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가 있어.
    조심스레 아내에게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화장실 쪽이었던 것 같아.
    아내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가. 나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목이 조금 잠겼을 뿐인 척. 일부러 성대를 긁으니 정말로 목이 간지러워졌다. 미처 막을 새도 없이 기침이 터져나왔다. 얕은 한숨 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왔다. 나는 핸드폰을 얼굴에서 조금 떼어내고 기침을 쏟아냈다. 눈물이 찔끔 났다.
    한 손에 핸드폰을 쥔 채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숨을 가다듬었다. 천천히 기침이 잦아들었다. 통화는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기침을 하느라 내가 실수로 종료 버튼을 누른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내에게 미안했다. 미안한 건 그 때문이다.
    손수건 가장자리에 옷감의 보풀이 매달려 있었다. 시커먼 덩어리가 먼지처럼 더럽게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으로 보풀 덩어리를 떼어냈다. 아주 짙은 검회색이었다. 그제야 내가 오래된 검정 코트를 입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손수건을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일 낮의 프랜차이즈 카페는 한가했다. 몇 명 되지 않는 손님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소매로 멋쩍게 입가를 문질렀다. 소매는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입고 다니던 코트였다. 옷에 무관심했던 터라 코트 하나, 잠바 하나면 외투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검정색은 때가 타지도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어정쩡하게 긴 코트 길이와 제비 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지는 코트 뒤태가 그토록 볼썽사나운지는 정말로 몰랐다.
    바퀴벌레 같아.
    아내가 한 말이었다. 아내는 이 코트를 정말 싫어했다. 연애 때도 몇 번이나 갖다버리라고 언질을 줄 정도였다. 나는 해마다 코트를 버릴 결심을 했다. 그리고 번번이 결심은 무산됐다. 겨울을 난 코트는 언제나 입을 만해 보였다. 옷장으로 되돌아간 코트는 번번이 다음해에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드라이클리닝 비용은 꽤 아깝게 느껴졌다.
    저번엔 세탁소에 맡겼었나. 나는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10월에 결혼을 했다. 곧바로 겨울이 왔고 곁엔 아내가 있었다. 코트를 꺼내 입었다면 아내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와 백화점에서 코트를 산 기억이 났다. 밝은 갈색 코트였다. 길이는 점잖다고 여겨질 만큼 적당히 길었다. 세련되어 보인다고 아내는 말했다. 갈색 코트에 어울리는 캐시미어 목도리를 산 기억도 났다. 그러니까 작년 겨울에는 이 코트를 입은 적이 없었다. 아니 이 코트가 있는지도 몰랐다. 설마 신혼집까지 이 코트가 따라왔을 줄은 더욱 몰랐다.
    테이블 위로 햇빛이 길게 들어찼다. 나는 보고 있던 소설책을 덮었다. 종이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아렸다. 책은 아내의 것이었다. 아내는 단 한 번도 이 책을 펼쳐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접힌 자국 하나 없이 말끔한 책등이 눈에 띄었다. 어쨌든 책은 아내의 것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 사실을 곱씹었다.
    뻑뻑한 눈을 연신 비볐다. 커피숍 안은 건조했다. 더운 바람을 내뿜는 맹렬한 기계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눈이 무척 따가웠다. 지난 몇 달 간 나는 수입이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백수로 전락했다. 며칠만 더 지나면 결혼 기간의 절반을 꽉 채우게 될 것이다. 나는 책을, 그러니까 ‘아내의 것’을 만지작거렸다. 빳빳하게 코팅된 책의 표지는 서늘했다.
    아직 3시. 나는 시간만 확인하고 핸드폰을 곧바로 집어넣었다. 핸드폰 요금조차 아내가 납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핸드폰은 내 것인가 아내의 것인가. 핸드폰의 명의는 분명 내 이름이었다. 그뿐이었다. 나는 내 이름에 아무런 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온전히 내 것으로 남은 것은 이 낡은 코트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언중유골이라 했지요. 학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학장은 그 말을 쓰고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런 때에 쓰는 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잔의 손잡이만 만지작댔다. 찻잔 안의 액체가 녹차인가 우롱차인가. 두 개가 다르긴 하나. 색도 비슷한데. 그때 나는 하릴없이 그런 생각만 해댔다. 찻잔 안의 액체에 동그란 파문이 일었다.
    방금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학장에게 말했다. 학장은 굉장히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장이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때로는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학장이 조용하지만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나는 학장의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왜 나한테 다들 가만히 있으라고 하나. 나는 찻잔에서 눈을 떼고 학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장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 대 맞기라도 한다면 저 표정이 달라질까. 나는 괜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보았다. 그런 자신이 웃겨 피식거렸다. 맞아본 적도 때려본 적도 없는 손이었다.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펜보다 무거운 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던 나였다. 그런 주제에 여학생에게 지분거릴 배짱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자리가 몇 번째인지 몰랐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언중유골 아니겠습니까. 학장이 말했다. 다시 한번 발밑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찻잔이 파르르 떨렸다. 학장 뒤로 바퀴벌레가 지나갔다. 사람 아닌 것들이 재난을 더 빨리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퀴벌레는 창틈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가만히 있지 않는구나. 바퀴벌레의 궤적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억울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 완전히 결백하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학장이 말을 이었다. 어깨를 만진 건 사실 아닙니까. 나는 어깨를 만지다, 와 어깨를 두드리다, 의 차이를 생각했다. 그 차이가 말의 뼈인가. 나는 학장 얼굴 너머로 보이는 창문을 쳐다보았다. 햇빛이 잘 드는 창이었다. 침을 뱉고 싶었다.

    아직도 3시. 나는 창으로 길게 늘어지는 햇빛을 하릴없이 쳐다보았다. 아내의 퇴근 시간이 되려면 몇 시간을 더 뭉개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건조하고 무료했다. 커피숍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 없는 집에 혼자 있을 수도 없었다. 바퀴벌레는 내가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퀴벌레가 나오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집은 지어진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신축 빌라였고 우리 부부는 그 공간의 첫 입주민이었다. 그러니까 바퀴벌레는 이 집에서 나오면 안 된다. 화를 내는 나에 비해 아내는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잡아.
    아내는 내게 말했다.
    나올 때마다 잡으라고.
    나도 아내의 말대로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바퀴벌레를 잡을 수 없었다. 바퀴벌레를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바퀴벌레만큼 익숙한 해충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군대에 있을 때는 커다란 바퀴벌레가 얼굴로 날아와 놀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것들을 밟아 죽였다. 밟고 난 뒤 신발 밑창을 흙바닥에 직직 비벼대면 으깨진 조각들이 흩어졌다. 무척 쉬웠다.
    그러나 그건 전부 옛일이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바퀴벌레를 잡지 못한다.
    바퀴벌레는 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났다. 바퀴벌레는 듬성듬성하게 가시가 돋은 다리로 가뿐하게 몸을 움직인다. 나는 여섯 개의 가느다란 다리가 실크 벽지를 짚어대는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소리만으로 바퀴벌레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퀴벌레의 다리에 돋아 있는 작은 가시들이 벽지를 훑고 긁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눈으로 소리를 좇았다. 어김없이 그곳엔 매끈한 등껍질과 흔들리는 더듬이가 보였다.
    내가 바퀴벌레를 발견하면 바퀴벌레는 꼼짝 않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더듬이가 조금씩 흔들렸다. 냉장고가 징징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맞춰 더듬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더듬이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숨소리 하나 쉽게 낼 수 없었다. 바퀴벌레는 어떤 낌새를 느끼기 위해 온 감각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숨이라도 몰아쉬면, 눈이라도 깜빡여버린다면, 그래서 바퀴벌레에게 내가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나는 긴장으로 온몸이 뻣뻣해졌다. 가만히 있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집에는 바퀴벌레와, 바퀴벌레조차 잡지 못하는 남편이 머물렀다. 아내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했다. 근처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7시 즈음이었다. 나는 아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집에 들어갔다. 코트를 벗어 옷장 깊숙이 집어넣고 나니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재빨리 옷장을 닫았다. 아내에게 코트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커피숍 갔었어?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나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내는 나의 불면증을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가 아내의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은 뒤늦게 생각이 났다.
    젓가락만 분주히 식탁 위를 돌아다녔다. 젓가락이 그릇에 닿을 때마다 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식욕이 없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나는 열심히 밥을 먹었다. 달각거리는 소리는 더 자주 났다. 소리가 부끄럽게 느껴졌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입 안에서 밥알이 부서지고 뭉개지는 감각에만 집중했다. 아내가 입을 열었다.
    다음엔 거기 말고 건너편에 가. 더 작아서 그런지 조용하더라.
    말을 끝내고 아내는 빈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물 더 줄까, 하고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내가 말한 커피숍을 알고 있었다. 오늘 갔던 커피숍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곳이었다. 여긴 아메리카노가 6,000원, 저긴 아메리카노가 4,500원. 여긴 2층, 저긴 1층. 커피숍 앞에서 나는 두 곳을 비교했다. 2층의 6,000원을 선택한 건 내 의지였다. 아내의 말 속에서 느껴질 1,500원의 무게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나는 아내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내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현관문 밖에서 계단을 디디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하이힐 소리 하나, 무겁고 급한 구둣발 소리 둘. 소리만으로 그들을 짐작할 수 있었다. 502호 여자와 그 일행일 것이다. 비틀거리는 몸이 발소리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불규칙한 발소리 사이로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즐거운 것 같았다. 그릇을 치우면서도 현관문 밖의 소음에 집중했다. 이 집과 502호는 모서리를 낀 채 붙어 있는 구조이다. 502호가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이 집의 현관문과 부딪쳤다.
    어김없이 쿵,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소란한 목소리들이 점점 작아졌다. 집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내는 식탁에 턱을 괴고 앉은 채 현관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열심히 산다.
    아내가 중얼거렸다. 502호 여자의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남자들이 번갈아 여자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다.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곧이어 502호의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소음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내는 낮의 통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전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집에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새삼 내가 전화를 해서 알릴만한 일은 아니었단 말이다. 아내는 내가 바퀴벌레를 잡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 점에 대해 실망한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바퀴벌레로부터 도망친 남편에 대해서도 정말 실망하지 않았을까. 견디는 것과 도망치는 것은 달랐다. 아내는 여전히 식탁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아내는 이 집에 나타나는 바퀴벌레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바퀴벌레는 나 혼자 집에 있을 때만 골라서 나타나니까. 아내는 이상하다는 말조차 내게 한 적이 없었다.
    아내는 내 말을 믿긴 했을까. 나는 아내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들을 수 있는 말도 찾지 못했다.
    옆집의 소음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소리인데도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는 게 느껴졌다. 술판이 제대로 벌어진 것 같았다. 내용이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콘크리트 벽을 통과해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껏 뭉개져 웅얼거리기만 했다.
    502호는 여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보다 두 달 먼저 입주했다고도 했다. 혼자 사는 그녀가 혼자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혼자 사는 그녀는 거의 날마다 남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밤새 술을 마시고 떠들고 웃고 섹스를 했다. 그녀는 낮에만 조용했다. 나는 그녀의 집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조용한 그 시간에 청소를 할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수많은 배달 음식이 그 집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바퀴벌레는 습하고 더러운 곳에 모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바퀴벌레는 502호에서 기어나오는 게 아닐까. 그곳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바퀴벌레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나직하게 바퀴벌레, 하고 소리 내어보았다.
    아직도 보여?
    아내가 말했다. 응? 하고 나는 되물었다. 아내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두 남자도 번갈아 목소리를 높였다. 나뒹구는 술병과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쉽게 떠올랐다. 바퀴벌레는 한 마리라도 보이기 시작하면 이미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살고 있는 것이라 했다. 썩어가는 배달 음식 사이로 동그란 알을 낳는 바퀴벌레가 쉽게 떠올랐다.
    옆집 여자 본 적 있어?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아내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바퀴벌레를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냥 가만히 있느냐, 원인을 제거해야 잡을 거 아니냐, 원인이 옆집인 게 뻔하지 않느냐. 하고 싶은 말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옆집 여자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무척 높아서 너무 잘 들렸다. 취기는 이미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 남자의 웃음소리도 뒤따라 들려왔다. 섹스는 어느 쪽이랑 하나.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벌거벗은 몸을 상상했다. 바퀴벌레는 위기에 닥쳤을 때 온힘을 다해 알을 낳는다. 나는 죽기 직전의 바퀴벌레가 떨어뜨린 알집이 얼마나 묵직했는지 기억해냈다. 그걸 집어들고 태워야 한다던 놈이 누구였더라.
    벌레 같아.
    아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열심히 사는, 벌레들. 나는 아내의 말을 조합했다. 어쩐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걸린 거 같아.
    침대에 눕다말고 아내가 말했다. 나는 불을 다시 켰다. 금이 간 것 같기도 하고. 아내는 입을 살짝 벌린 채 혓바닥으로 어금니를 훑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아내의 고개를 숙여 아내의 입 안을 들여다보았다. 보여?
    빛이 고르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아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아내 얼굴 위로 내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쳐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내의 혓바닥이 다시 움직였다. 보이냐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어금니 안쪽을 봐야 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시커먼 구멍뿐이었다.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나를 향해 고개를 치켜든 채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허공에 뜬 시커먼 구멍이 나를 쳐다보았다.
   응. 보여.
   나는 아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얼굴이 차가웠다. 나는 고개를 숙여 아내의 어둠을 공들여 살폈다. 아주 잘 보여. 나는 잘 보인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아내는 더이상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대학 시절에 만났다. 함께 있던 동아리실은 유난히 벌레가 자주 나왔다. 그때의 나는 돌돌 말린 신문지로 어지간한 벌레는 다 때려잡을 수 있었다. 여학생들은 벌레가 나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내 등 뒤로 숨었다. 내가 벌레를 향해 신문지를 휘두를 때마다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다. 아내도 그때 비명을 질렀을까. 그때는 아내와 사귀기 전이었다. 나는 아내의 어린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애초에 아내가 내 등 뒤로 숨기는 했을까. 아내가 내 등을 믿은 적이 있기나 할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아내의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들썩이는 아내의 어깨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밭은 숨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잠옷 너머로 아내의 야윈 등이 느껴졌다. 아내의 등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아내는 모로 누운 자세로 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아내는 이를 가는 버릇이 있었다. 깊은 잠이 들면 아내는 이를 갈기 시작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갈이가 시작되어야 아내가 잠이 들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지금 모로 누워 등을 보이는 아내는 잠들지 않았다. 아내의 가쁜 숨소리 사이로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의 등 너머로 벽이 보였다. 이 벽 너머는 옆집의 침실이었다. 옆집 여자는 야단스러운 섹스를 했다.
   결국은 셋이서 하는구나. 나는 뚱뚱한 남자와 호리호리한 남자 사이에 있는 천박한 여자를 떠올렸다. 언젠가 보았던 포르노의 한 장면일지도 몰랐다. 바퀴벌레는 죽기 직전에 온힘을 다해 알을 낳는다고 했다. 언젠가 나는 바퀴벌레가 알집을 떨어뜨리던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그것을 죽이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바퀴벌레는 지금도 이 집을 배회하나. 구석구석에 동그란 알을 떨어뜨려놓았나. 가느다란 다리가 벽지를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내는 정말로 이 집의 바퀴벌레를 본 적이 없을까.
   아내는 조금씩 더 빠르게 달싹였다. 나는 아내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아내의 손가락이 팬티 안에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내는 ‘아내의 것’에 열중하고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등이 보였다. 아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내의 등을 보며 아내의 얼굴을 상상했다. 상상을 하면 할수록 아내의 얼굴은 자꾸만 달라졌다. 옆집 여자의 신음이 점점 높아졌다. 아내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앙다문 잇새로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어금니에 금이 가지. 나는 아내의 입 안에 내 손가락을 집어넣고 싶었다. 아내의 어금니 사이에서 부서지고 뭉개지는 살덩이를 상상하는 건 쉬웠다. 손가락부터 몸통까지 천천히. 나는 어금니의 금을 상상했다. 뭔가 걸린 거 같아. 아내의 말을 떠올렸다. 가느다란 금은 바퀴벌레의 더듬이나 다리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수면 중에 생각보다 많은 벌레를 삼킨다고 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성기를 감싸쥐어보았다. 발기하지 않은 성기는 부드러웠다. 손바닥이 따뜻하고 축축했다. 옆집 여자의 비명 같은 소리가 점점 커졌다. 더럽고 축축한 그곳에서 바퀴벌레가 뽀옥뽀옥 동그란 알을 낳는 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나는 눈앞의 어둠을 응시했다. 벽과 그 벽 너머가 희미하게 보였다. 벌레와 벌레 같은 것들이 한데 뭉쳐져 바글거리고 있었다. 발기되지 않는 성기를 힘주어 주물렀다. 여전히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나는 성기를 움켜쥔 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아내가 여전히,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이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이나리

공간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곳, 내가 쓰는 곳, 내가 속는 곳.
사람과 사람의 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모두 나를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합니다.
그런 걸 쓴다는 건 힘들어서 즐겁습니다.
당신은 즐겁게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