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들지 않는 좁은 방마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뱄다. 엎질러진 술을 치울 때면 영미는 이 검은 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를 마친 방에 탈취제를 뿌리던 영미의 이어 마이크에서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3T 아이스 갈아줘. 영미는 탈취제를 내려놓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인위적인 꽃향기가 만족스럽게 퍼져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간 영미는 양철 버킷에 얼음을 퍼 담았다. 쟁반 위에 버킷을 올려놓고 복도를 걷는 영미의 옆으로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자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영미는 3번 방의 문을 열었다. 남녀가 체리처럼 짝지어 앉은 모습이 보였다.
  “남자야 여자야?”
  트로트 반주가 흘러나왔다. 소파에 앉은 남자가 마이크를 쥔 채 영미에게 물었다. 영미는 남자 앞에 버킷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여자예요. 영미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려고 하자 남자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퍼졌다. 잔 받아. 남자의 품에 안겨 있던 여자는 만원 두 장이 둘린 글라스를 영미에게 내밀었다. 영미는 글라스 속에서 위태롭게 출렁이는 양주를 바라보았다. 뭐해? 여자가 남자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며 물었다. 남자도, 남자와 함께 온 일행들도 모두가 영미를 바라만 보았다. 죄송합니다. 영미가 단호한 투로 말했다. 남자는 입을 다문 채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작은 스크린 너머로 노래 가사가 진행되었다. 영미는 문고리를 잡았다. 등뒤로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음이 뭉개진 말들이 영미의 귀를 울렸다. 방으로 들어온 매니저는 남자를 진정시키며 영미를 내보냈다. 영미는 문이 닫힌 복도에 서서 얼굴이 비치는 대리석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나온 매니저는 영미의 정강이를 짧게 차며 말했다. 너 같으면 이 돈 쓰고 이딴 대우 받고 싶겠니, 들어가서 치워. 영미는 쟁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문을 열자 사람들이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여자는 깨진 컵을 치우는 영미의 손 옆으로 재를 털었다. 깨끗해서 좋겠다, 영미야. 그리고 엎질러진 술에 꽁초를 버리며 말했다.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 영미는 고개를 들었다. 깨끗한 미소를 지은 여자가 보였다. 영미는 사방이 벽으로 틀어막힌 방을 둘러보았다. 방 너머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밤에 갇혀야 할까. 영미는 생각했다. 더러운 사람들이 쏟아내는 더 더러운 걸 치우고 있으면서도, 영미는 정당한 증오를 받으며 비슷한 가게를 전전하고 있었다.

영미는 고요한 빌라 계단을 올랐다. 옷에 밴 술 냄새에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 층에 도달하자 자동 조명등이 켜졌다. 영미는 자신의 현관문 앞에 놓인 거대한 아이스박스를 바라보았다. 송장이 없는 걸로 보아 퀵으로 보낸 택배였다. 택배를 들고 집으로 들어온 영미는 암막 커튼으로 틀어막힌 집을 둘러보았다. 끄지 않고 나간 티브이로부터 옅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미는 바닥에 앉아 상자를 열었다. 가지런히 누워 있는 아이스팩 아래로 500밀리리터 페트병에 소분된 채 쌓여 있는 피가 보였다. 한 병을 꺼내 뚜껑을 열자 무겁고 달콤한 향이 영미의 코끝을 돌았다. 영미는 냉동실에 피를 채워 넣으며 돼지의 멱에 장침을 꽂는 아빠를 상상했다. 돼지가 비명을 지른다. 아빠는 침이 꽂힌 주사기의 피스톤을 길게 뺀다. 영미의 아빠는 항상 자신이 먹은 물의 페트병을 깨끗이 헹궈 피를 담는다. 더러운 걸 씻어내고 더 더러운 걸 집어넣는다. 유년에는 영미를 숨기기 위해 사람이 적은 촌으로 내려갔고, 지금은 영미의 피를 구하기 위해 그곳에 정착했다. 영미만 홀로 서울에 왔다. 아버지가 짜낸 피를 마시며 살고 있다. 밭으로 즐비한 촌에는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영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들췄다. 창밖으로부터 가로등의 불빛이 쏟아졌다. 영미는 창가에 두었던 선인장을 쓸어내렸다. 선인장의 가시가 영미의 단단한 피부에 이리저리 휘어졌다. 영미는 선인장을 가만히 쥐었다. 피부밑으로 으스러지는 가시가 느껴졌다. 영미는 지난 뉴스를 재생하는 티브이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죽여본 적이 있었던가. 손에 쥔 선인장의 뿌리로부터 흙이 떨어졌다. 화면 너머로 안전했던 나라가 폭격을 맞고 물가가 오르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영미는 티브이를 향해 선인장을 던졌다. 심박수가 오르는 게 느껴졌다. 왜 그랬는지는 영미도 알지 못했다. 이제 자신의 세계도, 이외의 세계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영미는 알 수 없었다. 티브이 화면은 흙이 묻었을 뿐, 꺼지지는 않았다.

사람은 원래 남을 해치지 않고선 못 살아. 영미가 처음으로 따뜻한 피를 거부했을 때 아빠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날 밤 영미는 모르는 아이의 그네를 밀어주다가 작은 사고를 냈다. 밤에 없어진 아이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던 아주머니는 영미를 나무라며 아이를 끌어안고 사라졌고, 덩그러니 남은 영미는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영미의 아빠는 엉망이 된 영미를 보곤 전자레인지에 돌린 피를 건넸다. 영미는 검붉은 액체가 담긴 머그잔을 쓰레기처럼 내던졌다. 영미는 넘어진 사람처럼 주저앉았다. 컵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보고 있자 마치 컵이 헐떡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걔 몸에서도 이런 게 나왔어. 영미가 상처 나지 않는 피부를 긁어대며 말했다. 여덟 살이 되어서야 영미는 자신이 뭘 먹고 살아왔는지를 자각할 수 있었다. 아빠의 흉터는 그날 생겼다. 영미가 자신에게 다가온 아빠를 밀쳤을 때, 넘어진 아빠의 손에 깨진 유리가 박혔을 때, 영미가 여태 마셔온 피와 같은 색의 액체가 아빠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순간 영미는 기절했다.

영미는 시간을 확인했다. 선인장에서 떨어진 흙을 피해 걸었다. 동이 틀 때까지 적당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영미는 모자와 장갑을 챙기고 집을 나왔다. 새벽 3시에 대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 사람은 영미뿐이었다.

*

사라진다. 영미는 여자의 죽음을 사라진다고 표현했다. 모든 뱀파이어는 영생을 살지 못하고 햇볕을 향해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삶을 세상에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도 증명하지 못했다. 신분이 없는 여자는 학교에 갈 수도, 딸의 출생신고도 할 수 없었다. 필요한 계약은 인간의 명의나 조작된 자격으로 이루어졌다. 영미는 여자로부터 전염되었다. 낮이 되면 햇빛과 사람을 피해 도망쳤다. 자라나는 송곳니는 사포로 갈아 뭉툭하게 만들었다. 영미가 햇빛 아래에서 사라질까봐, 영미의 아빠는 일을 나가는 아침마다 어린 영미를 안방에 묶어놓았다. 아버지가 돌아온 밤이면 영미는 석방된 사람처럼 밤의 공터를 돌았다. 아이들이 한낮에 만들고 떠난 모래성을 부술 수 있었으나, 영미는 그러지 않았다. 노란빛이 영미의 허벅지 위로 점멸했다. 택시가 터널의 무수한 빛을 통과하고 있었다. 영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현금으로 받은 일급이 영미의 손끝에서 힘없이 구겨졌다.

“위험하게 왜 새벽에 왔어.”
  택시를 보낸 영미는 잠옷을 입은 채 걸어나오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어여 들어가자, 동튼다. 아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영미의 팔을 이끌었다. 집으로 들어선 영미는 암막 커튼에 가로막힌 안방을 발견했다. 못 뺐어? 영미가 커튼을 끌어당기며 물었다. 아빠는 홀린 사람처럼 새어나오는 달빛을 지켜보았다. 영미가 손에 쥔 커튼을 놓자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영미는 옷을 주워 입는 아빠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어둠에 파묻힌 채 움직이는 마른 몸의 윤곽이 보였다. 어디 가? 영미가 물었다. 아빠는 아침 준비해야지, 라며 짧게 답했다.
  영미는 어두운 방에 누워 돼지의 비명을 들었다. 두 동물이 영미를 위해 무리하고 있었다. 영미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몸을 돌렸다. 암막 커튼 너머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영미는 뒤로 물러나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하늘거리는 암막 커튼 사이로 햇빛이 치고 빠져나갔다. 일출이다. 영미는 구석으로 몸을 숨기며 노란빛이 방바닥을 좀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빛이 짙어지고 있었다. 영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빛을 향해 다가갔다. 햇빛 앞에 멈춰서 흔들리는 커튼에 손바닥을 맞댔다. 커튼 너머로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이 느껴졌다. 태양을 보고 싶다. 영미는 생각했다. 사라지고 싶다.

“일은 어때?”
  아빠가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오며 물었다. 영미는 대답하지 않고 안방에 작은 상을 펼쳤다. 사람은 좀 사귀었어? 아빠가 확인하듯 영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영미는 아빠의 쟁반을 상에 내려놓으며 주억거렸다. 그제야 영미의 아빠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영미는 숟가락을 어설프게 쥔 아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금을 가르고 자리잡은 흉터는 짙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깨진 컵 조각에 잘려 힘줄이 끊어졌을 즈음, 아빠는 농원을 접고 대출을 받아 양돈을 시작했다. 꽃과 다육식물의 원예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목돈이 마련될 때까지만 하려던 일이라고 말했으나, 마당에 버리지 못하고 키우는 다육식물들을 보았을 때 영미는 아빠가 식물을 많이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영미는 컵에 담긴 자신의 식사를 들여다보았다. 끝까지 가꾸는 것과 끝내 죽이는 것은 확연히 다른 일이었다.
  “내가 아빠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영미의 말에 아빠는 밥 위에 김치를 올려 먹으며 답했다. 장녀는 아빠 닮는다더라. 아빠는 그릇을 들고 마지막 한 톨까지 긁어먹었다. 영미는 그런 아빠를 보며 컵에 담긴 피를 모두 들이마셨다. 아빠가 쟁반을 들고 나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주방으로부터 설거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 되자 영미는 아빠와 동네를 산책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영미가 중얼거렸다. 시골이니까 그렇지. 영미의 아빠가 답했다. 길을 걷던 아빠는 길가에 핀 꽃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영미는 눈을 감고 꽃향기를 맡는 아빠를 지켜보았다. 내가 준 선인장은 잘 있나? 아빠가 물었다. 영미는 손을 가만히 쥐었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몰라. 아빠는 웃으며 영미에게 손짓했다. 말려버렸구나. 영미는 못마땅한 얼굴로 아빠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키우긴 뭘 키워. 영미는 꽃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찬 공기에 마비되어 아무런 향기도 맡을 수 없었다. 아빠. 영미가 허리를 펴고 물었다. 아침은 무슨 색이야? 아빠는 찬 바람을 맞는 영미를 바라보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밖에 두었던 두 선인장을 안방에 내려놓았다. 주지 말라니까. 아빠는 손을 내젓는 영미를 무시하고 주방에서 가위와 알코올을 가져왔다. 휴대전화로 찍어놔. 아빠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가위를 지진 뒤, 알코올이 담긴 통에 담갔다. 영미는 휴대전화를 켜고 촬영을 시작했다. 화면 너머로 마디마디에 힘을 준 손이 선인장의 잎을 잘라내고 있었다. 아빠는 다른 선인장에 홈을 패고, 자신이 잘라둔 잎을 꽂아 넣었다. 영미는 뚱뚱한 선인장에 맞붙은 가느다란 잎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나는 죽기 직전이었는데 멀쩡한 부분을 잘라서 붙인 거야. 촬영이 종료되었다. 영미는 무릎을 끌어안으며 선인장을 물끄러미 보았다. 멀쩡하지 않은 부분은? 영미의 말에 아빠는 손을 뒤로 짚으며 답했다. 잘 말려서 거름으로 써야지. 아빠는 이 작업을 접붙이기라고 알려주었다.

“벌써 가?”
  아빠가 서운한 투로 물었다. 영미는 예약한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답했다. 다음에는 휴가 내고 오래 있을게. 아빠는 다가온 택시의 차 문을 열고 영미에게 말했다. 영미야, 밥 잘 먹고 잘 지내고. 영미는 연신 끄덕이며 차에 올라탔다. 택시가 출발하려고 하자 아빠는 차창을 두드리며 덧붙였다. 영미야, 추워지면 와, 해 짧을 때. 아빠의 목소리가 차창에 좀먹혀 뭉개졌다. 영미야. 아빠는 차창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안방에 있던 못 빼버려서 미안해. 영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답했다. 알았어요, 다 알아요. 택시가 출발하자 백미러 속에서 작아지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택시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택시가 고속도로에 오르자, 차창 너머의 풍경이 빠르게 뒤바뀌었다. 영미는 아빠가 두드리던 차창에 손바닥을 맞댔다. 유리의 냉기가 영미의 손으로 옮겨가는 게 느껴졌다. 영미는 티브이의 빛을 받으며 죽어갈 선인장을 떠올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선인장을 검색하자 각기 다른 선인장이 영미의 휴대전화 화면을 채워나갔다. 택시가 너른 도로를 달리며 속도를 높였다. 영미는 무릎 위에서 흔들리는 선인장을 바라보았다. 노란 고무줄이 접붙인 자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영미는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화분을 잡았다. 차창에 머리를 기대며 세 종류가 징그럽게 엉겨 붙은 선인장을 상상했다. 세 개의 물관이 뒤엉키다가 운좋게 맞붙고, 맞붙은 물관으로 하나의 물이 흐르고. 선인장 위로 햇빛이 드리우고, 사그라들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밤새 몸을 식힌 선인장은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목이 마를 때면 침잠한 밤에 창문을 열고 물을 주는 영미가 있고, 그럼 한껏 물을 마신 선인장은 영미에게 지난날 보았던 아침의 색을 알려줄 것이다.

김소이

2023년 앤솔러지 『이중생활자』에 「부귀수산」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에 단편소설을 실었다.

2024/06/19
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