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



   다녀오고야 말았다 오름에서부터 해안까지 섬 한 바퀴를 도는 동안에 몇 번이고 지나쳤던 거기
   모두가 인증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고 일행은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했다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돈 끝에 간신히 차를 댈 수 있었고
   발을 들이자마자
   탄성을 내뱉었다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들은 죽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 양손을 포개어 가슴 위에 올려둔 상태였고 다른 누군가는 식탁에 앉아 자기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었다
   일행과 나는 한 줄로 서서 천천히 그들의 자세를 관람했다 쉼 없이
   폭격이 일어나는 세상에 이러한 고요와 평화라는 것이
   춥다
   코끝이 찡하다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곧 지루해졌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구경한다는 건 생각보다 시시했다 그들은 판매 상품이 아니었고 큐레이팅도 허술하게 느껴졌다
   그곳에 다녀왔음을 남길 수 있는 건 딱 한 군데뿐이었다 출구 벽면에 적힌 글귀 앞
   서로를 원 없이 찍어주고 싶었지만 우리 뒤로 이어지는 행렬 탓에 그럴 수 없었다
   훗날 휴대폰 앨범을 정리하다 본 사진에 문구는 너무 작아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일행의 얼굴도 초점이 맞지 않았다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속닥였다 그 사람들은 다 마네킹이나 모형이었을지도 몰라 자연사라는 게
   가능하다는 게
   나는 빌었다 무엇을 소원했는지는
   일기에도 안 썼다 다만 그날 이후로
   자기 전마다 몇 차례에 걸쳐 씻었고 얼굴 근육에 긴장을 풀어
   헤치며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꿈을 꿨다 그곳에서 영원을 보내고 싶었다 영원 속에서 살며
   모닝 뉴스에 나오는 살인 보도들을 보았다 매일 아침
   식빵이 퍽퍽해
   눈물을 훔쳤던 것도 같다





   여독



   이런 일은
   전에 없었어

   개 한 마리가 찾아온 거야 비가 와서
   축축한 걸음을 이끌고서

   불 켜진 창 앞에 웅크리고 누운 채로

   생각한 것 같더라
   가족이 있는 기분을

   찾아온
   개의

   털은 부드러웠어 혓바닥이 따뜻해
   손바닥을 양껏 내어주었는데

   그 순간 나는 멋대로 그리워했다 어떤 소문에도 등장하지 않는 어떤 소도시를

   앞서가는 누군가의 어깨를 검지로 두드릴 때 낮은 목소리가 나의 기원을 일러준다는

   종말 예감

   창문을 깨부수면
   유리 조각들이 생겨나
   알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다워 말할 수도

   개와 나는 엎드려 있었어
   피폭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무심하다는 듯이
   산 너머로 불꽃이 튀는 게 보여도

   다원에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바람이 들과 숲 그리고 토지의 모든 것을 지나오며 찻잎에 향을 불어넣습니다

   너한테 탄내가 난다
   개가 짖었다 나는 창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사람이 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거
   말해주고 싶었어 그냥

   이런 일도 있었더라고
   이런 일은 없었더라고

박규현

199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시집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가 있다.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