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케트를 기다리며 건물의 입구를 찾는다. 문은 총 세 개로 하나는 누가 봐도 가짜다. 그것이 문이 아니라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손잡이가 없다는 점,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틈이 없다는 점, 허름한 외투처럼 생겼다는 점, 머리띠를 하고 있다는 점, 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하다는 점, 떠돌이처럼 생겼다는 점……
   그것이 문이 아닌 근거는 이 외에도 많지만, 어느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문이 아니라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더 많은 이유를 모아 그것이 문이 아니라는 판단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은 이유와 묘사가 필요하며, 더 많은 이유와 묘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관찰, 망원경,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므로 그것을 지나친다.
   이런 식으로 지나치는 것은 하루에도 열 가지가 넘는다.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지나간 하루란 쌓이고 쌓인 사물들의 묶음이다.


   2.

   그것이 문이 아닌 강력한 이유는 바로 옆에 진짜 문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은 두 개의 나무 손잡이를 가지고 있고, 내부를 보여주는 투명한 재질이며, 아무것도 안 하는데 복잡하고 무엇보다, 열리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다.

   투명한 문이 보여주는 매장 내부의 풍경. 서너 명의 손님이 음료와 케이크를 주문한다. 밖에서 서성이는 나.

   그것이 문인 가장 명확한 근거는 ‘옆문으로 들어오세요’라는 문구이다. 건물 모퉁이를 돈다. 측면에 작은 나무 문이 있어 허리를 굽혀 들어간다.


   3.

   일 층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베케트를 기다린다. 카운터 맞은편 벽은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로 꾸며놓았다. 평범한 목제 책장에 지팡이 상자가 빼곡히 꽂혀 있다. 무질서하다. 지팡이를 마구 꽂아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책장의 단이 기울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나중에 깨닫는다. 당시에는 관찰하지 못했고 「베케트를 기다리며」라는 콩트를 쓰기 위해 찍어둔 사진을 뒤적이다 뒤늦게 알게 된다.

   책장 옆에는 가짜 계단이 있고, 오르면 벽이다.

   오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 굳이 끝까지 올라 벽에 손을 대어본다. 밀어본다. 혹시 벽이 열릴까. 오르내리기만 가능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계단에는 해리 포터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벽으로 막혀 있기에 계단은 전시장으로 이용될 수 있으며 그래서 계단은 기쁘다.

   베케트라면 저길 오르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어디론가 이어지는 계단보다 아무 곳에도 바래다주지 않고 보여줄 게 벽밖에 없는 무능한 계단을 베케트라면 좋아할 법하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건 베케트에 대한 나의 과대평가다. 나는 내가 베케트라도 된 것처럼 베케트를 가져다 내 멋대로 쓴다.

   진짜 계단은 엘리베이터 옆에 있다. 2층으로, 3층으로, 4층으로, 5층으로, 6층으로 이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으나 벽이 예쁘게 꾸며져 있어 계단을 이용했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움직이는 그림을 재현하고 싶었던 모양이나 그림은 움직이지 않고 해리 포터에 나오는 그림도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명화들로, 그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도 있다. 그것들을 보며 찬찬히 계단을 오른다. 성경을 필사하는 주교, 베일을 쓴 신부, 강아지를 품에 안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년. 웃음은 시간을 초월하고 상상력은 나이가 없다, 꿈은 영원하다, 가장 어두운 때에도 행복은 존재해, 단지 누군가가 불을 켜는 방법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믿어도 좋고 믿지 않아도 좋을 『해리 포터』 속 문장이 창문에 적혀 있다. 검은 시트지를 붙여둔 창문. 햇빛을 막고 문장을 썼다.


   4.

   “여기 뭔가 떨어져 있다.”

   2층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뒤에서 베케트가 나타났다. 늘 그런 식이다. 뭔가 떨어져 있다. 그건 베케트만의 인사법으로, 그는 이름을 부를 줄 모르고 그는 안녕?이라고 말할 줄 모르고, 잘 지냈니? 할 줄 몰라서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다 말한다. 뭐가 떨어져 있다는 말과 함께 나는 베케트가 왔구나 한다. 손가락 끝으로 바닥을 가리키고 있어 바라보면 바닥엔 돌돌 만 휴지조각이, 죽은 비둘기가, 낙엽이, 달라붙은 껌이, 살이 나간 우산 등이 있다. 그래. 그의 인사법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게 정말로 늘 뭔가 떨어져 있다.

   베케트와 나 사이에 떨어져 있는 사물은 검은색 액자로 기둥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떨어진 덕에 그것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액자로 양면테이프로 대강 붙여놓았던 것인데, 베케트는 그게 거기 떨어져 있다,라고 말하고 그게 무엇인지 추궁하다가 그래 그건 액자라기보다는 앞으로 내가 쓸 작품이다, 말하며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5.

   베케트가 늦은 이유로 방에서 눈뜨기를 들 수 있다. 베케트는 작은 방에서 눈뜨기를 하고 있었다. 눈감기, 눈뜨기, 눈감기, 눈뜨기. 그게 그가 해야 하는 일과의 전부다. 도서관에 딸린 작은 방. 방에는 책상과 의자 하나가 있다. 창문도 있다. 창문을 열어 자꾸 실감한다. 여기가 안이고 저기는 바깥이다. 베케트는 실감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감. 그 단어를 쓰면 자꾸 멀어진다. 어디로부터? 하여간 어디로부터 멀어지고 그 느낌이 좋지만은 않다. 그건 하나의 함정일세. 베케트는 실감이라는 개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창문이 무언가를 재현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름대로 무언가를 보여준다. 창문으로 본 바깥 풍경은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지만 굳이 따지면 안에 가깝다.
   작은 방에서 눈뜨기, 눈감기를 하며 그는 구상한다. 미래에 차릴 밧줄 가게의 모습을. 이를 위해 그는 방에서 돈을 벌고 있다.
   자세히 보면 색이 제각각이고 굵기가 다른 밧줄을 돌돌 말아 쌓아놓는다. 훌륭한 밧줄은 밧줄 전용 상자에 고이 보관해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고 자랑하고 싶은 밧줄은 창가에 걸어둔다. 밧줄 달라는 사람에게 밧줄 팔고 돈을 받는 만족스러운 삶. 밧줄 가게는 한 면 전체가 창이어야 한다. 밖에서도 밧줄이 잘 보여야 한다. 그는 사람을 위해 밧줄을 팔 것이다. 2층 난간에 밧줄을 매달고 문 대신 밧줄을 이용해 집에 드나드는 대신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을 위한 밧줄을. 밧줄을 살 생각이 없던 사람도 밧줄 가게 앞에선 발걸음을 늦출 것이다. 층고가 낮아 햇빛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며 내부는 어둡다. 밧줄을 산 사람이 밧줄과 함께 어디로 가버리는지 궁금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그는 밧줄 상인으로 적합하다. 그는 무관심을 극진히 대한다. 때론 그것이 몹시 소중하여 눈을 감아버린다.
   베케트는 한때 감자 상인이 되기를 소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소망. 그에게 소망은 어울리지 않는다. 소망. 하고 발음해보거나 소망한다 말하면 어딘가 어색하다. 어색이라는 단어도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말로 나는 베케트를 과대평가한다.
   그에게 어울린다 할 수 있는 것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나선형 노출 계단이다. 비상계단은 언제나 위태롭다. 그는 그것을 빠르게 오르거나 빠르게 내려가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위기에 처한 인간을 본 적이 없음을 시사하는 바, 그는 밧줄을 던져주고 싶다. 위기에 처한 인간이나 위기에 처할 예정인 인간이나 위기를 벗어난 인간이나 본인이 위기에 처했는지 모르는 인간이나 위기에 처하지 않고도 위기를 느끼는 인간이나 가만히 있는 인간이나 움직이는 인간에게 밧줄을 던져주고 싶다.
   계단보다는 밧줄이 빠르고 유연하며 휴대용으로도 좋다.
   그러니 사람들아, 밧줄을 하나씩 소장하라. 그는 밧줄 가게 유리창에 적을 시의 한 문장을 구상하고 있다. 가령, 밧줄을 사세요, 정도가 적절하리라. 밧줄은 친절합니다. 밧줄의 친구. 밧줄이 초대합니다. 온갖 것을 꾸며내며 눈뜨고 눈감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밧줄 가게의 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밧줄 가게에 들어가지 못한다.
   밧줄 가게에 문이 있을 리가. 밧줄을 놔두고 문을 사용하는 건 밧줄 상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
   밧줄을 타고 2층 난간으로 올라가면 밧줄 가게에 입장할 수 있다.


   6.

   문제는 밧줄 가게 구상 작업이 방해받는다는 사실이다. 누가 자꾸 그를 밖으로 끄집어내려 한다. 나오라, 나오라, 손짓하고 부른다. 계약서에는 일정 시간 이상 방에만 머물면 된다 적혀 있다. 정해진 시각에 출근하고 퇴근하기만 하면 돈을 준다 하였는데 도서관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계약서와 달리 방에 있어야 하는 사람을 밖으로 불러낸다. 딱히 시키는 일은 없다. 다만 도서관에 방문하는 인간들 그리고 도서관에 숨어 있는 은둔자들과 그를 접촉시킨다. 소개한다고 말해도 좋으련만. 소개란 무엇인가. 소개라는 게 불가능하므로 접촉시킨다,라고 베케트는 자신의 노트에 적었다. 접촉. 실감과 더불어 그가 불쾌한 게 있다면 접촉 행위로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접촉이 싫었다. 밧줄이라는 것도 접촉하고 싶지 않은 두 대상을 중개하는 용도로 적합하지 않았던가. 이 사람은 누구요, 저 사람은 누구요, 말하는 대신 두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인데, 도서관장은 말이란 걸 사용한다. 이 사람은 누구요, 저 사람은 누구요. 도서관 곳곳에 숨어 있는 은둔자들을 그에게 데려와 소개하고, 은둔자에게 베케트를 소개하였다. 그러므로 은둔자도 베케트도 괴롭다. 그런 행위는 하루로 족하지만 도서관에 방문하는 새 사람이 나타나면 도서관장이 달려와 똑, 똑, 똑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을 때 흐름을 깨는 똑, 똑, 똑 소리에 베케트는 조금씩 부아가 치밀었던 것으로 그는 밧줄 상인이 되어 위기에 처한 인간에게 밧줄을 던지고 싶다.
   사람과 접촉할 바에는 차라리 책 정리를 하겠다. 책을 모두 밧줄로 엮어버리거나, 마구 헝클이는 방식으로 책장을 정리할 수도 있다. 그는 소심한 까닭에, 소심하다기보다는 돈이 필요했기에 도서관장에게 멋대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책장 정리를 자원하였다. 그러나 도서관장은, 그런 일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오, 아니오, 하고 또 손목을 잡고 누군가에게 데려가 이 자는 은둔자요, 이 자는 베케트요, 하고 서로를 접촉시켰고 은둔자도 베케트도 조금씩 목숨이 줄어든다.
   할 말을 하는 방법을 모르기에 베케트는 감자 상인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를 소상히 기억해 본다. 밧줄 상인을 꿈꾸기 전에 그는 감자 상인으로서의 미래를 그려왔다. 한 부부가 자신의 땅에서 엄청나게 큰 감자를 캤다. 그들은 믿을 수 없이 거대한 감자를 껴안았다. 감자는 세상에서 제일 큰 감자로 기네스북에 오를 뻔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감자일지도 모를 그것을 작은 수레에 넣고 다녔으며 냉장고에 보관했다. 아침마다 그들은 냉장고 문을 열고 안부를 물었다. 안녕? 잘 잤니? 꿈꿨니? 꿈 안 꿨니? 감자를 궁금해하고 감자에게 말을 걸어서 감자는 날이면 날마다 어지럽다. 몇 달 후 기네스에서 연락이 오기로 그것은 감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감자 아닌 것 It is the world’s biggest not a potato.”
   감자가 아닌 그것은 무릎을 꿇고 포복한 작은 인간의 형상이다.


   7.

   “그러니까 사람을 너무 많이 소개해줘서 울었다는 거지?”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사실 나는 나름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왜 그랬는지 모른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지. 그 은둔자들이 누군지 모르겠고 하나하나가 긴 밧줄로 보였다. 나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베케트는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서 울었다고?”
   나는 반문했다.
   “눈물을 닦고 방에 가서 거울을 보니, 제발 사람이 되어라, 너는 지금까지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라고 말하더라.”


   8.

   나는 베케트가 방에서 지내는 동안 선물을 보냈었다. 거울과 식물. 내가 고른 식물은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로, 그가 식물에 빛을 줄 자신이 없을 것 같아 골랐다.


   9.

   우리는 2층이 지루해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은 호그와트 연회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책장이 있어 살펴보니 『모비딕』 『걸리버 여행기』 『빅토리아 여왕』 『레오나르도 다 빈치』 『뉴턴』 등등의 영문 도서가 전시되어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재현이란 이런 것. 성의 없기. 해리 포터와 모나리자, 해리 포터와 뉴턴, 해리 포터와 고흐. 소개하기, 접촉시키기…… 내 나름으로 베케트의 말을 활용해 말해본다.
   “너 생각을 되게 쉽게 한다.”
   베케트가 말한다.
   만찬이 나오는 길고 긴 나무 테이블.
   “끝에 앉자.”
   베케트는 모서리에 자리를 잡는다.
   “호그와트 학생들이 여기서 만찬을 즐기잖아. 덤블도어가 손뼉을 치면 엄청나게 많은 음식이 나타나지.”
   나는 의자에 가방을 올려두었다.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어떤 과업을 안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마법사들 다 구해줘야 될 것 같다.”
   베케트는 오늘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우리가 여기 왜 왔더라. 우리도 과업이 있기 때문에 여기 왔다. 우리는 함께 쓸 책의 편집자를 만나러 여기 왔다. 세 시에 그녀가 오기로 했다.


   10.

   4층은 호그와트 기숙사로 꾸며져 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다. 대신 해리 포터에 나오는 옷을 입어볼 수 있다. 구석에 허름한 옷걸이가 있는데 호그와트 교복은 몇 장뿐이고 청바지, 한복, 아디다스 츄리닝, 겨울 잠바 따위가 걸려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재현이란 그런 것. 그리고 밧줄도 하나 걸려 있다. 베케트는 옷걸이에서 모종의 영감을 받아 미래의 밧줄 가게에 대한 몇 가지 상을 그려보았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은 시착 가능하나 최대 3분까지 가능하다.
   “너, 여기 들어올 때 어떻게 들어왔나?”
   나는 문득 베케트가 문이 아닌 곳으로 들어온 것 같아 물었다.
   “여긴 문이 없다.”
   “너 계단으로 올라온 거 아니었지?”
   “지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문이 아닌 그것들을 차라리 함정이라 부르세.”
    3층에 올라올 때는 나와 함께 계단을 이용했으나, 베케트가 어떻게 하여 1층을 경유하지 않고 2층으로 왔는지 나는 의문한다. 그러나 그가 어떤 방법을 통해 내게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이며, 우리는 또 하나의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혼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신의 밧줄을 얇게 만들기에 우리도 사람이 되어보기 위해 힘을 합쳐 사람을 기다린다.
   “그는 언제 올까?”
   “어쩌면 그는 문으로 들어오지 않을지도 몰라.”
   “이미 옥상에 있을지도.”
   “여러 가지 정신적 위기들로 인해.”
   “다른 방식의 출입을 고안해냈을지도.”
   베케트와 나 사이에 밧줄이 하나 있다. 5미터 길이로 엄지와 검지로 감싸면 딱 들어맞는 두께의. 5층과 6층은 출입 금지다. 베케트는 안다, 사람이 있다면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베케트는 밧줄을 이용해 6층으로 올라갔다.


   11.

   건물은 6층까지 있다지만 밖에서 보면 3층이다.
   그는 어디로 간 걸까?

문보영

꿈에 베케트가 나왔다. 학교였다. 교무실 바로 옆에 비밀의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기 베케트가 있었다. 그를 돌봐줄 누군가 필요했다. 나는 아기 베케트를 돌보았고 친구들은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갔다. 교과서 읽는 소리가 비밀의 방에서도 들렸다. 이 꿈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슬펐다. 진짜 삶이 꿈속에 있어 꿈에서 깨니 내가 가짜였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소설집 『하품의 언덕』,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준최선의 롱런』 『일기시대』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2022/05/31
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