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버리고 다시 하기



   모르겠어 이 밤은 모르겠다

   있어야 했을 그 밤을
   이 밤이 차지하고 있다

   이 밤의 생소한 윤곽

   이 밤의 골목은 깊다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그러자 드러나고 있고

   그러자 나는 서두르고 있다

   발자국이 몇 개
   밟히면 짜부라지는 것
   그러자 나는 뒤를

   그러자 나는 뿌리치고 있다

   그 밤에 사로잡혀
   이 밤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자 나는 빗자루를 들고 있다

   바닥을 쓸고 있다
   쓸어버리고 다시 하기

   쓸고 있다 쓸어버리고
   다시 하기





   슈샤인



   문 앞에 구두가 놓여 있었다.

   한발이. 우리는 한발이 늦은 걸까.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부름을 받았지. 둘이서 하나를 쓰는 곳에. 오라는 대로 우리는. 빈소를 지나. 야산을 지나. 위령의 밤과 무허가의 체험관을 지나.

   둘이서 하나를 쓰는 곳에. 몫이 있다고 했지. 나눌 수 없는 몫을 맡아. 하나를 쓰랬는데. 하나의 구두에 가로막혀. 우리는 꼼짝 없이.

   구두에 발을 넣어보았다.

   구두는 컸다.

   이것은 미달의 체험일까. 들어가야 하는데. 둘이서 하나를 쓰는 곳에. 구들장이 끓을 거야. 우리는 알을 슬고 싶었는데. 하나가 모자라서. 내기를 할 수도 있었는데. 무엇을 낼까. 실랑이를 하며. 재촉을 당하며.

   우리는 구두를 닦았다.

   광이 났다. 삶이 비쳤다.

   탐이 난다
   삶은 탐스럽다
   만져보고 싶다


   우리는 손을 뻗었는데. 들어가고 싶었는데. 피하지 마. 피할 수가 없었는데. 피할 수 없는 삶으로부터 우리는 유리된 것 같았지.

   살을 꼬집어보았다.

   아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나를 깨우고 싶었다.

신해욱

하나가 모자라서. 걷는다. 더듬는다. 두드려 봐. 두드린다. 기다린다. 쓴다. 다시 쓴다.

2022/04/26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