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가파른 산 사이를 말발굽처럼 굽이도는 길 가운데에 돌연 나타났다. 3층 석조 건물이었다. 희끗해진 푸른색 지붕 아래로 작은 간판이 걸려 있지만 ‘로스트 레이크 호텔’이라는 글자는 희미해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 차 한 대가 멈추고 차에서 소년과 소녀,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내렸다. 집 앞에서 세 사람은 낯선 곳을 살피는 양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르내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과 기름을 먹여 닦아 반질반질한 계단 손잡이. 길쭉한 창으로 스며들던 광선속에서 춤을 추던 미세한 먼지. 집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이따금 눈 쌓인 침엽수의 신선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문틈으로 스며들면 집 안 전체에서 숲의 냄새가 생생히 풍겨났다. 집 안 구조라면 눈을 감고도 훤했다. 2층에는 좁은 복도를 마주보고 네 개의 침실이 이웃해 있고 삼각 지붕 아래 3층에는 주인 내외의 침실과 작은 응접실이 있었다. 1층은 너른 창으로 둘러싸인 카페였다. 벽난로 옆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아침을 먹었다. 깔끔한 주인 내외의 손길이 곳곳이 닿은 호텔의 최대 장점은 아름다운 주위 풍경이었다.
   “문 닫았나봐.”
   소년이 문 앞에 걸린 ‘클로즈드(Closed)’란 팻말을 가리키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집은 쇠락한 티가 역력했다.
   “아직 안 연 건지도 몰라.”
   소녀가 문 앞으로 다가가 인기척을 살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신가요.”
   문 밖으로 나온 백발의 풍채 좋은 여자를 세 사람은 알아보았다. 호텔의 여주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소년이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주인은 아는 사람인가 싶어 소년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기억에 없었다.
   “커피 한잔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소년의 옆에서 선글라스를 낀 자그마한 여자가 말했다.
   “배도 고프고요.”
   소년이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죄송하지만 이젠 영업 안 해요. 보이죠?”
   주인이 문에 걸린 팻말을 가리키고는 문을 닫으려 했다.
   “강아지는요?”
   소녀의 말이 주인을 문 밖으로 다시 불러냈다.
   “여기 강아지 있었잖아요. 하얀 강아지. 이름이 코코구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예전에 여기 묵은 적이 있어요. 딱 이맘때였죠.”
   소녀의 엄마가 대답했다.
   “그때 정말 좋았어요. 그랬지?”
   소녀가 동의를 구하듯 말하자 소년과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얼굴에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서 선물을 발견한 듯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고 주인은 좀 놀랐다.
   “그때 코코랑 놀았어요. 여기 마당에서요. 자고 일어났더니 눈이 쌓여 있어서 우리는 막 소리 지르며 마당으로 나왔어요. 코코도 좋아서 우릴 따라 나왔죠. 하얀 눈밭 위에서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요. 계속 그 모습이 생각났어요. 잠깐 코코만 보고 가면 안 될까요?”
   “강아지는 죽었어.”
   주인의 말에 소녀의 얼굴이 굳었다.
   “거봐. 가자.”
   소년의 말에 소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세 사람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낯빛이 모두 파리했다. 산에 오면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주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세 사람이 걸친 겉옷은 산속 공기를 견디기에는 변변찮았다. 물색없이 이런 날씨에 호수로 나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이맘때 호수로 나들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세 사람은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주차해둔 차 쪽으로 걸어갔다. 소년이 메고 있는 배낭이 허리까지 축 늘어져 있었다. 주인은 마치 자신이 세 사람을 쫓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지랖도 넓다고 남편은 그녀에게 늘 말했지만 그 오지랖 때문에 호텔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남편은 말만 많았다.
   “저기요.”
   주인의 목소리에 세 사람이 뒤돌아보았다.
   “강아지는 없지만 커피 한잔 하고 가요. 마침 한잔 마시고 싶어서 커피를 내리던 중이었수. 집이 좀 어수선하긴 한데, 들어와요.”
   주인이 문을 활짝 열었다.
   카페 안은 냉기가 흘렀다. 구석에는 크고 작은 박스들이 쌓여 있고 포장재들이 널려 있어 주인 말대로 어수선해 보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세 사람의 기억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세 사람은 예전에 그랬듯이 커다란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히터를 켰으니 조금 있으면 따뜻해질 거예요.”
   주인이 커피포트를 가져다 세 사람에게 커피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 자리가 제일 좋지.”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창밖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파르스름한 하늘 아래로 울창한 침엽수가 레이스커튼처럼 물결쳤다. 저 멀리 골짜기 사이로 자욱한 안개가 피어나고 그 사이로 호수가 언뜻 보였다. 안개에 가린 호수가 작고 푸른 얼음 조각처럼 보였다.
   주인은 커피를 마시며 세 사람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소녀는 열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다. 털모자를 눌러쓴 소년은 소녀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다. 짐작컨대 소녀는 제 오빠보다는 야무질 테고 소년은 넉살이 좋고 별 해 끼치지 않는 자잘한 사고는 좀 치고 다닐 것 같았다. 주인의 아들도 소년만 할 때 툭하면 여기저기 다쳐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코에 반창고를 붙이고 입술에 터진 자국이 있는 소년도 주인의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늘 가방에 축구공을 넣고 다니는지 궁금했다. 소년의 배낭은 축구공 너덧 개는 넣고도 남을 만큼 컸다.
   “코코는 석 달 전에 죽었어. 딱히 아픈 데는 없고 늙어서 죽었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벽난로 앞에 자는 듯 죽어 있더라. 코코가 제일 좋아하던 자리였거든.”
   소년과 소녀는 벽난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저기 있어.”
   주인이 마당을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주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가여워서, 나이들면 죽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가여워서 제일 좋은 관을 사서 묻었어. 다 컸다고 해도 자그마해서 아기용 관에 쏙 들어가더라. 그 전에는 내 남편이 죽었고. 그 사람은 장작을 나르다 허리가 삐끗해서 눕더니 그대로 하늘나라로 가버렸어. 영감 죽은 건 어찌어찌 견디겠는데 키우던 개가 죽으니 더 못 버티겠더라고. 그래서 산 아래에 방 하나를 구해서 살다가 오늘 마지막으로 정리하려고 올라왔어. 그러니 마침 잘 왔수, 애기 엄마. 그런데 코코 강아지일 때면 꽤 오래 전인가? 여기서 묵고 간 게?”
   “십 년 전쯤, 네, 그쯤 됐나봐요.”
   아이들 엄마가 대답했다. 여자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여자는 나이들어 보였다. 늙었다기보다는 지쳐 보였다. 목에 두르고 있는 화사한 머플러 색 때문에 오히려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주인은 생각했다.
   “아주 어릴 때였을 텐데 기억이 난단 말이지?”
   주인이 묻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가끔 여기 얘기를 했거든요.”
   “가끔이래!”
   소년이 기막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 좀 자주요.”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쳐 말했다.
   “아주아주 자주겠지.”
   동생이 살짝 흘겨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이 말했다.
   “쟤는 매일 호텔 놀이만 하고 놀았어요. 늘 자기는 호텔 주인이고 저는 손님이었죠. 아, 가끔 코코 역도 했어요. 멍멍,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헐, 멍멍이라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소년은 동생과 주인을 웃겼다.
   “그런데 호텔 주인 역할은 어떻게 하는 거지?”
   주인이 물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딱 좋을 때 오셨습니다. 오늘은 날이 맑아서 별이 잘 보일 겁니다.”
   “다들 잘 잤나요? 춥지 않았어요? 혹시 자다가 점박이올빼미 소리 들었어요?”
   “얘들아, 난로에 마시멜로 구워볼래?”
   “이 아이 이름은 코코야. 살살 쓰다듬어주면 좋아해. 그래, 그게 예뻐하는 거야.”
   소년과 소녀가 숙달된 배우가 대사를 하듯 번갈아 말했다. 그것은 주인과 남편이 평생 수도 없이 해온 말이었다.
   오십 년 가까이 호텔을 운영하는 동안 별일이 다 있었다. 태풍에 유리창이 다 깨지기도 하고 눈 때문에 며칠씩 고립되고 날이 가물 때는 물이 안 나와 손님을 못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손님들이었다. 너그럽고 유쾌한 손님들도 있었지만 까다롭고 괴팍한 손님들도 많았다. 저 아래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사람들이 마치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인 내외를 종 다루듯 들볶았다. 하지만 돈을 벌자면 감내해야 했다. 그 덕에 아들 셋을 다 먹이고 가르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론 보람도 있었다. 오늘 같은 순간 말이다. 다시 찾아주는 손님은 수고에 대한 작은 보답처럼 느껴졌다. 비록 이 세 사람은 좀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아까 배고프다고 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면 말이지. 마침 오늘이 냉장고 비우는 날이거든. 달걀은 없지만 밀가루랑 버터는 있으니 뭐 먹을 만한 걸 만들 수 있을 거야.”
   도와주겠다고 나선 아이들과 엄마는 주인의 만류에 위층으로 쫓겨 올라갔다. 삐걱 삐걱, 이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에서 소리가 났다. 복도에 걸린 거울은 오래 닦지 않은 탓에 희뿌예져 세 사람의 윤곽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었다. 오른쪽 복도 끝, 그곳이 세 사람이 예전에 묵었던 방이었다. 세 사람은 가만히 문을 밀고 방으로 들어갔다.
   채광 좋은 방의 연푸른색 벽지는 오후의 햇살에 창백하게 빛났다. 침대 시트에서 세제 향이 희미하게 났다. 나무 바닥에 쌓인 먼지 위로 난 세 사람의 발자국 외에 모든 것이 기억 속 모습과 똑같았다. 세 사람은 나란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창밖으로 팔을 넓게 펼친 전나무가 보였다. 그때 세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누운 채로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달은 떴던가. 떠 있어도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소년과 소녀는 그 밤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때는 어린아이였던 소년과 소녀는 낯선 소리에 문득 깨어나 두려움에 떨다 옆에서 나는 편안한 숨소리에 안도하며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소리의 주인이 점박이올빼미라는 건 다음날 주인이 알려줬다. 그 주인은 죽고 지금은 없다. 이 집에서 점박이올빼미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잠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별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해줬는데 한 가지는 잊었는지 혹은 몰랐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별똥별이 떨어진다는 것 말이다. 소년과 소녀는 검푸른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그것도 몇 번이나 봤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황급히 소원을 빌었지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래층에서 내려오라고 부르는 주인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카페는 그 사이에 훈훈해져 있었다. 장작불이 벽난로 안에서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었다. 식탁 위에 팬케이크가 탑처럼 쌓여 있었다. 주인은 넉넉한 풍채만큼 손이 큰 편인데다 솜씨도 좋았다.
   연방 감탄하고 감사하며 먹는 세 사람을 바라보는 주인은 흡족해졌다. 몹시 춥고 허기져 보이던 그들의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파리했던 소녀와 소년의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많은 양의 팬케이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주인은 내심 놀랐다. 그들이 너무 허겁지겁 먹었던 것이다. 정말 오래 굶주렸던 것처럼 정신없이 먹었다. 접시는 이내 말끔히 비워졌지만 소년과 소녀는 아직 부족하다는 얼굴이었다. 주인은 해지기 전에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이제 다 먹었으니 가줬으면 싶었다.
   “산속은 해가 일찍 떨어져요.”
   세 사람은 주인의 말을 알아듣고 서둘러 커피잔을 비웠다.
   “설거지는 저희가 하게 해주세요.”
   소년이 예의 그 싹싹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잘해주셨으니까요.”
   소녀가 공손하게 말했다.
   주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설거지를 시작했다. 많이 해본 솜씨였다. 아이들 엄마는 테이블을 치웠다. 민첩하고 깔끔한 솜씨였다. 주인은 조금 전 세 사람이 어서 떠나줬으면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들은 이곳을 정말로 좋아해서 좀더 머무르고 싶은 것뿐이다.
   세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주인이 마당으로 따라나섰다. 아이들은 코코의 무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주인은 가장 크고 잘생긴 나무를 가리켰다. 그 아래 작은 무덤이 있었다. 한때 살아 움직이던 귀여운 생명체를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약속처럼 무덤 둘레로 둥글고 고운 돌멩이가 정성스러운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 손을 맞잡았다. 기도를 드릴 모양이었다. 기도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주인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생각했다. 별나게 정이 많은 애들이군.
   아이들 엄마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 주인은 가슴이 철렁했다. 여자가 절벽 끝으로 날려가고 있었다. 아니다. 날린 것은 여자의 스카프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듯 위태롭게만 보였다. 그럴 리 없다. 절벽 끝에는 주인의 남편이 튼튼하게 박아놓은 울타리가 있다. 주인은 조용히 여자에게 다가갔다.
   “안에서 볼 때랑은 다르죠?”
   여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인을 바라보더니 황급히 미소 지었다.
   “네, 정말 높네요.”
   “아주 깊죠.”
   “아득해요.”
   “그거 알아요? 여기에 소문이 있어요.”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 말이죠?”
   “알고 있었수?”
   “다른 손님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맞아요. 저 아래 골짜기는 온통 유령 천지라지. 우리집에도 종종 나타나고. 유령을 보겠다고 일부러 묵는 손님도 있었으니까.”
   “정말인가요?”
   “당연하죠. 유령도 이왕이면 푹신한 침대 위에서 자고 싶겠지.”
   주인이 여자를 향해 씩 웃었다.
   “여기서 떨어져 죽은 사람이 정말 있나요?”
   “설마.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주인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나라면 호수로 갈 거요. 거기야말로 죽기 딱 좋은 곳이지. 아름답고 조용하고.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거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잖아요.”
   “여름에나 그렇지. 하지만 첫 서리가 내리고 저 밑에서 흰 안개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곳에 있는 건 유령뿐이야. 호수 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유령을 보면 얼마나 부럽던지. 최소한 손님 뒤치다꺼리는 안 하고 살겠지. 아,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지칠 때가 있잖우. 일은 끝이 없는데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사는 건 고달프고. 그럴 때 나도 종종 갔었수. 딱히 뭐하자는 건 아니었지만 가서 물을 보고 있자면 좀 견딜 만하더군. 여기서 내가 사라지면 남는 사람들이 얼마나 골탕 먹을까 생각하면 아주 상쾌해졌어.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거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수?”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내 좋은 곳을 알려주리다. 산을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호수를 가리키는 이정표 반대편으로 가면 사람 드문 곳이 나와요. 캠핑장도 낚시터도 없는 조용한 곳이에요. 거긴 누가 뭐랄 사람 하나 없어. 내가 자주 가던 곳인데 난 이제 갈 일 없을 거요. 둘째 아들이 태국에 살아요. 거긴 일 년 내내 여름만 있다더라고. 거기로 갈 거요. 아들이 비행기표를 보내줬거든. 여긴 너무 추워. 눈은 또 얼마나 많이 오는지. 눈 한번 오면 꼼짝 못하고 갇혀 있어야 하지. 이제 여긴 지긋지긋해.”
   “그럼 이 호텔은요?”
   주인이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뭐, 유령이 와서 살겠지. 우리 영감이 딴 데 갔을라고. 그 사람은 평생 어디 갈 줄도 몰랐어.”
   세 사람이 탄 자동차는 천천히 집을 떠났다. 차는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손님이 떠났다. 선글라스 뒤의 푸른 멍 자국이라든가, 스카프 사이로 언뜻 보인 보라색 손 자국, 소년의 얼굴에 난 상처와 휘어진 손가락, 소녀의 손목을 두른 붕대에 대해서 주인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손님에게 사적인 걸 묻는 건 실례다. 오십 년 동안 훌륭하게 호텔을 운영해온 비결이었다. 주인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노란 햇살이 지붕에서 내려와 건물 벽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치솟은 나무가 터널처럼 이어진 사이로 굽이진 길을 차는 한참 달려 내려갔다. 호텔 주인의 말대로 갈림길이 나왔다. 이정표에 적힌 로스트(LOST) 다음 글자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차는 호수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반대편 길로 접어들었다. 조금씩 좁아지던 길이 비포장도로로 바뀌었다. 호수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세 사람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주위는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세 사람은 호수가 처음이었다.
   푸른 물은 끝이 보이지 않아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바람이 불자 은빛 물고기의 비늘처럼 잔물결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바람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렇게 마른 갈대와 풀이 부딪쳐 내는 소리였다. 잿빛 오리 몇 마리가 갈대 사이를 드나들며 헤엄쳤다. 간혹 차르륵, 차르륵 소리도 들렸다. 돌멩이들이 조용히 밀려오는 물결에 서로 부딪쳐 내는 소리였다.
   “여기?”
   소년이 묻자 엄마가 대답했다.
   “이쯤이 좋을 것 같아.”
   “얼마나 깊을까?”
   소년이 중얼거렸다.
   “바다만큼은 아니겠지.”
   소녀가 대답했다.
   “그래도 충분히 깊겠지.”
   소년은 중얼거리며 발치의 돌멩이 하나를 주워 던졌다. 몇 번 수면을 튕기던 돌멩이가 금방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몇 번 더 물수제비를 띄웠다. 돌을 삼킨 수면은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잔잔해졌다.
   “엄마, 이거 봐. 꼭 달걀 같아.”
   소녀가 갸름한 돌멩이 하나를 주워 엄마에게 내밀었다. 코코의 무덤을 두르고 있던 돌처럼 반질거리고 고운 돌멩이였다.
   소녀는 아예 주저앉아 돌을 줍기 시작했다. 줍고 나면 그 옆에 더 예쁜 것이 있었다. 지켜보던 소년도 합세했다. 두 사람은 눈을 반짝이고 간혹 작은 탄성을 지르며 돌 줍기에 열을 올렸다. 여자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다 호수로 눈을 돌렸다. 멀리 물색이 차츰 옅어지고 물 위로 툭 떨어진 해가 이지러지며 호수가 온통 핏빛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곧 어두워진다.”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일어났다. 아이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 돌멩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소녀가 아쉽다는 듯이 돌무덤을 내려다봤다. 소년이 등에서 배낭을 내려 돌멩이 몇 개를 주워 담았다. 소녀도 돌멩이를 골라 담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됐지?”
   소년이 배낭 속을 보여주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차로 돌아왔다. 소년이 차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 웅크린 채로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 너무도 깊이 잠들어 남자는 꿈쩍도 않았다. 세 사람은 남자를 호숫가로 옮겼다.
   남자에게서 희미하게 술냄새가 났다. 남자는 늘 술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그것은 술냄새가 아니라 남자의 흉포함이 풍기는 냄새였다. 술은 수치를 잊기 위해 필요할 뿐이었다. 남자는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와 성한 것이 거의 없는 집 안의 물건들을 마저 부수고 아내도 부서져라 두들겨 팼다. 하지만 여자는 피하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방에 아이들이 자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우는 건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견디는 것뿐이었다. 견디고 견디다보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것마저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이 짐승 같은 밤이 끝나고 아침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길 여자는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대자 여자는 두려워졌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오래전 그날 아이들과 함께 떠나려고 했다. 깊고 험준한 산 위, 말발굽처럼 굽이진 길 위에 돌연 나타난 호텔 앞에 여자가 차를 세운 까닭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거나 배가 고프다고 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계획 없던 하룻밤을 묵고 가게 된 이유는 기억할 수 있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여자는 푹 자고 싶었다. 세 사람은 호텔 방에서 서로를 껴안고 전에도, 그후에도 없었던 깊고 평온한 잠을 잤다. 그리고 멀리 떠날 생각이었다. 아주 멀리, 멀리 가겠다고 여자는 벼랑 끝에 서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왜 그때 그러지 못했을까. 어젯밤 남자에게 목을 졸리며, 그런 엄마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아이들이 칼에 베어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며, 여자는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멀리 떠날 것이다.
   매일 밤 두렵고 고통스럽게 만들던 것이 푸른 물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세 사람은 잠자코 지켜보았다. 검붉은 피가 굳은 옷과 반짝이고 예쁜 돌멩이로 가득한 배낭을 멘 남자가 깊은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첫눈이 오고 호수는 얼어붙으리라. 잿빛 오리 떼마저 떠난 호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세 사람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것이다. 누구도 두렵게 하지 않는 평온한 밤을 보낼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오래전 별똥별에 빌었던 소원이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세 사람은 조용히 호수를 떠났다.

최상희

흉포한 이 세상에서, 그래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어 글을 쓴다.

2018/03/27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