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가 우리 가게에 나타났다.
   나는 서둘러 가게 안을 살폈다.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야 했다. 문 옆 탁자에는 철물점 아저씨가 국밥 국물을 그릇째 들이켜고 있고, 안쪽 탁자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여자 둘이 먼저 나온 깍두기 반찬을 집어먹느라 부산했다. 주방에서는 엄마가 국물이 넘실대는 뚝배기 위에 부추를 올리는 중이었다.
   박재희는 주방 앞에 서서 나를 빤히 보았다. 소주 광고가 찍힌 앞치마를 두른 채였다. 요 며칠 내가 입고 일하던 앞치마다. 알바 누나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탁자가 겨우 네 개뿐인 국밥집이지만, 엄마 혼자 저녁 장사까지 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국밥을 나르는 틈틈이 여기저기에다 알바 구인 광고를 올렸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최저 시급이라면 햄버거 주문받는 일이 백 배 낫기 때문이다.
   박재희가 뜨거운 국밥 두 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 여자들이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무겁지도 않은지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무겁다 해도 내 알 바 아니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나는 가방을 멘 채 주방으로 갔다.
   “알바 왔으니까 나 가도 되지?”
   “밥 먹고 가.”
   엄마가 손에 빈 그릇을 하나 쥐었다.
   “배 안 고파.”
   고개를 젓고 그대로 가게를 나왔다. 진짜로 배가 안 고팠다. 종일 밥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중간고사 국어 점수가 나왔다. 막판까지 헷갈렸던 두 문제가 다 정답을 피해 갔다. 매번 운이 좋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두 문제를 모두 놓치고 나니 왠지 가혹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 거기다 담임이 한 말이 계속 머릿속을 껄끄럽게 했다. 담임은 국어 점수가 유난히 낮은 애들을 다그치며 말했다.
   “이 자식들아, 너희들 다 반성해. 지용이도 구십 점이 넘었는데 너네는 뭐 하는 거야?”
   안 넘어가는 침을 억지로 삼켰다. 목구멍이 뻑뻑했다. 그래도 침을 삼키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한지용.”
   뒤를 돌아봤다. 언제 나왔는지 박재희가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어제까지 내가 입던 앞치마를 아무렇지 않게 두르고 양손을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쓸데없이 당당한 애들은 괜히 좀 언짢다.
   “나 너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거 아니다.”
   “누가 뭐래?”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우고, 그러려고 온 거야.”
   “누가 뭐랬냐고?”
   “아니, 그냥 네가 오해할까 봐.”
   쓸데없이 당당한 애들이 왜 언짢은지 이유가 생각났다. 남들 생각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우기면서 결국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오해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언제나 문제다.
   더 대꾸 않고 돌아서 걷는데 뒤에서 딸그랑딸그랑 종소리가 났다. 가게 문에 매달린 종에서 나는 소리다. 박재희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가게 문을 열고 나오는 철물점 아저씨가 보였다. 입에 이쑤시개를 물고 츱츱 소리를 냈다. 박재희는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얼결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얼른 몸을 돌려 뛰다시피 걸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본 건데 박재희가 다르게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됐다. 박재희가 오해하는 것도 역시 문제다.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해 봤다. 나한테 배우러 왔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엄마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 보다. 박재희네 작은엄마가 이 골목 끝에서 이불 가게를 하니까 거기서 들었을 확률이 높다. 골목 사람들은 틈만 나면 모여서 남의 얘기를 한다. 손님이 자기 가게로 몸을 들이밀어야 겨우 말을 끊고 달려간다. 나는 말 많은 사람들이 싫다.

   할머니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배가 더 부풀었다. 가게 일 때문에 며칠 병원을 못 왔다. 간병인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를 흔들어 깨우더니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할머니가 천천히 눈을 떴다.
   “왔나?”
   “네.”
   “밥 뭇나?”
   “네.”
   나도 모르게 자꾸 존댓말이 나왔다. 할머니가 아프기 전에는 어, 먹었어, 하고 대답했다. 검게 말라 가는 할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고 서먹했다.
   옆 침대 환자가 빨대로 요구르트를 빨아먹었다. 쪼로록, 쪽쪽, 쪼로록. 병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바닥에 고여 있는 것까지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똑같은 요구르트가 할머니 머리맡에도 있었다. 할머니가 반쯤 뜨고 있던 눈을 다시 감았다. 가게 냉장고에는 일 년 내내 차가운 보리차가 떨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돼지 뼈를 끓이고 머리 고기를 삶는 동안 찬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는 날에는 큰맘 먹고 맥주병을 따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맥주 위에 떠 있는 하얀 거품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할머니가 찻숟가락으로 거품을 떠서 내 입에 넣어 준 적도 있다. 아이스크림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할머니가 “아이고, 야 봐라.” 하면서 웃었다.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간병인 아줌마가 올 때까지만 있기로 했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랬다.
   엄마는 의사와 얘기할 때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썼다. 중요한 말은 꼭 영어로 되물었다. 나도 엄마 옆에서 그 얘기를 다 들었는데 뭐가 어떻다는 건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처음 보는 간호사가 와서 할머니 링거병에 주사약을 찔러 넣었다. 무슨 주사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원래 말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간호사는 빈 주사기를 챙기다 말고 나를 흘낏 보았다. 너 왜 여기 있니? 무표정한 눈빛이 묻고 있었다. 아무리 자주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다. 간호사가 나가자 병실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당장 뭐든 먹고 싶었다. 나는 할머니 머리맡에 있는 요구르트를 들고 병실을 나왔다.

   엄마가 빨래를 개다 말고 물었다.
   “체리하고 친해?”
   무슨 말인가 삼 초쯤 생각했다.
   “걔 체리 아니야. 재희야.”
   “영어 이름 체리래. 영어 잘하더라.”
   헛웃음이 나왔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영어 학원에서는 아이들이 서로를 존, 피터, 에이미, 하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 걔랑 안 친해. 앞으로도 안 친할 거야.”
   말하자마자 후회가 됐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언제부턴가 박재희가 나한테 자꾸 말을 걸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이었다. 야, 오늘 급식 맛있지 않았냐? 난 미역국에 고기 말고 홍합 들어간 게 좋아. 어우, 담임 담배 냄새 짜증 나. 애들한테 압수한 담배도 자기가 다 피운대. 버리기 아깝다고. 가방 안 무겁냐? 그걸 왜 전부 들고 다녀? 사물함 뒀다 뭐 할래? 너 김태우랑 놀지 마. 완전 재수 없어. 여자애들이 쟤 다 싫어해.
   처음에는 그냥 응, 응, 대꾸하고 지나갔다. 딱히 친절할 이유도, 그렇다고 못되게 굴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반 애들 눈치가 이상했다. 박재희가 김태우 고백을 거절하면서 자기는 다른 애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였다. 나는 박재희가 누구를 좋아하건 말건 아무 관심 없었다. 하지만 김태우는 아니었다. 누구 때문에 자기가 까였는지 기어이 알고 싶어 했다.
   “너야?”
   “뭐가?”
   “재희랑 사귀는 애가 너냐고?”
   “뭔 개소리야?”
   김태우가 순순히 물러나 다른 애한테로 갔다. 아닌 걸 아니라고 했을 뿐인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물을 마시려고 복도로 나갔다. 절대로 그럴 일 없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김태우 앞에서 “그래, 나다. 어쩔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오래오래 찬물을 마셨다.
   학교에는 나 같이 튀는 애들이 몇 명 있다. 우리는 같지만 또 달랐다. 나는 보기 드물게 성적이 좋은 아이였다. 담임은 나를 보고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우는 나라’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고 했다. 엄밀히 말해 나는 그 나라 출신이 아니고 그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수학 때문에 맨날 골머리를 썩었지만, 담임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칭찬이라 생각하고 넘기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엄마가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에 엄마랑 통화할 사람은 고향에 있다는 엄마 언니 아니면 동생이다. 우리는 한밤중이지만 그곳은 저녁 식사를 마칠 때쯤이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긴 얘기를 했다. 아무도 못 알아들으니 거실에서 그냥 전화해도 되는데 꼭 방에 들어가 속닥였다. 할머니 있을 때부터 몸에 밴 일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몸에 밴 일들을 계속하며 버티는 것처럼 엄마도……
   방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났다. 엄마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지난 몇 달간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가끔 거짓말을 한다. 나쁜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잘 기억이 안 나기 때문이다. 멀고 흐릿해진 일들까지 굳이 아는 척하며 살 이유는 없다.
   “한지용, 이거 진짜냐?”
   김태우가 내 앞에 전화기를 들이밀었다. 화면에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도한 기사였다. 남자 여럿이 버스에서 여자 대학생에게 끔찍한 짓을 했고, 외진 곳에 버려진 여자는 결국 사망했다. 엄마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뉴스에 나왔으면 진짜겠지.”
   “와, 어떻게 버스에서. 이런 일 자주 있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새꺄! 하면서 들이받을까 잠깐 생각했다. 핑계 김에 한바탕하고 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김태우도 그러고 싶어서 자꾸 내 옆을 얼쩡대는 듯했다.
   “그 나라 가 본 적 없어.”
   문제집을 들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학습실에 갈까 하다가 운동장으로 나왔다. 체육복 입은 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애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곳마다 하얗게 흙먼지가 일었다.
   엄마 나라에 간 적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거기에 갔었다. 딱 한 번이었고,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기억은 뚝뚝 끊겨 있다. 태어나 처음 타 본 비행기에서 만화 영화를 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부터는 안 좋은 기억밖에 없다. 이마에 붉은 칠을 한 사람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고, 이상한 냄새 때문에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엄마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종일 먹은 것을 신발 위에 전부 토하고 말았다. 거기 얼마 동안 있었는지 모른다. 잠깐인 것도 같고 아주 오래였던 것도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희미하다. 큰 강을 본 것도 같고 좀 아팠던 것도 같다.
   꽤 또렷한 기억도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할머니를 만났을 때다. 할머니는 나를 꽉 끌어안고 괴상한 목소리로 울었다. 어으, 어으, 어으으으. 할머니가 나를 너무 세게 조여 답답했지만 꾹 참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나는 할머니 귀에 대고 말했다. “할머니, 배고파.” 그러자 할머니가 울음을 뚝 그치고 부엌으로 가 밥상을 차렸고, 나는 텔레비전을 켜고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봤다. 그 순간 엄마는 어디에 있었을까? 기억 속에 엄마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엄마 나라로 돌아갔었다. 왜 그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엄마는 아빠를 따라 한국에 왔고, 아빠가 없는 한국에는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지금껏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엄마가 왜 다시 한국에 왔는지에 대한 것이다. 엄마는 아빠 없는 한국으로 돌아와 할머니 옆에서 십 년 가까이 살았고, 나는 내가 여기 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없었다.
   5교시 예비종이 울렸다. 나는 느릿느릿 교실로 올라갔다. 여자애들하고 몸이 닿을까 봐 벽 쪽으로 바짝 붙어서 걸었다. 오해받을 일은 알아서 피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김태우는 아직도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키득대고 있었다. 몇몇 애들이 김태우를 둘러싸고 같이 웃었다. 뭘 보고 웃는지 알 수 없었다. 야릇한 사진 파일을 돌려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남의 나라 일은 진작 다 까먹고 시시껄렁한 얘기를 지껄이고 있을 거라고 억지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도 여전히 화가 치밀었다. 김태우 때문인지, 엄마 때문인지, 끝내 들이받지 않은 나 때문인지 분명치 않았다.

   학원에 있는데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학원 끝나면 가게 가서 문 닫고 집에 가라고 했다. 할머니 병원에서 또 연락이 온 모양이다. 병원에서는 할머니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엄마를 호출했다. 벌써 네 번째다. 하나 남은 수업을 째고 가게로 갔다.
   요 며칠 엄마랑 쭉 안 좋았다. 내가 먼저 시작하긴 했다. 엄마가 뭘 물어도 대답도 잘 안 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어쩌라고.” 하면서 짜증을 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눈가에 힘을 주고 나를 쏘아봤다. 엄마가 입을 다물고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면 화를 참고 있다는 뜻이다. 그걸 알면서도 번번이 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은 조마조마한데 자꾸만 더 뻗대고 싶었다. 나보고 어쩌라고오오!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지르고도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가게는 한가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아줌마가 아이 입으로 국밥을 부지런히 떠 나르고 있을 뿐, 나머지 탁자는 모두 비어 있었다. 갑자기 맥이 빠졌다. 박재희 혼자 동동대고 있을까 봐 학원에서부터 계속 뛰어왔는데, 박재희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문가 의자에 기대앉았다.
   아줌마가 아이 손을 붙잡고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딸그랑딸그랑 울리던 종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가게 안에는 박재희와 나, 둘 뿐이다. 박재희가 팔을 길게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었다.
   “너 밥 먹었냐?”
   박재희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밥을 아직 안 먹었다. 박재희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국밥을 두 그릇 말았다. 나는 얼른 반찬 그릇에 깍두기를 담고 수저를 챙겼다. 그리고 박재희랑 마주 앉아 국밥을 먹었다. 나란히 앉아 먹을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았을 뿐이다. 박재희는 숟가락으로 국밥을 푹푹 떠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나도 밥이 잘 넘어갔다. 아무 말 없이 밥만 먹기 뭐해서 별 뜻 없이 한마디 했다.
   “우리 엄마 영어, 틀릴 때 많아.”
   박재희가 고개 들어 나를 봤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듯했다.
   “문법 틀릴 때 많다고.”
   “넌 한국말 할 때 문법 다 맞게 말하냐?”
   “그거랑 같냐? 영어는 시험을 봐야 되는데.”
   “시험 때문에 영어 공부하는 거 아냐.”
   박재희의 단호한 말투가 좀 거슬렸다. 그냥 밥이나 먹을 걸 괜히 말을 시켰다고 후회했다. 그런데 박재희가 숟가락으로 국밥 국물을 휘휘 저으면서 자기 얘기를 했다.
   “학교 졸업하면 어디 좀 가려고. 캐나다나 호주, 어쩌면 유럽일 수도 있고. 거기 가면 일해서 돈도 벌고 여행도 할 수 있는, 뭐 그런 게 있거든. 근데 영어를 잘하면 일 구하기가 훨씬 쉽대. 어차피 여행하려면 영어 좀 해야 되기도 하고.”
   나는 말귀가 밝고 영리해서 어딜 가도 답답이 소리는 안 들을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다. 그런데 박재희 얘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왜?”
   박재희가 하는 말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다. 대학은 어쩌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재희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성적이 영 별로라 해도 마찬가지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내 말은, 왜 거기를 가냐고.”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냥 가고 싶어서. 아니, 이유가 있기는 한데 뭐라고 해야 될지를 모르겠네.”
   박재희가 나를 똑바로 건너다봤다. 박재희 얼굴이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한지용, 너는 괜찮아?”
   “뭐가?”
   “여기서 이렇게 사는 거.”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영어 얘기하다가 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지 모르겠다. 나는 괜찮은지,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은지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른 생각 하느라 바빠서 그랬던 것 같다. 박재희가 다시 숟가락으로 국밥을 퍼먹었다. 나도 계속 밥을 먹었다. 그새 국물이 다 식어 버렸다.

   슬슬 가게 문을 닫으려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으로 곧장 오라고 했다. 엄마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한테 아직 화가 안 풀려 그런 거라면 좋을 텐데, 자꾸 다른 생각이 들었다.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걸었다. 그런데 열쇠가 말썽이었다. 고리를 채우면 열쇠가 저절로 빠져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빠지지 않았다. 자물쇠를 몇 번이나 풀었다 채웠다 해 봤지만 똑같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중환자실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
   내가 부르자 엄마가 나를 돌아봤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유리문 옆에 달린 인터폰을 눌렀다. 바로 문이 열렸다. 면회 시간도 아닌데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을 막 열어 주었다.
   할머니 몸에 치렁치렁 달려 있던 링거 줄들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옆에서 뭔가를 적고 있던 젊은 의사가 우리를 보더니 뒤로 물러섰다. 엄마가 나를 할머니 쪽으로 조금 떠밀었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의사들로부터 마음의 준비 하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학교에 안 가고 할머니 옆에 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진짜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저희는 걱정 마세요. 고맙습니다. 적당한 말이 몇 개 생각났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다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뻣뻣하게 서서 할머니와 이별했다.
   엄마는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을 바삐 오갔다. 모든 사람이 엄마를 찾았고,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를 물었다. 엄마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 몇 번이고 다시 설명했다. 나는 할머니 사진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골목 사람들이 한바탕 왔다 간 뒤로는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옆방에서 어이고, 어이고, 소리 내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사진을 올려다봤다. 할머니도 누군가 저렇게 울어 주기를 바랐을까. 내가 인사도 없이 할머니를 보내서 손자새끼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서운해했을까.
   한 번 떠오른 생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밑줄 친 낱말의 사전적 의미로 적당한 것을 고르시오. 내가 틀린 국어 시험 문제다. 예시 상자 안에는 ‘끈 떨어진 뒤웅박’이라는 속담이 쓰여 있고 ‘끈’ 밑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정답은 ‘② 물건에 붙어서 잡아매거나 손잡이로 쓰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②번을 골랐다가 막판에 답을 고쳤다. 여러 번 생각한 끝에 내가 고친 답은 ‘④ 의지할 만한 힘이나 연줄’이었다. 나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 국어 선생님이 문제 풀이를 해 주면서 ④번은 비유적 의미라고, 문제에 분명 사전적 의미를 고르라고 적혀 있으니 답은 ②번이라고 했다.
   쉬는 시간에 사전을 찾아봤다. 그리고 시험지를 들고 국어 선생님한테 갔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선생님, 사전에는 ②번하고 ④번 뜻이 다 적혀 있는데요. 그러니까 둘 다 사전적 의미 아닌가요? 나는 연구실 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일이 커질까 봐 망설여졌다.
   할머니는 친척들 결혼식 같은 곳에 나를 꼭 데리고 다녔다.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자랑할 때도 많았다. 내가 한국 애들보다 훨씬 머리가 좋다고 했다. 칭찬을 받으면 우쭐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더 풀이 죽었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건 사실이었다. ‘끈 떨어진 뒤웅박’ 문제를 틀리고도 나는 여전히 국어 1등급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다. 장례식장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과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었다. 나도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모두 검은색이었다.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봤다. 검은 옷을 입으니 얼굴이 더 검어 보였다.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는데 누가 어깨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쏘오리.”
   그 사람이 미안한 얼굴을 했다.
   “잇쓰 오케이.”
   사람들은 내가 국어 1등급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나도 가끔 설명하기 귀찮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체리 왔어.”
   엄마가 안쪽을 가리켰다. 체리는 무슨,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박재희는 할머니 사진 아래 참 편하게도 앉아서 방울토마토를 먹고 있었다. 박재희 앞에 과일 접시와 떡 접시가 가지런히 놓였다. 얼핏 보면 친구 집에 놀러 온 애 같았다.
   나는 박재희 맞은편에 손을 모으고 섰다. 이제 내가 왔으니 일어나서 할머니한테 절을 해도 좋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할머니 사진 앞에 몸을 납작하게 숙여 절을 했고, 나는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박재희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앉아.”
   그래서 앉았다. 박재희가 떡 접시를 내 앞으로 슬쩍 밀었다. 같이 앉아 떡이나 먹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하얀 절편이 말랑말랑했다. 박재희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윗도리는 검은색이었다. 그래도 여기 오려고 신경을 썼다는 증거다. 찢어진 바지 틈새로 하얀 무릎이 보였다.
   어제 박재희가 나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었다. 나 혼자 간다고 했는데도 계속 따라왔다. 내가 자물쇠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도 꼭 안 잠가도 된다고, 안에 가져갈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냥 가자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자물쇠를 아주 빼서 가방에 넣고 병원으로 왔다. 자물쇠는 아직도 내 가방 안에 있다.
   우리는 말 없이 떡을 먹었다. 흰 절편과 쑥 절편을 번갈아 먹었다. 방울토마토와 오렌지도 먹었다. 뭔가 이상한 장면이긴 한데, 생각보다 이상하지 않았다. 바깥의 사람들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다 먹었다.”
   박재희가 나를 보고 웃었다. 장례식장에서 웃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나는 웃지 않았다. 박재희가 빈 접시를 겹쳐 손에 들고 일어났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박재희가 할머니 사진을 돌아봤다.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결국 절은 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박재희를 따라 나왔다. 계단 앞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고 들어오려고 했는데, 박재희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계단을 올라갔다. 어쩔 수 없었다. 1층으로 올라와 보니 밖이 깜깜했다. 하루 종일 지하에만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버스 정류장까지만 같이 가주기로 했다.
   “춥다.”
   박재희가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걸었다. 나도 추웠다.
   “한지용, 너 괜찮아?”
   얘는 왜 자꾸 나한테 괜찮으냐고 묻는지 모르겠다.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가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자꾸…… 박재희가 내 앞을 막아섰다.
   “묻잖아, 괜찮으냐고?”
   괜찮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괜찮지 않았다. 앞으로 더 괜찮지 않을까 봐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할머니도 없고, 엄마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웃었다. 엄마에게는 돌아갈 고향도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여기서도, 거기서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박재희 얼굴이 쑥 다가왔다. 어이없게도 박재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야, 너 뭐냐?”
   지금 울어야 할 사람은 나였다. 어디서 어떻게 울어야 할지 몰라 억지로 참고 있었을 뿐, 나는 아까부터 소리 내 울고 싶었다. 박재희가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뭔 짓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지만 이런 큰길에서 진짜로 그러진 않겠지 싶었다. 순간 박재희가 나를 끌어안았다. 내 등짝에 손바닥 두 개가 가만히 와 닿았다.
   가로등 불빛이 하얗게 흩어지고 사람들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길가 나무에서 붉은 잎이 몇 장 떨어졌다. 갑자기 귀가 먹먹하고 가슴뼈가 아팠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박재희 어깨에 얼굴을 묻고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진형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고 있다. 경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에도 관심이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도 내 목소리로 말하고 글 쓰려 한다.

2019/12/31
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