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역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에 근린공원을 두고 걷다보니 아울렛 건물이 보였다. 미술관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한 무더기의 비둘기 떼가 날아올랐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옹송그렸다. 사방에서 들리는 퍼덕이는 날개깃 소리가 위협적이었다. 근린공원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몇 발짝 걷다보니 근린공원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미술관이 햇빛에 반짝였다.
   《빛 :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의 홍보 문구는 ‘작품을 감상하는 당신을 곧 예술로, 보는 것에 대해 완전히 색다른 경험을 제시할,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선정한 미술사 최고의 예술가 43인의 작품이 옵니다’였다.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었다. 그래도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었다.
   제목 그대로 영국 테이트미술관 소장품 중에서 빛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특별전이었다. 윌리엄 블레이크, 아니쉬 카푸어, 윌리엄 터너, 클로드 모네, 존 컨스터블, 바실리 칸딘스키, 제임스 터렐, 야요이 쿠사마, 백남준 등 43인 작가의 110점 작품이 전시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오로지 빌헬름 함메르쇼이Vilhelm Hammershøi였다. 전시 작품 중에 함메르쇼이의 그림이 있었다.
   오전 9시 퇴근을 하고 곧바로 온 길이었다. 두 눈이 퀭하게 들어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다. 출근 시간대를 벗어난 뒤여서 지하철은 한가해, 앉아 올 수 있었는데도 피로가 엉겨붙은 듯 온몸이 무거웠다. 미술관 앞의 광장에도 아침 햇빛이 환하게 들어차 있었다. 군데군데 등산복을 입은 노인들이 모여 있고, 꾀죄죄한 비둘기들이 그 사이사이를 걸어다녔다. 미술관 앞의 화단 턱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노숙자가 있었다. 다른 노숙자들도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막 10시가 된 참이었다. 내가 첫 번째 관람객이었다. 표를 건넨 매표원이 즐거운 관람 되세요, 라며 명랑하게 인사했다. 나는 만오천 원짜리 입장권을 받아들었다.
   “사진 촬영은 안 되시고, 재입장 불가입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쇼.”
   전시장 앞에서 입장권을 받아든 안내원의 사무적인 말투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친절보다는 무관심이, 살가운 말보다는 건조한 표정이, 주목보다는 바깥이 더 좋았다. 입구에는 검은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직접 열고 들어가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거운 공단 커튼을 열었다. 전시장의 첫 작품은 아니쉬 카푸어의 〈이쉬의 빛〉이라는 조형 작품이었다. 관람객이 별로 없어 전시장은 한적했고, 그마저도 발소리만 나직이 들렸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작가와 제목을 확인하기 위해 작품 옆의 벽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떼곤 했지만 이렇다 할 흥미를 끄는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함메르쇼이의 그림만 생각하고 있었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함메르쇼이의 그림과 가까워진다는 사실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 주말은 관람객이 많을 것 같았고, 월요일은 휴관일이었다. 기사를 통해 함메르쇼이의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지난주 금요일 새벽이었으니까, 나는 그저 서둘러 왔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그저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외고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게 된 것도, 소매 끝에 보풀이 일어난 코트를 입은 것도, 예고도 없던 눈이 쏟아진 것도, 그 눈을 맞을 엄두가 나지 않아 미술관을 못 떠나고 유리문 밖만 바라보았던 것도, 그래서 K와 마주치게 된 것도 모두 그저 벌어진 일일 뿐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엄마가 하루도 쉬지 않고 30년이 넘도록 김치 공장을 다니는 것이라든지, 동생 내외가 십년 넘게 해오던 카페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게 되었다든지, 그래서 이번에도 엄마가 대출을 받아준 것도, 내 정기 적금까지 깨야 했던 것도 다 타당한 까닭이 있었다.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됐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동생 내외는 밤낮으로 일을 했다. 낮에는 카페에서, 밤에는 각각 새벽 배송 기사와 가정식 반찬, 샐러드를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했다. 동생 내외는 게으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형편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생활비를 대줘야 하는 고령의 시부모와 정기적으로 큰 병원에 다녀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미 전세 담보가 잡혀 있는 엄마는 이번에는 보험 담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엄마는 늘 같은 소리였다.
   “먹고 살게는 해줘야지. 저러다 나쁜 마음이라도 먹어봐.”
   나도 여차하면 주식 계좌까지 빼야겠다고 생각 중이었다. 독립은 고사하고, 계속 엄마와 살아도 좋으니 이제는 그만 옮겨다니고 싶었다. 어떻게든 끌어모으면 시 외곽의 작은 연립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으로선 어림도 없는 바람이었다.
   지난 주말, 미리 설 인사를 하겠다며 동생네 세 식구가 다녀간 뒤로 나는 체한 사람처럼 자꾸 명치께가 답답했다. 지금 명절 쇨 때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순하고 성실한 동생과 부지런하고 착한 매제, 핏기 없는 얼굴로 구석에 누워 있다가 간신히 일어나 떡국 반 그릇을 겨우 먹는 조카를 보면서 가슴 한편이 시큰거렸다. 자기가 사 들고 온 조리 김 선물 세트의 반 이상을 돌려 쥐여주는 엄마를 말리지 않는 동생의 코끝이 빨갰다. 차라리 착하지나 말지.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고질적인 편두통보다 더 성가신 통증이었다. 신경성. 병원에서는 늘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소리만 했다. 소화제와 소염제, 위장 보호제를 처방했다. 나는 받아온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을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미술관을 찾은 것도 답답증 때문이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널찍한 공간을 혼자 걷는 일. 텅 빈 공간이 부여하는 숨 쉴 틈을 나는 좋아했다. 미술관 안에서는 무엇보다 나만 존재했고, 미술관 안에서는 누구든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나의 삶이 초라하다고 느껴질수록, 나의 일상이 추레하다고 깨달을 때마다, 나의 인생이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미술관을 찾았다. 그때마다 나는 미술관으로 숨어들어 나와 상관없는 작품들을 보곤 했다. 마치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처럼, 미술관을 다닐 만큼 심적, 물적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우아한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나의 현재를, 나의 진짜를 감추기 위한 역할극을 하기에 미술관만한 곳이 없었다.

   동선이 조금 어수선했던 전시는 1층에서 시작되어 2층에서 끝이 났다. 미술관 외벽은 유리로 되어 있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내내 밖이 훤히 보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예고에 없던 눈이었다. 나는 1층 출구 앞에서 그저 멍하게 서 있었다. 눈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저기……”
   뒤돌아보니 낯선 남자가 나를 향해 서 있었다. 갑자기 실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탓에 시야가 순간 캄캄했다.
   “송미경, 송미경 맞지?”
   나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안경 쓴 눈매가 낯익었다. 시야가 점점 밝아졌다. 브라운색 터틀넥 니트를 입은 남자였다.
   “나야, K.”
   남자가 마스크를 잠깐 벗고 얼굴을 보여줬다. 그제야 K라는 걸 알았다. 나이가 들고, 살이 좀 붙었는데도 웃을 때 쏙 들어가는 보조개를 보니 분명 K가 맞았다. 놀라 대꾸도 못하고 멍하게 서 있으니 K가 손을 내밀었다. 얼결에 팔을 뻗어 악수를 했다. K의 손은 부드러웠지만 차가웠다. 그때 내 소매 끝에 자잘하게 올라온 보풀이 눈에 띄었다. 10년도 더 된 코트였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전시 보러 왔어?”
   “응.”
   그제야 K의 목소리가 익숙하게 들렸다. 오래된 기억이 흐릿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나 여기서 일해.”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니 새삼스럽게 K가 맞았다. 사진은 지금보다 훨씬 젊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내가 알고 있는 K의 모습과 어딘가 달라 보였다.
   “전시는 다 봤어?”
   “응.”
   얼마 만인가. 정확히 헤아리기 힘들었지만 얼추 25년은 더 된 듯했다. K와 나는 서로 할 말을 잊고 그냥 웃기만 했다. 웃는 것 외에는 나눌 말이 없기도 했다. K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잠깐만 기다려.”
   K가 잊은 게 있다는 듯이 잠시만 기다리라고 두 번이나 말한 다음에 전시장의 반대쪽 복도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뒤돌아 눈이 쏟아지는 밖을 쳐다봤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따지고 보면 아주 우연도 아니었다. K는 미술관에서 일하고, 나는 미술관을 자주 다니는 축에 들었다. 마땅히 마주칠만하고 당연히 만날 수 있었다. 미술관에 입장할 때만 해도 해가 쨍했는데 폭설이 쏟아지는 지금이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K를 만난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문득,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새 떼꾼한 눈에, 부스스한 머리, 낡은 쥐색 코트에 왼쪽 발꿈치가 닳은 때 탄 운동화. 무엇보다도 앞으로 나누게 될 피상적인 대화의 소재가 벌써 피로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냥 가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출구 문을 나서려는데 뛰어오는 K의 발소리가 들렸다.

   사실 K를 우연히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K는 내가 탄 KTX의 앞 호차 승객이었다. 헤어진 지 5년쯤 지나서였다. 대학 동기의 결혼식 때문에 부산에 가는 길이었다. 내리기 위해 객차 사이의 복도에 서 있는데, 건너편 객실에서 출입구를 향해 걸어오는 K가 보였다. 결혼하는 동기는 신랑과 교내 커플이었다. 신랑과 K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나에게 K를 소개해 준 것이 동기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나는 혼자였지만 K는 동행한 여자가 있었다. 그날 나는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김포 공항 흡연실에서 스친 적도 있었다. KTX에서 본 이후로 3년쯤 뒤였다. 동생의 신혼여행 배웅을 마친 후였다. 흡연실로 들어가자마자 연기를 내뿜는 K와 눈이 마주쳤다. 흡연실에는 나와 K 말고 한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서로를 알아봤지만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흡연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삼십 대 중반의 K는 이십 대 때와 달리 어깨가 다부져 보였다.
   그리고 4년 전에 한번 더. 지하철역에서 지나친 적이 있었다. 2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는 충정로역이었고, 저녁 8시 무렵의 출근길이었다. 5호선 역내로 들어섰을 때 마침 지하철 문이 닫혔다. 그 열차에 K가 타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쪽을 향해 서 있는 K를, 나는 정확히 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K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검은 유리에 땀에 절어 지쳐있는 내가 비쳤다.
   나와 K는 우연한 만남에 익숙했다. 학교 앞 주점이라든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종로서적에서도 곧잘 마주쳤다. 축제 때 캐리커처 그려주는 부스에서, 코아아트홀 매표소 앞에서, 심지어는 피맛골의 그 무수한 막걸릿집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을 정도였다. K는 내가 졸업한 여고의 이웃 남고를 나온 데다 같은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같은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것으로 무수한 우연을 설명할 순 없었다. 나는 곧 우연이야말로 우리 사이를 증명하는 필연적인 이유라고 믿게 되었다.

   K가 내민 건 명함이었다. 왼쪽 상단에 미술관 로고가 박혀 있고, 직책과 이름, 연락처는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소속을 보니 기획운영단의 행정시설관리과라고 적혀 있었다. 직책은 과장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한 K가 행정 업무를 하고 있었다.
   “난 명함이 없네.”
   “괜찮아. 네가 이제 내 번호를 알잖아.”
   “그래……”
   “어떻게 지내? 잘 지냈어?”
   “그렇지 뭐. 넌 좋아 보인다.”
   말뿐만이 아니라 정말 좋아 보였다. 오십을 앞둔 남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자하고 젠틀해 보였다. 미술관 직원 몇이 지나가며 K에게 묵례를 했다. K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일해야 하는 거 아냐? 들어가 봐.”
   “시간 괜찮으면 차 한 잔 괜찮아?”
   K가 이끈 곳은 직원 휴게실이었다. 미술관을 무수히 다녔지만 이런 공간에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흰색 벽면을 따라 파란색 소파가 빙 둘려 있고, 공간의 가운데에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K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묶었던 머리를 정리해 다시 묶었다. 손으로 몇 번 쓸었을 뿐인데 머리카락이 후드득 빠졌다. 슬그머니 손을 테이블 아래로 숨겼다. 손톱은 정리가 안 된 채 뭉툭하고 손등은 잔주름으로 쪼글했다. 핸드크림 하나 가방에 없었다.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냈어?”
   K가 검은 커피를 건네며 또 물었다.
   “잘 지냈지. 넌?”
   “회사원이 뭐 다 똑같지. 그런데……”
   K와 눈이 마주쳤다. K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넌 예전과 똑같다. 변한 게 없어 보여.”
   말도 안 돼. 마스크로 가린 얼굴인데 뭘 보고. 나는 맨얼굴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커피도 못 마시고 있었다. 밤을 새우고 온 길이었다. 특목고 기숙사 사람이라는 것은 저녁 9시부터 아침 8시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기숙사 내의 학생 인원 파악, 외부인 출입 통제와 기상 관리, 기숙사 관리였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보수가 적고, 낮밤을 바꿔 살아야 했다.
   “015, 347, 8306.”
   “뭐야?”
   “뭐게?”
   “설마, 내 삐삐 번호?”
   K가 멋쩍다는 듯이 웃었다. 웃을 때 보니 눈가의 주름이 파여 그제야 제 나이처럼 보였다.
   “그걸 어떻게 기억해?”
   “몰라, 너 보는 순간 번쩍 떠올랐어.”
   “25년도 더 전 일인데?”
   “그러게 말이야.”
   K가 커피를 마시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때 문득 그날 밤이 떠올랐다. K가 전라의 나를 스케치했던 밤이 있었다. 어둔 조명 아래,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나를 그리던 K의 모습이, 그때 나를 바라보던 K의 눈빛이 떠올라버리고 말았다. 하필 그런 기억이라니.
   “언젠가 한번쯤은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다.”
   “그래?”
   “너 미술관 다니는 거 좋아했잖아.”
   너 때문에 다니게 됐잖아,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생소한 공간이었던 미술관을 처음 데리고 간 것은 K였고,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어준 것도 K였다.
   “뭘 느끼려고 하지 마. 나랑 이야기 안 해도 되니까 그냥 보기만 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것이 K가 알려준 관람법이었다. 느끼려고 하지 않는 것. 작품 앞에서 긴장하지 말 것. 그저 보는 것. K의 말대로 보다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보다보면 분명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이 있었다. 발걸음을 붙잡는 작품을 만나거나, 불쑥 작가의 감정이 추측되는 작품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게 되었다. 그러다보면 나의 오늘이나, 나의 고민이나, 나의 문제들에서 잠시나마 멀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기를 쓰고 미술관으로 숨어들곤 했다.

   “어떤 작품이 좋았어?”
   “함메르쇼이.”
   “그럴 거 같더라.”
   K가 전화기를 꺼내 메시지를 입력했다.
   “바쁘면 들어가 봐.”
   “아냐. 30분 정도는 시간 괜찮아. 함메르쇼이 작품 좋지.”
   “좋더라. 같이 전시된 〈저녁 6시〉도 좋고.”
   “카펫의 무늬가 저녁 6시 창문 너머로 들어온 빛과 그 그림자를 나타낸 거래.”
   “응, 읽었어.”
   “나도 매일 한 번씩 그 작품 보고 내려와.”
   함메르쇼이의 그림은 딱 두 점이 있었다. 온화한 빛이 들어오는 기다란 창문이 그려진 실내 그림과 동그란 테이블 뒤에 서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 그림이 그것이었다. 구성이 단출하고 색감이 차분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무엇보다도 함메르쇼이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무척 검박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직접 만난 함메르쇼이의 그림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나는 몹시 실망한 참이었다.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던데다 바로 앞에 설치된 영상 작품에서 기인된 소음이 너무 커서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그림과 다른 감흥이 일지 않아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나는 함메르쇼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뒷모습을 좋아했다. 검은 옷, 검은 머리, 하얀 뒷목에서 드러나는 고독이나 아련한 감정들이 좋았다. 마치 사연 많은 여인처럼, 삶이 고단하고 지난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여인처럼 보이는 그녀들의 뒷모습이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 작품을 K도 좋아한다니, 하긴, 그럴법했다.
   그 당시의 K는 수묵추상화를 작업하고 있었다. 묵과 여백으로 공간을 없애면서 만드는, 공간을 만들면서 없애는 작업이라고 했다. K의 작품은 멀리서 봐야 하는 큰 작품이었지만 나는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묵의 미세한 번짐이 좋았다. 종이에 묵이 스며들며 색이 점점 옅어지는 모양이 좋았다. 함메르쇼이의 그림도 사물의 경계가 그렇게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세월 동안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는 K의 작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림은?”
   “직장인이 무슨 그림.”
   K가 쑥스럽게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그렇구나.”
   어쩐지 실망감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K는 이미 화가였다. 예술가였다. 화집을 끼고 다니고, 미술관을 다니며, 스케치 여행을 떠나고,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국전에 출품할 작품을 만든다고 한 계절 동안 두문불출하기도 했는데.
   “넌? 계속 글 써?”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름을 불렀을 때 내가 아니라고 했어야 했는데. K라고 이름을 밝혔을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뒤돌아섰어야 했는데. 그래도 무슨 일을 하느냐고, 어디서 사느냐고, 결혼은 했느냐, 애는 몇 살이냐는 질문보다는 나은 걸까.
   “아니.”
   “왜. 너 그때 꿈이……”
   “다 옛날 일이지 뭐.”
   글이라니. 그러나 K의 기억이 맞다. 나는 한때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잊은 채 살고 있었을 뿐. K는 또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휴게실로 들어온 여직원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K에게 종이 가방을 건네주고 다시 인사를 한 뒤에 휴게실을 나갔다. 사무적인 몸짓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거.”
   K가 그 종이 가방을 나에게 내밀었다. 미술관 로고가 박힌 종이가방이었다. 받아들어 열어 보았다. 이번 전시의 도록, 브로슈어, 함메르쇼이 그림엽서와 미술관 달력과 굿즈가 두서없이 담겨 있었다.
   “너 이런 거 모았잖아.”
   나는 괜히 얼굴이 달아올랐다.

   코로나와 날씨 이야기를 나눴고, 현재 다른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들, 예를 들어 피크닉의 사울 레이터 사진전이나 DDP의 살바도르 달리전, 한가람의 앙리 마티스 전과 초현실주의 거장들이나 아라리오 갤러리나 국제갤러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사이 눈이 멈췄다.
   “차는 어디에 뒀어?”
   K가 테이블을 정리하며 물었다. 30분은 참 길고 참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두고 왔다고 대답했다.
   “언제 정말 시간 내서 제대로 보자.”
   K가 출구 앞까지 배웅하며 말했다.
   “연락해. 기다릴게.”
   나는 출구를 나서다 말고 K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기다릴게, 라는 말은 진짜일까. K가 미소를 지으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 사이 눈은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입장할 때 보였던 노숙자들이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 덮인 근린공원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K의 명함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눈에 쑥쑥 파인 내 발자국이 천천히 나를 따라 왔다.

김이설

소설을 씁니다.

2022/04/26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