에는 다행히 용도를 알리는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연희는 거꾸로 가방을 들어올려 내용물들을 모두 비워냈다. 한껏 팽창된 팩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연희는 한숨을 내뱉으며 나머지 가방을 열어봤다. 색만 다른 비슷한 옷가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릴 때부터 언니는 늘 똑같은 것을 두 개씩 챙기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으나 얼마 안 가 이것이 단순한 습관이 아닌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방 하나는 치워버리고 연희는 다른 부모들처럼 은지를 앞에 세웠다. 은지는 알아서 윗도리와 바지를 벗었다. 티 하나 없는 깨끗한 몸에서 노란 광이 나는 듯했다. ‘발레복 1’에서 옷을 꺼내 은지의 두 발 사이에 꿰어넣었다. 땀을 흘렸던 모양인지 합성섬유가 살갗에 붙어 잘 올라가지 않았다. 탄성이 강한 발레복을 입자 은지의 작은 배가 유난히도 불룩 튀어나와 보였다. ‘발레복 2’에는 이를 가려줄 시폰 치마가 들어 있었다. 은지는 아는 얼굴이라도 있는지 연신 주위를 둘러봤다.
   “이렇게 입는 거 맞아?”
   연희는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은지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스타킹은?”
   연희가 꺼내준 스타킹을 은지는 한 손으로 벽을 붙잡고 서서 신었다. 그후 연희는 다시 차례로 발레복과 치마를 입혔다. 은지는 말했다.
   “이모, 너무 불편해.”
   “가서 스트레칭이라도 해.”
   은지는 조금 떨어져 앉아 상체를 숙이고 팔을 쭉 뻗었다. 연희는 남은 비닐 팩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머리를 묶이고 토슈즈를 신기고…… 끈, 이것들은 뭘까. 연희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은지에게 이 끈들은 뭐냐고 물었다. 은지는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들었다 내렸다. 언니는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영우를 낳고서는 더욱 심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며 모유를 강요한 것도 언니였다. 고민 끝에 결국 연희는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어디로 출장을 간 거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언니는 노란색 끈은 허리에 묶는 것이고 분홍색은 머리에 묶는 것이라고 했다. 언니의 이름을 부르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언니는 은지를 바꿔달라고 했다.
   “응, 응. 엄마. 당연히 그 언니도 왔지. 그건 모르겠어. 알았어.”
   은지에게 전화를 돌려받았다. 언니는 은지의 두피가 예민하기 때문에 헤어 젤은 적게 쓰되 대신 핀을 많이 꽂아줘야 한다고 했다. 연희는 돈을 넣었냐고 물었고 언니는 아직이라고 했다. 연희는 언니에게 천만원을 빌리기로 했다. 변호사 선임비와 이사할 집의 보증금까지 당장 마련해야 할 돈이 많았다. 은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엉덩이 사이에 낀 속옷을 빼내고 있었다. 전화를 끊자 강당 안을 울리는 소음이 그제야 덩어리져 한꺼번에 들려왔다. 연희는 기도문을 외우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여버렸다. 잠깐 숨을 돌린 후 다시 은지를 불러 앞에 앉혔다. 은지의 굵고 짙은 갈색 모발에서 기름이 흘렀다. 연희는 잔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끔 정수리 앞에만 헤어 젤을 조금 발랐다. 여러 개의 핀도 꼽았다. 은지는 핀이 두피를 찌를 때마다 짜증어린 비명소리를 냈다. 묶음머리 위에 끈을 둘러 리본을 만들자 은지는 무언가 털어내려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뒷덜미에서 느껴지는 끈의 거친 감촉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연희는 은지의 좁은 등을 무심히 바라봤다. 계단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는 척추뼈가 어쩐지 어린아이의 것 같지가 않았다. 연희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언니였다. 출산한 지 한 달이 되던 쯤 언니는 산모용 튼살 크림과 영양제를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영우는 거실 한가운데 누워 있었고 언니는 아이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부엌으로 가 밀린 설거지부터 했다. 연희는 울고 있는 영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영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산후 몸살이 심한 때였다. 영우가 더 크게 소리를 내지를수록 연희의 통증도 함께 더해지는 것 같았다. 관절 마디마디를 누군가 몽키 스패너로 조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연희는 벌겋게 달아오른 영우의 얼굴 위에 거즈 손수건을 펼쳐 살포시 얹었다. 손수건이 여러 번 들썩 거렸다. 설거지를 끝낸 언니가 부엌에서 달려나와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너?”
   연희는 실수라고 대답한 뒤 소파 위에 몸을 던지다시피 앉았다. 그후로 언니는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빈손으로 오는 날이 없었다. 항상 새로운 내용의 육아 서적을 들고 왔다. 그러면서 언니는 될 수 있으면 남편에게 들키지 말라고 했다. 무엇을 들키지 말라는 걸까, 아이가 울 때마다 온몸이 아프다는 것, 괴롭다는 것, 죽고 싶다는 것을 들키지 말라는 건가. 연희는 되묻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언니는 뺨이라도 때릴 것 같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가 싸우면 아버지에게 혼나, 라고 말하던 어릴 적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희는 자신의 립스틱을 은지의 입술 위에 발라줬다. 입술 선 안쪽에 꼼꼼히 색을 칠했다. 그때 누군가 연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심사위원들이 좀 고리타분해서 진한 화장은 안 좋아하실 거예요.”
   누군가 선의를 베풀 듯이 말 한마디를 내뱉고 지나갔다. 연희는 턱을 당기고 은지의 얼굴을 다시 봤다. 붉게 칠한 작은 입술이 골판지처럼 툭 튀어나와 보였다. 연한 립스틱으로 다시 색을 발라주고 있을 때 은지는 발을 동동거리며 아직 멀었냐고 물었다.
   “나 화장실.”
   연희는 화장실 내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화장실 칸 안에서 은지는 말했다.
   “이번에 우승하면 엄마가 제주도 여행 가자고 했어. 그 언니가 실수하면 우승할지도 몰라.”
   그 언니가 누구냐는 연희의 물음에 은지는 아까 이모에게 말을 건 여자의 딸이라고 했다. 연희는 세면대 앞으로 가 손을 닦았다. 은지에게 화장을 해주는 동안 건너편에 있던 여자를 별 의미 없이 바라봤다. 여자는 다리를 찢고 두 손을 천천히 가슴 바깥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발레 동작을 선보이는 것 같았다. 여자의 딸이 똑같이 몸짓을 따라했고 동작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여자의 충언이 연희에게까지 들려왔다. 연희는 손의 물기를 털면서 여자는 자신의 춤이 얼마나 뻣뻣하고 우스꽝스러운지 알고 있을까 생각했다. 은지는 화장실 칸에서 나오며 다시 한번 그 언니만 이기면 돼, 말했다.
   드디어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열두번째 순서인 은지는 무대 뒤에서 연습을 했다. 은지의 점프는 종아리 정도 오는 낮은 높이였다. 무릎을 굽히며 착지할 때의 자세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다른 아이들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 것은 아니었다. 어린애의 몸짓은 그저 어린애 것에 불과했다. 연희는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대회 시작 시간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언니가 문자를 못 받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 다시 문자를 보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의자를 찾았다. 그때 은지가 연희에게 다가와 말했다.
   “손 좀 잡아줘.”
   은지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재촉했다. 연희는 반사적으로 등 뒤로 손을 감췄다. 아이들의 살갗은 지나치게 부드럽고 미끄러웠다. 품에 안겨 젖병을 빨 때마다 영우는 항상 연희의 검지를 감싸 잡았다. 그때마다 온몸의 감각세포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연희는 서둘러 아이를 침대 위에 내려놓은 뒤 멍하니 바라봤다. 영우의 짙은 눈썹은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연희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재혼할 여자와 그 딸을 집으로 데려왔다. 친엄마는 연희를 출산하는 과정에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연희는 큰 어려움 없이 낯선 여자를 순순히 어머니로 그 딸을 언니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연희를 비롯한 네 명의 가족이 완성되었고 그들은 서로간의 거리를 잘 지키며 살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덕분에 그들은 이십 년 넘게 가족이라는 하나의 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연희는 영우의 푹 파인 이마가 당구대로 아이들을 때리던 초등학교 선생님의 이마와 닮아 보였다. 영우의 옅은 인중은 남편을, 낮은 코는 단골 슈퍼의 주인의 것과 닮아 보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언뜻 언니의 얼굴도 보이는 듯 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쌍꺼풀 없는 눈, 동그란 얼굴까지 다시 보니 영우는 많은 면에서 언니를 닮아 있었다. 지난날에도 찾아와 언니는 엄마는 아이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갔다. 지금은 영우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우는 눈을 감았다 뜬 뒤 연한 잇몸을 들어내며 웃었다. 연희는 어쩔 줄 몰라 그냥 시선을 피해버렸다.
   은지는 연희의 두 손을 지지대 삼아 왼쪽 다리를 쭉 뻗어올렸다. 무게가 고스란히 연희에게로 전달되었다. 힘을 주어 버티자 쇄골 사이로 핏줄이 섰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무게에 연희는 손목에서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은지는 몸에 좀더 힘을 실어 발끝을 높게 세웠다. 그 순간 잘 쌓아둔 카드들이 무너지듯이 연희가 넘어졌다. 은지는 연희의 허리 위로 쓰러졌다. 척추 신경이 눌리면서 날카로운 고통이 느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른 것은 은지였다. 무대 뒤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 박수를 치며 어머나, 소리 내어 놀랬고 다른 누군가는 아이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통증은 연희의 정신을 오히려 맑게 만들었다. 은지는 무대 위에 올랐다. 발목이 아프다고는 했지만 무대에 오르지 못할 정도는 아닌 듯 했다.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무대를 바라봤다. 이번에도 은지는 음악보다 반 박자 빠르게 시작했다. 아직도 언니에게 돈과 관련된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부모들은 모두 한 손에 휴대전화나 카메라를 끼고 무대를 찍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지의 무대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언니에게 리허설 장면을 찍어오라는 전달은 받은 적이 없었다. 은지는 무대 뒤에서 연습했던 점프를 선보였고 누군가 박수를 쳤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점프는 허벅지보다 낮은 높이의, 발레를 배운 또래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인양 미소를 띠며 무대를 쳐다봤다. 연희는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이 지나친 관대함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무대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 갑자기 음악이 멈췄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은지는 양쪽으로 뻗은 팔을 내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대 뒤에서 관계자로 보이는 사내가 뛰쳐나왔다. 관계자와 은지는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뒤 함께 커튼 뒤로 사라졌다. 다음 차례의 키 작은 아이가 뒤이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키 작은 아이는 은지와 달리 정확히 노래와 함께 동작을 시작했다. 점프도 훨씬 더 높은 높이의 점프를 해냈다. 연희는 어쩌면 이 아이가 은지가 말했던 수상 후보로 유력하다는 그 아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관계자는 번쩍이는 시디를 부채질을 하듯 흔들어대며 말했다. 시디 위로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시디 표면 위에 생채기가 나 기계 안에서 오작동을 일으킨 거라고 했다. 연희는 관계자를 은지는 연희를 바라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희는 물었고 관계자는 시디를 돌려주며 자기는 도와줄 방법이 없다며 자리를 떠났다. 은지는 우왕,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목에 힘을 주며 울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연희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관자놀이 쪽에서 두통이 느껴졌다. 텅 빈 대기실에서 은지의 울음소리가 스피커처럼 울려댔고 저절로 영우의 죽음이 떠올랐다. 영우를 낮잠에 들게 한 뒤 연희는 집 앞의 작은 카페로 갔다. 카페에 가서 한 번도 제대로 들춰본 적 없었던 육아 책을 읽었다. 음악을 듣거나 새로 산 립스틱을 바르며 화장을 고치기도 했다. 그동안 영우는 온몸이 떨리도록 울어대다 처음으로 스스로 몸을 뒤집었다. 침대는 출산 전 연희가 백화점에 가서 직접 골라 산 거였다. 자사 브랜드만의 뛰어난 기술력과 그물망처럼 엉킨 스프링이 매트릭스의 탄성을 지켜준다고 했다. 하지만 뛰어난 탄성에도 불구하고 영우는 뒤집힌 몸을 다시 돌리지 못했다. 부드러운 이불은 영우의 작은 숨길들을 막았다.
   연희는 칠판 앞으로 가 검은색 가방을 뒤졌다. 언니는 늘 두 개씩 짐을 챙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럼에도 시디는 가방 안에 없었다. 은지는 연희를 흘겨보며 시위라도 하듯이 발로 바닥을 쾅 쳤다. 그러고는 대회까지는 이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휴대전화를 꺼냈다. 재빨리 은지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뺏었다. 언니에게 알려서 좋을 것이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연희는 여분의 시디가 자동차 시디박스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주차장은 조용했다. 그 넓은 직사각형의 공간 안을 연희와 은지가 앞다퉈 달리고 있었다. 강당에서 기다리라는 연희의 말을 은지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연희와 은지의 사이는 뛰면 뛸수록 점점 더 멀어져갔다. 연희는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차들 간의 좁은 간격에 무작정 몸을 옆으로 돌려 넣었다. 햇볕에 달궈진 차체의 열기는 뜨거웠다. 큰길이 나오자마자 팔다리에 힘을 주어 더욱 속도를 냈다. 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졌다. 출구에 다다르자 언니의 검은색 그랜저가 보였다. 연희는 재빨리 자동차 문을 열어 시디박스 안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시디는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대회장으로 오는 길에 노래를 틀어놓고는 꺼내지 않은 거였다. 뒤돌아서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멀리서 은지가 달려오고 있었다. 은지는 허리를 숙인 채 전속력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연희는 한순간 쉽게 형용되지 않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였다. 연희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공포였다. 숨이 좀더 가빠오자 연희는 횡격막이 요동치고 있는 오른쪽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아직도 언니에게는 돈을 입금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이제 세 걸음만 더 뛰어오면 은지는 자신의 앞에 서 있을 거였다. 연희는 황급히 시디를 주머니 안에 숨겨 넣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최은하

글을 쓰면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읽는 이가 즐거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