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들은 그 집을 은사시나무 집이라고 불렀다. 정원 한가운데 있는 은사시나무는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빛줄기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했다.
   주은은 나무 그늘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파리 사이로 내려온 햇살은 주은의 얼굴에 반짝이는 무늬를 만들었다.
   주은은 의자에서 일어나 나무 그늘에서 벗어났다. 양팔을 벌리고 발밑에 깔려 있는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보통의 그림자라면 뻗어나온 팔이 나타나야 하지만 주은의 그림자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닮아 있었다.
   주은은 바닥에 있던 정원 관리용 가위를 집어들어 은사시나무의 가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싹둑싹둑’ ‘싹둑싹둑’ 초록 이파리들과 가지가 잔디 위로 쏟아져내렸다. 주은은 바닥에 깔린 나뭇잎을 짓밟았다.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들었다. 짓이겨진 푸성귀의 초록 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속이 후련한 것도 잠시 후회가 밀려들었다. 주은은 쓰레기 비닐봉지를 찾아 이파리를 주워담았다.
   주은은 집안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며 풀냄새를 지워냈다. 거실로 나와 선풍기를 틀고 소파에 앉았다. 바람은 더위를 밀어냈다. 그 자리에 오래된 집안 냄새가 달라붙었다.

   초인종 소리에 주은은 인터폰을 확인했다. 정원 관리사들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왔다. 늦은 오후의 열기는 뜨거웠다. 맴맴, 맴맴맴맴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두 사람이 정원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둘 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정원이 정말 예쁘네요. 비목나무에 참나무, 천일홍, 벚나무에 능소화꽃이 활짝 폈네요. 산수국에 개미취꽃들도 만발하고요. 복숭아랑 배나무에. 가운데 있는 나무는……”
   “은사시나무예요.”
   옆에 있던 여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채선, 나무 이름도 제법 다 아는구나.”
   관리사는 흐뭇한 듯 미소를 지었다. 주은은 채선의 얼굴을 살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듯 앳된 얼굴이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주은은 집안으로 들어와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서서 전기톱으로 나뭇가지를 쳐나갔다. 여자가 다른 나무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채선은 가위를 들고 세세한 곳을 손질했다.
   그런데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무 그림자가 잔디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주은은 그림자의 시작을 찾아나섰다. 그림자는 채선의 발끝에서 시작되었다.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 그림자는 채선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물결에 몸을 맡긴 수초처럼 부드럽게 따라 움직였다. 놀란 주은은 눈을 비비고는 확인했다. 역시나 채선의 그림자였다. 주은은 채선을 뚫어져라 보았다. 채선은 주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무슨 할말이라도?”
   “아니…… 에요.”
   주은은 창문을 닫았다. 탁자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펼쳤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2

   정원 손질은 오후 8시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관리사는 창문을 두드리며 일이 끝났다고 말했다. 주은은 창문을 열었다.
   “방금 어머님과 통화했어요.”
   “네.”
   주은은 채선을 찾았다. 그녀는 정원 한편에서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은은 관리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채선의 그림자를 힐끔거렸다. 그들은 대문 밖으로 나갔다. 주은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집안을 서성거렸다.
   ‘채선이라는 사람은 알고 있을까. 자기 그림자가 나무 모양인 것을.’
   주은은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의 차로 보이는 트럭은 이미 멀어져 점처럼 작아졌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선 순간, 길 건너편 편의점에서 나오는 채선을 발견했다. 주은은 채선에게 다가갔다. 채선의 손에는 캔맥주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 그 집……”
   “맞아요.”
   “편의점에 온 거예요?”
   주은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뇨. 언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요.”
   “나한테?”
   채선은 눈썹을 실룩였다.

   채선은 편의점에서 과일 맛 음료수를 사 가지고 나왔다. 어느새 해는 기울었고 골목에도 어둠이 스며들었다. 채선은 과일 맛 음료수를 주은 앞에 놓고는 파라솔 의자에 앉았다.
   “마셔요.”
   “고맙습니다.”
   “학생 맞죠. 몇 학년이에요?”
   “고2요. 권주은이라고 해요.”
   채선은 캔맥주 꼭지를 따고 길게 한 모금 마셨다.
   “궁금한 게 뭐예요?”
   주은은 발밑에 깔려 있는 채선의 그림자와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두 개의 그림자는 서로 붙어 있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였다.
   주은은 조심스럽게 그림자 이야기를 꺼냈다. 주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채선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는 어이없는 웃음을 뱉어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주은 학생 그림자만 나뭇가지 모양으로 보였는데 내 그림자도 그렇다는 거죠? 다른 점은 내 그림자에는 이파리가 가득하고…… 그 얘길 믿으라는 거예요?”
   “믿는 건 강요할 수 없지만 내 눈에는 진짜 그렇게 보여요.”
   “언제부터였어요? 그림자가 나무 모양으로 보인 게.”
   주은은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열 살 때요. 어느 날 무심코 그림자를 보았는데 나무 모양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언니처럼 사람 모양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채선은 가방에서 공책과 펜을 꺼내 주은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려 볼 수 있어요?”
   채선은 가로등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선 그림자가 잘 드러났다. 채선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주은을 바라보았다. 주은은 펜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동안 채선은 주은의 표정을 살폈다. 당연한 사실을 대하듯 진지하고 세밀한 눈빛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채선이 조금 지쳐가고 있을 때 주은은 펜을 내려놓았다. 채선은 주은에게 다가와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림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던 채선은 노트를 한 장 넘기고 주은 앞으로 내밀었다.
   “주은 학생 그림자도 그려볼래요?”
   주은은 채선이 섰던 그 자리에 서서 그림을 그려나갔다. 주은의 눈빛은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채선은 그림 두 장을 나란히 놓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림자는 모두 나무 모양이었다. 여름나무와 겨울나무, 계절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각자, 자기 것 갖죠.”
   채선은 그림의 낱장을 찢어 주은에게 전해주고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굳어 있던 채선의 표정이 점점 물 먹인 종이처럼 부드러워졌다.
   “이제 믿는…… 거예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무슨 뜻이에요?”
   “그림 그릴 때 눈빛, 진짜 같았거든요. 간절하고 진지했어요. 하지만 그림자가 나뭇가지 모양으로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답을 줄 수 없어요.”
   “알겠어요.”
   주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하지만 궁금해요. 어째서 학생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호기심인가요?”
   “아니라고 말 못해요. 기분…… 나빠요?”
   “아뇨. 당연히 궁금하겠죠.”
   발밑을 내려다보던 채선은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면 학생 얘기해 줄 수 있어요? 그 안에 실마리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주은은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했다. 채선은 어쨌든 낯선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괜찮을까. 그리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림자 이야기를 꺼냈으니 용기를 내도 되지 않을까. 주은은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전…… 일곱 살 때 입양되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부모님은 친 부모님이 아니에요.”
   채선은 손등에 턱을 괴고 주은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주은은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 아빠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채워주시고 넘치는 사랑을 주세요. 큰 행운이 찾아온 거죠.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부모님께 더 잘하고 싶어요.”
   주은은 입을 다물었다.
   “좋은 부모님과 아름다운 집, 정원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아파트밖에 없는 도시에서 이런 집은 귀하죠.”
   주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게, 집은 지은 지 30년도 넘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칠 곳이 생기죠. 주변 어른들은 집을 팔고 편한 아파트 생활을 하라고 하지만 엄마 아빠는 떠나고 싶지 않대요.”
   “왜요?”
   “집에 정이 많이 들었겠죠. 정원을 가꾸시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니까.”
   “그래서일까요? 정원에 있는 나무 때문에?”
   주은은 은사시나무를 떠올렸다. 입안이 바짝 말라서 음료수를 마셨다.
   “……”
   “입양 전에는 어땠어요?”
   “그때 기억은 없어요.”
   “아, 일곱 살 때 입양되었다고 했죠. 나도 일곱 살 이전 기억은…… 없어요.”
   “언니 얘기도 해 줄 수 있어요?”
   “학생 얘기만 하려니 손해 보는 것 같아요?”
   “아니라고 못해요.”
   “좋아요.”
   주은은 채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난…… 혼자 살고 있어요. 아빠는 늘 술에 젖어 살았고 엄마는 그게 싫어 도망갔고. 아빠는 화가 나서 술을 몸속에 쏟아부었죠. 중3 때 돌아가셨어요. 그 뒤에는 고시원에서 지냈어요. 지금은 나라에서 임대해주는 원룸에서 살고 있어요. 고시원에서는 정말 무서웠어요. 낯선 사람들뿐이고 보안도 잘되지 않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쉬지 않고 일을 했어요. 얼른 돈을 모으고 싶기도 하고요.”
   채선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주은은 채선의 더운 숨에서 고단함을 느꼈다.
   “언니는 왜 정원관리사 일을 해요?”
   채선의 눈동자는 허공을 맴돌았다. 어딘가에 있을 기억을 불러오려는 눈빛을 하고는.
   “고등학교 때 원예부 동아리였어요.”
   “원래 나무나 식물을 좋아했어요?”
   “그땐 아니었어요. 동아리 가입을 해야 해서 들어갔죠.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알바를 찾다가 이 일을 시작했고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죠.”
   “그게 다예요?”
   “다냐고요?”
   채선의 표정은 미묘했다. 마르고 차갑던 눈에서 반짝 빛이 일었다.
   “3년 동안 나무를 다듬었어요. 이상하게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 옷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불편했어요. 몸속 뼈가 드러난 것처럼 추웠죠. 그러다가 겨울에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를 알았어요.”
   “뭔데요?”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겨울은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낮아서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으면 나무는 죽을 거예요. 잎을 떨어뜨려야 버틸 수 있는 거죠. 봄이 오고 싹이 나고 여름이 되면 잎이 무성해지죠. 물론 또 가을을 거쳐 겨울이 와요. 그걸 알고 나선 추위를 피하지 않기로 했어요.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봄은 반드시 올 테니까. 나무가 그걸 알려 주었죠.”
   채선은 웃었다. 주은이 본 얼굴 중 가장 밝은 미소였다. 그리고 한동안 대화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만 가죠.”
   채선은 일어났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는 앞서 걸었다. 주은은 잰걸음으로 채선 옆에 붙어섰다. 앞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여름 나무와 겨울나무가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쌉싸름한 풀냄새가 났다.


3

   환한 불이 켜져 있는 정원은 나무들이 내뿜는 밤의 향기로 진동했다. 부모님은 은사시나무 아래, 테이블 앞에 마주앉아 수박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주은을 보자마자 어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주은은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어디 갔다 왔니? 휴대전화기도 두고.”
   엄마가 말했다.
   “잠깐 친구 만나고 왔어요.”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은이 손에 있는 종이를 보았다.
   “그건 뭐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은은 나무 그림자 그림을 접어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엄마는 주은이 손에 수박 한 조각을 쥐여주었다.
   
   “먹어 봐. 달아.”
   주은은 수박을 베어먹었다. 음료수를 마신 탓인지, 단맛이 싱거웠다.
   “갈수록 여름이 뜨거워져.”
   엄마는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담쟁이덩굴을 심어보면 어떨까. 빨간 벽돌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언젠가 TV에서 본 것 같은데 건물의 열기가 한층 내려간다고 하더라고.”
   엄마는 아빠 말에 수긍하듯 미소를 지었다. 주은은 어둠에 묻혀 있는 이층집을 쳐다보았다. 집을 덮어 오르는 담쟁이덩굴이라…… 슬금슬금, 쥐도 새도 모르게 건물을 뒤덮을 초록색이 그려졌다. 그 줄기가 자신의 몸까지 타고 올라와 숨통을 조일 것만 같았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어서야, 그 무성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주은은 늘 하나의 계절 속에서 살고 싶었다. 겨울. 절대로 봄이 올 것 같지 않은 시간. 그 시간에만 머물고 싶었다. 주은은 채선의 말을 떠올렸다. 살기 위해서 잎을 떨어뜨리는 겨울나무에 대해.
   “수박 더 줄까?”
   엄마가 웃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과제해야 해서 들어갈게요.”

   주은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수박 한 조각을 더 먹고 올 걸 그랬나, 얕은 후회를 하며 책상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책을 펼치고 한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문제를 풀고 나서, 지친 듯 침대에 드러누웠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주은은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은사시나무의 푸른 잎이 바람을 따라 너울거리며 사사삭 사사삭 소리를 쏟아냈다. 주은은 코를 킁킁거렸다.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은사시나무 향기인 것도 같고 채선의 몸에서 맡았던 냄새 같기도 했다.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채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은은 자신이 피하고자 하는 것과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할머니.’
   주은은 눈을 감았다. 등고선처럼 주름이 패여 있는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아빠는 올해 여름휴가는 할머니 댁에서 보낼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 집은 아빠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다. 파란 대문 앞에선 엄마 아빠 얼굴은 주은이 만큼이나 긴장되어 있었다. 아빠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며 ‘어머니 저희 왔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입으로는 아들 내외를 반기면서도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주은을 힐끔 보고는 시선을 엄마 아빠에게 돌렸다. 주은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은은 할머니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주은은 엄마 아빠와 물놀이를 하러 근처 냇가로 향했다. 돌아와서 방에 누워 있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 땀 때문에 등이 축축해서 잠에서 깬 주은은 졸음을 몰아내려는 듯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가늘게 뜬 눈 속으로 할머니 얼굴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네가 그애로구나. 우리 손주 자리를 꿰찬 아이.”
   주은은 눈을 꼭 감아버렸다. 눈앞은 캄캄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할머니가 내뱉은 혼잣말을 주은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기억했다.
   엄마 아빠는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했고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는 사고로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엄마 아빠에게는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죽은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주은과 같은 나이라고 했다. 정원 한가운데 은사시나무는 그 아기를 임신했을 때 심은 것이다.
   주은은 그 순간 결심했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공부를 열심히 해나갔고 자신이 할일을 먼저 찾아 나서서 해결했다. 사람들은 주은을 칭찬했다. 성실하고 친절한 아이라고. 주은은 칭찬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해나갔다. 하지만 집에 혼자 남게 되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풀 수 있는 상대는 은사시나무뿐이었다. 나뭇가지를 일부러 부러뜨리거나 나뭇잎을 떨어뜨린 뒤 짓밟았다.
   그런 불손한 행동을 하고 나면 친부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혹시 그들의 나쁜 피를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주은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쳤다.
   바지 주머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림자 나무 그림 때문이었다. 주은은 접혀 있는 종이를 꺼내 펼쳤다. 주은의 눈길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따라 움직였다. 나뭇가지는 길 같았다. 그림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걷듯 움직였다. 주은은 그림을 거꾸로 돌렸다. 나뭇가지는 뿌리 같았다. 주은은 책상 위에 있는 연필을 집고는 뿌리를 이어 그려나갔다.
   그때 희미한 잔상들이, 흐릿한 형상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노란색으로 칠해진 2층 건물, 넓은 마당, 그네와 시소, 바람에 날리는 푸른 이파리, 그 사이로 쏟아져내리는 빛줄기, 혹은 빗물…… 여러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이곳은 어디일까. 분명 집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은은 창가에 붙어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은사시나무 아래에 있었다. 주은은 일층으로 내려와 부모님 방으로 들어갔다. 장롱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깊숙한 곳에서 색이 누렇게 바랜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 속에 있는 서류를 꺼내 눈으로 읽어나갔다.
   ‘사랑 보육원.’


4

   시외버스에서 내린 주은은 택시를 잡았다. 기사에게 목적지 주소를 보여주었다.
   “여기 가려고요.”
   “사랑 보육원?”
   택시 운전사는 진짜 여기 가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주은이 그렇다고 하자, 그는 거긴 더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은은 조금 놀랐지만 일단은 가달라고 말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더위로 숨이 턱 막혔다. 주은은 보육원 입구에 이르렀다. 녹이 슨 철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담이 높지 않아 뛰어넘을 수 있을 듯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 출입문에도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잡풀들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쏴쏴사, 쏴쏴사’ 건물 뒤 초록색 이파리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주은은 나무가 있는 건물 뒤편에 이르렀다.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고 나무 끝을 쳐다보다 나뭇가지에 손가락을 대고 선을 그리듯 따라 움직여보았다. 조각처럼 흩어졌던 장면들이 이어져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은은 알고 싶었기에 다가오는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여섯 살 무렵, 햇볕이 뜨거웠던 여름 한낮이었다. 주은은 커다란 나무를 만나기 위해 언제나처럼 보육원 건물 뒤를 찾았다.
   주은은 나무를 쳐다보았다. 사방으로 넓게 퍼진 나뭇가지에 촘촘히 매달린 나뭇잎은 지붕처럼 하늘을 가렸다. 주은은 이곳에 와서는 선생님이 언제나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이었어.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그런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했어. 너는 이 나무 아래 있었대. 원장 선생님이 너를 안고 들어왔지. 속싸개 속에 작은 종이가 있었는데 네 이름과 태어난 해와 날짜가 적혀 있었대. 그리고 나무가 초록으로 무성해지면 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섯 살 주은의 질문에 어린 보육 교사가 털어놓았다.
   주은이 여섯 살이 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은은 나뭇가지에 새순이 트기 시작하면 나무를 찾았다. 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지면 깨금발로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것을 맞이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길을 잃은 강아지, 길고양이, 새들과 작은 벌레…… 무엇보다 가장 친해졌던 건 나무였다. 주은은 나무 아래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지었다. 팔다리에 힘이 붙은 뒤에는 나무를 타고 올라 먼 곳을 바라보았다. 울적할 때는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초록색 이파리를 세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연둣빛 이파리가 자라고 진해져 초록색을 띨수록, 이파리 수가 셀 수 없이 많아질수록 주은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 차올랐다. 오래 머물러야 맡을 수 있는 향기, 시원한 그늘, 적당한 햇살. 주은은 종종 나무로부터 보호를 받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날 나무를 향해 다가오는 검은 구두가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주은은 나무를 타고 올랐다. 주은이 나뭇가지를 건드렸다. 작은 이파리가 나풀나풀 내려가 검은 구두 위로 떨어졌다. 검은 구두를 신은 여자가 이파리를 손에 쥐고 위를 쳐다보았다. 주은은 사람을 경계하는 아기 고양이처럼 나뭇가지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위에서 뭘 하고 있니?”
   검은 구두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주은은 빼꼼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위에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주은은 더이상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무에서 내려왔다. 검은 구두가 주은 앞에 바투 다가서서 주은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주은의 코끝에 달디단 향기가 묻어났다. 주은은 혀를 날름 내밀어 향기를 맛보았다.
   “이름이 뭐니?”
   “주은이요.”
   “주은이는 왜 친구들이랑 놀지 않고 여기에만 있니?”
   “아줌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난주에도 왔었고 며칠 전에도 왔었거든. 매일 나무와 놀고 있는 널 봤어.”
   주은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검은 구두가 주은에게 다가왔다.
   “왜 여기에 있는지 말해줄 수 있니?”
   “나무가 좋아요.”
   검은 구두 여자는 고개를 들고 나무를 둘러보았다. 하늘이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자는 이런 품을, 이런 색과 세상을 아이에게 안겨주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해 왔다.
   주은은 바닥에 앉아 양쪽 무릎에 손을 올렸다. 깍지를 낀 손 위에 턱을 올려놓고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검은 구두는 주은 옆에 앉아 옆얼굴을 보았다. 복숭앗빛을 띤 양 볼. 솜털 같은 속눈썹에 맺힌 작은 물방울.
   “나무랑 함께 살고 싶니?”
   검은 구두 여자의 말에 주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주일 뒤, 선생님은 주은을 데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낯이 익은 아주머니와 낯선 아저씨가 있었다. 아주머니의 얼굴과 몸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낯설지 않다고 주은이 생각하고 있을 쯤, 선생님은 주은에게 엄마 아빠가 되어주실 분이라고 말했다.

   사라져버린 기억 속에서 빠져나온 주은은 나무를 쳐다보았다. 오래전 그날처럼, 세상이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은은 나무 그늘로 들어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이 품에 안겨 있었을 작은 소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자신을 입양한 이유와 은사시나무 집을 떠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주은의 눈시울은 뜨겁고 축축했다. 주은은 가방에서 그림자 나무 그림과 연필을 꺼내 나뭇가지 위에 이파리를 그려나갔다. 하나, 둘, 셋, 넷…… 머리 위에서 푸른 향기가 내려와 주은의 그림자 그림에 내려앉았다.
   주은은 일어나 나무 그늘에서 벗어났다. 건물은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나무는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짙은 푸른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며 혼자서도 당당하게.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에 붙어 있는 수많은 이파리가 동시에 흔들렸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초록색 손들이 주은을 향해 손짓을 했다.
   주은은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앙상한 그림자에서 싹이 돋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파리가 가지 곳곳으로 번져나가 무성해졌다. 달고 쌉싸름한 향기가 진동했다. 주은의 얼굴에도 초록 미소가 깊고 넓게 번져갔다.

최양선

몇 해 전 겨울, 밤 산책을 하다가 나무 그림자와 나의 그림자가 합쳐진 순간을 본 적이 있다. 나무 그림자가 나의 그림자인 것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린,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