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결, 결의 시간
8화(최종화) 어린이집에는 어린이가 있나요?
엄마 일기
‘어린이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반대말을 ‘어른 집’이라고 한다면, 어린이집은 ‘어린이’로만 가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은 내게 ‘어린이’라기보다는 ‘아기’로만 보인다. ‘어린이집’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나는 ‘유아원’에 다녔다. 당시에는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다니는 곳을 유아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닌 유아원은 부대 안에 있었기에 아이 혼자 다닐 만한 거리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유아원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했다. 봄에는 꽃을 심었고, 가을에는 엄마들이 여럿 찾아와 병원 놀이도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급식을 먹었다. 시금치죽처럼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급식판을 가장 늦게 내기도 했다. 결이도 비슷할까.
나성훈(아빠) : 어린이집에 처음 아이를 보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장은혜(엄마) : 짠하기도 했고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했어. 반찬은 어떨지 궁금했고. 한편 그때는 임신 말기였으니까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서, 적응 기간이 빨리 끝나길 바랐어. 여러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나성훈 : 그때 3월 초라 꽤 추웠잖아. 차로 등원시켜야 하는데 나는 운전 초보인 데다가, 결이 옷이 두꺼우니까 카시트 안전벨트가 잘 채워지지 않았어.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아이까지 돌보려니 허둥지둥했지.
장은혜 : 온 가족이 긴장했지.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하고 같이 나갔잖아. 결이는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처음이라 부족한 것도 많고 피곤했는데 지금은 조금 그립네.
나성훈 : 결이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우리 일상도 많이 달라졌지?
장은혜 : 주중에 돌봐야 하는 부담이 확 줄었지. 이제는 둘째도 있으니까 결이가 어린이집에 안 다니는 건 상상하기 힘들어. 주말만 봐도 알잖아. 둘째 솔이가 태어난 후로 결이가 안아달라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칭얼거림이 많아졌어. 동생 때문에 자기한테 소홀한 것처럼 느껴지나봐.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집이 없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거야.
나성훈 : 일상은 오히려 내가 많이 바뀐 것 같아. 원래는 9시 출근이었는데 결이가 어린이집 다니고부터 10시 출근으로 바꾸었고, 아침 먹기 싫을 때 결이 때문에 같이 먹기도 해.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서 중간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고.
장은혜 : 솔이가 태어나면서 더 많은 변화가 생겼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나 싶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누군가의 끝없는 노고가 필요한데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잖아.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밥이라도 먹여 보내야지’ 하면서 일어날 때면 스스로 놀라기도 해.
나성훈 :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선생님과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으면 좋겠어?
장은혜 : 결이가 만나게 될 선생님들이 사랑이 많은 분이면 좋겠어. 나는 어릴 때 소풍 간 기억이 생생해. 그때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꼭 안아주셨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 사진에서도 내 표정이 엄청 밝아. 그분이 나를 늘 보이지 않게 아껴줬던 것 같아. 30년이 넘었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야.
나성훈 :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선생님이 성숙한 분이었으면 좋겠어. 본받을 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 단순히 주어진 시간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도우려는 의지를 가진 분이면 제일 좋겠지. 물론 업무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장은혜 : 내 입장에서는 선생님을 통해서 아이가 자라고 뭐라도 하나 배워오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잘 대해드리고 싶어. 알림장을 써서 보낼 때도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고 간섭하거나 요구하기보다는 ‘일 하느라 고생 많으시죠, 고단하시죠.’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해. 한 아이를 같이 키우고 있는 셈이니 우리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걸 전하고 싶은 거야. 이런 마음을 잘 이해하는 분이면 좋겠어.
어린이집에 점점 적응해가는 결.
여름방학을 앞두고 더 활발해진 결.
말문이 트이며 생각도, 행동도 제 모습을 띄는 결.
결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자랐다.
사회생활의 시작, 어린이집.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또 그 이후의 사회생활로 뛰어들기까지, 밑거름이 될 어린이집. 그곳에서의 시간이 다른 어떤 기억보다 따뜻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 따뜻함이 결이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
나성훈 : 어린이집 다니기 전에 대기 순번을 기다렸잖아. 지금 다니는 곳은 우리 차례가 와서 다닐 수 있게 된 건가?
장은혜 : 원래 기다리던 곳은 시립 어린이집이었는데 우리 순위가 낮아서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어.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나마 순번이 빠른 곳에 넣었지. 별다른 후보군이 없었어.
나성훈 : 나는 왜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까지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린이집 신청도 부모가 알아서 해야 하고, 그곳이 좋은지 나쁜지도 개인이 애쓰며 찾아봐야 하잖아. 이런 상황이 안타깝고 국가가 무책임하다고 느껴져. 차이는 있더라도 아이들 다니는 곳인데 국가에서 어느 정도 질은 보장해줘야지. 그리고 어린이집 신청 지원하는 것도 무한경쟁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지, 몇 년째 같은 방식이잖아. ‘아이들은 소중한 존재다’ ‘아이들이 국가 경쟁력이다’라고 말만 하고 실천하는 일은 크게 없는 것 같아. 아이들을 정말 귀한 존재라고 여긴다면, 또 보육이나 유아교육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가가 더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어.
‘어린이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반대말을 ‘어른 집’이라고 한다면, 어린이집은 ‘어린이’로만 가득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은 내게 ‘어린이’라기보다는 ‘아기’로만 보인다. ‘어린이집’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나는 ‘유아원’에 다녔다. 당시에는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다니는 곳을 유아원이라고 했다. 내가 다닌 유아원은 부대 안에 있었기에 아이 혼자 다닐 만한 거리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유아원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했다. 봄에는 꽃을 심었고, 가을에는 엄마들이 여럿 찾아와 병원 놀이도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급식을 먹었다. 시금치죽처럼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나오면 급식판을 가장 늦게 내기도 했다. 결이도 비슷할까.
시간의 결
- 엄마, 아빠도 어린이집은 처음이야.
나성훈(아빠) : 어린이집에 처음 아이를 보냈을 때 기분이 어땠어?
장은혜(엄마) : 짠하기도 했고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했어. 반찬은 어떨지 궁금했고. 한편 그때는 임신 말기였으니까 내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서, 적응 기간이 빨리 끝나길 바랐어. 여러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나성훈 : 그때 3월 초라 꽤 추웠잖아. 차로 등원시켜야 하는데 나는 운전 초보인 데다가, 결이 옷이 두꺼우니까 카시트 안전벨트가 잘 채워지지 않았어.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아이까지 돌보려니 허둥지둥했지.
장은혜 : 온 가족이 긴장했지.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하고 같이 나갔잖아. 결이는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고…… 처음이라 부족한 것도 많고 피곤했는데 지금은 조금 그립네.
- 이런! 둘째도 처음이야……
나성훈 : 결이가 어린이집 다니면서 우리 일상도 많이 달라졌지?
장은혜 : 주중에 돌봐야 하는 부담이 확 줄었지. 이제는 둘째도 있으니까 결이가 어린이집에 안 다니는 건 상상하기 힘들어. 주말만 봐도 알잖아. 둘째 솔이가 태어난 후로 결이가 안아달라고 더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칭얼거림이 많아졌어. 동생 때문에 자기한테 소홀한 것처럼 느껴지나봐.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집이 없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일 거야.
나성훈 : 일상은 오히려 내가 많이 바뀐 것 같아. 원래는 9시 출근이었는데 결이가 어린이집 다니고부터 10시 출근으로 바꾸었고, 아침 먹기 싫을 때 결이 때문에 같이 먹기도 해.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서 중간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고.
장은혜 : 솔이가 태어나면서 더 많은 변화가 생겼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 적이 있나 싶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누군가의 끝없는 노고가 필요한데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잖아.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밥이라도 먹여 보내야지’ 하면서 일어날 때면 스스로 놀라기도 해.
날이 풀리지 않은 봄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결.
- 그래, 잘 지내보자.
나성훈 :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선생님과도 잘 지내야 할 텐데…… 선생님은 어떤 분이었으면 좋겠어?
장은혜 : 결이가 만나게 될 선생님들이 사랑이 많은 분이면 좋겠어. 나는 어릴 때 소풍 간 기억이 생생해. 그때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꼭 안아주셨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어. 사진에서도 내 표정이 엄청 밝아. 그분이 나를 늘 보이지 않게 아껴줬던 것 같아. 30년이 넘었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야.
나성훈 :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선생님이 성숙한 분이었으면 좋겠어. 본받을 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 단순히 주어진 시간동안 아이를 데리고 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도우려는 의지를 가진 분이면 제일 좋겠지. 물론 업무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장은혜 : 내 입장에서는 선생님을 통해서 아이가 자라고 뭐라도 하나 배워오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잘 대해드리고 싶어. 알림장을 써서 보낼 때도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고 간섭하거나 요구하기보다는 ‘일 하느라 고생 많으시죠, 고단하시죠.’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해. 한 아이를 같이 키우고 있는 셈이니 우리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걸 전하고 싶은 거야. 이런 마음을 잘 이해하는 분이면 좋겠어.
결의 시간
어린이집에 점점 적응해가는 결.
여름방학을 앞두고 더 활발해진 결.
말문이 트이며 생각도, 행동도 제 모습을 띄는 결.
결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자랐다.
엄마 일기
사회생활의 시작, 어린이집.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또 그 이후의 사회생활로 뛰어들기까지, 밑거름이 될 어린이집. 그곳에서의 시간이 다른 어떤 기억보다 따뜻하기를 바란다. 또한 그 따뜻함이 결이에게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기도한다.
- 우린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니 이젠,
나성훈 : 어린이집 다니기 전에 대기 순번을 기다렸잖아. 지금 다니는 곳은 우리 차례가 와서 다닐 수 있게 된 건가?
장은혜 : 원래 기다리던 곳은 시립 어린이집이었는데 우리 순위가 낮아서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어. 이렇게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나마 순번이 빠른 곳에 넣었지. 별다른 후보군이 없었어.
나성훈 : 나는 왜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까지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어린이집 신청도 부모가 알아서 해야 하고, 그곳이 좋은지 나쁜지도 개인이 애쓰며 찾아봐야 하잖아. 이런 상황이 안타깝고 국가가 무책임하다고 느껴져. 차이는 있더라도 아이들 다니는 곳인데 국가에서 어느 정도 질은 보장해줘야지. 그리고 어린이집 신청 지원하는 것도 무한경쟁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지, 몇 년째 같은 방식이잖아. ‘아이들은 소중한 존재다’ ‘아이들이 국가 경쟁력이다’라고 말만 하고 실천하는 일은 크게 없는 것 같아. 아이들을 정말 귀한 존재라고 여긴다면, 또 보육이나 유아교육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국가가 더 책임감을 가지면 좋겠어.
사진글방
장은혜는 사진 찍고, 나성훈은 글 씁니다. 사진과 글을 도구로 세상의 작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담아냅니다.
2018/08/28
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