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앞에 도착하고도 나는 한동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석 달째 나가고 있는 모임이었는데도 그랬다. 오후 6시의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나마 겨울이라 다행이라고 여기며 목에 두른 머플러를 추켜올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내게서 자신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종국에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죽기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장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었다고 해서 두려운 일이 두렵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언니는 아마 한숨을 쉬며 얘기할 것이다. 그런 애가 피해자 모임 같은 곳에는 왜 나가냐고 말이다. 그렇다. 내가 들어가길 망설이는 건물은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 이곳 205호에서는 오늘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모임이 열린다. 가해자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야산이나 폐건물 등지에서 무심코 깨어난 이들이 함께 모여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모임인 것이다. 애초에 모임에 가기로 한 건 내 의지였지만, 언니는 반대했다. 끔찍한 과거를 되새기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했다. 나는 쌀쌀한 말투로 대꾸했다.
   “언니는 죽는 고통이 어떤지 몰라. 죽기 전까지 모르겠지.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까지 충고하려 들지 마.”
   내가 죽음에 대해 언급하면 언니는 침묵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법이니까. 언니가 나보다 몇 년을 더 살았든 먼저 죽음을 경험한 건 나였다.
   우리 자매는 내가 깨어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제법 친했던 것 같은데,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다. 언니는 돈 버느라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별별 잔소리를 다 했다. 대충 정리하자면, 외박 좀 그만하고 담배도 그만 피우고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리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외박이라면 친구네 집에 신세를 좀 진 것뿐이고 담배는 아주 약간 손을 댄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나에게 지나치게 실망했다. 어느 날에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나를 보고 모른 체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나 잔소리를 해댔으면서 말이다. 내가 동생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건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깨어난 뒤로, 우리는 대화할 사람이 서로밖에 없었기에 말했다.
   그래도 술은 좀 늦게 시작했다.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집안의 얼마 없는 멀쩡한 물건들을 손에 닿는 대로 깨부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악에 받쳐서 망가져도 상관없는 저렴한 물건들을 벽에 집어던졌다. 아빠가 더 나쁘고 엄마가 덜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두 사람이 싸울 때마다 성인이 돼 가족과 연을 끊는 미래를 상상했다. 상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구체화 돼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방 전문대에 겨우 들어간 뒤로는 원하는 대로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손님으로 온 박준석을 만났다. 그때는 아무도 나를 구제하지 못했다. 박준석이 내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팠다. 병원에서는 이런 아픔이 가짜라고 했다. 나는 이제 신체적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의사는 내 고통이 신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 가깝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항우울제도 삼키지 못한다. 소화기관이 작동하지 않으니 약이 들을 리 없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거기에는 깨어난 뒤로 항상 지니고 다니는 서바이벌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10cm 길이의 곡선형 칼날과 톱니 모양의 칼등이 얇은 칼집 사이로 느껴졌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별로 없었다. 피해자 모임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의실에는 험악한 몰골을 한 사람들이 사이좋게 둘러앉아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는데, 그 한 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모임의 주최자인 안이었다. 안은 어릴 때 납치되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과거가 있었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오랫동안 방황하다 피해자 모임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임에서 가명을 썼지만 다들 안이 누군지 알았다. 안의 사건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안이 그 사건으로 죽지 않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안은 모임을 운영하는 일 외에도 재난 구조 센터나 독거노인 돌봄 센터, 반려견 장례식장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안이 마치 죽음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뒤늦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마침 경이 이야기를 할 차례라고 했다. 모임에서는 죽었을 당시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처음에는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표현됐던 죽음도 회를 거듭할 때마다 구체화 됐다. 첫날 경은 “저는 범인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발견되었습니다.”라는 한 마디 외에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저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손과 발이 뒤로 묶이고 입에 청테이프가 붙여진 채로 죽었습니다. 죽은 지 이틀 만에 발견된 탓에 몸의 훼손은 덜한 편이었어요. 그걸 보고 운이 좋았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트렁크에는 저만 있던 게 아니었어요. 범인은 두 사람을 트렁크에 집어넣기 위해 죽은 친구의 몸을 이리저리 꺾었어요. 관절이 있는 부분은 생각과 달리 한 방향으로만 꺾이지 않더군요. 친구는 몸이 심하게 훼손돼서 다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은 소매 끝을 당겨 손목을 가렸다. 경의 손목과 발목에는 아직도 그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죽은 후에도 묶여있었던 탓에 피가 고여 착색된 것이었다. 경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구분이 잘 안 되더라고요. 죽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여전히 트렁크에서 죽은 친구와 함께 있어야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곧잘 그 부분을 간과하더라고요. 저는 아직도 코끝에서 부패해가던 친구의 냄새를 맡아요.”
   이는 분명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심리적 안정 없이 이루어지는 회상은 죽음을 재경험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이건 생존자들을 위한 모임이 아니었다.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으므로 생존자가 아니었고, 죽어서도 여전히 피해자였다. 모임 첫날, 돌아가면서 자기 죽음에 대해 말해보자는 안의 요구에 몇몇 사람들은 역겹고 폭력적이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나는 자리를 지켰지만 그렇다고 해서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요구는 우리가 살아 돌아온 뒤 경찰 조사에서도 일상에서도 몇 번이고 반복됐다. 내가 자리에 남았던 건 안의 질문에 답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만큼은 내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덜 비극적으로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안은 남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나는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안이라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은 살아 있는 사람이면서도 꼭 죽은 사람처럼 말했다. 그게 나 같은 이들을 염두에 둔 화법이라고 여기면서도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안의 손은 따듯하고 코와 입으로는 숨이 오갔다. 추운 날씨에는 볼과 코끝이 빨개지기도 했다. 숨을 내뱉지도, 침을 삼키지도, 피가 돌지도 않는 나와 달리 안은 분명 살아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안은 죽은 사람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안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죽었던(죽을 뻔했던)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회상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자신의 신체가 죽음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흘린 피에 질식하고, 끔찍한 고통에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 차가워지는 머리와 가는 숨, 희미한 신음과 옅어지는 심장 고동 같은 것들 말이다. 모임에 남은 사람들은 마치 고통에 중독된 이들처럼 그때를 기억해 내기 위해 애썼다.
   곧 내 차례가 왔다. 역시 한 문장으로 끝내지는 못했다. 그때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에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두려움이 되살아나고 그보다 크게 분노가 치밀었다. 다시 한번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다. 해소되지 않는 감정에 머리가 멍할 정도로 지끈거렸다. 몸은 열이 심한 사람처럼 어지럽게 들끓었다. 상처 자국이, 훼손된 근육이, 뼈의 마디 마디가 들썩였다. 순간 내가 살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건 역시 착각이다. 달콤한 착각이다. 몸은 실제로 뜨거워지지 않는다. 죽은 이후로 내 몸은 항상 차가웠다. 몸이 뜨거워지면 부패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나는 턱이 빠지고서야 말을 멈췄다. 죽은 이후로 턱관절은 수시로 빠졌다. 경이 물었다.
   “수사에는 진전이 좀 있나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턱이 아랫입술과 함께 덜그럭거렸다. 양손으로 어금니와 턱을 감싸쥐고 안쪽으로 끼워맞췄다. 턱이 빠질 때마다 의사에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포인트는 고개를 숙인 채 근육의 힘을 푸는 것이다. 문제는 죽어서 굳어버린 근육을 마음대로 풀 수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아픔이 느껴지지 않으니 근육이 굳어있든 굳어있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다.
   안은 무엇보다도 극복의 의지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에는 지금의 고통도 줄어들 것이라 믿고, 자신을 통제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런 극복의 의지를 가질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우리가 과연 지금에서 벗어나 무언가가 될 수 있을까? 열심히 노력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피해자도 죽은 사람도 아닌 다른 무엇으로 봐줄 수 있을까? 우리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어쩌다 죽음에서 깨어난 좀비가 아닐까?
   그때 누군가 말했다.
   “전부 죽여버리고 싶어요.”
   누가 말했든 상관없었다. 우리는 모두 속으로 죽이고 싶은 누군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때 또다른 사람이 말했다.
   “어떻게요?”
   대답은 곧장 튀어나왔다.
   “불을 질러버리는 게 좋겠어요!”
   대답이 이어졌다.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확실히 사라지기만 한다면 뭐든……”
   “작게 잘라 버리는 방법도 있죠.”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말이에요!”
   “나를 죽였던 방식 그대로 갚아주고 싶어요.”
   “머리는 남겨둘래요. 자기 꼴이나 울면서 쳐다보게 하는 거죠.”
   “그런 것들도 우나?”
   “눈물이 아깝지!”
   “어떻게든 확실한 방법이 좋아요.”
   “다들 잘 죽었다고 할 거예요.”
   “그것들의 부모만 아니라면 다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희망 사항을 이야기했다. 돌아가며 제 죽음을 말할 때에 비하면 활기차 보이기까지 했다. 안은 이야기가 끝이 보이지 않자 십 분간 휴식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사이 계속 침묵을 유지하던 맞은편 남자가 모임 내내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안에게 내밀었다. 그는 2주 전부터 모임에 참여하던 사람으로 그간 짧은 감탄사 한 번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남자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모임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편지에 담아왔다. 혀를 잃은 뒤로는 입을 벌리는 일을 극도로 피하고 있다고 했다. 범인은 외신에서 텅 컬렉터(Tongue collector)라 이름 붙여지기도 한 연쇄 살인범이었다. 남자는 죽음에서 깨어나고도 한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버려진 장소는 하수구 밑이었고 말을 할 수 없었던 탓에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그곳에서 열흘을 더 보내야 했다. 몇 겹으로 겹쳐진 두툼한 편지지 눈에 띄었다. 안은 남자의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남자는 최근 자신의 혀와 관련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스스로 알아낸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텅 컬렉터의 특집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알았다면 그날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화면에 범인의 사진이 등장하자 도저히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 화면에 경찰 급습 당시 범인의 집이 등장했다. 그는 곧 주방에 있는 장식장에서 찻잔 세트와 함께 진열된 자신의 혀를 알아보았다. 뒤이은 인터뷰에서 법의학자는 범인이 보관하고 있던 혀들 모두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 잘려나갔다고 설명했다. 남자는 살인범의 행동을 흥미롭다는 듯이 묘사하는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며 역겨움을 느꼈다. 다큐멘터리에는 범인의 일생이 전부 들어있었는데, 그 안에서 피해자들은 잘린 혓바닥만큼도 존중받지 못했다. 남자는 그게 마치 범인의 의도인 것만 같아 참을 수 없었다. 혀를 잘라 죽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쓰지 않으면,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마음에 진 응어리가 자신을 죽여버릴 것 같았다는 것이다.
   안은 편지를 살펴보다 남자가 종이 뒷면에 추가로 적어놓은 문장을 보고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범인이 탈옥이라도 한다면, 뭐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굶겨서 자기 혀를 씹어 먹게 하고 싶다네요.”
   남자는 안의 말이 끝나자 터진 뒷머리를 매만지며 수줍게 웃었다.

   모임이 끝나고 건물 뒤편으로 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집과는 반대 방향이었으나 모임이 끝날 때마다 그 길로 향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으면 낡은 상가 건물이 모인 동네가 나왔다. 수년 전, 인근에 신도시가 생기면서 빠르게 쇠퇴한 지역이었다. 관리가 되지 않아 빈 건물이 대부분이었고, 동네에 남은 사업체라고는 소규모 회사나 식당 정도여서 오후 8시가 지나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시 정비도 느슨해서 불이 나간 가로등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생전의 나라면 발길도 주지 않았을 동네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편의점 근처에 있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건물 3층에 박준석이 살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그가 편의점으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나는 때때로 그것이 궁금했다.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포함한 말이었다. 그는 왜 하필이면 나를 죽여야 했고, 나는 왜 그에게 죽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어째서 또다시 그를 발견한 것일까. 나는 그와 내가 어떤 운명으로 얽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다. 모임에 들게 된 것도 그의 탓이니, 그가 피해자 모임 장소 근처에 사는 것도, 내가 모임 첫날에 낯선 동네를 헤매다 그를 발견한 것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나는 건물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진 3층 창문을 바라보며, 깨어난 뒤로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던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박준석이 나를 죽였어요.”
   죽음에서 깨어난 뒤, 내가 처음으로 떠올렸던 문장도 그와 비슷했다. 일어난 장소는 학교 뒷산의 전나무 밑이었다. 나는 그 밑에 얕게 묻혀 있었고 죽은 지 4일째 밤이 되자 비가 내려 축축한 흙이 입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감각에 눈을 떴다. 머리가 아프고 몸 전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날이 춥고 얻어맞은 곳이 아팠기 때문은 아니었다. 몸에 난 상처가 무서웠다. 하나만 있어도 큰일인 상처들이 몸 이곳저곳에서 발견됐다. 나는 관성처럼 박준석을 떠올렸다.
   생물학적으로 죽은 사람이 목격자였으므로 피해자도 가해자도 명확한 사건이었다. 박준석이라는 이름이 가명이라는 게 가장 먼저 밝혀졌다. 그 사람의 얼굴과 몸, 말투, 좋아하는 음료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됐다. 박준석은 카페에서도 현금만을 사용했다. 카페 CCTV에 인상착의가 찍혔으나 화질이 좋지 않은데다 워낙 평범한 얼굴이라 오히려 비슷한 사람들이 용의자로 우후죽순 나타났다.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했다.
   3층 불이 꺼졌다. 비상계단의 센서가 차례로 켜졌다.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관해 두었던 서바이벌 나이프를 확인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다녔던 건 아니었다. 박준석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눈과 코가 보였다. 걸음걸이와 굽은 어깨가 보였다. 그가 내 쪽을 바라봤다. 순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본능적인 공포로 몸이 떨렸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면, 하면서도 나를 잊을 리 없다고 여겼다. 죽음에서 깨어난 뒤, 나는 매일 밤 박준석과 마주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건 과거의 기억 같아 보였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
   눈이 마주쳤다. 박준석은 못 볼 꼴을 본 사람처럼 고개를 돌리고 들으라는 듯이 욕을 했다.
   “무덤에나 들어갈 일이지!”
   박준석은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지나쳤다. 나는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몸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불씨가 올라왔다. 재밖에 안 남은 텅 빈 공간이라고 여겼는데 아직도 탈 것이 남아있었다. 여태 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운명을 느꼈다.
   멀어지려는 박준석을 잡아 세웠다. 그는 욕을 하며 내 가슴을 거칠게 손으로 밀어냈다. 손이 닿은 자리가 쑥 들어갔다. 늑골은 죽기 직전에 박준석이 부러뜨려 놓은 곳이었다. 부러진 뼈가 심장을 압박하면서 심정지가 왔었다. 그가 당황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코트 안으로 재빨리 서바이벌 나이프를 들이댔다. 진심인 걸 보여주기 위해 윗배에 반 정도 밀어넣기까지 했다. 그가 짧게 비명을 지르자 멀리 있던 누군가가 이쪽을 바라봤다.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마저 찔러넣을 거야.”
   왼팔을 그의 겨드랑이 밑에 집어넣고 한껏 끌어안았다. 멀리서 보면 연인 같아 보일 정도로 가깝게 몸을 붙이고 고개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
   “당신 집으로 가자.”
   나이프를 비스듬히 돌리자 톱니 모양의 칼등이 그의 피부를 긁었다. 박준석이 몸을 움찔거렸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추운 날씨에도 얼굴에 땀이 맺혔다. 잠시 숨을 집어삼키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트 안은 따듯했다. 나이프를 쥔 손으로 축축한 피가 느껴졌다. 칼끝이 그의 몸 안으로 더는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살 안쪽의 근육을, 따듯한 내장과 희고 깨끗한 뼈를 떠올렸다. 이제 내게는 없는 것이었다. 박준석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가 내게서 빼앗은 것이 목숨만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 이상을 내게서 앗아갔다.
   건물 입구는 어두웠다. 유리문으로 박준석과 나의 모습이 비쳤다.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박준석을 비상계단 쪽으로 떠밀었다. 방향을 틀려고 할 때마다 칼끝을 조금씩 비틀었더니 말을 아주 잘 들었다. 3층 현관문에 다다라 팔짱을 풀고 그의 코트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구리 인형이 달린 열쇠고리가 나왔다. 그의 취향은 아니었다. 아마 기념품일 것이다. 열쇠로 문을 열고 그에게 꽂아두었던 칼을 배 안쪽까지 깊숙이 넣었다 뺐다. 박준석은 숨이 넘어가듯 헐떡였다. 코트 안쪽으로 피가 흥건했다. 손으로 상처를 짚으려는 그를 집 안으로 밀어넣었다. 박준석은 다리가 풀렸는지 현관 신발장에 머리를 부딪치며 넘어졌다. 현관문을 닫고 얼굴을 감싸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그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현관에 달린 센서 등이 깜빡거렸다. 그가 신음을 흘리며 혐오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문득 내 얼굴이 궁금했다. 나는 지금 웃고 있을까?

   사실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죽어서까지 외모에 신경쓰게 될 줄은 몰랐다. 세 군데가 부러진 늑골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툭하면 밑으로 빠지는 턱뼈나 함몰된 왼쪽 머리뼈, 코끝에서 오른뺨으로 이어지는 긴 봉제선은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피부는 찰흙 덩어리같이 단단하게 굳어서 탄력이라고는 없었고 죽을 때 생긴 붉고 푸른 멍은 온몸에 곰팡이처럼 슬어 있었다. 이제는 평생 보수적으로 입고 다녀야 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지 않게 하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웬만하면 다 가리고 다녀야 했다. 정제되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은 매번 상처가 됐다. 사실 상처가 되는 순간은 비명을 지르고 까무러칠 때가 아니라 그 놀라움이 동정으로 바뀌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방부 처리된 몸은 더는 썩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상된 기관이 재생될 리는 없었다.
   언니는 내가 망가지고 썩은 몸 때문에 짜증을 부릴 때마다 거기에 책임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자고 했다. 마치 수술만 받으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그랬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큰 비용을 감당하고도 좀 덜 죽은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의 제안을 거절했다. 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삶의 끝이 이토록 빠르게 다가온 책임을 일정 정도 언니에게 지우고 있었다. 언니는 부모가 아닌 자매였으나 애초에 나는 엄마나 아빠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원망할 사람도 언니뿐이었다. 언니가 집을 나간 뒤로 내가 죽을 때까지, 우리는 연락하지 않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싸우면, 언니와 나는 집에 둘만 있는 듯 행동했다. 부모님의 싸움은 무슨 수를 써도 말릴 수 없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우리는 나중에 커서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돈도 많이 버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했다. 언니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엇나갈 기회를 외면하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지만 등교를 하고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나도 그 약속을 지키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그나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언니뿐이었다. 언니는 성인이 되자마자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도망쳤다. 그제야 언니가 도망치고 싶은 대상 안에 나 또한 속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자력으로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지 혼자서 부모님을 감당해야 했다. 언니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지금까지도 언니를 용서하지 못한 것 같다. 언니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비겁하다고 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이미 끝났어. 앞으로 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이야?”
   언니는 나를 붙잡고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샘은 내가 땅속에 묻힌 지 나흘 만에 썩어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언니가 나를 위해 우는 것인지, 아니면 나로 인해 망한 자신의 신세 때문에 우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연약한 것들은 쉽게 없어졌다. 그 나흘 동안 내 몸에는 오로지 질기고 강한 것들만이 남았다.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죽음이 안식이 아니라는 걸 안 이상 삶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박준석이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얼굴 근처도 보지 못하더니 어느 순간 눈을 맞췄다.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것은 안도에 가까워 보였다. 나를 알아본 것이다. 제가 죽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죄책감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만만해 보였다. 마찬가지로 한번 죽여본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만날 줄 알았으면 태워버렸지, 내가.”
   그는 내가 제 배에 칼을 찔러넣을 때조차도 두렵지 않았던 게 아닐까? 몸이 떨렸다. 그가 내 몸에 남긴 흔적을 애써 꿰매고 펴냈지만, 상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박준석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가 내 머리채를 잡고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머리가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후드득 뽑혀나갔다. 그저 매달려만 있던 것들이었다. 들고 있던 칼을 그 앞으로 휘둘렀다. 칼 길이가 짧아 그의 왼쪽 약지에 간신히 닿았다. 그가 욕을 하며 내 왼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몸이 옆으로 휘청였다. 턱이 또다시 빠져버렸다. 아래턱이 늘어난 몰골에 박준석이 혐오스럽다는 듯 얼굴을 돌렸다.
   다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몸은 아프지도 지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 박준석이 칼을 쥔 내 오른손목을 잡아 벽에 내리쳤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손이 떨렸다. 단단하게 굳은 피부와 달리, 근육은 두부처럼 물러진 지 오래였다. 손목뼈가 으스러졌다. 그런데도 내가 칼을 놓지 않자 그는 다시 한번 내 손등을 벽에 부딪쳤다. 손목과 손을 이어주던 힘줄이 기어이 끊어졌다. 칼을 놓쳤다. 한참 전에 죽은 피가 쥐여 짜지듯 손목에서부터 새어나왔다. 그가 오른손으로 칼을 집었다. 그의 배에 만들어놓은 좁은 상처 사이로 왼쪽 검지와 중지를 쑤셔 넣었다. 박준석이 비명을 질렀다. 아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소리가 났다. 나는 신이 나서 깔깔대며 웃었다. 순간적으로 내 오른손목을 쥐고 있던 힘이 풀렸다. 팔을 접어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박준석이 칼로 내 등을 찔렀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배에 난 상처가 벌어지면서 손가락이 더욱 깊은 곳으로 빨려들어갔다. 움직임도 비명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의 몸속은 생각보다 따듯했다.

   박준석의 몸을 묶으며 생각했다. 나는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박준석을 따라갔을까. 나는 왜 박준석에게 말을 걸었을까. 그런 질문들은 내가 죽어갈 때 떠올렸던 의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결국 죽음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걸 인정했다.
   박준석의 바지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았다. 주민등록증에는 ‘황준석’이라고 쓰여 있었다. 겨우 한 글자가 다른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한 글자 때문에, 그는 사람을 죽이고도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태워버릴 걸 그랬다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박준석을 다시 깨어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깊은 구덩이를 파 아무도 모르게 그 안에 묻어버릴 수도 있었다. 언젠가 죽음에서 깨어난다 해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단단한 땅 밑에 묻어 천천히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것이다. 모든 부위를 작게 잘라 이곳저곳에 흩뿌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거만한 눈이, 단단한 손이, 억센 심장이 땅에 뿌리내리고 또다른 무언가가 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박준석을 세상에 조금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재마저도 남지 않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적였다. 죽기 이전에 알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났다. 내 핸드폰에는 언니와 안의 연락처밖에 없었다. 언니가 떠올랐다. 언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언니는 지금껏 엇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랬다. 그 노력을 조금이라도 나를 이해하는 데 썼더라면 우리는 적어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게 변명이라는 것은 안다. 내가 이 모양이니 언니가 또다시 나를 떠나버린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결국 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이 봉사하는 곳 중 하나가 반려견 장례식장이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에 안은 별말 없이 내가 있는 곳을 물었다. 그러자 나는 안에게만큼은 사실을 말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박준석과 함께 있다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할 작정이라고 했다. 안이 신고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잡히기 전에 가능한 한 박준석을 분해해 놓으면 될 일이었다. 내가 말했다.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죽은 사람인 척해도 안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안이 말했다.
   “내가 말했나요? 나를 납치했던 범인은 5년 전에 죽었어요.”
   안은 모임 내에서도 자신의 사건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포함한 모임의 다른 사람들도 안의 사연이라면 알고 있었다.
   “저는 출소한 줄도 몰랐어요. 부모님이 비밀로 했다더군요. 아내와 함께 자는 도중에 죽었대요. 5년 전이니 물론 깨어나지도 않았고요. 그걸 들은 뒤로 밤에 잠을 못 잤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얼마나 편안한 죽음이에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한동안 엉망으로 살았어요. 중독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봉사를 나가기 시작한 게 2년 전이에요.”
   내가 할말을 찾지 못하자 안이 뒤이어 말했다.
   “내 말은, 내가 항상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안은 전화를 끊은 지 1시간이 안 돼서 박준석의 집에 도착했다. 센터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사이 박준석의 집에 있는 가장 큰 가방을 찾아놓았다. 살인자답게 그의 집에는 큰 이민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밑부분에 바퀴가 달려있어 이동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방에 욱여넣어 보아도 그의 다리 하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안은 박준석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짧게 숨을 뱉었다. 나는 아무리 집어넣어보아도 가방에 다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며 흉한 꼴을 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안은 나를 화장실로 데려가 거울을 보여주었다. 머리카락은 반쯤 뜯겨 있었고, 얼굴과 몸은 피투성이였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왼뺨은 너덜거리는 데다 오른쪽 손목은 완전히 부러지고 살이 찢어져서 뼈가 보였다. 걸려있던 수건을 물에 적셔서 얼굴에 묻은 피를 꼼꼼히 닦았다. 한 손으로 하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전부 닦기도 어려웠다. 피는 외투에도 묻어 있었는데 다행히 색이 어두워 표가 덜 났다. 어차피 얼굴이 압도적이라 아무도 옷에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제야 등에 난 상처가 생각났다. 입고 있던 니트를 올려 거울에 등을 비춰보았다. 상처는 여러 곳에 나 있었지만,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검붉은 피는 이미 굳기 시작했는지 상처 주변에 말라붙어 있었다. 으스러진 오른쪽 손목은 박준석의 몸을 묶다 남은 청테이프로 대충 감아버렸다. 아무래도 한쪽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를 가방에 담지 못했던 듯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안은 어느새 가방 안에 박준석을 욱여넣고 지퍼를 잠그고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어떻게 그렇게 금방 집어넣었냐며 신기해했다.
   “오늘 경씨가 했던 말 기억나요? 관절은 생각과 달리 한 방향으로만 꺾이지 않는다고요. 범인이 그랬다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안은 조금 신난 사람처럼 보였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 있었다. 주변의 공기는 비 온 뒤처럼 축축했다. 경비원은 안의 얼굴을 보자 경계를 풀고 우리가 이민 가방을 쉬이 옮길 수 있도록 끌차도 내어주었다. 경비원은 가방을 보더니 몸집이 정말 크군요, 하고 감탄했다. 나는 맞는 가방이 이것밖에 없었다며 겸연쩍어했다. 경비원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고 놀란 듯 한걸음 물러섰다. 나는 그제야 내가 머플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비원은 나를 본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시선을 어디에 둘 줄 모른 채 당황하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화장로는 생각보다 거대했다. 대형견 전용이라고 하더니 사람의 것만 했다. 안은 가방을 바라보며 이 정도 크기라면 전부 타는데 1시간이면 될 거라고 했다. 화장로 선반을 열자 안쪽 깊은 곳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안과 함께 가방을 끌어올리려는데, 오른손이 여전히 말썽이라 가방이 선반에 닿기도 전에 자꾸만 미끄러졌다. 힘에 부치는 건 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안의 얼굴이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었다. 이대로는 아침까지도 해결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로비로 내려가 경비원을 불러왔다. 동정에 의해서든 두려움에 의해서든, 죽은 후부터 사람들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경비원은 겁에 질린 얼굴로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셋이 힘을 합치고서야 겨우 가방을 들어 선반 위로 옮겼다. 경비원이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보다 보니 내 얼굴도 더는 무섭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거, 이렇게 절차 없이 그러면 안 되지 않아요?”
   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문제 될 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경비원의 얼굴에 의심이 가득했다. 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안에게 있어 가방 안의 대상은 박준석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가방 안쪽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착각처럼 보일 만큼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움직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저, 저게 왜 저래!”
   경비원이 소리를 지르자 내가 서둘러 말했다.
   “저래서 지금 하려는 거였어요. 다시 깨어난다니까요!”
   “인간도 모자라서 개까지 저런다고?”
   안이 거들며 말했다.
   “종종 있어요. 저 아이는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깨어나기 전에 장례를 치르려고 했는데 늦어버렸네요.”
   경비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방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할일이 많다며 도망가 버렸다. 가방 안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경비원이 제대로 보지도 않고 가버린 것이 다행이었다. 얇은 가방 사이로 박준석의 손바닥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과 발이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제멋대로인 방향에서 튀어나왔다. 박준석이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죽었다 깨어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죽음은 한 번 찾아오는 것이다.
   안과 함께 선반을 안쪽으로 밀어붙였다. 요동치는 그의 몸이 입구에서 자꾸만 걸렸다. 선반에 등을 대고 조금 더 힘을 주어 밀었다. 박준석의 몸부림에 가방이 자꾸만 중심에서 벗어났다. 화장로로 다가가 두 팔로 가방을 눌렀다. 가방 안의 움직임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거세졌다. 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방에 넣을 때와는 달랐을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생명을 닮기 마련이었다. 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가방이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열렸다. 박준석이 지퍼 안쪽의 이음새를 이로 뜯어내고 있었다. 가방 틈으로 그의 눈이 보였다. 안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보자 나는 알 수 있었다. 박준석은 아직 살아 있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랬는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내 죽음은 그렇게 간단히 찾아왔는데, 박준석의 죽음은 왜 이렇게 더디게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온몸으로 가방을 눌렀다. 오른팔은 이제 팔꿈치 아래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팔을 두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끝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등에 난 상처 바깥으로 무언가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굳은 줄 알았던 피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다. 안쪽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서 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에게서 들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안이 선반 끝에 어깨를 걸어 밀었다. 가방 끝이 다시 입구에 부딪혔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가방이 내 몸과 함께 온통 흔들렸다. 끊어진 이음새 사이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안이 내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제 됐으니까 거기서 나와요!”
   나는 상관하지 말고 계속 밀라고 했다. 가방 안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그의 손이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공포에 질렸다. 그는 나를 또다시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했다. 시끄러운 소리로 주변이 가득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박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몇 번이나 악을 썼다. 머리가 울렸다. 이미 죽여 놓고서는, 정말 뻔뻔한 새끼라고 생각했다. 화장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 높다란 구멍은 박준석이 가방 안에서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두 사람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다리를 선반 위로 올렸다. 박준석의 팔이 갈고리처럼 내 목을 잡아끌었다. 가방의 지퍼를 반쯤 내렸다. 나는 그 안으로 파고들어 박준석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렇게 보니 박준석은 이미 납작해져 있었다. 자리는 충분해 보였다. 몸을 가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가 내 안에서 버둥거렸다. 안에게 이제 더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선반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안의 얼굴을 보았다. 안은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안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다. 그가 나를 죽였을 때부터, 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우리 둘 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에요.”
   박준석과 나를 우리라는 말로 묶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나는 처음부터 ‘우리’였을지도 모른다. 부디 내 말을 믿길 바라며, 안을 응시했다. 그렇게 바라본 안의 얼굴 속에는 슬픔과 공포, 고통과 환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딘가 고장나고 망가져 있었지만 사람이었다. 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은 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산 사람은 산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언니는 나를 떠나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던 거다. 그게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걸 이기적이라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보니 그랬다.
   곧 선반이 움직였다. 박준석은 이내 가늘게 울음을 터트렸다. 막힌 입 사이로는 아무 말도 새어 나오지 못했다. 마치 연약한 짐승이 앓듯 끙끙대는 소리만이 그의 몸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를 한시도 놓지 않았다. 지옥의 불이 떨어지고 모든 것이 붉어졌다. 마음은 후련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내 안에는 이제 다 타버린 재만이 남아있다. 나는 그제야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푸름

결말이 바뀌며 소설에 들어가지 못한 문장이 있다. 아쉬움이 남아 여기에 적어본다. ‘언젠가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리면 재가 된 자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복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다.’

2022/02/22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