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하늘은 사춘기 소녀처럼 변덕스러웠다. 방학식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금세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아, 우산 없는데. 세령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민주의 자리를 살폈다. 다행히도 민주의 가방걸이에는 우산이 걸려있었다. 마침 뒤를 돌아보는 민주와 눈이 마주쳤다. 민주는 세령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날이면 민주가 세령을 데려다주고 집에 가곤 했다. 반대로 세령만 우산을 가지고 오는 날이면 세령이 민주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세령과 민주는 서로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준비물을 빌려주거나, 군것질을 사주고 받을 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세령과 민주에게 서로를 챙기고 세계를 나누는 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일이었다.
   세령과 민주는 일곱 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다. 17년 인생에 11년이니, 세령에게는 엄마보다 민주와 붙어 지낸 시간이 더 많은 셈이었다.

   세령의 부모님은 세령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이혼했다. 엄마도 아빠도 세령에게 왜 이혼을 하는지,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세령이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때 세령은 어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말해주어야 하지 않나. 세령은 종종 생각했다. 어른들이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우리를 더 어린아이 취급하기도 하고, 어른처럼 대하기도 한다고. 이건 비단 열일곱이라는 애매한 나이 때문은 아닐 거라고.
   이혼할 즈음, 엄마 아빠는 자주 다퉜다. 엄마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갔다. 처음에는 엄마가 밖에 나가는 게 좋았다. 마음대로 TV를 볼 수 있었으니까. 아침 일찍 나간 엄마는 4시에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포켓몬스터를 볼 때쯤 돌아왔다. 엄마는 더이상 세령이 TV를 많이 본다는 이유로 잔소리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6시에 방영하는 케로로를 보고, 8시에 방영하는 짱구를 다 볼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밤 10시에 하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령은 밤새도록 채널을 돌려가며 TV를 봤다.
   세령이 리모컨을 점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령의 집은 이사를 했다. 세령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았다는 아파트에서 학교 근처의 빌라로. 방은 똑같이 세 개였지만 거실 크기는 조금 작아졌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처럼 가장 큰 방이 안방이 되었다. 세령에게는 중간 크기의 방이 주어졌다. 가장 작은 방은 오빠에게 돌아갔다. 세령이 오빠보다 큰 방을 자치하게 된 건 오빠보다 세령의 존재감이 커서는 아니었다. 나이가 한참 많은 오빠는 그해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이미 기숙사 입사가 확정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효율적인 방 배정이었다.
   이사 가는 날, 세령은 난생처음 불안을 느꼈다. 사실 태어나 처음은 아니겠지만 세령이 기억하는 첫 번째 불안이었다. 엄마는 전날 외박을 했다. 세령은 몇 시가 돼도, 새집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령의 걱정과 달리 엄마는 이삿짐을 싣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고 새집에도 함께 갔다. 능숙하게 살림살이를 풀어놓는 엄마를 보며 세령은 안도하는 동시에 더이상 TV를 마음대로 못 보겠구나, 생각했다.
   주방에서 그릇을 하나씩 꺼내던 엄마가 세령을 불렀다.
   “설거지하고 나면 꼭 건조대 위에 뒀다가 물기가 다 마르면 찬장에 넣어둬. 자주 쓰는 밥그릇이랑 컵은 그냥 건조대 위에 둬도 되지만, 자주 안 쓰는 그릇들은 물기가 다 마르면 잘 정리해서 넣어둬야 돼. 냄비나 프라이팬은 뭐가 눌어붙었다고 철 수세미로 닦지 말고 물에 불려뒀다가 닦아. 철 수세미 쓰면 냄비 다 버려.” 엄마는 평소에도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잔소리가 길었다. 게다가 평소에 하는 것처럼 TV를 그만 보라거나, 책을 읽으라거나, 밖에서 돌아오면 손을 씻으라는 잔소리가 아니었다. 여덟 살 세령이 기억하기에는 차원이 높은 잔소리였다. 하지만 엄마는 세령이 이해하고 못 하고는 상관없다는 듯 잔소리를 이어갔다. 엄마의 의무를 이행하는 엄마 로봇처럼.
   엄마는 주방 정리를 끝내고 거실 정리를 시작했다. 휑했던 공간이 채워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렇게 금방 비워졌다 채워지는 일이라니. 어쩌면 이사는 그리 큰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세령은 생각했다. 단지 처음이기 때문에 거대해 보이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은, 심지어 오빠마저도 이사에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엄마의 잔소리는 거실에서도 이어졌다.
   “걸레질은 매일 못해도 청소기는 학교 갔다 와서 한 번씩 돌려. 십 분이면 되니까 미루지 말고. 화초에 물도 주고.”
   세령은 이 복잡한 일들이 얼른 끝나서 소파에 누워 TV나 봤으면 싶었다. 잔소리가 길어질수록 TV를 켜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그런 세령의 마음과 달리 엄마의 잔소리는 한동안 계속됐다. 주방에서 시작한 잔소리는 거실과 욕실, 세령의 방을 거쳐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반찬 뚜껑은 어떻게 사용해야 냉장고에 반찬 냄새가 배지 않는지 한참 설명했지만 그건 321개의 잔소리 중에 가장 쓸모없는 잔소리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령의 집에는 반찬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할만한 반찬이 없었다. 엄마가 걱정하던 자리에는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절대 냄새가 나지 않는 인스턴트와 레토르트 식품들이 가득했다.

   담임이 교탁을 두어 번 내리치자 웅성거리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세령도 창밖에서 담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농활 신청자 더 없지?”
   그 말에 민주가 다시 세령을 쳐다봤다. 세령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민주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세령의 마음은 확고했다. 이 더운 날씨에 벌레가 우글우글한 시골에 가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봉사 점수는 우체국이나 동사무소에서도 쉽게 채울 수 있었다.
   “보충 신청자들 땡땡이치지 말고. 방학 건강하게 잘들 보내고 와라. 이상!”
   “차렷, 경례!”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반장의 경례 소리에 맞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사제지간과 친구들 사이의 사랑과 유대를 어쩌고 해서 생겨난 인사법이었다. 한 학기 내내 했지만 할 때마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 유치한 인사도 당분간 안녕이구나. 세령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집으로 가는 동안에도 민주는 농활 타령을 했다. 한 번만 갔다 오면 삼 년 치 봉사 시간이 채워진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세령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갔다 오라니까? 지원이도 가고 나연이도 간다는데.”
   “아 걔네 둘이 붙어 다닐 거 아냐. 짝수 안 맞아서 안 돼.”
   “그냥 동사무소나 가자. 시원하고 벌레도 없고 얼마나 좋아.”
   “아 진짜.”
   “떡볶이 먹고 갈래?”
   “집에 가야 돼. 엄마 쉬는 날이야.”
   세령에게 민주는 가족과 같았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함께 있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영화를 보고 십 년 동안 함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나누지 못할 고민은 없었다.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세령의 기억이 시작된 이후로 가족이 보고 싶은 적은 없었지만 친구들이, 특히 민주가 보고 싶은 날은 많았다. 하루 이틀 못 보면 그랬다.
   쌍둥이 같은 두 사람에게 다른 단 한 가지는, 민주에게는 화목한 진짜 가족이 있다는 거였다. 밤이 되면 민주는 진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세령은 자신이 갖지 못한 걸 친구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같다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리고 그 다른 점이 자신의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라는 점이 아주 조금 막막해지곤 했다.

   집으로 돌아온 세령은 냉장고 문부터 열었다.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 안에 든 내용물은 열일곱의 한숨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가난한 고시생의 자취방 냉장고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우유와 과자, 레토르트 식품 몇 개가 들어있었다. 모두 세령이 사다 놓은 것들이었다. 이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건 세령밖에 없었으니까.
   무역회사에 다니는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가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엄마와 오빠가 떠난 식탁 위에는 아빠의 카드가 놓여 있었다. 세령은 아빠가 바빠서, 가족 대신 카드가 놓여 있어서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리했다. 세령은 여전히 밤새도록 TV를 보고 컴퓨터를 할 수 있었으며, 가지고 싶은 물건은 대체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세령이 뭘 하든, 뭘 사든, 뭘 먹든 간섭하는 사람은 없었다.
   세령은 한참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마트에서 사 온 파스타 소스와 면을 꺼냈다. 반 토막 난 양파와 햄도 함께 꺼냈다. 양파와 햄을 넣은 파스타는 어제도 먹고 그제도 먹었지만, 이 냉장고에는 다른 방안이 보이지 않았다. 파스타는 라면만큼 조리법이 간단하지만 혼자 먹어도 그리 처량해 보이지 않아서 자주 해 먹는 음식이었다.
   익숙하게 냄비를 꺼내 물을 받았다. 조르르 떨어지는 물이 냄비 안쪽에 생긴 희미한 선에 닿을 때 수도꼭지를 잠갔다. 늘 같은 양의 물을 받아 끓이다 보니 생긴 자국이었다. 세령은 이 선을 1인분 계량선이라고 불렀다. 그 단어를 소리 내서 말해본 적은 없었지만 속으로 그렇게 불렀다. 세령은 눈금 같은 선을 보며 생각했다.
   더 큰 냄비에 4인분의 물을 받았던 때가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세령에게는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던 기억이 없었다.
   물이 끓자 세령은 엄지와 검지로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게 스파게티 면을 집었다.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식용유를 두어 방울 떨어트렸다. 면끼리 달라붙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블로그에서 직접 찾아보고 배운 노하우였다. 엄마가 반찬 보관법 대신 차라리 이런 걸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면이 삶아지는 동안 양파와 햄을 썰었다. 어떤 날은 길게, 어떤 날은 네모나게 썰었다. 오늘은 잘게 다지기로 했다. 혼자 먹기 위해 하는 요리에 정해진 방법이나 규칙은 없었다. 엄마가 봤다면 잔소리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가 볼 리가 없었으므로 세령은 늘 마음대로 요리했다. 세령은 멋대로 칼질하며 이삿날 먹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의 파스타를 떠올렸다. 수십 개의 지점에서, 수십 명의 요리사가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을 파스타.

   짐 정리가 끝나고 엄마는 세령과 오빠를 역 근처에 새로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테이블 가득 맛있는 냄새가 채워졌다. 스테이크는 부드러웠고 크림소스 파스타에는 크고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했다. 엄마는 새우 껍질을 까서 세령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엄마가 평소처럼 웃고 있었기 때문에 세령은 잠시 불안을 잊었다. 하지만 세령이 불안을 잊어도 불안의 근원은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왔다. 외식을 하고 난 뒤 엄마는 세령에게 인사를 했다. 조심히 들어가라고.
   “엄마는 집에 안 가?”
   “엄마는 이제 외할머니 집에서 살 거야.”
   세령은 “왜?”하고 묻고 싶었지만 오빠는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세령도 가만히 있었다. 늘 그랬듯이 엄마가 외할머니 집에 갔다가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는 다시 집에 오지 않았다.
   여덟 살의 세령은 엄마를 기다리다가 기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혼자가 뭔지도 배웠다. 학교에 다녀왔을 때 아무도 없었던 건 전에도 같았지만 자고 일어나도 아무도 없는 건 처음이었다. 잠이 올 때까지 혼자 있다가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면 또다시 혼자였다. 텅 빈 집에서 아빠의 카드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게 혼자구나.

   세령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마트에서 장보기. 나이에 맞는 취미는 아니었지만 소꿉놀이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다 먹지도 못할 것들을 가득 사서 채워놓곤 했다. 그날부터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에는 인스턴트와 레토르트 식품이 쌓여갔다.
   혼자라는 건, 그러니까 엄마가 없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집에서는 혼자였지만 밖에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유치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인 민주도 있었고 초등학교에서 만난 나연이와 지원이도 있었다.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친구들과 있는 게 더 좋았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이나 세탁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일은 초등학생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스스로 무언가 해냈다는 묘한 성취감마저 느꼈다.

   하지만 세령이 스스로 괜찮다고 느껴도 오지랖 넓은 어른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세령이 막 중학교에 입학했을 즈음의 일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빠는 세령에게 교복을 입으라고 했다.
   “교복? 왜?”
   “결혼식장 가야 돼.”
   “누구 결혼식인데?”
   “이모할머니 아들 종필이 삼촌 알지? 그 삼촌 딸 세미언니 있잖아. 그 언니 결혼식이야.”
   하지만 세령은 종필이 삼촌도 세미언니도 기억나지 않았다. 중학생에게 사촌을 넘어가는 친척들은 다 똑같은 ‘잘 모르는 친척 1’이라는 걸 어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세령이 그 결혼식을 기억하는 건 종필이 삼촌도, 세미언니도 아닌 또 다른 ‘잘 모르는 친척 1’ 덕분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난생처음 보는 아줌마가 세령의 손을 꼭 붙잡고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아이고, 니가 세령이구나. 불쌍해서 어쩌니.”
   세령은 여덟 살에 혼자가 뭔지 알게 됐지만 그게 불쌍한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결혼식장 식당에 앉아 덜 삶아진 파스타 면을 씹으며 생각했다.
   나는 불쌍한 사람인가.
   그날 이후로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을 때면 꼭 면을 푹 삶아 먹었다. 덜 익은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그 아줌마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잘 볶은 양파와 햄은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에 뱃속에서 꼬르륵, 알람이 울렸다. 세령은 양파와 햄을 볶던 프라이팬에 삶은 파스타 면을 넣고 소스를 부었다. 약한 불에서 소스가 데워질 정도로 볶아내면 완성이었다.
   막 완성된 파스타를 접시에 담으려는 찰나, 조용하던 집안에 벨소리가 울렸다. 엄마였다. 세령은 잠시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ㅡ딸, 방학했어?
   “응.”
   ㅡ밥 먹었어?
   “이제 먹으려고.”
   ㅡ고기 먹으러 갈래? 엄마가 갈게.
   “밥 다 했어.”
   ㅡ소고기 사줄게, 소고기.
   세령은 기름진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튀김이나 도넛은 먹기만 하면 탈이 나서 입에도 대지 않았고, 남들은 다 좋아한다는 소고기나 치킨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막 밥을 먹으려던 찰나에 전화해 고기 타령을 하는 엄마가 번거롭게 느껴졌다.
   “밥 다 했다니까.”
   ㅡ그럼 내일 먹자.
   “알았어.”
   방학의 첫날을 엄마에게 헌납해야 한다니. 내키지는 않았지만 딱히 거절하기도 그랬다. 세령에게 엄마는 달갑지 않지만 일말의 의무가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먼저 전화를 하거나 애교를 부리는 딸은 아니었지만 생일이나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은 꼭 챙겼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면 받기 싫어도 세 번 중 두 번은 받았고 엄마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러 갔다.
   엄마와 떨어져 자란 나도 불쌍하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자란 엄마도 불쌍하니까. 가끔 밥 정도는 먹어줘야지.

   다음 날 세령은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 아빠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직 자고 있는 세령을 깨웠다. 세령은 잔뜩 잠에 취한 채로 식탁 앞에 앉았다.
   아빠와 식탁 앞에 마주 앉는 게 얼마 만이더라.
   “이제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 거야.”
   그 말만 던지고 아빠는 일어섰다. 엄마와 이혼할 때와 똑같았다. 앞뒤 맥락도 없었다. 시골에서 한평생을 사시던 할머니가 왜 갑자기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얘기가 오고 간 건지, 오늘이라고, 날짜는 또 누가 정한 건지. 세령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아빠 갔다 올게.”
   “응.”
   세령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현관에 배웅 나가지 않았다.

   장맛비가 그치자 매미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세령은 매미가 우는 나무 아래를 지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새가 지저귀는 기본 컬러링이 오늘따라 거슬렸다.
   ㅡ여보세요.
   “엄마. 오늘 못 만날 것 같은데.”
   ㅡ왜?
   “할머니 올라오신대.”
   ㅡ할머니? 갑자기 왜?
   “이제부터 모시고 산대.”
   ㅡ잘됐네. 진작 그렇게 하지. 그럼 할머니도 모시고 나와.
   “할머니도?”
   ㅡ응, 언제 밥 한 번 사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네.
   어른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세령은 생각했다. 세령은 지금까지 엄마가 할머니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밥을 먹자니. 이혼한 남편의 어머니와? 세령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불편할 것 같았다.
   “이따 봐서.”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세령이 엄마에게 하는 ‘봐서’라는 말은 거절의 표현이었다. 세령은 엄마가 눈치를 발휘해주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이십 분 뒤면 할머니가 터미널에 도착할 것이다.

   할머니는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세령이 하나를 들기에도 무거운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 등에는 배낭까지 메고 있었다. 세령은 짐을 택배로 부치지 않고 손수 들고 온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말하진 않았다. 말을 시작했다가는 택배를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어떻게 이 많은 짐이 하루 만에 시골에서 서울까지 올 수 있는지, 오는 도중 누군가 짐을 빼돌리거나 훔쳐가지 않는지 설명해야 할 게 뻔했다.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는 조용했다. 할머니는 아빠처럼 수다가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할머니가 먼저 태어나셨으니 아빠가 할머니를 닮은 거겠지. 세령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쾌활한 편이었지만 가족들과 있으면 입이 무거워졌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세령은 할머니 몰래 수신 거부 버튼을 눌렀다. 오늘 만나자는 의사를 밝혔으니 다시 전화가 올 게 뻔했지만, 할머니 옆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면 톡이나 보내야지. 할머니 마중을 나가느라 그런 거니까 엄마도 이해하겠지.

   집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보자기로 싼 짐에서는 각종 나물과 애호박, 된장 따위가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 시골 출신이오’하는 시골표 짐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가 이걸 어떻게 들고 오셨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점심은 먹은겨?”
   “피자 먹었어요.”
   세령은 터미널에 가기 전에 피자를 네 조각이나 먹었다. 밥은 한 공기를 다 비우지 못하는 세령이었지만 피자나 햄버거는 끝없이 먹을 수 있었다. 여고생의 위는 할머니의 보따리만큼이나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세령은 나가기 직전에 피자를 먹었고 아직 배부르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할머니의 뒷모습. 깍둑깍둑 썰어지는 호박과 무.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 텔레비전 속에서나 볼 법한 풍경에 세령이 흥미를 가진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청국장 냄새가 집에 가득 찼다. 세령은 생전 처음 맡는 청국장 냄새에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세령은 전화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아, 전화 받기 싫은데. 빨리 톡 보낼걸.
   “여보세요.”
   ㅡ왜 전화를 안 받아?
   “터미널에서 할머니 모시고 왔어.”
   ㅡ할머니 오셨어? 그럼 소고기 먹으러 가자.
   “밥 다 하셨어.”
   ㅡ할머니한테 말씀 안 드렸어? 같이 고기 먹으러 나오라니까. 어제 얘기했잖아.
   엄마는 소고기에 한이 맺힌 걸까. 이럴 때는 사춘기 소녀처럼 단호하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하기 스킬을 쓰면 엄마도 한 걸음 물러났다.
   “까먹었어. 할머니가 부르신다. 끊어.”
   ㅡ알았어.
   내가 너무했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잊기로 했다. 엄마는 나한테 훨씬 너무한 적이 많았는데, 뭘. 전화를 받은 게 어디야.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던 것처럼 할머니가 세령을 불렀다.
   “밥 먹어라!”
   세령은 엄마에게 딸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시골에서 힘들게 올라오신 할머니에게도 손녀딸의 의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식탁 앞에 다시 앉았다.
   “저 진짜 배부른데.”
   피자를 네 조각이나 먹었다는 세령에게 할머니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도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세령은 숨을 참고 청국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10년 만에 다시 가족이 생긴 소감. 매우 불편하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아빠가 출근하기 전부터 일어나 믹서로 과일을 갈았다. 잠귀가 밝은 세령은 자주 뒤척였다. 아침에 한 번 깨고 다시 잤지만 개운하지 않았다.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하게 움직이는 할머니가 자신을 너무 게으른 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게으른 이유를 엄마가 없이 자라서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서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 없었다. 거실에서 밤새 TV를 볼 수도 없었다. 같은 이유에서였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곧바로 밥을 하기 시작했다. 열 시쯤 일어난 세령이 방에서 나오면 “밥 먹어”를 외쳤다. 아침을 먹어버릇하지 않은 세령은 깨작깨작 먹는 시늉만 하다 식탁에서 일어섰다. 그럼 할머니는 “다 먹은겨? 고양이 새끼마냥 먹네” 하며 그릇들을 치웠다. 그리고 다시 점심 준비를 시작해 열두 시가 되면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정말이지 세령은 이해할 수 없는 식사 패턴이었다.
   식탁에는 전보다 많은 반찬이 올라왔지만 세령에게는 모두 낯설고 맛없는 음식일 뿐이었다. 계란후라이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밥이나 라면, 1인분의 파스타가 그리웠다. 방에 있으면 거실에 혼자 있을 할머니가 신경 쓰였고, 거실에 있으면 어색한 기류를 견디기 힘들었다. 이래도 저래도 불편했다. 가출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가능할 리 없었다.
   고민하던 세령은 민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농활 갈래?]
   학교에서 방학마다 보내는 농촌 봉사 활동을 신청하면 일주일은 집을 나와 있을 수 있었다. 이 더운 날 시골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건 끔찍했지만 당장 세령에게는 집을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민주는 신이 나서 담임선생님에게 자기가 신청하겠다고 했다. 세령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원을 옮기거나 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하는 등의 중요한 일은 전화로 얘기하곤 했다. 세령은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다 결정한 일을 아빠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작 아빠는 별 의미를 두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도 아빠는 쿨하게 다녀오라는 한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세령은 어쩐지 힘이 빠져 침대에 풀썩 누웠다. 커튼 틈 사이로 가늘지만 강한 햇빛이 들어왔다.
   선크림은 꼭 가지고 가야지. 그나저나, 이제 할머니한테 말해야 하는데.
   할머니에게 말하는 게 아빠에게 말하는 것보다 더 큰 관문처럼 느껴졌다. 할머니가 불편해서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서운해하시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세령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안 갈 거야?
   그건 아니지. 절대!

   오늘의 점심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세령은 청국장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 세령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내일부터 봉사활동가요.”
   “봉사 활동? 어디로 가는겨?”
   어디더라.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세령에게 어디로 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시골이요. 학교에서 다 같이 가는 거라 잘 몰라요.”
   다 같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가니까, 가야 되니까 가는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렇게 핑계를 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자고 오는겨?”
   “네. 이박 삼일이에요.”
   “그려.”
   할머니는 마치 아빠처럼 그래, 한마디를 하곤 더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세령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세령은 신발 끈을 다시 묶으며 통화에 귀 기울였다.
   “아이구, 을마나 착한지 몰러. 시골까지 봉사 활동을 다 간다구 허네.”
   분명 다 같이 가는 거라고 했는데도 할머니는 특별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령의 칭찬을 계속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얘기를 할 때마다 손끝이 저릿저릿한 기분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다행히도 이제 도망칠 시간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와 있는 게 불편해서 도망치는 주제에, 어느 때보다 밝고 씩씩하게 인사했다. 할머니는 전화를 급하게 끊으며 굳이 일어나 현관까지 나오셨다. 세령은 고개를 까딱 숙이고 밖으로 나섰다.

   봉사 활동 신청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45인승 버스 한 대가 가득 찼다. 아이들은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과자와 음료수를 나눠 먹으며 잔뜩 들떠있었다. 세령은 그 틈에서 웃다가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울적해졌다. 일주일 동안 집에 혼자 있을 할머니를 생각하면 여덟 살 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혼자가 뭔지 배워야만 했던 초등학생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할머니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하지만 역시 낯간지러웠다. 세령은 불 꺼진 액정만 바라보다 핸드폰을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세령아. 세령아, 일어나.”
   누군가 세령의 어깨를 흔들며 깨웠다. 세령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주가 아니었다. 엄마였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엄마여서 꿈인 걸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멈췄다. 세령은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을 보자 ‘하명리 마을회관’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아마 이박 삼일 동안 묵을 곳인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민주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세령이 쳐다보자 민주가 입 모양으로만 ‘엄마’라고 말했다. 세령은 다시 핸드폰을 봤다. 할머니, 아빠, 엄마. 엄마, 아빠, 할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괜히 카메라를 켜서 한적해 보이는 시골길을 찍었다. 맑은 하늘과 양쪽으로 펼쳐진 논밭, 좁고 길게 난 흙길. 명절 때마다 가던 할머니 집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마을회관 안에는 열댓 명의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은 부부였고, 반은 홀로 남은 할머니나 할아버지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열 개 조로 나누어 한 집에 한 조씩 배정해주었다. 세령과 민주는 같은 집에 가게 되었다. 올해 여든한 살이라는 김병숙 할머니의 집이었다. 세령은 김병숙 할머니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따라갔다. 백발에 단발머리인 김병숙 할머니. 양파와 고추 농사를 짓는 김병숙 할머니. 할머니와 동갑인 김병숙 할머니.
   세령과 민주에게 주어진 역할은 양파 까기였다. 세령은 능숙하게 양파를 반으로 자른 뒤 껍질을 벗겼다. 낑낑거리며 양파의 끝부터 껍질을 벗겨내던 민주는 세령이 양파 까는 방법을 보고 금세 따라 했다.
   “대박이다, 진짜. 너 이거 어디서 배웠어?”
   “블로그에서.”
   “초록창이 엄마보다 낫네.”
   민주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세령은 그냥 웃었다. 생각해보면 상처가 될 법도 한 말이었지만 민주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민주와 ‘먼 친척 1’의 차이였다.

   양파를 몇 자루 까고 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모인 아이들에게 손수 밥상을 차려주었다. 된장찌개와 각종 김치,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물과 생선구이, 잡채와 소시지가 상 가득 채워졌다. 고기보다 밀가루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은 소시지는 이제 급식으로도 나오지 않는 반찬이었지만, 어르신들이 고심해서 정한 아이들 맞춤 반찬인 듯싶었다.
   세령은 밥상을 보며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할머니를 생각했다. 아니, 생각났다. 굳이 생각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냥 떠올라버렸다.
   역시 가족은 번거로워. 밥 먹고 할머니에게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겠다.
   차려진 게 많은 만큼 설거지도 산더미였다. 아이들은 사다리 타기를 해서 설거지 당번 다섯 명을 뽑기로 했다. 핸드폰에도 사다리 타기 어플이 있었지만 열다섯 명까지만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45개의 선을 커다란 달력 뒷면에 직접 그렸다. 세령은 운이 좋았다. 민주와 지원, 나연 모두 당번이 되어 마을회관 공터에 있는 수돗가로 그릇을 옮기느라 바빴다. 민주와 눈이 마주치자 세령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민주를 놀렸다. 민주는 비슷한 표정으로 답하고 수돗가로 향했다.
   이제 문자를 보낼 타이밍인가.
   세령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문득 할머니가 문자메시지를 보거나 보낼 줄 아시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할머니를 생각해서 문자를 보낸 손녀’ 역할을 하는 거였기 때문에, 세령은 곧 키패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저 잘 도착했어요.]
   지움.
   [식사는 하셨어요?]
   지움.
   지움. 지움. 지움. 삭제. 삭제. 삭제.
   한참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는데 차가운 물줄기가 세령의 등을 적셨다. 놀란 세령이 돌아보니 민주가 웃으며 서 있었다.
   “야!”
   세령은 휴대폰을 대충 주머니에 꽂고 아이들에게 뛰어갔다. 세령은 페트병에 물을 받아 민주에게 물을 뿌렸고, 민주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물총으로 세령을 저격했다. 공터는 순식간에 물싸움 장소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호스로, 양동이로, 페트병으로 사방팔방 물을 뿌리며 뛰어다녔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비명이 울렸다. 세령이 다시 물을 받으러 수돗가로 뛰어갈 때, 주머니에 꽂아놨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헉!
   세령은 재빠르게 핸드폰을 주웠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괜찮아?”
   액정이 까맣게 나가 있었다.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도 까만 화면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령의 낯빛이 핸드폰 화면처럼 어두워졌다.
   “아, 어떡해. 고장 났나 봐.”
   아이들의 표정도 세령을 따라 울상이 되었다. 이박 삼일 동안 스마트폰 없이 지내야 한다니. 차라리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게 낫겠다는 표정이었다. 물싸움은 세령의 핸드폰이 운명하시며 시시하게 종료되었다.

   마을회관에는 작은 목욕탕이 딸려 있었다. 작년에 군청에서 지어줬다나 뭐라나. 김병숙 할머니는 막 씻고 나온 세령과 민주 옆에서 높으신 분들이 이 마을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령과 민주는 심드렁했다. 45명의 여자애들이 한꺼번에 씻고 나왔는데 헤어드라이어가 한 대뿐이라니. 순서를 기다리느니 밖에서 뛰어다니는 게 빨리 마르겠다. 세령과 민주는 드라이어를 포기하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털며 목욕탕을 나왔다.
   “세령아. 잠깐만.”
   담임선생님이 세령을 불렀다. 세령은 민주와 담임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봤다. 민주도 영문을 모르는지 갸웃거렸고, 선생님은 세령 혼자 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은 궁금증과 경계심을 함께 품고 선생님을 따라갔다.
   선생님은 밥을 먹었던 마을회관 거실 한구석에 세령을 앉히고 부엌으로 향했다. 곧 부엌에서 따뜻한 믹스커피 두 잔을 들고나왔다. 한 잔을 세령에게 내밀었다. 세령은 커피를 받았다. 평소에는 입에 대지 않는 믹스커피였지만 물놀이를 해서인지, 핸드폰을 깨 먹어서인지, 목욕을 하고 나와서인지 유난히 고소하고 달게 느껴졌다. 정작 커피를 타 온 선생님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거실 바닥에 종이컵을 내려놨다. 믹스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잠시 잊었던 의문과 경계가 다시 피어났다. 세령도 종이컵을 바닥에 내려놓고 선생님을 봤다. 평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선생님은 무슨 죄라도 지은 것마냥 말을 망설였다.
   “왜 부르셨어요?”
   세령의 물음에 선생님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결심한 듯 세령을 바라봤다.
   “세령아.”
   “네.”
   “놀라지 말고 들어.”
   그냥 빨리 말이나 했으면 좋겠다.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물끄러미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세령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선생님은 다 이해한다는 듯 세령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8시에 서울 가는 차가 있거든. 그거 타고 올라가야 할 것 같아.”
   8시 차를 타고, 올라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차를 타고, 올라간다.
   세령은 방금 자신에게 주어진 몇 개의 단어를 곱씹었다. 할머니가? 김병숙 할머니랑 동갑인 할머니. 혼자 점심과 저녁을 먹었을 할머니. 집에서 청국장을 끓였던 할머니. 보따리를 지고 메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던 할머니가?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가? 좀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말들이었다.
   “터미널까지는 선생님이 데려다줄게. 지금 짐 챙겨서 나와.”
   세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눈물이 주르륵 흐르거나 손이 떨리진 않았다. 선생님은 작게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세령도 따라 일어섰다.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낼걸.
   아니, 전화할걸.
   그냥 한 번 해볼걸.
   슬픔보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버스에는 빈자리가 더 많았다. 세령의 표는 복도 쪽 자리였지만 빈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볼 수 있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세령은 공중전화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목소리가 눈에 보인다면 지금 아빠의 목소리는 쩍쩍 갈라진 논일 것 같았다.

   세령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쭈뼛거리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고요한 슬픔이 가득할 것 같았던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아직 해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빠는 피곤한 표정으로 분향실에 서 있었다. 큰고모와 작은 고모, 막내 고모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빠 옆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밤늦도록 손님이 이어졌다. 대부분 아빠의 손님인 듯했다. 손님이 이어지는 만큼 조의금 봉투도 많아졌다.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바쁘게 산 일종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세령은 사촌 언니와 함께 신발을 정리하고 음료수를 날랐다. 마치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것 같았다. 많이 슬프지도 않았지만 슬퍼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아빠와 고모들에게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엄마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핸드폰이 고장 났으니까 안 해도 되겠지.
   그리고 이제 엄마는 할머니의 며느리도 아닌걸.
   이제가 아니라 예전부터 아니었지. 십 년 전부터.

   그런데 다음 날, 엄마가 왔다. 정갈한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세령은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오는 엄마를 봤지만 모른 척하고 주방 쪽으로 숨었다. 숨어서 엄마를 지켜봤다. 엄마는 곧장 분향실로 들어갔다. 세령은 주방에서 나와 신발을 정리하는 척하며 분향실 안을 살폈다. 엄마가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었다. 묵념을 끝낸 엄마는 아빠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세령은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빠가 불쌍해서 우는 건가?
   분향실에서 나온 엄마는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고모들에게 다가갔다. 막내 고모는 엄마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세령의 기억에 막내 고모는 유난히 엄마를 싫어했다. 어떻게 어린 자식을 버리고 나갈 수 있냐며, 세령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살지, 어떻게 그렇게 모질 수 있냐며 엄마 욕을 했었다. 세령은 엄마가 아빠를 보고 우는 것보다 고모가 엄마를 끌어안고 우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죽음이란 어떤 유대관계를 만들어주는 걸까? 아니, 그보다, 나도 울어야 하나?
   세령이 고민할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먼 친척 1’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야, 여든이 넘었는데 병도 없이 하루아침에 돌아가셨으면 호상이지, 호상이야!”
   그건 세령이 태어나서 들은 말 중 가장 이상한 말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호상이라니. 세령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모들이 그 아저씨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막내 고모는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장면이 기이했다. 세령은 다시 생각했다.
   나도 울어야 하나? 장례식장에서 우는 게 손녀딸의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데.
   세령은 엄마 앞에 육개장을 갖다 줬다. 엄마가 울지 않는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 조금 곤란해졌다. 민주에게 이 상황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핸드폰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보다 핸드폰이 고장난 게 더 슬프다면 슬펐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세령은 스스로가 패륜아처럼 느껴졌다. 이 생각도 민주에게 말하고 싶었다. 세령은 동전 지갑을 들고 조용히 장례식장을 나왔다. 공중전화를 찾아 병원 본관으로 향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뛰어오고 있었다. 민주였다. 반가워서 하마터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 뻔했다. 세령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민주는 쉬지 않고 세령 앞까지 달려왔다.
   “야, 괜찮아?”
   숨을 헉헉 몰아쉬며 민주가 물었다.
   “괜찮아. 네가 더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세령이 대답했다. 민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세령을 보더니 이박 삼일치 짐이 든 커다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배낭을 뒤적이더니 티슈를 꺼내 세령에게 건넸다. 세령이 멀뚱히 서 있자 민주가 티슈를 뽑아 세령의 볼에 갖다 댔다. 볼에 닿은 티슈가 젖어 들어갔다. 눅눅하게 젖어 볼에 달라붙었다. 민주는 젖은 티슈를 떼어줬다. 눈물에 헤진 티슈를 보고서야 세령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을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엄마가, 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고운

외로울 땐 시를 읽자.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자.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자. 지키지 못할 다짐, 실은 지킬 마음도 없는 다짐을 매일 밤 되뇌고 있다. Twitter @at_1226456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