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자 체험객도 들끓었다. 그사이 한눈에 선배를 알아봤다. 몸집은 날렵해졌고 치렁치렁한 머리가 길게 늘어져 얼굴을 반쯤 뒤덮었지만 모르고 지나칠 정도는 아니었다. 곧은 걸음걸이와 가느다란 입술만으로도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날 입었던 거무튀튀한 티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멀리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어느 순간 꺼칠한 감촉과 제때 빨지 않아 풍기던 고린내까지 속속들이 떠올랐다.
   두리번거리던 선배는 현수막 아래에 자리를 잡고 신청서를 썼다. 머리를 쓸어넘기는 사이사이 눈을 부릅떴다. 바람이 사납게 일자 현수막에 박힌 문장이 일렁였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분들은 돌아가세요.
   구석에서 사내 무리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낭랑하게 외쳤다. 반대편에 몰려있던 노인들은 미적거리는가 싶더니 신청서 좀 대신 써달라며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몇몇은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넘어갔다. 누락된 노인은 삿대질까지 해가며 따졌다. 저승으로 갈 명단에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가 싶더니 단단히 결심한 듯 얼굴을 붉혔다. 목소리가 날카롭게 솟구쳤다.
   “이승에서도 늘 뒷전이었는데!”
   그때 선배가 돌아다니며 눈을 맞추고 다독였다. 멀리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표정이 확연히 느껴졌다. 술기운이 오른 탓에 저지른 실수였다고 했다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며 결국 고함까지 지르던 선배가 맞나 싶었다. 그때 사납게 되물었어야 했다. 선배는 꼭 지금처럼 상냥한 목소리와 표정이었다. “일단 진정하고……” 마치 투정 부리는 아이를 달래듯.
   다리에 힘을 주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내 잊고 지냈다는 건 순전히 착각이었다. 누군가 온몸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듯했다. 신청서를 마저 쓰던 선배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집요해 보였다. 고개를 든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이내 균형을 잃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선배가 내민 신청서를 받아든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선배 이름이 분명했다. 이름 아래 체험 동기를 적는 칸이 눈에 들어왔다. 사는 게 힘들고 괴로워서. 지난 회차에도 비슷한 내용을 쓴 체험객은 수두룩했다.
   선배의 반듯한 글씨는 언제든 날을 세우고 얼굴을 짓밟을 것만 같았다. 글씨만 두고 보면 이제껏 한 번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법규를 어기지 않았을 사람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선배에게 신세 한 번 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든 어려운 형편에 놓인 학우를 찾아 도움을 주던 사람이었다. 학교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줬고 겉도는 신입생이 있으면 무리에 끼워줬다. 덕분에 공공근로자리를 얻은 현주는 은인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나도 방을 구해준 일이 떠올라 마땅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기숙사에 떨어져 난감하던 차에 선배는 적은 보증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을 알아봐 줬다. 오래된 주택의 창고를 개조한 방이었지만 학기가 코앞이라 가릴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창밖으로 헤드라이트가 빈번하게 지나갔다. 그럼 책장과 냉장고와 옷장 그림자가 봉긋하게 부풀어올랐다. 범위를 넓혀 찾아보면 더 나은 방을, 적어도 처음부터 주거를 목적으로 만든 방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넉넉잖은 생활비에 교통비까지 쪼개 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다고 신경성 위염을 달고 사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선배는 이런 내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선배는 고개를 까딱이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날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허옇게 칠한 얼굴에 검은 도포 차림이니 그럴 만도 했다. 어쩌면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날처럼 괜히 성가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음날 선배는 얄팍한 봉투를 내밀며 전 재산이라고, 여기서 뭘 더 어쩌라는 거냐고 매섭게 쏘아붙였다. 여윳돈까지 보증금에 보탠 바람에 매달 월세에 허덕인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내밀한 사정까지 전했던 건 아니었을까. 지원금을 알아봐준다는 말에 가족관계나 엄마가 H군 터미널 근처 뒷골목에서 조그마한 식당을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거리낌 없이 꺼냈다. 그때 선배는 무르게 웃으며 언제고 꼭 들르겠다고 했다.
   대답을 주저하자 선배는 확답을 주지 않으면 꿈쩍하지 않을 기세로 뻗댔다. 옆에서 잠자코 있던 현주는 며칠 사이 분위기가 이게 뭐냐고 덧붙였다. 별것도 아닌 일을 쓸데없이 부풀려 키웠다는 원망처럼 들렸다. 기말고사가 끝날 때까지 버텨볼 생각이었다. 선배는 여름방학 전 어떻게든 깔끔하게 매듭짓고 싶어했다.
   그사이 선배는 검푸른 복도를 분지르듯 야무지게 걸었다. 귀찮게 알짱거리는 벌레를 짓누르기라도 하듯 거침없이 뚜벅뚜벅. 한때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리더의 걸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면서 뒤통수를 노려봤다. 앞지르는 순간 선배는 그림자에 둘러싸여 짓뭉개졌다. 검게 칠한 벽과 구분되지 않아 얼굴만 두둥실 떠다녔다.

   선배는 이번 회차의 유일한 개인 참가자였다. 현란한 등산복 차림의 산악회원들 사이에 묵은 충치처럼 볼썽사납게 끼어있었다. 관장은 주기적으로 참가하는 체험객만큼 혼자 온 사람을 예의주시했다. 몇 해 전 근처 소도시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한 남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였다. 그때 체험관은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체험을 마친 남자는 용기를 얻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관장이 떠올렸던 건 삶을 살아갈 용기였다. 앞으로 가족에게 짜증내지 않고 잘해야겠다는 각오나 겁먹지 않고 일단 부딪혀보겠다는 결심처럼 일반적인 후기일 뿐이었다.
   이후에도 소란은 끊이지 않았다. 재작년에는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던 학생이 들렀고 자식을 앞세웠던 부모와 누명을 썼다고 외치던 여인도 마음을 다잡고 행동에 옮기기 전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관장은 죄인이 된 기분에 휩싸였고 날카롭게 캐묻는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이상한 낌새가 있었는데 놓쳤던 건 아닌지. 체험관에서 종용한 정황이 있진 않았는지. 관장은 긍정적인 태도를 얻은 체험객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분위기는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사고 후 체험객 명단이 지자체나 경찰로 넘어가 특별관리대상에 들어간다는 헛소문까지 퍼지면서 관장은 더욱 곤욕을 치렀다. 그때부터 가명을 쓰는 체험객이 많았다. 그들은 전화번호와 주소도 허위로 작성했다. 체험객을 대상으로 한 기부단체나 심리상담센터와의 연결에도 차질을 빚었다. 간간이 이어지던 방송 촬영이나 기관장들의 발길까지 뜸해졌다. 인성 교육을 기대했던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학교 단체 예약마저 줄줄이 취소되었다. 회사 신입 사원 교육과정에서도 빠졌고 노인복지관의 방문도 끊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빚에 시달리던 중년이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루는 손녀부터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고백 끝에 함께 온 연인까지. 관장은 예약이 꽉 찬 일정표를 확인하는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누가 와도 이상할 게 없지. 마지막은 다 똑같으니까.”
   마치 내가 여기 온 이유도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면접 때 지원동기를 묻는 말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솔직한 대답은 약점으로 잡혀 경고로 돌아올지 몰랐다. 그날 이후 선배는 사소한 행동이나 표현 하나하나까지 문제 삼았다. 내가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흙 묻은 바지를 털어줬다는 것에도 주목했다. 그날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
   결말이 같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느슨해지면서 물렁물렁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선배를 다시 보니 매듭이 엉키고 틀어졌다. 가명 대신 또박또박 쓴 자기 이름마저 께름칙했다. 체험객을 둘러보며 부작용 사례가 될 만한 사람이 있을지 살펴봤다. 시선 끝에 또 선배가 잡혔다.

   복도를 빠져나오자 한쪽 벽에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그림자는 서로 뒤얽히다가 겹쳤다. 한껏 두꺼워진 어둠 탓에 체험객들 걸음이 엉키기 시작했다. 걸음을 바로잡을수록 복도는 거무죽죽하게 내려앉았다. 불규칙한 발걸음 소리와 두런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미리 붙여둔 야광 표식을 따라 나아갔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다음 회차가 늦춰지지 않으려면 얼마간 서둘러야 했다. 체험관을 향한 낮은 별점의 원인은 예정된 시간보다 지체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단체 인솔자는 틀어지는 일정에 예민하게 굴었다. 관장은 그에 따른 책임을 고스란히 내게 지웠다. 빠르게 나아갈 생각에 걸음이 엇나가 휘청거렸다. 선배는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뒤미처 따라오던 인솔자가 부주의하게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리면서도 걸음을 늦추진 않았다. 더러 이쯤에서 돌아서기도 했다. 무서워서 도저히 못 하겠다고. 어쩌면 선배가 포기할지도 몰랐다. 그럼 겨우 요만큼 오려고 찾아온 건가 싶어 피식거리며 눈을 흘길 참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건가요?”
   일행을 불러모으고 빠진 인원을 꼼꼼하게 확인했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표정이 제멋대로 뒤틀리도록 내버려뒀다. 어차피 잘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아직 아닙니다.”
   캄캄한 복도를 걷는 동안 표정은 서서히 묽어졌다. 관장은 복도를 설계할 때 조도를 낮추고 동선을 꼬아놓았다. 인생처럼 저승길도 굽이져 있지 않겠냐며. 나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체험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주말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저승으로 가는 복도를 통과했다. 그때마다 매번 다른 복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진짜인지 체험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야광 표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일하는 중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제야 체험객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뭘 체험까지 하고 난리야. 미리 체험해보면 뭐 좀 나은가.
   흐릿한 형광등 빛 아래를 지날 때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 있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이 지나갔다. 선배는 눈을 치켜뜬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결연한 얼굴이었다. 가느다란 빛 한 줄기 끼어들 틈이 없었다. 최소한 수의를 입는 차례까진 무난히 갈 것 같았다.

   복도를 빠져나오면 이정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정이 턱짓을 보내오면 한 사람씩 의자 앞으로 안내했다. 체험관에서 가장 밝은 자리였다. 그 때문에 축 가라앉거나 얼룩덜룩한 표정이 또렷이 드러났다. 밖에서 웃고 떠들던 얼굴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근육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얼굴 같았다.
    영정 사진을 찍을 차례였다.
   “살아생전 마지막 사진입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이정은 화면을 보여주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한 번에 만족하는 체험객은 드물었다. 마지막이라고 하니 뭐든 신중해지는 것이었다. 눈에 힘을 주거나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는 것마저 주의를 기울이는 듯했다. 이정은 점을 지워달라거나 피부를 화사하게 해달라던 요청을 거절했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 탓이었지만 대답은 달랐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그쯤이면 대개 사진을 골랐다. 처음 찍은 사진일 때도 많았다. 더 찍어봐야 별다를 게 없다는 걸, 마지막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관장은 사진을 건성으로 확인하는 체험객도 면밀하게 관찰하라고 지시했다. 흔들렸거나 뭉개진 얼굴에도, 이지러지고 초점이 엇나간 사진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면 더더욱. 용기를 얻었다던 남자의 영정 사진은 눈을 거의 감고 있었다. 이정은 드물게 재촬영을 권유했지만 남자는 돌아섰다. 마지막 사진 따위 상관없는 것처럼. 이건 연습일 뿐 진짜는 따로 있다는 듯.
   노파가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비틀거리자 부리나케 달려가 붙잡았다.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에도 가느다란 떨림은 멈추지 않고 건너와 차곡차곡 쌓였다. 이정이 봐왔던 영정 사진은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미련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묵직하거나 숙제라도 마친 듯 홀가분하거나. 화면 속 노파는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도 미련이 없다는 게 내심 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진과 나란히 두고 보면 금세 잊힐 얼굴이었다.
   영정 사진을 많이 볼수록 특징을 잡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구분할 수 없었다. 같은 사람의 사진을 다른 나이와 각도로 반복해서 보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먼저 알은체해온 사람을 한참 동안 못 알아보고 있으니 자신을 체험객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날짜와 회차에 이어 그날 날씨까지 일러줬지만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체험객의 실망보다 분장을 지운 얼굴을 알아봤다는 게 신경 쓰였다. 그러고 보면 선배도 날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쪽에 무게를 두게 됐다.
    영정 사진을 찍고 나면 드문드문 오가던 목소리마저 확연히 줄어들었다. 입을 가리고 겨우 속살거리는 게 전부였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무리도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몇몇은 얼굴이나 팔뚝을 남의 것처럼 쓰다듬었다. 나는 틀어진 의자를 바로잡고 체험객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며 촬영을 기다리는 줄을 곁눈질했다. 선배 차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표정이 궁금해 고개를 쭉 뺐다. 이제 울상을 짓진 않을까. 아니면 주눅들거나 어떤 표정을 지을지 머뭇거릴지도. 그날 밤 내가 지었던 것만큼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라면 어떨까.
   선배는 앉자마자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활짝 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얼굴의 중심을 빠르게 맞췄다. 오랫동안 연습해온 듯했다. 이정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화면을 일별한 나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선배는 그저 무더위를 식히러 온 게 아니었다. 삶의 전환점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모든 과정을 성실히 마치고 세세한 후기까지 쓰고야 말 것이었다. 이정이 다시 찍어야 한다고 했지만 선배는 가볍게 뿌리쳤다. 빛이 들어가 한쪽이 허옇게 번진 화면을 확인한 후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구석으로 갔다.

   “어차피 마지막엔 우리 모두 똑같습니다.”
   이정이 사진을 프린트하는 동안 관장의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는 다른 나라의 장례 방식을 지나 유명한 철학자들이 정의 내린 죽음으로 뻗어나갔다. 체험객들은 비밀이 낱낱이 밝혀졌거나 낯선 이에게 욕설이라도 들은 듯한 표정이었다. 표정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주저앉았다. 관장은 높낮이 없이 잔잔하고 고른 목소리를 냈다. 죽음 앞에서 호들갑 떨 필요 없다는 듯.
   “……변치 않는 진리고 유일한 평등이죠. 앞으로 평균 수명은……”
   그사이 나는 검은 띠를 두른 영정 사진을 나눠줬다. 두 번째 줄 아저씨는 뒷짐을 진 채 자기 사진이 아니라고 했다. 조악한 품질 탓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때가 잦았다. 그래서 때때로 엉뚱한 사진을 건네기도 했다. 서둘러 다른 사진을 넘겨 가며 찾아봤지만 맞아떨어지는 얼굴이 없었다. 눈매가 비슷한가 싶으면 턱선이 확연히 달랐다. 나중에는 모든 얼굴이 한데 뭉개져 짓이겨졌다. 옆에 있던 여자가 처음 건넸던 사진을 받아 아저씨 무릎 위에 올려뒀다. 저승 가는 길을 모르는 척할 순 없다면서. 끝에 가선 발음이 으그러졌다.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등을 쓸어내리다가 움찔했다. 그날 선배는 내가 안쓰러워 보여 그런 거니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현주도 호의를 왜곡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남은 영정 사진은 선배뿐이었다. 선배만은 확연히 도드라졌다. 한쪽이 어긋나 보였고 비스듬히 보면 평균 수명 이상을 살아낸 얼굴처럼 보였다. 번진 자리를 보고 있으면 영악한 아이 같기도 했다. 사방을 휘둘러봤지만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포기한 걸까. 영정 사진을 바닥에 부려놓고 말없이 떠나는 체험객도 많았다. 겁먹은 선배가 비웃음을 살만한 모습으로 달아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마지막까지 끝내고 나와 뭐라도 깨우쳐야 한다는 기대가 뒤섞였다. 그때 어깨 위로 손 하나가 불쑥 들어와 영정 사진을 낚아채 갔다. 일순 누가 귓가에 고함이라도 친 것처럼 온몸이 뒤흔들렸다. 암흑 속에서 헤매듯 더듬거리며 재빠르게 때론 느릿느릿 훑어내리던 손길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유난히 뜨근뜨근하고 손끝이 찐득했던. 시선을 틀어보니 선배의 뒷모습이 울렁이며 멀어졌다.
   이정은 한쪽에 상주 완장을 차고 강당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흠칫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을 참는 듯 끅끅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울렸다. 이정이 관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누군가 용기를 낼 만한 내용이었다.
   “……당장 누가 내일을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하루하루가 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현주는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나보다 전공 수업까지 빠지는 선배에게 기울어졌다. 선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술을 마시다가 차라리 죽고 싶다던 밤이면 더더욱. 술김에 했던 실수로 괴로워서 또 술을 찾는 선배를, 정교하게 파놓은 함정에 빠진 듯한 표정을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임종 체험관에 온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선배의 휴학 얘기가 나돌면서 대놓고 나를 흘겨보는 사람이 많았다. 들떠서 안부를 묻던 동기들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 보곤 ‘겨우 그깟 일로’라거나 ‘너 때문에 선배는’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는 얘기에는 흔들렸다. 용기를 냈던 남자로 난처해진 관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항변해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수록 체험과 용기 사이는 긴밀해졌다.
   선배는 우리 둘 다 취해있었는데 네 말만 진실이냐고 따졌다. 이어서 그저 비틀거리던 널 넘어지지 않게 잡아줬던 것뿐이라며, 그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럴 거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소리만 지르지 않았어도 밀치지 않았을 거라고도.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자 선배는 방까지 들이닥쳤다. 선배가 구해줬던 방이니 찾아오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었다. 늦은 밤이었고 목소리만으로도 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관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자 선배는 길가로 난 창가에 쪼그려 앉아 방을 내려다봤다. 선배 그림자가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온몸을 뒤덮었다.
   “이만큼 했으면 받아줄 줄도 알아야지. 벌써 교수님께 말씀드린 건 아니지? 너 그런 애 아니잖아. 엄마 생각도 해야지.”
   그림자가 몸집을 키워 맹렬하게 달려들자 벽으로 바짝 붙었다. 선배는 끊임없이 웅얼거렸다.
   “내가 사라져주면 되겠니?”
   겨우 시선을 옮겼다. 낡은 방범창으로 보이는 선배 그림자가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다가도 갇힌 건 도리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현주는 선배의 간곡한 사과와 자책이라고 했다. 내게는 협박과 위협에 가까웠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방까지 찾아갔겠냐는 목소리도 미심쩍었다. 선배가 CCTV가 있는지 확인하고 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현주는 선배를 두고 증거가 없으니 시치미 뗄 수 있는데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선배는 쪼그려 앉아 유서를 쓰고 있었다. 방범창을 기웃거리던 자세가 그럴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면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했다. 유서 옆에 써둔 묘비명을 건너다봤다. 극단적인 선택을 걱정할 정도는 아닌, 지나치게 흔한 예문이었다.
   이번 생 잘 놀다 갑니다.
   오래전 선배가 앉은 자리에서 쓴 유서를 찾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멀리서 어림잡았을 때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여기저기 훑어대던 시선은 대화가 오갈 때만 관장을 향했다. 굳은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발길을 돌려 나갈 태세였다.
   관장이 유서를 가져오자 내내 출구 방향으로 틀어져 있던 몸을 바로잡았다. 체험하고 돌아간 지 오래되지 않아 유서는 온전하게 남아있었다. 귀퉁이가 찢겨나가고 군데군데 번진 자국이 있었지만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갑자기 떠난 이가 남긴 말은 그뿐이었다. 자서전의 일부 같기도 했고 편지를 연습한 것처럼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한 유서라고 생각하면 모든 걸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문장은 모종의 암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관장은 강의 때마다 이 사연을 꺼냈고 신청서에 유서의 보관 기간을 선택하는 칸을 따로 마련했다. 선배는 즉시 파기에 표시했다. 그건 죽을 맘이 없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체험객 사이를 살금살금 지나다녔다. 잔뜩 옹송그린 등을 보니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됐다. 관장이 전한 사연 때문인지 유서 작성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신청서처럼 대신 써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를 맞대며 의견을 나누거나 상대의 문장을 지적하지도 않았다. 곁에 붙어서 괜찮을 거라는 위로도 전하지 않았다. 한쪽에서 훌쩍거리자 어느새 여기저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엄숙한 분위기를 헝클어뜨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적당히 분배해야 했다. 여기서도 시간을 허비하면 이어지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지난주처럼 영정 사진 없이 장례를 치르거나 수의를 생략한 채 맨몸으로 관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지난주에는 오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과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다녀갔다. 마지막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인원과 대상을 물었을 때 담당 교사는 반성이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얼버무렸다. 내가 캐물었을 때야 친구를 장난삼아 괴롭혔다고 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 서둘러 지난 실수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체험 수기는 위원회에서 벌점을 부여하고 전학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참고가 될 거라고 했다. 당연히 마음을 다친 학생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전달될 거라고.
   대기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평범했다. 그 나이 또래 평균을 낸다면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그사이 어수룩해 보이거나 심약한 구석을 발견했을 땐 담당 교사의 말대로 아이들의 잘못을 실수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유서는 회한으로 빼곡했고 얼마간 절실해 보였다. 어깨를 부들거리며 눈물까지 쏟아내자 다들 용서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들었다. 사이사이 누군가 부지런히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댔다. 사진은 죗값을 덜어내는 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유서에서는 누구라도 죄인이었다. 내밀한 자백이 이어졌다. 용서를 빌지 못할 잘못은 없었다. 훔친 건 사실 나였다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거짓말이었다고. 나중엔 유서도 영정 사진처럼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읽혔다. 그래도 선배만은 다를 거라는 기대가 들었다.
   선배 근처에 가서 어깨 너머를 힐끗거렸다. 선배의 한숨 소리가 길게 번졌다. 거리를 두고 지나쳐가다가도 어느 순간 선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볼펜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휴지 좀 달라고 하는 체험객에게 갔다가도 다시 뒤에 서서 맴돌았다. 그사이 선배는 한 번도 자세를 고치지 않았다. 선배는 가장 늦게까지 유서를 썼다. 이제껏 유서에 공들이는 쪽은 선배와는 달리 영구 보관을 선택한 체험객들이었다. 곧 파쇄할 유서에 심혈을 기울이는 선배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선배가 손을 들었다.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다가섰다.
   “이거 한 장만 복사해주실래요?”
   선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에 찌들어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복사해서 어디에 쓰려는지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이만큼 죽고 싶으니 알아봐달라는 뜻일까.
   복사한 유서를 읽고 나니 선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 산책을 자주 못 시켜준 것에 대한 사과까지 있었지만 끝내 그날 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동안 견뎌온 시련과 고난 속에 포함되어있는 건지도 몰랐다. 선배는 잊은 걸까. 유서를 쓸 때마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이어지는 문장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담담했다. 용기를 냈다던 남자의 유서처럼 냉정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누구도 함부로 죽음을 수식하거나 잘못된 해석으로 몰고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을 밀어내고 무시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쪽으로 돌아선 이들에게 자주 볼 수 있는 표현도 많았다. 집행인을 지목했고 자세한 인적 사항도 남겼다. 장례 절차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처분도 분명했다. 마지막엔 각막 기증 의사까지 적었다.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내용인 것 같았다. 혹시 사라져주면 되겠냐던 날이었을까. 보험 얘기까지 나오자 그 말에 진심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정말 죽으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는 걸까.
   현주라면 이 유서에서 나를 떠올릴 것이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면 어쩌냐고, 선배가 망가지고 쫓겨나길 원하는 거냐고 물었던 현주라면 충분히. 내가 유서를 미리 봤다는 것까지 알면 어떨까.
   그때 체험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씹어 뱉던 말이 떠올랐다.
   “아까 질질 짜는 연기 개잘하더라.”
   “씨발 찐따 하나 때문에 존나 좆같은 걸 다 해보네.”
   아이들의 유서는 죄를 지우는 데에만 급급한 악의적인 반성문으로도 읽히지 않았다. 차라리 괴담에 가까웠다.
   선배의 유서를 다시 한번 읽어내려갔다.

   “이제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갑니다.”
   체험객은 지하에 있는 입관 체험실로 이동했다. 어둠이 무르익은 복도는 나직한 발소리마저 빨아들였다. 일행 뒤에 따라붙으며 야광 표식을 놓치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웠다. 틈틈이 대열에서 이탈하는 체험객을 살폈다. 누군가 균형을 잃고 비척거리면 재빨리 다가가야 했다. 한 명이 넘어지면 자칫 줄줄이 나동그라져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언젠가 어설픈 저승사자 때문에 죽어보기도 전에 죽을 뻔했다고 최하점을 준 체험객도 있었다. 그때 관장은 꾸지람 끝에 유능한 저승사자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선배가 있는 이번 회차에서만큼은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으로, 무엇보다 실수라고 하면 믿어주고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비틀거리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럴수록 한쪽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순간 야광 표식이 지워지고 맨 뒤에서 따라가던 체험객과 부딪혔다. 방금까지 충분한 거리가 있었지만 컴컴한 복도에서는 언제든 순식간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홱 돌아선 체험객을 향해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저승 가는 길에 미안하다고 하는 저승사자는 어쩐지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았다.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드러났다. 윤곽이 절반쯤 지워졌지만 선배가 확실했다. 몸이 기울자 그날처럼 선배가 바짝 다가왔다. 그림자인지 선배인지 헷갈렸다. 벽을 짚고 서둘러 균형을 찾으려 했지만 손은 허공을 더듬었다. 선배는 망설이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멈췄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쳤을 수도 있었다. 눈이 마주친 선배는 달아나듯 걸음을 서둘렀다. 벽에 걸쳐있던 그림자가 훌쩍 멀어졌다. 그림자는 체험객 무리와 한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겉돌았다.

   체험실 안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향내가 끼쳐왔다. 사방엔 검은 리본을 두른 근조화환이 빼곡하게 둘러있었다. 리본에는 아무 글씨도 없었다. 마치 어떤 이름도 쓰일 수 있다는 듯이. 어느새 감파른 연기가 시선을 휘저었다. 조명이라곤 촛불이 전부라 보이는 것마다 희끄무레했다. 얼굴도 손발도 지워졌다. 바닥마저 딛는 게 아니라 둥싯둥싯 떠다니는 듯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향내가 농밀해졌다. 향내가 절정에 이르면 관이 늘어선 자리였다. 다닥다닥 놓인 오동나무 관 옆에 체험객이 한 사람씩 차례차례 자리했다. 한쪽에서 네 번째는 재수가 없어 꺼림칙하다며 실랑이가 일었다. 이정이 민첩하게 다가가 다른 자리로 안내했다. 빈자리에는 선배가 섰다. 어차피 곧 죽을 텐데 재수 없는 것 따윈 상관없다는 마음일지도 몰랐다.
   가로 80센티미터 세로 180센티미터 오동나무 관은 성인이 들어가기에 만만찮은 크기였다. 하지만 관치고 작은 편은 아니었다. 죽으면 염을 한 뒤에 온몸을 매듭으로 단단하게 묶기 때문에 실제로 쓰이는 관은 더 작았다. 건장한 체구를 가진 체험객을 위한 관은 한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회차에는 필요 없어 보였다. 새삼 선배 몸집이 작은 편이라는 걸 깨달았다. 현주는 선배라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나는 체격이나 힘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현주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해야 했다고, 마음이 마음에만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받아쳤다.
   단상 위에 선 관장은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을 설명했다. 얼마 전 관에 몸을 구겨넣다가 허리를 삐끗한 체험객은 결국 혼자 나올 수 없었다. 관 속에서 들리던 울음은 회한에 젖은 눈물이 아니라 고통 때문이었다. 결국 이정과 함께 달려들어야 했다. 체험객은 진짜 죽일 셈이냐고 소리쳤다. 관장은 치료비를 물어주는 선에서 끝내고 싶었지만 원만하게 해결되진 못한 눈치였다. 그때부터 체험하기 전 몸을 푸는 시간을 가졌다. 관을 옆에 두고 하는 체조는 어느 방향으로 봐도 수상쩍고 기이했다. 선배는 모범을 보이듯 동작 하나 놓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 했다.
   그림자와 몸의 경계가 지워졌다. 이제 반듯하게 개켜놓은 수의를 입을 차례였다. 이정이 앞으로 나가 관장과 나란히 섰다. 약식으로나마 염하는 방식을 시범 보이기 위해서였다. 체험객 가운데 신청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 떨떠름한 표정을 주고받을 뿐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평소처럼 마네킹을 꺼내오려는데 선배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학교에서도 궂은일에 앞장서고 솔선수범하던 사람이었지. 선배의 몸에 매듭이 묶일 때마다 체험객들은 움찔거렸다. 나는 모든 매듭이 묶일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수의를 받아든 체험객들이 굼뜨게 움직였다. 유서에 남들 눈치만 보면서 살았던 게 후회된다고 썼던 체험객은 주변을 둘러보며 맞춰나갔다. 돌아다니면서 입는 방법을 설명해도 귀담아듣는 체험객은 없었다. 되는대로 입거나 대충 걸치는 정도로 끝냈다. 그저 체험일 뿐인 데다가 어차피 죽으면 남이 입혀줄 테니. 선배만은 꼼꼼하게 확인해가며 입었다. 체험이 아니라 진짜 연습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뭔가 잘 안 맞는지 선배는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동안 헐렁해서 다양한 크기가 있으면 좋겠다거나 피부가 예민하니 수의 재질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선배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속삭이는 목소리는 예상 밖이었다.
   “여기서 수의도 살 수 있나요?”
   돌연 선배에게 되묻고 싶었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진짜 죽을 생각이냐고. 그사이 관장은 평소처럼 인터넷에서 봤다던 구절을 읊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1)
   누르스름한 수의를 걸치자 아득했던 무늬마저 죄다 사라지고 체험객들은 완전히 한 사람이 됐다. 이쯤 향내는 몸속에 켜켜이 쌓여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표정은 끝없이 묽어져 관 안에 누워 눈을 감으면 텅 비워졌다. 이정과 나는 끝에서부터 관 뚜껑을 하나씩 덮어 나갔다. 뚜껑을 들어올리는 순간 관 안에는 그림자가 숲처럼 우거져 몸을 옥죄었다.
   선배 차례에서 뚜껑을 들어올리다가 멈칫했다. 그 바람에 이정과의 호흡이 어긋났다. 선배는 편하게 잠든 얼굴이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했다. 이정이 큼큼거리며 눈치를 줬지만 내 시선은 선배에게 단단히 박혀있었다. 추도문을 읽듯 우물거렸다.
   네까짓 게 사는 게 힘들고 괴로워? 죽고 싶을 만큼?
   서둘러 관 뚜껑을 덮었다. 쿵 하며 내려앉는 소리가 체험실 가득 울렸다. 옆에 있던 나무망치를 들었다. 플라스틱 못을 미리 뚫어놓은 구멍에 따라 꼼꼼하게 박았다. 퉁탕거리는 소리가 오롯이 선배에게 닿을 수 있도록 무게를 싣고 잔뜩 힘을 주었다. 이정이 손에 쥐고 있는 모종삽까지 빼앗았다. 봉지에서 쌀을 퍼 관 위에 후두둑 뿌렸다. 관을 매장할 때 흙으로 덮는 대신이었다. 한 번으로 모자라 한번 더, 아예 봉지를 뒤집어 탈탈 털어냈다. 경쾌한 소리에 어깨까지 들썩였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선배 용기를 내요. 여기서 용기를 얻으세요.
   체험객들은 관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십여 분쯤 머물렀다.
   체험을 마치고 대기실로 나오면 관장은 부활의 상징이라며 삶은 달걀을 나눠줬다. 체험객들은 눈을 씀벅거리고 안도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몸의 관절들을 처음인 듯 움직여보거나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된 얼굴을 닦는 체험객들도 많았다. 이제야 떠듬거리며 목소리가 오갔다. 복도에서 팔꿈치를 잡아당겼던 인솔자는 달걀을 감싸쥐며 울먹였다.
   “이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군요.”
   뒤에서 무심히 지나가던 선배가 멈춰서서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이 꼭 나를 향한 것 같았다. 어쩌면 선배는 처음부터 다 알고 온 걸까.
   이번 회차는 정확히 예정된 시각에 마쳤다. 그리고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돌아와. 이제 다 해결됐어.”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현주의 목소리가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체험관에서 마주쳤던 선배 얼굴이 끼어들었다. 이어서 유서 속 문장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그저 곤란한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위장인 듯도 했고 한편으론 진심을 담은 반성으로도 읽히던. 어쩌면 정말 용기를 냈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어떤 식으로 해결된 건지 묻지 못했다.
   그런데 현주는 선배가 방까지 찾아온 걸 어떻게 알았을까. 선배가 했던 말이 사과와 자책이었다는 것까지. 생각은 선배가 유서 끝에 쓴 문장에 이르렀다. 여전히 유순한 글씨였다.
   현주야 끝까지 믿어줘서 고마워.
   돌이켜보면 모든 문장은 내가 읽을 걸 알고 쓴 것 같았다.
   “선배 지방으로 내려갔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래. 그러니까 너도 이제 좀……”
   “어디로?”
   H군이었다. 식당에 들르겠다는 건 빈말이 아니었을까. 가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선배가 남겼던 체험 후기를 되새겨봤다. 나를 향해 넌 결국 사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는 듯했던 후기를.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
   관장은 이 문구를 광고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선배는 정말 용기를 얻었을지도 몰랐다. 관장이 체험관을 통해 사람들이 얻었으면 했던 그 용기를.

전석순

요즘 파본, 사소한 착각, 어긋난 계획, 알고 보면 연결된 샛길, 실수에 관심을 둔다. 열여덟 살쯤 반장 대신 갔던 소년원 견학에서 마주쳤던 눈빛이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고치고 다듬어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이제 그 마음까지 소설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새벽이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2022/06/28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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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