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에 초대되었습니다



   당신도 미로 출신이라는 게 기뻐요
   첫번째는 눈이 가득 쌓인 스키장이었어요
   당연히 지팡이도 고글도 모자도 없었죠
   당신은요? 비행기요? 세상에 비행기라니
   너무 무서웠겠어요 눈을 떴는데 구름보다 높이 있었겠네요
   저는 스키장 정상에서 멀뚱히 서 있었어요
   내려가는 방법은 모른 채로 홀로
   누가 날 퍽치기하고 홀딱 벗긴 뒤 던지면
   그게 차라리 더 빨리 굴러떨어지겠다
   할 때쯤 미로의 끝이 보였어요
   다시 원래 걷던 길 한복판으로 돌아왔어요
   왜 생각의 끝까지 미쳐야 길의 끌이 보일까
   당신은 처음 이륙한 비행기였군요
   완전 새것이었겠네요 새것은 무섭죠 아무래도
   더 정교해서 더 사실로 믿게 되니까요
   당신은 이걸 왜 미로라고 부르게 됐어요?
   계속 걸어도 입구나 출구 같은 건 없잖아요
   그냥 망상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고요?
   누가요? 아녜요
   제 두번째 미로가 얼마나 정교했는데요
   전 이게 미로라는 것도 잊은 채 평생
   그곳에서 먹고 자고 살 뻔도 했어요
   앞집 옆집 옆집의 앞집 앞집의 옆집 모두
   한 가족이 되어 사는 미로였죠
   이상함을 알아차리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캐리어에 짐을 넣고 질질 끌고 나올 때까지도
   모든 가족이 저를 붙잡고 어딜 가냐고 물었죠
   아! 꿈 깨라! 꿈! 깨라! 외쳤어요 쩌렁쩌렁
   웃지 마세요 저는 정말 진지했다니까요
   미로는 점점 더 정교해진다고요
   당신의 두번째 미로는 아이고, 아파트요?
   벌써 눈이 질끈 감겨요
   남자가 칼을 들고 점점
   아니 그만 말해주세요 충분해요
   모조 칼을 들고 더미를 찔렀다고요
   선반에서 떨어지는 유리컵을 피하고요
   마치 범죄 현장을 재현하는 것처럼……
   어쨌든 당신을 만나 기뻐요
   구부러진 눈초리를 받게 될까 봐
   남들에게 미로에 대한 얘기는 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모두 미로 출신인 거면 어쩌죠?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지금부터 우리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봐요
   이 미로를 어떻게 끝낼지
   나갈 수 있을지
   벗어날 수 있을지
   여긴 훨씬 더 정교하네요
   정말 정말로 당신이 있는 것 같아요





   들개의 자라지 않는 친구들



   귀가 붉게 물든 들개를 따라 걷고 있다. 한때 연극을 보던 때가 있었지. 그건 마치 들개를 따라 걷는 심정. 극이 끝나면 옆자리 사람들은 모두 울거나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없는 장례로 (어쩌면 먼 빛 아래 사는 자들에게서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보내달라고 하셨고 세 자매는 작은 마당이 딸린 낡은 주택에 모여 귀가 붉게 물든 들개를 따라 걷고 있는 것이다. 숨죽이는 모양새로 언니 이건 그냥 연극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울지도 말고 화내지도 말고 없는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몸짓을 따라 하는 거다. 들개의 이름은 들개. 들개는 야견의 들개가 아니고 들처럼 푸르게 자라라고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들개는 얌전히 앉으라면 앉았다. 배를 뒤집으라고 하면 뒤집었다. 오늘도 반갑다는 얼굴로 꼬리를 흔들었고 짖지도 않았다. 귀에 붉은색을 바르는 동안에도 목에 할아버지의 유품을 매다는 동안에도 혀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들개가 다니는 산책로로 마지막 산뽀를 할 거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언니 입 그만 삐죽거려, 동생아 그만 울어라. 세 자매는 각기 다른 마음으로 동네를 빙빙 돌았고 그사이 들개는 친구들과 냄새를 맡으며 놀고 씨앗을 심었지만 자라지 않는 작은 텃밭에 영역 표시를 하고 동네 사람들이 내놓은 고양이 밥을 훔쳐먹었다. 들개야 우리가 좋은 밥 주는데 왜 고양이 사료를 훔쳐먹어. 들개는 열심히 걸었고 나는 시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고 연극을 보고 나오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들개의 목에서 흔들흔들 흔들흔들거리는 할아버지의 금목걸이를 쳐다보았다. 나무가 쓰러질수록 들개도 점점 쇠약해질 것이다. 착한 들개는 가던 길을 벗어나 전속력으로 개울에 뛰어들었다. 혼비백산의 우리를 유유히 쳐다보다가 개울에서 나온 들개의 귀는 다시 하얘져 있었고 금목걸이는 개울을 따라 흘러간 뒤였다. 시골 동네는 해가 금방 지고 금세 어둑해지니까 그만 돌아가자. 우리는 들개를 품에 안고 자라지도 않을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누웠다. 모두 들개의 친구였고 그제야 들개는 크고 길게 짖었다.

오산하

미로의 한복판에 서서 이곳이 미로임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다들 어떤 미로를 보고 계신가요? 길을 따라 벽을 쿵 하고 밀어보는 겁니다. 우리 같이요.

2022/07/26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