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비유》 파편 커스터마이징
《비유》에 접속할 때마다 수많은 문장과 이름들이 눈앞에서 재생되었지만, 이번 큐레이션을 위해 《비유》에서 재생시킨 것은 의외로, 지속적으로 변모하던 《비유》의 골격이었다. 《비유》가 등장한 이후로 《비유》는 도대체 자신의 구조를 가만히 놔두지를 못했다. 《비유》의 곳곳을 담당하는 실제 구성원이 있긴 하지만, 내게는 자신의 파편을 끊임없이 열어젖혀 다양한 구절들을 매만지려는 《비유》가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자아처럼 여겨졌다. 《비유》가 한 존재의 한 신체라면 그 안에 복잡다단하게 운용되는 《비유》의 부위들을, 하나의 서랍장이라면 수납할 수 있는 《비유》의 몇 칸을 간단히 열어젖혀 보려고 한다. 모바일 세로 화면 기준으로, 《비유》의 구조를 대략 다음과 같이 산출할 수 있다.
이 구조를 구성하는 제목, 본문, 작가, 소개, 호수라는 요소마다 각각 다른 다섯 파편을 붙여놓았다. 이 파편들은 《비유》의 각기 다른 화면에 살고 있던 다섯 편의 글에서 길어온 다섯 부분이다.
제목 ― “비미래”1)
2023년 여름,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정선임 소설가, 조영훈 피아니스트, 박종성 하모니시스트와 함께 〈여름으로 돌아올 때〉라는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을 준비하기 전부터, 미래를 미래가 아닌 것처럼 공연명을 상정해놓는 일은 살짝 기묘하기도 했다. 무력하게 어딘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기분을 갖기도 싫고, 그렇다고 현재에만 머물러 현상 유지를 하기도 싫은 그 사각지대를 고민하다가 제안한 공연명이었다. 안미린 시인의 연작시를 읽으며 ‘아직 실험 단계’인 그리고 끝없이 ‘실험 단계’에 머무를, 미래라고 불리던, 그러나 미래가 아닌 다음으로 가는 일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본문 ― “공간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2)
2024년 여름부터, 평일에는 서울에 매여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곳에 있다보면, 서울의 ‘중심성’을 형성하는 것에 기여하는 어떤 일원이자 파편으로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로 쏟아져 나가 서울 안에서 서울을 이탈하는 시도를 한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 많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송수연 평론가 역시, 여러 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서울의 맹점과 가능성을 고루 조명하며 서울에 매여 있으면서 탈각한다. 지형 정보가 너무나 잘 알려진 서울을 두고, 우리 안에서 서울의 ‘심상지리(心象地理)’를 새로 구축해보는 시선을 안내한다.
작가 ―
이 요소에는 어떤 이름을 불러볼까, ‘작가’라는 칸을 수시로 열고 닫았다. 이 대목에서 말하고 싶은 건, 《비유》에서 다양한 이름들을 부르려 했던 시도들. 스크롤을 내리면서 한 번 본 이름을 두세 번 보기는 힘들었다. 작가도, 작가가 생산해내는 글도 무수한 파편으로 쏟아진다.
소개 ― “비밀의 문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3)
《비유》의 작품들을 읽을 때, 나는 소개 부분에 쓰인 구절들을 유심히 읽는다. 누군가는 그저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누군가는 작품 뒤에 자신을 숨기느라, 사실 쓸 말이 없어서, 이 요소를 간략하게 활용한다. 그것과는 다르게, 이것마저 작품 또는 작가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까지 세심히 쓴 작가들의 소개를 발견하면 ‘럭키 클로버’를 마주한 것 같다. 김채원 소설가가 소개해 준 밀란 쿤데라와 아이슬란드인의 모두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그 짧은 분량 안에서 보여주는 대로 그 앞에서 그저 믿는 독자가 될 수 있다.
호수 ― 1호4)
1호, 즉, 창간호로 가보면 무려 스물한 곳의 다른 지면과 소통한 흔적이 있다. 마치 《비유》라는 지면은 이들과 소통하며 체득한 지면의 역사 위에서 그 뒤를 잇겠다는 듯이 조목조목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유》가 지금과 같은 다양한 발자취를 담으려는 그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안미린, 「비미래/비미래」 click
② 송수연, 「지역, 삶의 공간으로서의 서울」 click
③ 김채원, 「럭키 클로버」 click
④ 《비유》 1호 click
이 구조를 구성하는 제목, 본문, 작가, 소개, 호수라는 요소마다 각각 다른 다섯 파편을 붙여놓았다. 이 파편들은 《비유》의 각기 다른 화면에 살고 있던 다섯 편의 글에서 길어온 다섯 부분이다.
제목 ― “비미래”1)
2023년 여름, 나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정선임 소설가, 조영훈 피아니스트, 박종성 하모니시스트와 함께 〈여름으로 돌아올 때〉라는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을 준비하기 전부터, 미래를 미래가 아닌 것처럼 공연명을 상정해놓는 일은 살짝 기묘하기도 했다. 무력하게 어딘가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기분을 갖기도 싫고, 그렇다고 현재에만 머물러 현상 유지를 하기도 싫은 그 사각지대를 고민하다가 제안한 공연명이었다. 안미린 시인의 연작시를 읽으며 ‘아직 실험 단계’인 그리고 끝없이 ‘실험 단계’에 머무를, 미래라고 불리던, 그러나 미래가 아닌 다음으로 가는 일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본문 ― “공간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2)
2024년 여름부터, 평일에는 서울에 매여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곳에 있다보면, 서울의 ‘중심성’을 형성하는 것에 기여하는 어떤 일원이자 파편으로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거리로 쏟아져 나가 서울 안에서 서울을 이탈하는 시도를 한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 많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송수연 평론가 역시, 여러 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서울의 맹점과 가능성을 고루 조명하며 서울에 매여 있으면서 탈각한다. 지형 정보가 너무나 잘 알려진 서울을 두고, 우리 안에서 서울의 ‘심상지리(心象地理)’를 새로 구축해보는 시선을 안내한다.
작가 ―
이 요소에는 어떤 이름을 불러볼까, ‘작가’라는 칸을 수시로 열고 닫았다. 이 대목에서 말하고 싶은 건, 《비유》에서 다양한 이름들을 부르려 했던 시도들. 스크롤을 내리면서 한 번 본 이름을 두세 번 보기는 힘들었다. 작가도, 작가가 생산해내는 글도 무수한 파편으로 쏟아진다.
소개 ― “비밀의 문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3)
《비유》의 작품들을 읽을 때, 나는 소개 부분에 쓰인 구절들을 유심히 읽는다. 누군가는 그저 자신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누군가는 작품 뒤에 자신을 숨기느라, 사실 쓸 말이 없어서, 이 요소를 간략하게 활용한다. 그것과는 다르게, 이것마저 작품 또는 작가의 연장선상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까지 세심히 쓴 작가들의 소개를 발견하면 ‘럭키 클로버’를 마주한 것 같다. 김채원 소설가가 소개해 준 밀란 쿤데라와 아이슬란드인의 모두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그 짧은 분량 안에서 보여주는 대로 그 앞에서 그저 믿는 독자가 될 수 있다.
호수 ― 1호4)
1호, 즉, 창간호로 가보면 무려 스물한 곳의 다른 지면과 소통한 흔적이 있다. 마치 《비유》라는 지면은 이들과 소통하며 체득한 지면의 역사 위에서 그 뒤를 잇겠다는 듯이 조목조목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유》가 지금과 같은 다양한 발자취를 담으려는 그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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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안미린, 「비미래/비미래」 click
② 송수연, 「지역, 삶의 공간으로서의 서울」 click
③ 김채원, 「럭키 클로버」 click
④ 《비유》 1호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