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가만히 빛에 지워졌다



   창틈에 페인트 조각이 쌓였다 좋아하는 허공으로 입술을 들었다 아마 오래돼서 흩날리는 모양이야

   깨진 매니큐어를 손톱으로 긁어냈다 손톱이 함께 밀려나갔다

   귀걸이가 어두워졌다

   화분의 잎사귀가 두터워지고
   인부들이 건물을 철거하듯 짓고 있었다

   주차된 차들이 먼지로 뒤덮여서
   유리창에 손자국을 남겼다
   갇힌 사람의 신호처럼

   창문이 가끔 빛을 두드렸다 파인 손톱에 두꺼운 매니큐어를 발랐다
   마르는 동안 바람이 불지 않았다

   인부들이 서로에게 소리를 질렀다 벽이 많아서 햇빛 주위에 모자가 떨어졌다

   승용차 밑에 웅크린 고양이
   거기서 살면 죽어, 인부들의 말소리를 들었다





   숨 쉬는 목욕탕



   수증기 속에 희미한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 발에 걸렸다 누운 아이였다
   냉탕 옆에서 손가락을 빨며 아마 잠든 것 같았다

   미끄러워서 빠져나가는 얼굴들
   여자가 얼굴을 지운다

   물은 입술이 많아서 고백을 부추긴다
   여자가 머리를 감으며 말했다 어제는 자다 깼는데 시계를 보니 잠들기 전 그대로였어
   팔이 긴 여자가 멍해지더니
   잠든 나를 내려다본 적이 있어 몇 시간이고……
   나는 웃었다 우린 여기에 없어요.

   몸이 시체처럼 자꾸 떠올라서
   손바닥을 펴고 항복, 발목의 번호표가 달그락거리고 붉은색이 그간의 불운을 속삭였다
   어제와 같은 번호를 주세요
   목이 마른다

   머리끈이 떨어져 있다
   눈앞에서 버둥거리는 두 발
   질문을 지우기 위해

   누운 아이는 몸이 희고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
   아이 곁에서 사람들이 수초처럼 흔들린다

김백송

겨울산과 같은 사주라고 한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을 쉬고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착하게 생겼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착하지는 않다. 질투가 많고 모난 구석이 많아서. 그래서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한다. 착하게 바라보고 싶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