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던 선빈에게 처음으로 내일이 생겼다.
   “대박! 너 그럼 대학시험 안 봐도 되는 거야?”
   “야, 대학이 뭐냐. 선빈이는 이제 아무 걱정 없다고. 군대도 안 가도 되고.”
   “취업 걱정도 안 해도 된다니. 자식 좋겠다.”
   “천국이 따로 없구나.”
   친구들은 모두 선빈을 부러워했다. 선빈도 스스로가 다 부러울 정도였다. 모두들 일생 최대의 행운을 얻게 된 선빈을 축하하고 또 축하해주었다.
   응모를 하면서도 선빈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선빈은 당첨운 같은 게 한 번도 따라준 적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응모에도 넣을 생각이 없었다.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떠들썩했지만 선빈은 자신과는 먼 일이라 여겼다. 만약 100명 중에 99명을 뽑더라도 선빈은 뽑히지 못한 1명에 속하는 사람이니까. 반 아이들이 재미 삼아 신청했다고 해서 얼떨결에 선빈도 응모했을 뿐이다. 그런데 선빈이 뽑혔다. 자그마치 1억 분의 1 확률이었다. 선빈은 생각을 바꿨다. 이제까지 선빈이 운이 없던 게 아니다. 이번 행운을 위해 그동안 모든 행운이 비켜나간 것뿐이다. ‘화성인’이라는 대운을 위해서 말이다. 선빈은, 이제 곧 화성인이 된다.
   NASA와 로켓을 만드는 스미스 사와 공동으로 화성인 이주 프로젝트인 MARS- X를 진행 중이다. NASA와 협력을 맺은 50개국에서 각 한 명씩 추첨을 통해 이주인을 선발했다. 만 18세 이상의 사람이라면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선빈이 대한민국의 대표로 뽑혔다.
   50인의 예비 화성인은 이번 달 말 미국으로 입국을 하여 6개월간 훈련을 받은 후, 내년 3월 화성으로 떠난다. 지구 최초의 50인은 화성의 개척자가 되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향후 화성으로 이주하려면 천문학적인 이주비를 내야 하지만, MARS- X 선정자들은 모든 게 무료다. 화성에 자기 이름으로 된 연구소 겸 집을 한 채씩 받게 되고, 우수 생활자는 화성 초청권을 얻어 지인을 화성인으로 추천할 수 있다.
   수많은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선빈을 취재하러 왔고,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다. 그런데 아빠가 선빈이 화성에 가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다. 부모로서 허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선빈은 지난번 인터뷰를 한 방송국 피디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만나러 왔다.
   “아빠가 반대하면, 저는 화성에 갈 수 없는 건가요?”
   NASA에서 온 서류를 검토하던 변호사는 볼펜으로 책상 위를 딱딱 찍었다.
   “선빈 군은 만 18세가 넘었기 때문에 부모 동의가 없어도 여권 발급이 가능해요. 이 말인즉 해외여행을 부모 동의 없이 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미국 출국에는 아무 문제없다는 거지?”
   함께 따라온 피디가 변호사에게 물었다. 변호사는 피디의 대학 선배다. 피디는 선빈이 미국에서 지내며 훈련을 받는 동안의 모습을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화성인 준비 다큐 방송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 것이기에 여러 방송사에서 선빈을 찾아왔다. 선빈은 그중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방송국에 소속된 피디 한동혁을 골랐다. 화성인으로 뽑히고 나니 좋은 게 여러모로 많다. 순식간에 을에서 갑이 되었다. 더 이상 일방적으로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렇긴 하지. 미국에 가는 건 가능한데, 문제는 화성이 외국은 아니니까.”
   변호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래도 선빈이네 부모님이 화성에 가는 걸 막을 법적 효력 같은 건 없는 거잖아?”
   “응. 현재 법으로는 그래.”
   변호사의 말에 선빈과 피디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만약 부모가 소송이라도 제기하면 골치 아파져.”
   “왜?”
   “우리나라에서 만 18세가 좀 애매하거든. 만 18세가 되면 결혼은 할 수 있어. 그런데 부모 동의가 필요해.”
   “그러면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하려면 몇 살이 되어야 하는 거야?”
   “만 19세. 결혼을 독립권으로 여긴다면, 아직 선빈이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독립이 가능해. 화성에 가는 것을 이 선상에서 보면,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화성에 못 가게 될 수도 있어.”
   변호사는 이 건은 아직 판례가 없기에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사실 법이라는 게 명확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이럴 땐 이렇고 저럴 땐 저렇게 바뀌면서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선빈은 만 18세와 만 19세에 대해 생각했다. 만 19세가 되면 술도 마시고, 담배도 사고,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뽑을 수 있다. 하지만 만 19세가 되기 하루 전만 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선빈의 삶은 만 19세가 되어도 지금과 별 차이 없을 것 같지만, 법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만약에 얘네 부모님이 문제 삼더라도, 선빈이가 만 19세가 되면 선빈이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
   한피디는 선빈에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었다. 2월이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한피디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화성으로의 이주는 내년 3월이다. 화성 이주 시기에는 선빈이 만 19세가 넘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담을 마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왔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었고, 피디는 선빈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뭐 먹고 싶어?”
   “햄버거요.”
   마침 사무실 옆에 버거 가게가 있다. 선빈은 더블치즈버거를 피디는 새우 버거를 시켰다.
   “이런 건 미국 가면 매일 먹을 텐데.”
   한피디가 햄버거가 담긴 쟁반을 선빈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미국에서 못 먹을 걸 먹어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요?”
   선빈은 아직 한국을 떠나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미국의 생활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본 게 있기에 어느 정도 상상이 가지만, 화성은 그렇지 않다. 영화 속 화성은 모두 세트로 만들어진 가짜다. 진짜 화성에 가본 사람은 아직 없다.
   “피디님도 MARS-X에 응모했어요?”
   햄버거를 먹고 있던 한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 국민 중 80% 이상이 응모했다고 들었다. 선빈 주변에 응모하지 않은 사람은 아빠뿐이다.
   “만약 피디님이 뽑혔으면 어땠을 거 같아요? 고민 안 했을 거 같아요?”
   “왜? 고민돼?”
   “뭐 조금요.”
   “하긴 그렇겠다.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으니까.”
   화성행은 편도다. 가는 데만도 7개월이 걸리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돌아오는 티켓은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도 난 네가 부럽다. 나도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피디님이 무슨 걱정이 있어요? 좋은 직장 다니시잖아요.”
   “좋은 직장은 개뿔. 나 외주야.”
   “예? 그게 뭔데요?”
   “방송국 소속이 아니라고. 방송 못 따면 월급 없어. 한 마디로 비정규직이라고.”
   “피디님 서울대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서울대가 뭐라고. 서울대 나와도 다 똑같아. 이렇게 돈 벌어서 어디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세 얻을 돈도 없고, 나중에 자식 교육비는 또 어떻게 할지.”
   선빈은 눈을 껌벅거리며 가만히 한피디를 바라보았다. 지방대를 다니고 있는 사촌 형도 똑같은 말을 했다. 선빈이 5년 후, 10년 후에도 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까.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해.”
   한피디는 얼음밖에 남지 않은 콜라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으며 말했다. 다들 나가라고 하고, 다들 떠나라고 한다. 친구 우진의 말대로 어쩌면 화성은 천국인지도 모르겠다.
   햄버거를 다 먹고 선빈은 한피디와 헤어졌다. 한피디는 편집할 게 있다며 야근하러 방송국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NASA에서 연락이 오면 한피디에게 연락을 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카페 문을 일찍 닫았나 보다. 선빈은 고개를 꾸벅 숙여 다녀왔다는 인사를 했다.
   “잠깐 여기 앉아 봐.”
   아빠가 선빈을 불렀고, 선빈은 쭈뼛거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아빠와 마주치는 게 불편하다. 하지만 오늘은 선빈도 할 말이 있다.
   “나 오늘 변호사 만나고 왔어. 내가 만 18세가 넘었기에 미국 출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대.”
   아빠가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너, 기어이 가야겠어?”
   “응. 나 가고 싶어. 이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다들 날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아빠 빼고 다들 축하해 준다고.”
   “그 사람들은 남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거야. 화성이 어디 외국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야? 그리고 거기 누가 있어? 가족이 있어, 친구가 있어?”
   “친구야 가서 사귀면 되지.”
   “고작 50명 가는 거라며. 나이도 다르고, 나라도 다른데 그게 무슨 친구야?”
   “친구 같은 거 다 필요 없다며? 친구 따위 믿지 말라며?”
   아빠는 좋은 투자처가 있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엄마 몰래 집을 담보대출 받아 투자를 했다. 하지만 친구는 도망가 버렸고, 투자금을 고스란히 다 날렸다. 그는 아빠의 30년 지기 절친이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는지 아빠의 표정이 굳어졌다.
   “화성에 가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가 없어. 네가 거기 가서 무슨 일을 할 건데?”
   “그럼 여기서는?”
   “뭐?”
   “여기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거야 뭐, 찾으면 되지. 언제부터 니가 그렇게 계획적이었다고 그래?”
   아빠는 당황했는지 말을 돌렸다.
   “나,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 아빠만큼 살 자신이 없다고.”
   선빈은 꾹꾹 참았던 말을 내뱉었다.
   “내 학교 성적이 어떤데. 나는 엄마, 아빠보다 좋은 대학 못 갈 게 뻔해. 그러면 취업도 힘들어. 설사 운이 좋게 취업한다고 쳐. 엄마, 아빠처럼 명퇴당할 건데 뭐.”
   3년 전 건설회사를 다니던 아빠는 명예퇴직을 했고, 이제 곧 엄마도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엄마가 다니던 콜센터는 이제 문을 닫는다. 앞으로의 콜센터 업무는 컴퓨터가 전부 대체할 거다.
   “아빠, 내가 여기서 뭐 하며 살 수 있을 거 같아? 나 하고 싶은 게 없어. 좋아하는 것도 없고.”
   이 말을 하면서 선빈은 서글퍼졌다. 자신의 현실을 이렇게 입 밖에 내어 말해본 건 처음이다. 선빈은 왜 자신이 화성에 가야만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살 거야. 그곳에서 개척자가 될 거야. 지구는 저무는 해라고.”
   선빈은 아빠에게 수십 번 말하고 또 말했던, 화성에서의 삶의 혜택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빠의 얼굴은 더 일그러지기만 했다.
   한참 대화를 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다. 아빠와는 평행선인 채로 달리는 기분이다. 평행선은 절대 만날 수 없다.
   “어쨌든 난 갈 거야. 말리지 마.”
   선빈은 그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왔다. 문 바깥에서 아빠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선빈은 “그러니까 가겠다는 거잖아.”라고 혼잣말을 했다.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2주 전이였다면, 지금쯤 학원에 가 있거나 집에 있더라도 마음 편히 누워있지 못했을 거다.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학 작품을 달달 외우고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끙끙대며 책상 위에 앉아있었겠지. 선빈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 그런 것들은 안 해도 상관없다.
   선빈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방 안이 아니라 우주다. 무중력 상태가 되어 선빈은 방안을 둥둥 떠다녔다. 선빈의 마음은 이미 화성이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려 화성에 도착했다. 캠핑장이 경기도 화성에 있다. 선빈은 화성 체험을 미리 하는 거라는 농담을 했다. 아빠는 웃지 않았고, 엄마는 그러네, 하고 가볍게 맞장구를 쳤다.
   엊그제, 갑자기 아빠가 캠핑을 가자고 했다. 원래 선빈은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 노래방에 가기로 했다. 친구들이 선빈의 송별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해서다. 하지만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될 수 있기에 선빈은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뤘다. 이대로 아빠와 사이가 나쁜 채 화성으로 떠나고 싶진 않았다.
   “그대로네.”
   차에서 내린 선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7년 전, 여기로 가족여행을 왔다. 선빈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집을 산 기념으로 아빠는 여행을 가자고 했고, 개장기념으로 할인을 많이 한 이곳으로 왔다. 아파트 대출금을 7년을 갚았고, 이제 23년이 남았다. 그때도 30년이 긴 줄 알았지만, 여전히 길다. 7년 사이 선빈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고등학교 졸업도 앞두고 있다. 아마 엄마와 아빠는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도 계속 빚을 갚아야 할 거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텐트를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카라반에서 자기로 했다. 둘의 비용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거니와, 이제는 선빈이 커버려 세 가족이 텐트에서 자기에는 너무 비좁다.
   엄마가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열쇠를 받아오기로 했다. 그 사이 선빈과 아빠는 카라반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엄마를 기다렸다.
   “너 정말 꼭 가야겠어?”
   아빠는 또 같은 질문이다.
   “그만 물어. 내 대답은 똑같아.”
   “그래서 가겠다고?”
   “그렇다니까! 왜 자꾸 같은 걸 물어?”
   선빈이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고, 아빠도 어디서 큰 소리냐며 버럭 화를 냈다. 엄마가 멀리서 둘이 싸우는 걸 보고 달려왔다.
   “당신은 좀 들어가서 쉬어. 어제도 늦게 잤잖아.”
   엄마가 아빠 등을 밀며 말했다. 아빠는 카라반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선빈에게 산책을 좀 하자고 했다.
   “엄마, 배드민턴 칠래?”
   예전에 왔을 때 배드민턴장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걸어가 보니 그대로 있었다. 방 번호를 말한 후 배드민턴 채와 셔틀콕을 대여했다.
   엄마가 먼저 서브를 넣었다. 셔틀콕이 포물선 모양을 그리며 선빈 쪽으로 날아왔고, 선빈은 하늘 높이 팔을 쭉 뻗어 셔틀콕을 쳤다. 안정감 있게 날아가 엄마가 받았고, 다시 선빈 쪽으로 날아왔다.
   “선빈아, 우리 5년 전에 왔었나?”
   “아니, 7년이야.”
   “그래? 7년 동안 뭘 했나 모르겠네.”
   오랜만에 치는 배드민턴이지만 엄마도 선빈도 셔틀콕을 잘 받았다. 가족 여행을 온 것도 7년 만이고, 둘이 배드민턴을 치는 것도 7년 만이다. 7년 동안 선빈네 가족은 함께 살았지만, 그사이 함께 한 활동은 거의 없다. 선빈이 화성에 가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도 오지 않았을 거다.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이달 말까지만 하고 문 닫는대. 캠핑장도 한때 붐이었지 뭐.”
   엄마는 열쇠를 받으러 갔다가 들었다며 알려주었다.
   “엄마, 아빠 계속 화내면 어떻게 해?”
   “괜찮아지겠지 뭐.”
   “엄마도 내가 화성에 가는 게 싫어?”
   “앞으로 너 못 보니까. 좋지만은 않지. 아빠도 그래서 그런 거야.”
   “그럼 나 가지 말까?”
   엄마가 선빈이 넘긴 셔틀콕을 받지 못했고, 셔틀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후 튀어 오르는 듯하더니 다시 떨어졌다.
   “안 가긴 왜 안 가. 너 보고 싶으면 밤하늘의 별을 볼 거야. 별이 반짝이면 우리 아들이 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게.”
   엄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선빈의 마음이 찌르르했다.
   “엄마, 이번엔 내가 서브할게.”
   선빈이 넘긴 셔틀콕을 엄마가 받아쳤다. 셔틀콕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하얀 새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선빈아, 아빠를 이해해 줘. 아빠가 힘들어서 그래. 네가 미워서 신경질 내는 거 아니야.”
   “알아, 나도.”
   아빠는 퇴직금을 몽땅 투자해 아이들이 좋다며 키즈카페를 차렸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시대에 키즈카페라니, 잘 될 리가 없다.
   “엄마는 앞으로 어떡해? 콜센터 이번 달 말까지만 나가는 거지?”
   선빈은 엄마가 걱정되었다. 콜센터는 엄마의 첫 직장이자 유일한 직장이기도 하다. 엄마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했고, 선빈을 출산한 한 달을 제외하고 쉰 적이 없다. 여자라서 일 못 한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출산 휴가도 한 달만 썼고, 연차도 다 쓰지 않았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 돌아온 건 콜센터 폐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엄마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그때 캐나다 갔어야 했는데.”
   선빈의 말에 엄마는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3년 전, 엄마는 아빠에게 키즈카페를 차리는 대신 캐나다로 이민을 가자고 했다. 엄마는 틈틈이 공부해 간병인 자격증을 따두었고, 캐나다에서 그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민을 받았다. 캐나다 이민청의 허가도 받고, 가서 일할 병원도 구했다. 하지만 아빠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실패해서 이민 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간 넘게 배드민턴을 쳤더니 많이 움직이지 않은 것 같은데도 땀이 많이 났다. 선빈은 목욕을 하고 나왔다.
   아빠는 아직 자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선빈이 둘이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고기와 쌈을 꺼내 캠핑장으로 가지고 나왔다.
   한참 고기를 굽고 있는데, 아빠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는 함께 준비하지 못한 게 미안한지, 왜 깨우지 않았냐고 괜히 엄마와 선빈에게 뭐라고 했다.
   “아, 나오니까 좋긴 하네. 이런 캠핑장이나 한 번 차려볼까?”
   선빈은 아빠에게 이 캠핑장도 손님이 없어 이달 말까지만 운영을 할 거란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괜히 아빠와 다투고 싶지 않다.
   “선빈아, 소시지 먹을래? 너 소시지 좋아하잖아.”
   엄마가 팩에 담긴 소시지를 꺼내 그릴 위에 올려놓았다. 훈제된 소시지가 숯불에 구워지니 향이 더 배가 되었다. 선빈은 코를 큼큼대며 연기 냄새를 맡았다. 선빈이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7년 전 이곳에서 먹었던 소시지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 그 어떤 소시지를 먹어도 숯불에 직접 구워 먹었던 그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선빈은 소시지가 다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릴 모양으로 구워지는 소시지를 보고 있으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여보, 내가 자를게.”
   아빠가 엄마에게 집게와 가위를 건네받았다. 어슷썰기 한 소시지가 그릴 위로 떨어졌다.
   “먹어도 되지?”
   “그럼.”
   선빈은 나무젓가락으로 소시지를 하나 들어 입에 넣었다. 뜨거웠지만 꾹 참고 소시지를 씹었다. 소시지의 육즙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선빈의 젓가락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시지를 입에 넣고, 넣고 또 넣었다. 선빈은 바쁘게 음식을 삼키다가 슬쩍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가 흐뭇하게 선빈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좋냐. 우리 세 가족, 완벽하잖아. 선빈아, 이게 행복이야. 화성에 가면 앞으로 이런 거 못 해.”
   아빠는 핸드폰을 꺼내 셀프모드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선빈은 소시지를 입에 문 채 화면을 보며 웃었다.

   가족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NASA에서 또 메일이 왔다.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발권할 예정이라며, 부디 내일까지 잊지 말고 여권을 보내 달라고 했다. 이달 말 30일로 미국으로 입국 날짜가 정해졌다. 선빈은 계속 여권을 보내는 걸 미뤄두고 있다.
   요 며칠 선빈은 화성에 가는 게 과연 좋기만 한지 고민했다. 화성에 간다고 정말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또 다른 걱정이 생기지 않을까? 서연 누나는 절대 충동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어제저녁 서연 누나를 만났다. 아빠의 친한 친구인 석진 아저씨의 딸로, 어렸을 적부터 자주 만나 놀았다. 형제가 없는 선빈은 두 살 위인 서연을 잘 따랐다. 서연은 선빈의 첫사랑이기도 하다. 서연이 중학생이 되면서는 함께 만날 기회가 줄었지만, 선빈과 서연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공부하느라 바빴나 봐. 고3 되더니 연락 한번 없고.”
   “뭐 그냥.”
   올해, 서연에게 남친이 생기면서, 왠지 선빈은 연락하는 게 꺼려졌다. 그런데 며칠 전 서연이 연락을 해와 저녁을 사주겠다며 만나자고 했다.
   “네가 고3이 아니었어도 기꺼이 갈 것 같아?”
   서연의 물음에 선빈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서연은 자기도 대학시험을 앞두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생각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선빈은 헷갈렸다. 선빈이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이 나라일까, 이 세상일까, 아니면 대입일까. 이번에 선택을 하면 번복이 불가능하다. 그곳은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남아서 후회하는 것과 가서 후회하는 것. 선빈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참 누나, 남친이랑은 잘 만나고 있어?”
   “언제 헤어졌는데. 앞으로 나이 많은 남자랑은 안 만나려고.”
   서연은 다섯 살 많은 과 선배와 사귀었다.
   “너처럼 귀엽고 착한 남자 만나고 싶어. 아쉽다. 네가 내년에 대학 가면 네 친구들 소개받으려고 했는데.”
   “그러게.”
   그 말을 할 때 이상하게 선빈의 가슴이 뛰었다.
   아무래도……
   선빈은 최종 결정을 내렸다. 선빈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 소파에는 엄마와 아빠가 앉아있다.
   “나 화성 안 갈래.”
   아빠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선빈에게 다가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아주 잘 생각한 거야. 참, 너 태블릿 바꾸고 싶다고 했지? 당장 사러 가자.”
   “다음에. 나 공부할래. 시험 얼마 안 남았다고.”
   “역시 내 아들! 아빠는 네가 실망시키지 않을 줄 알았다고.”
   아빠는 호탕하게 웃었다.
   방으로 돌아온 선빈은 핸드폰을 꺼내 캠핑장에서 찍은 가족사진을 봤다. 소시지를 다 삼키고 찍을 걸 그랬나? 뭐 다음에는 제대로 잘 찍으면 된다. 선빈은 NASA에서 온 메일에 가지 않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한피디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정을 알렸다. 한피디는 그럼 어쩔 수 없다며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겨우 몇 주 공부를 안 했을 뿐인데, 그사이 다 잊어버렸다. 화성 때문에 한 달가량의 시간을 버렸다. 한참 문제를 풀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왜?”
   “선빈아, 진짜 안 갈 거야? 후회 안 할 것 같아?”
   “응.”
   “정말?”
   “그렇다니까. 걱정 마, 엄마. 이미 못 간다고 메일도 보냈어. 나 이제 MARS-X 아니야. 벌써 두 번째 후보자한테 연락 갔을걸?”
   엄마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지그시 선빈을 바라보았다. 선빈은 눈에 힘을 준 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화성에 가게 된다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한다. 만나고 싶어도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생기게 되고.
   “여기에서의 다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서연 누나가 그러더라. 아빠가 내 걱정 많이 했다고. 그동안 엄마도 나 때문에 속 많이 썩었지?”
   엄마가 의자 뒤로 와서 살포시 선빈을 안았다.
   “고마워, 선빈아.”
   엄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선빈은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역시 세 가족은 함께 있어야 완벽하다. 화성에 가지 않겠다고 한 건 참 잘한 일이다.

   이른 아침이다. 선빈이 아직 잠을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아빠가 다급하게 선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을 켜놨는지 시끄러웠다.
   “선빈아! 이선빈!”
   선빈은 느릿느릿 일어나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거실로 나갔다.
   “저, 저거 봐.”
   아빠가 몸을 부르르 떨며 텔레비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슨 사고라도 난 걸까. 선빈은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네. 지금 여기는 인천공항 출국장입니다. 대한민국의 화성인으로 선발된 유민정 씨가 출국을 준비 중입니다. 유민정 씨는 대한민국의 화성인 후보자였는데, 첫 번째 선발자가 포기하면서 화성인으로 최종 선발됐습니다. 유민정 씨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민정 씨.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네. 많이 흥분되고, 설렙니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엄마다. 엄마 목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처럼 화려한 꽃목걸이가 걸려있다. 왜 저기 엄마가 있는 거지?
   놀란 선빈은 고개를 돌려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와 선빈의 표정은 서로 거울을 보고 있는 듯 똑같다.
   “대한민국이 모두 유민정 씨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유민정 씨, 미국에서 훈련 잘 받으시고 무사히 화성으로 떠나시길 바랍니다.”
   기자가 엄마 얼굴 앞으로 마이크를 갖다 댔다. 엄마는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저는 화성에 갑니다!”

김혜정

십 대 지구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지구가 괜찮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지구에 대한 애정과 근심으로 글을 쓴다. 우주여행을 하는 게 꿈이다. 다녀오면 우주여행에 관한 근사한 소설을 쓸 것이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