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우리는 조금 더 잘 살게 되었다 이제 왕이 쓰러졌으니까 왕이 쓰러지기 전에는 우리는 어쩐지 항상 힘들었었다 왕이 있었으니까 어깨에 하늘 같은 왕을 이고 살아왔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낡고 무거운 것이었으니까 왕이 쓰러지기 전을 우리는 잘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믿기로 했다 우리는 성숙하지 못했다고 우리는 짐을 지고 있었다고 감히 올려다볼 수 없었다고 우리는 아래만 보고 묵묵하게 걸어왔었다고 어쩌면 왕이 있을 때는 우리는 조금 더 후진국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으니까 우리는 주변에 비교해서 조금 더 많이 참고 더 오랫동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으니까 우리는 무려 왕을 견디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어쩌면 하늘에 더 가까워진 기분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우러러보던 왕이 사라졌으니까 저 하늘과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왕이 쓰러지는 순간 그 모두가 약속했다는 듯이 만세를 불렀다 이제 우리는 잘 죽을 수도 없게 되었다 더 잘 살게 되었으니까





   아침



   약한 불 위에 차가운 냄비를 얹으며 너를 기다리기로 한다 너는 긴 밤 동안 속 쓰린 꿈을 꿨을지도 모르지 나는 너를 위해 두 개의 심심하고 따뜻한 아침을 만들기로 한다 진한 국물을 우리며 서먹하기만 했던 깜깜한 어젯밤을 기억해 낸다 조각조각 낸 싱싱한 야채를 썰어 넣고 물이 한소끔 끓으면 적당한 양념을 푼다 단단한 두 개의 계란을 톡 깨어 섞어 푼다 이제 모두 휘적휘적 잘 저어 준다 두 개의 계란은 끈적끈적했다가 풀어져버릴 것이다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의 냄새를 맡으며 창을 연다 나는 국물이 지나치게 맑은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게 텁텁한 것 같기도 하다 너는 뜨겁다고 또 시원하다고 말하겠지 물이 끓어오르면 국이 넘치고 나는 빠르게 불을 내린다 깔끔한 상을 차리며 어쩌면 네가 오기까지 부족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침의 간을 본다 오고 있는 너의 얼굴이 살구색으로 졸여지고 있다

한경희

하고 싶은 말 : 이러쿵, 저러쿵 / 실제로 한 말 : 어쩌구, 저쩌구

2019/01/29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