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는 실로 MBTI의 시간이었다.
   202*년, 한국 고용노동부에서 MBTI를 통한 청년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청년의 MBTI 유형에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여, 심연 밑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고용률도 잡고 개인화된 복지도 제공하겠다는 시도였다. ESFJ 지원자에게는 영업직이 우선으로 배정됐고 INTP 지원자에게는 프로그래밍 교육이 국비로 지원됐다.
   처음엔 당혹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건 그냥 농담 같은 것 아니었어? 하지만 공공의 영역, 그것도 구직의 영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여러 대기업에서는 자기소개서를 통해 모호하게 성격적 강점 따위를 묻는 대신 MBTI 검사 결과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몇몇 발 빠른 스피치 학원은 단 4주 안에 MBTI를 ENTJ로 바꿔준다는 광고를 내걸어 돈방석 위에 올랐다(ENTJ 유형이 월소득이 제일 높고 INFP 유형이 월소득이 가장 낮다는 통계가 돌았기 때문이었다1)). 인구수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한 지자체에서는 MBTI 유형에 따른 단체 소개팅을 주최하려다가 남자만 지원하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주민등록증에 MBTI를 새겨도 별문제 없을 만큼 곳곳에서 MBTI가 활용됐다.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믿는, 좋게 말하면 생각이 많고 나쁘게 말해도 생각이 많은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서마음은 그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음은 자신의 학위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는 MBTI를 증오했다.
   무슨 뜻이냐고?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우선, 마음은 심리학 박사였다. 마음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심리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그의 이름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하지만 반짝이는 믿음이 마음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2). 중학생 때 과제로 독후감을 쓸 때도, 그 긴 권장 도서 목록에서 마음은 심리학 교양서적을 골랐다. 마침 그 책은 상당히 괜찮은 책이었고. 덕에 마음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도서관에서 심리학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중등 독서 교육의 위대한 승리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의 부모는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마음의 부모에게 심리학이란 생소함 그 자체였다. 여전히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많은 사람 같았다. 그들은 자기 자식이 헛꿈 꾸지 말고 이왕이면 전문직이 되기만을 바랐다. 부모에게 딱히 자식의 진로를 애써 막고 싶어 하는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식이 그들처럼 중산층의 삶을 누리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랴. 마음이란 이름을 준 것이 바로 그들인 것을. 그리고 자식이 부모의 뜻과 어긋난 길에 더 매력을 느끼는 현상은, 알다시피, 호모 에렉투스가 대지에 두 발 딛고 선 이래 언제나 인류가 겪는 고통의 핵심 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부모는 수십 번은 화를 내고 마음을 어르기도 해보았지만 당연히 역효과가 났다. 마음은 심리학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를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면 이제 어떤 수를 써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덕에 마음은 나름대로의 튼튼한 방어 논리도 짜낼 수 있었다.
   “엄마. 심리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한 데 섞인 융합 학문이란 말야. 심리학과 가면 뇌 과학도 배우고 통계학도 배워야 해.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난 문과가 아니라, 문이과 통섭 인재가 되겠다는 거야. 그리고 인간 마음이라는 게 아직도 이해 밖의 영역이잖아. 심리학 붐은 올 수밖에 없다니까? 20년쯤 지나면 기계가 사람 일은 다 해 주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만 잘 다스리면 돼. 나도 먹고살 계획이 다 있으니까,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구.”
   당당한 연설 이후 십 년이 지나, 박사 과정 2년 차에 들어섰을 때 마음은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초의 과학 기술 발달은 경이로운 수준이었으나, 인공지능은 여전히 미련했다. 그것은 미리 학습해놓은 한 가지 일만 해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사람은 온갖 상황에 융통성 있게 적응할 수 있었다. 거기다 사람은 인공지능보다 훨씬 쌌다.
   그걸 알아챘을 때 마음은 이미 대학원에서 5년을 보낸 다음이었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한참 늦은 때였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은 것이었다. 그것이 마음의 비극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심리학이 인간 행동을 가장 잘 설명하는 아름다운 융합 학문이자 종합 과학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미학은 돈으로 바꾸기가 정말 힘들었다. 마음은 한 국책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귀여운 월급을 받았다. 이 귀여운 월급을 위해 마음은 책 세 권을 쓸 수 있을 만한 고난의 시기를 거쳐야만 했다.
   그 고난 속에서 마음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심리학 붐은 온다. 모든 사람은 ‘대체 쟤는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딴 짓을 하는 거지?’라는 의문을 품게 마련이니까. 물론 마음이 마음대로 한 생각이었다.
   뭐, 심리학 붐이 오긴 왔다. MBTI와 대중심리학이란 이름의 형태로 도래했을 뿐이지. 마음은 MBTI란 이름만 들어도 학을 뗐다. 똑같은 MBTI 테스트에서 대충 이름만 바꾼 것도 재밌게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ENTP라 부르는 대신 “당신은 사랑을 찾는 분홍색 오징어 유형입니다! 당신과 맞는 유형은 바다를 질주하는 파란 해마가 있겠군요.”라는 결과를 내려주는 테스트에 수십만의 트래픽이 몰리곤 하는 예가 있지 않겠나?
   마음은 대중심리학이 심리학의 권위를 탈취하여 부와 관심을 누리고 있다고 믿었다. MBTI가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질진 의문스럽지만, 어쨌든 마음의 주관이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INTP시군요. 맞죠?”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난 경멸을 느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하다면 이 한 마디로 충분했다. 마음은 블로그나 소셜 미디어에 MBTI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써서 올리기도 했다. 나름의 사명감의 발로였으나 당연히 아무도 읽지 않았다. 마음은 무기력감에 빠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붐의 시발점이 된 고용노동부의 MBTI에 맞춘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이 처음 열린 지도 3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자기 유형에 따른 일자리를 얻었다. 고용노동부는 프로그램의 성과에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이 결과를 연구의 형태로 다듬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연구 과제 중 일부가 돌고 돌아 마음에게로 떨어졌다.
   며칠 동안 현실을 부정하고 나서 마음은 생각했다. 이건 고통스러운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연구 과제를 정말 잘해 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 MBTI로 일자리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그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릴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마음은 이 기이한 MBTI 붐을 끝장내는 데 한몫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인지적 경향 수정은 마음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3).
   곧 마음은 고용노동부와 한국 MBTI 연구소에서 쌓아놓은 데이터를 수신했다. ESFJ, 혹은 ‘사교적인 외교관4)’이라는 멋들어진 칭호로 분류된 사람들의 데이터였다. 그들은 프로그램에 따라 전부 영업직으로 취업하게 됐다. 마음은 과연 이 사람들이 다른 유형의 사람보다 근무 만족도가 높은지, 그리고 실제로 일은 잘하는지 알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정리했다. 물론 통계적으로 별반 유의미하지 않게 나올 거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고된 데이터 전처리 후에 마음은 분명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다른 모든 독립 변수를 통제했을 때, ESFJ로 분류된 사람들이 영업직에의 근무 만족도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평균 42% 높으며, 평균 실적도 31.2% 뛰어났다.
   사회 과학에서 이 정도의 차이면 딱히 통계적 검정 기법을 활용할 필요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마음은 이마가 따끈따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키, 시험 성적, 눈송이의 크기. 자연계의 수많은 양적 형질들은 종 모양의 정규 분포를 그린다5). 평균에 가까울수록 사례가 늘어나고, 양극단으로 갈수록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인간의 성격 또한 마찬가지다. 외향성 50이 평균이라고 했을 때, 외향성 10점과 외향성 90점인 사람보다는 외향성 45점과 외향성 55점인 사람이 더 찾기 쉬울 것이다.
   만약 사람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가르는 MBTI가 타당하려면, 이런 성격 특성은 정규 분포가 아니라 두 개의 종을 겹쳐놓은 쌍봉 분포의 모양을 띄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6). 49점으로 내향형이 나온 사람이 있다면, 그는 51점으로 외향형이 나온 사람과 더 비슷할까, 아니면 1점으로 내향형이 나온 사람과 비슷할까?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성격을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은 설명력이 떨어진다. 인간의 성격은 이산적이지 않다. 그것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며, 따라서 BIG 5 같은 현대적인 성격 검사는 점수를 활용한다7).
   이것이 마음이 따르는 현대 성격심리학의 논리였다. 하지만 마음의 논리로는 고용노동부에서 준 데이터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점수가 어떻든 간에 ESFJ 유형이 나온 사람들은 모두 영업직에 놀랍도록 만족했고, 좋은 성과를 냈다. 다른 연구원들이 받은 다른 유형의 데이터도 엇비슷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구직의 골짜기에서 극단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다. 어쨌든 일자리를 얻었으니 일반적으로 행복한 상태일 것이다. 물론 일과 행복이 서로 궁합이 잘 안 맞는 단어기는 한데, 월급 안 받고 괴로운 것보다야 월급 받으면서 괴로운 게 더 낫지 않겠나? 그도 아니면, 그냥 고용노동부의 만족도 설문에 습관적으로 만점을 찍고 잊어버린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적은? 그것은 스스로 보고해야 하는 만족도보다 훨씬 객관적인 데이터였다. 마음은 ESFJ가 실제로 실적까지 잘 뽑아내는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이대로 끝내고 여유를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아주 쉬운 일이었다. 워낙 데이터가 또렷하다 보니 굳이 복잡한 연구 방법론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럴 수 없었다. 여가와 돈보다 더 중요한, 그의 삶을 지지하는 어떤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미국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포럼을 찾아 익명으로 게시글을 올렸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자 곧 답글이 여럿 달렸다. 극동에서 별별 신기한 일이 다 일어난다고 웃는 구경꾼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임상장면에서 MBTI를 사용한다고 밝힌 한 상담가조차 MBTI를 직업 선택에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8).
   결론은 이랬다. 역시 데이터 수집 과정 중 상당히 창의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사람들은 데이터 조작을 의심하고 있었다. 마음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당연히, 마음은 연구 부정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건 마음이 경멸하는 대중심리학보다 더 심한 문제였다. 대중심리학은 심리학의 권위를 탈취하지만 연구 부정은 권위 자체를 으깨버리니까.
   하지만 마음은 이것을 어떻게 공론화할 수 있을지 몰랐다. 저 밖에서 테스트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한테 이런 문제를 알려 봐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게 뻔했다. 일자리만 구했으면 됐지. 먹물 같은 소리 한다고 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었다.
   이틀 뒤, 혼란한 마음 앞으로 메일이 왔다. 마음이 본 적 없는 메일 주소였다.
   ‘한국 MBTI 연구소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모레 오후 두 시, 이곳에서 보시지요.’
   아래에는 주소가 하나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무시했을 대단히 수상한 메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은 한국 MBTI 연구소를 올려다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떼돈을 긁어모은 한국 MBTI 연구소는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사우론의 탑 같은 빌딩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마음은 그 뒤에 어떤 검은 아우라가 서려 있다고 느꼈다. 안 그래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었다. 메일에 적혀 있던 주소는 한국 MBTI 연구소 바로 옆의 카페였다. 그 사람은 마음을 대체 왜 이런 곳으로 부른 것일까. 혹시 한국 행정부 뒤에 암약하는 거대 MBTI 집단이 있는 것 아닐까? 그 부정한 비밀을 눈치챈 마음을 붙잡아 영혼을 뒤바꿀 고문을 한 다음 MBTI 16유형 중 하나의 낙인을 이마에 새기지는 않을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되뇌며, 왠지 비장해진 가슴을 붙잡고 마음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카페 내부에 납치범들이 도사리고 있진 않았고, 그냥 작은 프랜차이즈 가게에 지나지 않았다. 드문드문 앉아서 떠드는 사람들과 그저 그런 커피 냄새.
   “서마음 박사님.”
   조금 낮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산란한 잡음들을 꿰뚫고 마음의 귀로 들어왔다9). 마음은 깜짝 놀라며 뒤돌아봤다. 후드티를 뒤집어쓴 사람 하나가 마음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마음은 헉 소리를 내면서 카페의 가장 으슥한 구석으로 질질 끌려갔다. 마음의 심장이 쾅쾅 뛰었다10). 카페 내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누, 누구세요?”
   “당신을 이곳으로 이끈 사람입니다.”
   후드티를 뒤집어쓴 여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명함을 꺼내 마음에게 건넸다. 그 명함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서지혜. 한국 MBTI 연구소 선임연구원. ISFP. 한국 MBTI 연구소라는 글귀를 읽은 마음은 경련했다.
   “제, 제가 포럼에 쓴 글을 읽은 건가요?”
   마음이 지혜의 손목을 뿌리쳤다. 지혜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걱정 마십시오.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뿐이죠.”
   “이야기요? 절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MBTI는 사실과 거리가 먼데……”
   “사실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예?”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MBTI가 명백한 사실이고, 가장 정확한 성격 검사입니다. 심지어 거기서 발한 밈까지도요. ENFP는 실제로 금사빠고, INFJ와 ENTP는 천생연분입니다. 당신이 받은 데이터도 전혀 손질되지 않은 데이터입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지혜가 손뼉을 쳐서 마음의 말을 끊었다. 마음은 이 재수 없는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과장된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지혜가 마음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박사님, 저희도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판이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2010년대 말부터 인터넷 곳곳에서 MBTI 밈이 생길 때까지만 해도 잠깐인 줄 알았지요. 사실 저희도 처음엔 그런 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한테 저작권료도 한 푼 안 돌아오지 않습니까?”
   마음은 오는 길에 본 거대한 MBTI 연구소 빌딩을 떠올렸다. 그 한 푼을 챙기지 못했어도 연구소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온 것 같았다. 지혜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유행이 끝날 생각을 않더군요. 이 정도의 MBTI 열풍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연구원들 중 일부는 한국의 집단주의적 특성 때문에 성격 유형으로 나뉘는 것을 선호한다고 믿었죠. 저는 16personalities에서 대단히 그럴싸한 칭호를 달아준 것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재기 발랄한 활동가니 사교적인 외교관이니 하고 불리면 누구나 기분 좋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대단히 똑똑했던 겁니다.”
   “성격 검사의 핵심은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에요. 진짜 성격을 드러내야죠.”
   “뭐,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저작권료이긴 한데…… 여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
   “어쨌든 우리는 MBTI 2차 콘텐츠의 대부흥을 우려했습니다. 우리 테스트 자체의 신뢰도를 깎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자기 성격 유형에는 어떤 직업이 어울린다는 별 근거도 없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다음, 적성에도 안 맞는 직업을 택했다가 우리한테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어떻게 우리 잘못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죠. 적어도 한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MBTI로 보는 연애 유형 따위가 진짜 사실입니다. 통계적으로 아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옵니다.”
   “연구를 대체 어떻게 했길래……”
   “저는 계량심리학 학위가 있습니다. 우리 연구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생각하시는 것처럼 엉망은 아닙니다. 박사님, 솔직히 통계랑 방법론은 제가 박사님보다 훨씬 더 잘 다룰걸요?”
   부정하기 힘들었던 마음은 말을 돌리기로 했다.
   “하여튼, 같은 유형 내에서라도 특성 점수는 천차만별일 텐데!”
   “그동안 한국인들은 미디어와 일상에서 MBTI에 아주 많이 노출됐습니다. 자신의 MBTI 유형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끊임없이 주입받아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행동과 생각 방식이 정말로 자신의 유형에 부합하게 개조되어버린 겁니다. 그 수많은 MBTI 밈들, 그것들이 처음에는 그냥 얼치기 마케터들의 조잡한 산출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건……”
   지혜는 과장되게 후드를 벗었다. 그의 눌린 머리가 드러났다.
   “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과반수의 한국인들이 16가지 유형으로 분명히 나뉘죠. 유형에 따라 행동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받은 그 데이터도 진짜입니다.”
   “거짓말! 저를 당신들의 연구 부정에 포섭하거나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릴 거에요.”
   지혜가 피식 웃었다.
   “연구 부정이오? 저희는 데이터 조작 따윌 할 이유가 없죠.”
   “학계에서 인정받고 가짜 명예를 얻기 위해서 아니겠어요.”
   “커다란 착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심리학계에서 인정받으면 대체 무슨 명예가 생깁니까? 신문사 기자들이 코멘트 따려고 쓸데없는 전화나 자주 하겠죠. 보통 사람들이 BIG 5 테스트받고 이야기 나누는 거 보셨나요?”
   BIG 5 성격 척도는 현대 성격심리학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척도였다. 물론 마음은 사람들이 그런 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혜는 마음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대중이 더 좋아하는 건 우리 MBTI입니다. BIG 5는 노잼이잖아요. 점수만 나오니까 캐릭터도 안 살고. 우리는 유형별로 캐릭터를 확실하게 나눠주기 때문에 재미있고 대화 주제로 쓰기도 좋죠. 밈을 만들기에도 훨씬 편하고요. 고리타분한 학계 사람들이 뭐라 하든 솔직히 사람들이 신경이나 씁니까? 뭐,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죠. 심리학 학위로 가장 월급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은 MBTI 연구소일 테니까요.”
   지혜는 거기까지 말하고 일어선 다음, 다시 후드를 푹 뒤집어썼다.
   “저는 그저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마음이 뒤돌아서려는 지혜에 대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려고 저를 여기까지 부른 건가요? 그냥 메일로 보내도 될 것을 이렇게 쓸데없이 분위기를 잡았어요?”
   지혜가 마음을 쓱 돌아보면서 말했다.
   “아, 그건 그냥 제가 호기심 많은 예술가형이라 그런 겁니다11).”
   “예?”
   지혜는 피식 웃고는 카페 밖으로 사라졌다. 마음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가까이 앉은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너는 근데 MBTI 뭐야?”
   “나 잇티제.”
   “야, 잇티제는 다들 노잼이라고 그러던데.”
   “참 나. 옛날에는 그렇게 말하면 개짜증났는데. 듣다 보니까 또 그런 것 같기도 하더라.”

   마음은 자기 집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마우스를 옮겼다. 커서가 ‘검사지 제출’ 버튼 위로 이동했다. 클릭하기 전에, 마음은 잠시 과학에 대해 생각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다…… 심리학에 여러 성격 모델들이 있다면, 그 성격 모델에서 가장 유용한 모델을 판가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격 모델들 중 가장 개인의 행동을 잘 설명할 수 있고 또 예측할 수 있는 모델, 그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성격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모델이 현상을 잘 설명하지 않나? 모델이 현상에 영향을 줘서, 현상이 모델에 부합하도록 뒤틀어버린다면? 그렇다면 그 성격 모델은 훌륭한 성격 모델인가? 성격 모델은 인간의 좀더 본질적인 특성을 잡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선후 관계가 뒤바뀐 듯하지만, 어쨌든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체계니까 과학적인 것 맞지 않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한숨을 푹 쉬고, 마음은 버튼을 클릭했다. 곧 모니터에 간이 MBTI 검사 결과지가 떠올랐다. 마음은 자기가 왜 그토록 미워하던 검사를 굳이 진행하고 있는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만큼은 MBTI가 가장 설득력이 높은 모델인데, 마음은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성격 유형: “논리적인 사색가” 사색가형은 전체 인구의 3% 정도를 차지하는 꽤 흔치 않은 성격 유형으로, 이는 그들 자신도 매우 반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색가형 사람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이들이 또 없기 때문입니다……12)
   INTP였다.
   마음은 그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이 심리학, 과학 운운하면서 흥분할 때마다 누군가 꼭 이렇게 한 마디 얹었기 때문이다. “역시 INTP답네.” 심지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INTP로 분류했다. 마음은 그럴 때마다 더 크게 짜증 내고는 했다.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반항심 때문인진 몰라도, 마음은 INTP만큼은 확실히 아니기를 바랐다.
   마음은 주르륵 나열된 INTP의 특성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특성 중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사실 마음의 주변 사람들이 본다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맞는 말 대잔치라고 놀렸을 테지만.
   마음은 모니터를 쏘아보면서 중얼거렸다.
   “뭐 어때? 내 성격이 지금 어떤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무슨 유형을 나로 인식하는지가 더 중요한 거고. 어차피 MBTI는 자기 보고 검사라서, 피검사자가 자기 진짜 성격을 보고하기보다는 자기가 되고 싶은 성격을 보고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그리고 마음은 자기 자신을 외향인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물론 BIG 5 검사에서도 마음의 외향성 점수는 한없이 낮게 나왔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은 결정했다. 한국에서만큼은 가장 과학적인 성격 유형 검사를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ENTP라 규정하기로.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성격 유형을 가진 사람은 유능하고 재미있는 사람일 것 같다는 굳은 확신이 마음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13).

심너울

장르 소설은 광학 현미경 같은 면모가 있다는 비유를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광학 현미경은 빛의 성질을 이용하여 상을 왜곡시키지만, 왜곡된 상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요?

2021/11/30
48호

1
How your personality type impacts your income. (2019). Truity. 검색일 2021년 10월 24일. (링크)
2
Pelham, B. W., Mirenberg, M. C., & Jones, J. T. (2002). Why Susie sells seashells by the seashore: implicit egotism and major life decis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2(4), 469.
3
Meichenbaum, D. (1977). Cognitive behaviour modification. Cognitive Behaviour Therapy, 6(4), 185-192.
4
성격유형: “사교적인 외교관” (2021). 16Personalities. 검색일 2021년 10월 25일. (링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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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 [@neoulneoul]. (2021). 일주일 전에 검사했을 땐 ENFP 오늘은 ENTP 나옴(소설에 인용하기 위해 쓰는 트윗) [Tweet]. Twitter.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