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이 없다면 태양도 달도 없을 것이다.1)


   푹 젖은 붓끝을 검정과 파랑 물감에 찍은 후 뿌리치듯 바닥을 향해 세게 턴 다음 도화지에 칠한 듯한 색의 물이, 바그르르 버그르르 거품을 일으킨다. 물이 끓어오르는 냄새, 물이 뿜어내는 수증기가 빠져나갈 틈을 찾지 못하고 천장에 모여 표면장력이 일정한 물방울로 맺힌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한 방울 툭, 한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은 발가벗은 어린애의 머리카락 속으로 숨어든다. 어린애가 턱을 추어올리며 코를 간지럽히는 머리카락을 자기 뺨 너머로 쓸어올리지만 잘되지 않는다. 손에 든 분홍색 플라스틱 모종삽 때문에. 어린애는 삽으로 물을 퍼 대야에 담긴 오리, 돼지, 청진기, 마이크에 뿌린다. 빨갛고 젖은 입술을 내밀며 들릴 듯 말 듯 소리 낸다. 배쫑배쫑. 벼락이 치듯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목청 큰 여자 목소리가 울린다.
   “이 때 좀 봐, 때!”
   놀란 어린애가 입을 벌리고 여자를 본다. 샤워 캡을 쓴 여자가 느릅나무껍질 색 젖꼭지를 흔들며 탕 밖으로 물을 흘려보낸다.
   “이쁜아, 이 때 좀 봐라, 할머니가 더러워서 살겠니, 못 살겠니?”
    샤워캡 여인이 애를 어르는 표정으로 말한다. 콰르르 콰르르 쑥탕 난간에 놓인 옥 두꺼비 입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탕 온도계의 붉은 숫자가 41에서 41.5로 올라간다.
   “물 간지 반나절도 안 됐어!”
   검은 팬티에 검은 브래지어를 입은 세신사가 때 장갑을 낀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말한다. 샤워캡 여인이 맞받아친다.
   “때가 드글드글한데? 이거 누구 때야, 양미네 때야?”
   그러자 세신 침대에 엎드려 누운 양미 엄마가 이마를 들고 말한다.
   “시끄러워서 때를 못 밀겠네!”
   그 말에 샤워캡 여인이 웃음을 터뜨린다. 왼쪽 유방 유륜에서 겨드랑이 쪽으로 30mm 떨어진 부위에 꿰맨 자국이 있는 샤워캡 여인은 기체조 하듯 양팔을 벌리며 탕 밖으로 물을 밀어낸다. 세신 침대에 엎드린 양미 엄마가 손등을 포개어 그 위에 턱을 대고 어린애를 보며 말한다.
   “잘 노네? 할미 이제 다 밀었다!”
   세신사가 바가지로 물을 퍼 물살로 채찍을 때리듯 양미 엄마의 등에 뿌린다. 그 모습을 어린애가 넋을 놓고 본다. 발조심이란 경고문이 붙어 있는 유리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흰 수건을 세로로 길게 내려뜨려 몸의 앞면을 가린 채 들어선다.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다 이제 막 오른쪽을 끝내고 왼팔을 들어 겨드랑이를 거울에 비춰보는 사람의 옆 옆자리로 간다. 탁탁탁. 겨드랑이털을 밀던 사람이 바닥 타일에 일회용 면도기를 내리쳐 칼날에 낀 털을 빼낸다.
   “아가씨, 밖에 아직도 비 와요?”
   옆으로 지나가는 여자에게 세신사가 묻는다. 띠를 두르듯 가슴에 팔을 밀착시켜 수건을 붙잡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와요.”
   그 말에 쑥탕에 몸을 담근 샤워캡 여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저녁 장사 다했네.”
   다시 문이 열리고, 여러 개의 컵을 쟁반에 받쳐든 목욕탕 회장이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서비스!”

   ***

   이렇게 쉬운데 그동안 왜 못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아래로 내려가던 거, 몸통만 돌려 위로 올라가면 됐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뻗댔을까.
   새벽 세 시, 을주 사우나 사장 덕진은 불 꺼진 교회 앞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

   대인 5500원 소인 2000원, 싼 가격에 뜨거운 물 안 아끼고 펑펑 쓰고 가게 한다는 장사 신념을 지켜온 을주 사우나는 동 시간대 총 목욕 정원이 서른 명을 넘지 못하는 소규모 목욕탕이었지만, 매일 아침 잘 말린 약쑥을 베자루에 넣어 물을 받은 쑥탕과 성인 한 사람이 물속에 엎드리면 맞은편 벽까지 두어 번 물장구 칠 수 있는 넓이의 냉탕, 사장이 공구 시장 가서 산 방수 파이프와 폭포수 노즐을 용접해 만든 수압 마사지기 ‘나이야가라’를 자랑하는 남탕 없는 여성 전용 사우나였다. 평일 늦은 오후에는 점심 장사를 끝내고 온 근처 식당 여자들이 냉탕에 들어가 나이아가라 폭포 부럽지 않은 세기로 떨어지는 물줄기 아래 엎드려 쑤시고 결리는 삭신을 달랜 다음 바닥에 옴츠려 앉아 김이 펄펄 나는 샤워기 물줄기를 아래에 대고 한 십 분 푹 지지고 가뿐하게 저녁 장사 준비하러 가는 ‘을주네 디톡스 코스’가 자리 잡은 골목의 명소였다.
   목욕탕에서 물 아끼란 소리가 제일 못 쓰는 소리라 말하는 을주 사우나 회장은 정년 퇴임까지 고용을 보장한 세신사 여사님의 밥상을 차리며 밥장사하는 여자들에게 밥 먹고 가라고 손님들까지 양철 밥상 앞으로 불러모았다. 열에 달아오른 얼굴로 수건을 우그려 잡아 가랑이 사이를 툭툭 털어 거기를 말린 여자들은 홈쇼핑에서 각자가 대량 구매한 비슷한 디자인의 팬티를 입고 모여 앉아 방금 지은 밥과 돼지주물럭을 올린 삶은 양배추 쌈을 입에 넣고서 땀인지 목욕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가슴골로 흘러내리는 걸 닦을 정신도 없이 된장에 오이고추를 찍어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짓궂기로 유명한 벌교 추어탕 사장이 1층 카운터로 인터폰을 걸어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여기 회장님이 밥 차려 놨어, 자시러 와!”
   밥알이 튀어나갈까 입을 가리고서 가슴을 뒤로 젖히며 웃어대는 을주 사우나 회장.
   “그 아저씨가 오긴 어딜 와! 남자는 세 살 넘으면 자기 아들도 안 들여보내는데.”
   자기 남편을 ‘아저씨’라 칭하며 회장이 말했다. 전에 오던 선녀 보살집 여자가 말하길 이 집 아저씨가 누렁이 개띠라 입구에 앉아 보초 서는 게 딱 맞는다더니 온종일 지루하지도 않은지 저렇게 잘 지키고 있다며 타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릴 둘러앉은 여자들에게 늘어놓았다.
   소인 요금 내는 애들한텐 요구르트에 빨대 꽂아주고, 주름진 입술이 오그라든 어르신들에겐 박카스 뚜껑 따 드리는 것도 모자라 아직 이런 데가 남아 있었나 싶은 얼굴로 목욕탕을 훑어보는 아가씨들에겐 미에로화이바 주는 걸 잊지 않는 회장은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공책만한 미닫이창 너머에 앉아 만 3세 이상은 무조건 여자만 입장시키는 사장 덕진과 함께 목욕탕의 안팎을 나눠 운영했다.
   한때는 물 데우는 가스값 아끼려고 설치한 이중 계량기 때문에 탈세 혐의로 벌금형도 받아봤고, 한때는 은행 이자보다 갑절의 곱절을 더 준다는 입발림에 넘어가 낙찰계에 아파트 중도금 넣었다가 계주가 들고 나는 바람에 세상 등지고 싶은 절망도 느껴봤으며, 한때는 효 사랑 목욕 봉사란 이름으로 동네 어르신들 무료입장을 시켜드리기도 했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저녁 뉴스에 국민 절반 노후 준비 안 됐다! 라는 통계 발표가 나오면 그 준비 안 된 절반에 자기들이 속하는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형편이 되었다.
   살아온 반평생 어디에 전화를 걸면 “어, 나 목욕탕인데”라고 말문을 여는 덕진은 창문 너머 손님들에게 보이는 윗옷은 깃이 빳빳한 셔츠를 차려입고 손님들 눈에 안 보이는 하의는 인견으로 만든 고무줄 바지를 걸치고 앉아 이유를 막론하고 수컷은 머리에 피 마른 지 3년이 넘었으면 대통령 손자라도 입장 안 시키는 철통 보완을 지켜갔다. 입학하고 반년도 채 못 다닌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아직도 펜을 쥐고 뭘 쓰려고 하면 ‘습니다’인지 ‘읍니다’인지 헷갈리는 작문 실력이었지만, 목욕탕 연평균 수도세와 하절기 대비 동절기 가스비는 삼 일 밤낮을 상주로 장례 치르고 난 정신에도 십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읊어댈 만큼 숫자 머리 하나는 좋다고 자부했으며, 백 원이든 오백 원이든 목욕값을 올리면 올리는 이유를 요금표 옆에 써붙이는 손님 무서운 줄 아는 정직함과 노천탕이나 해수탕은 못 만들어도 쑥탕 옥 두꺼비에 물 때는 끼지 않게 하자는 부지런함으로 인구총주택조사가 시작된 이래 귀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한 글자씩 또렷하게 자, 영, 업, 이라고 답하는 회장급 대우 사장이었다.

   ***

   요새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문자로만 틱 보내면 성의 없고 심심하다며 이렇게 멋진 다이아몬드랑 꽃 날리는 그림을 같이 보내야 받는 사람도 기분 좋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게 아니냐고 덕진은 마우스를 더블 클릭해 보라색 다이아몬드 안에 궁서체로 쓴 ‘진심, 건강, 행복’이란 자기의 포토샵 작품을 모니터에 띄웠다. 그러면서 앞으로 교회 전단지도 십자가랑 성경책만 넣지 말고 이렇게 무지개 하트로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해 보라고 옆에 있는 송 목사에게 권했다.
   열선 모양으로 그을린 장판 위에 엉덩이만 걸터앉은 송 목사는 「사랑, 우정, 맹세」 폴더에 담긴 휘황찬란한 그림들에 적당한 탄성과 끄덕임으로 호응해 주면서 언제쯤 이 사람이 다가오는 침례식 날 남자 신도 두 명과 전도사 한 명, 그리고 자신의 여탕 입장을 허가해줄 건지 기다리고 있었다. 목욕탕 입구에 들어설 때만 해도 송 목사는 교회의 침례 예식을 덕진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리라 생각했으나 그는 벌써 십오 분째 덕진이 만든 ‘힘 나는 행운 문자’ 시리즈만 보고 있었다.
   “말하자면, 죄를 씻고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기다리다 못한 송 목사가 덕진의 발뒤꿈치에 일어난 각질을 슬쩍 보며 말했다. 계단만 내려가면 크고 깨끗한 탕이 있는데 옥상 욕조에 물 받아놓고 들어오라고 하면 성도들이 좋아하겠느냐고 말하며 그는 일정한 빠르기로 떨고 있는 덕진의 알 배긴 종아리를 흘깃거렸다. 그저 옷 입고 탕에 들어가 잠수 몇 번 하면 끝나는 거라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비누칠 한 번 안 할 거지만 인당 목욕비는 다 내고 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물은? 새로 받고?”
   덕진은 이발한 지 꽤 되어 보이는 목덜미에 손을 얹고서 물었다.
   “아무래도, 누가 들어갔다 나온 물은 좀.”
   “당연히 새로 받아야지요. 다시 태어나는 건데.”
   덕진은 십자가와 하트 이모티콘을 더블 클릭하며 말했다. 신이 난 듯 송 목사 쪽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돌리며 그는 십자가 안에 무지개색을 채우고 배경으로 장미꽃이 흩날리는 이미지 편집 시범을 보여주었다.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교회 사람들이 목욕탕이 있는 지하로 내려오는 날이면 덕진은 탕 바닥에 향 좋은 가루비누를 뿌리고 막대 솔로 박박 문질러 타일을 닦았다. 원래 받는 물 온도보다 높은 수온으로 탕 물을 받아 놓고 바구니에 활성탄도 넉넉히 담아 구석구석에 갖다놓은 다음 잘 말린 욕실화를 사람 수 대로 입구 매트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예식이 시작되면 덕진은 욕장 유리문 바깥에 서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치발을 들고 구경했다. 흰 가운을 입고 허리에 끈을 동여맨 송 목사가 먼저 탕 안으로 들어가 뭐라 뭐라 기도하는 게 시작이었는데, 그다음 한 사람씩 차례로 탕에 들어가 목사의 팔에 아기처럼 목을 기댔다. 그러고는 죄가 어떻고 구원이 어떻고 또 한 번 기도하고 나면 송 목사가 네모나게 접은 수건으로 자기 팔에 안긴 사람의 코와 입을 틀어막은 다음 냅다 뒤로 자빠뜨렸다. 개중에 어깨가 굵은 남자가 들어오면 목사 혼자 힘으로 자빠뜨릴 수가 없어 전도사가 옆에 붙어 가슴팍을 내리눌러 아주 푹 젖게 했다.
   아니, 저게 무슨.
   덕진은 쇼인지 연극인지 알 수 없는 교회 의식을 보며 자기가 물을 먹은 듯 목구멍이 칼칼해졌다. 어떤 여자는 물고문을 당한 것처럼 코와 눈이 빨개져 목사 눈치 볼 정신도 없이 재채기했다.
   저런 꼴을 당하려고 일요일마다 교회 가서 헌금 바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진 사람일까. 나도 남들보단 물 귀한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물이란 게 때 불리고 반신욕 해서 몸뚱이를 씻는 거지, 저 짓을 저렇게 한다고 어떻게 사람 죄가 씻어져.
   목사 일행이 돌아가면 덕진은 탕에 들어가 배수구를 열어 물을 빼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교회를 내 딸 을주가 다닌다니. 그것도 제 엄마를 꼬드겨 나 몰래 같이!
   놀아도 교회 먼지 묻히며 노는 애들은 대학도 잘 가고 속도 덜 썩인다는 벌교 추어탕 말을 잠자코 듣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 애들이야 뭘 모르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게 좋아 간다지만 알 거 다 아는 사람이 남 궁둥이 닦은 수건 빨아가며 번 돈을 월세 내듯 달마다 교회에 바치겠다? 저 여자가 내가 알던 그 여자 맞나?
   덕진은 돈 통에 돈 많이 들어오라고 은행 가서 바꿔다 놓은 빳빳한 새 지폐를 십일조로 가져가겠다는 회장의 말이 안 믿겨 애 엄마 얼굴을 빤히 봤다.
   “같이 갈 거 아니면 잔소리 일절 마.”
   검은자위가 커진 덕진의 눈은 마주치지도 않으면서 회장이 말했다. 누가 하나님 예수님 좋아 돈 갖다 주느냐며 안 그래도 숫기 없고 여린 애가 교회 가서 좋은 친구 사귀고 선생님 말씀 들으며 마음 잡는 게 고마워 성의 표시하는 거지, 새끼 교육을 위해 그 정도 돈도 안 들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자식 대학 잘 가게 해달라며 새벽 기도하는 남자들도 있던데 같이 가서 교회 밥 먹을 거 아니면 을주 재수 끝날 때까지 주일에 밥 달란 소리 하지 말라며 회장은 덕진의 인견 바지 아래 털 난 넓적다리를 꼬집었다.
   그때부터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재수 다음엔 삼수, 삼수 다음엔 취업, 취업 다음엔 또 뭐가 늘 있어 기도할 이유와 사정은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덕진은 현관 깔개에 신발 밑창을 문지르는 듯한 말소리로 하나님 아버지 말고 네 친아버지한테 기도하라고 교회 가는 딸의 뒤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러면 을주는 도수 높은 안경 너머 작고 맥없는 눈을 깜박거리며 “아빠, 내 소원은 우리 아빠 구원이야”라고 말했다.

   ***

   왜 잠들어 있느냐. 깨어 기도하여라.
   덕진은 불 꺼진 교회 복도에 서 있다가 벽 게시판에 붙어 있는 ‘이주의 성경 말씀’으로 다가갔다.
   이거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그는 큼지막한 손 하나가 가슴뼈를 뚫고 들어와 심장을 낚아채는 듯한 통증에 숨을 멈췄다.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데 무슨 기도를 해. 애 엄마도 이제 기도고 뭐고 내 새끼 잘못되면 더 살고 싶은 맘도 없댔는데.
   덕진은 게시판에 압정으로 꽂혀 있는 성경 말씀을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을주 손 붙잡고 기도하던 송 목사의 얼굴이 거기에 붙어 있기라도 한 듯이. 그때 같이 온 전도사가 뭐라고 했나. 목사님이 큰 결심하시고 오신 거라고, 교회 장로랑 집사들이 그런 데 가시지 말라고 말려도 을주랑 을주 어머님 생각하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목사도 사람이고 교리도 사람 위해 있는 건데 잠깐 가서 을주 무사한지만 보고 오겠다고 급히 오신 거라 했지.
   껍질을 벗겨 먹어도 시원찮은 것들. 그런 데?
   덕진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을 삼키며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런 죄는 죽어서도 천국 못 가는 죄라고 다신 절대 그런 짓 하면 안 된다고 응급실에서 위세척하고 와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애한테 기도인지 꾸중인지 모를 소리나 해대고.
   덕진은 송 목사가 했던 말이 떠올라 바깥으로 나가 고함을 지르듯 입을 벌리고 고개를 쳐들었다. 컴컴한 새벽하늘이 뿌옇게 흐려졌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덕진은 손으로 눈두덩이를 훔치고는 크게 헛기침했다. 건물 옥상에 세운 교회 십자가가 눈에 와 박혔다. 그 옆에 붉은 벽돌로 굴뚝을 쌓고 가운데 흰 라카로 목욕탕 표시를 해놓은 자기네 간판을 보자 또 눈앞이 뿌예졌다.

   급할 땐 두 칸씩 뛰어내려 가던 계단인데 오늘따라 이 계단이 왜 이리 깊고 어둡나.
   덕진은 손으로 벽을 짚으며 한 칸씩 계단을 내려갔다. 정기 휴일을 빼고 매일 새벽 5시면 을주 엄마와 같이 비질하던 목욕탕 입구를 지나 여탕 문 앞에 섰다. 불을 켜지 않고 더듬더듬 유리문 아래 있는 열쇠 구멍을 찾아 열쇠를 꽂고서 문을 열었다. 익숙한 물 냄새, 물 마른 냄새. 전등을 켜자 벽과 바닥이 환했다.
   “목욕탕에 들어가는 게 꼭 백화점 들어가는 것 같아.”
   다섯 살인가 여섯 살인가 지 엄마 손 잡고 여탕 들어가면서 을주가 그렇게 말했었지. 여물어서는, 하여튼 어린애가 여물어서는.
   덕진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다 전신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는 봐선 안 될 것을 본 듯이 눈을 피했다. 선반에 올려놓은 손님들 목욕 바구니를 살피다 죽는 마당에 남들 때수건이 무슨 상관이냐 싶어 거기서도 눈을 돌렸다. 냉장고 문을 열어 남은 음료수 개수를 세다 구석에 쓰러져 있는 빈 식혜 통을 보자 불이 붙은 듯 귀가 뜨거워졌다.

   “따로 줬어. 사람 수에 맞춰서 다 따로 따랐어.”
   휴대 전화 음량 크기를 제일 크게 높여도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을주가 말했다. 양미네 아줌마랑 아줌마 손녀, 세신사 여사님, 벌교 추어탕 사장님, 대성 명함 디자이너 언니, 그리고 자기 성가대 친구 지연이까지, 다 컵을 나눠서 따랐고 그다음 쟁반에 담아 엄마한테 갖다줬다고.
   “엄마한테 들었어. 네 잘못 아니니까 밥이나 잘 먹고 있어.”
   덕진은 전화통을 붙잡고 을주를 달랬다. 인터넷도, 휴대 전화 소리도 다 끄고 아빠랑 보건소 전화만 받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러고 나면 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해 들었다.
   “대성 명함 여자만 안 걸렸잖아. 그 여자만 안 마셨잖아.”
   제일 먼저 증상이 나타난 사람도 우리 을주라 전문가들이 을주가 퍼뜨린 거로 분석한다고 애 엄마가 말했다.
   “그거야 얘가 몸이 약해서 그런 거지, 툭하면 감기 걸려 기침하던 앤데 전문가는 그런 것도 모른대!”
   덕진은 울음소리도 못 내고 우는 사람한테 소리쳤다. 슈퍼 전파자라는 딱지를 붙여 애가 다녔던 데를 무장 공비 침투로 보고하듯 읊어대는 뉴스와 신문의 모가지를 잡아 비틀고 싶었다. 양미 엄마가 양미한테 옮기고 양미가 자기 회사 사람들한테 퍼뜨렸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덕진은 그럭저럭 숨은 쉬어졌다. 그러다 벌교 추어탕이 중환자실로 옮겼단 소리를 들었을 땐 이 좁은 땅 어디로 가 숨어살아야 하나 앞날이 캄캄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왜!”
   “안 멀쩡했대. 전에 유방 수술했었잖아. 젖에 흉터도 있고 그랬어. 기저질환이 있는 거래.”
   그러니까 네 탓이 아니라고, 우리 탓이 아니라고 식혜 따르다가 기침한 게 무슨 죽을죄가 되겠느냐고 덕진은 몇 주 만에 집에 온 을주에게 부러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애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못 삼키고 끙끙 앓았다. 지역 인터넷 카페인가 어딘가에 을주 신상이 올라가 있다는 을주 친구 말에 온 식구가 사람 눈이 무서워 창문 커튼까지 다 닫고 지냈다. 그러다 밤에 양미가 전화를 걸어와 이제 우리 애는 어디 어린이집 다니느냐고 제 엄마한테 부어대니까 을주가 전화기를 뺏어 들고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로 맞댔다.
   “제가 그랬어요. 제가 서비스 주자고 한 거니까 저한테 욕하세요.”
   그러더니 그날 새벽 집에 있는 약을 다 갖다 모아 한꺼번에 삼킨 것이다.

   ***

   덕진은 일어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슬리퍼를 신지 않았는데도 바닥에 물기가 없어 양말 바닥이 보송했다.
   한 번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면 두 번 세 번 해서 결국 그렇게 간다는데.
   그는 자식이 갔던 길 아비가 못가겠냐 싶어 집 장롱에서 넥타이를 챙겨왔다. 지금 애한테 기도나 설교가 귀에 들어오겠나 싶었다. 냉탕 폭포수처럼 정신이 번쩍 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덕진은 그간 휴대 전화로 자신이 을주에게 보냈던 메시지들을 다시 봤다. 아침에 힘 나는 명언, 사랑의 대박 보석함,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이란 가사가 노래에 맞춰 화면에 올라오는 가을 설악산 풍경까지.
   ― 땡큐, 아빠도 힘내!
   을주가 보낸 답장도 하나씩 봤다. 역시 말로만 백 번 천 번 하는 것보다 동영상을 찍어 보내야겠다 싶었다.

   욕장에 들어선 덕진은 위로 겹쳐 올린 의자 탑에서 의자를 빼내 손에 들었다. 그다음 사우나로 들어가 방열기 옆에 놓인 모래시계를 챙겨 냉탕으로 갔다. 탕 난간에 모래시계를 놓고 휴대 전화를 시계에 기대어 화면이 잘 나오게 각도를 조절했다. 그는 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감색 바탕에 흰 잔꽃 패턴이 들어간 넥타이를 손에 쥐고 물 없는 냉탕 바닥에 주저앉았다. 엊그제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을주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아빠, 내 친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면 아버지란 소리가 싫고 입에서 안 나온대. 근데 난 안 그래. 난 잘 나와. 아빠, 고마워.”
   덕진은 일어나 의자 위에 올라섰다. 김장 끝난 여자들 어깨 마사지하라고 만들어놓은 안마기 파이프에 넥타이를 걸었다. 넥타이 끝에 매듭을 묶고 단단히 조인 다음 그 고리에 자기 목을 걸었다.
   그런 죄는 죽어서도 용서 못 받는다고,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째 거기서 그런 말을 해. 사람이 살게 해줘야 살지.
   그는 발끝을 바둥거리며 아래에 놓인 의자를 밀쳤다.
   너 죽으면…… 너 죽으면……

   ***

   왜 잠만 퍼자느냐고, 일어나 기도라도 하라고, 아무래도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 같은데. 누구한테 뭘 어떻게 비는지 알아야 빌지. 벌교 추어탕이 교회에 다녔나, 다니다 말았나. 어디다 대고 기도해야 벌교를 낫게 해줄 거야, 염병, 아파 죽겠네.
   덕진은 빨갛게 줄이 그어진 목을 어루만지며 휴대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모래시계에 기대어 놓고 찍은 동영상을 보며 그는 자기 바짓단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목이 세게 졸리는 바람에‘아빠도 따라간다!’라고 크게 외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을주가 알아들을 만큼은 되겠지.
   덕진은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았다. 아무리 가짜로 한 연극이라고 해도 목을 맨 자기 모습을 보니 꼭 이승 아닌 데 있는 것처럼 등 뒤가 서늘했다. 그때 귀신이 장난치는 건가 싶게 조용한 탕 안에 휴대 전화가 울렸다. 침침한 눈을 깜박거리며 덕진은 문자 메시지를 읽었다.
   ―형님…… 그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24시 보석 사우나였다. 보석 사우나가 이번 달을 끝으로 가게를 접는다는 문자였다. 뒤이은 글을 다 읽지 않고 그는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무릎을 짚으며 일어나 넥타이를 풀고 의자를 챙겨 들었다. 그대로 탕을 나가려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쑥탕 쪽을 보았다. 덕진은 냉탕을 나가 쑥탕으로 걸어갔다.
   “야.”
   덕진이 쑥탕 안에 들어가 몸을 수그리며 말했다.
   “야, 너, 거기서 뭐 하냐?”
   물오리 한 마리가 두꺼비 위에 앉아 있었다. 고무로 만든 노란 오리 인형이 어미 등에 업힌 새끼처럼 옥 두꺼비 위에 올려져 있었다. 덕진은 오리를 들고 배를 눌러보았으나 잘되지 않았다. 손에 든 모래시계 때문에.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턱밑을 문지르고 있었다.

   해 뜨기 전에 얼른 나서야지.
   목욕탕도 닫고 교회도 닫아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골목을 지나다 누굴 마주칠지 몰라 날 밝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덕진은 오리 인형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서 의자와 시계를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 놓았다. 유리문을 밀고 나가려다 발 매트가 비뚤어진 게 보여 문턱에 맞게 가지런히 해놓고 허리를 폈다. 불을 끄려고 벽에 달린 스위치에 손을 얹고 서서 잠시 쑥탕을 보았다.
   아까 보니 두꺼비 등에 물때가 낀 것 같던데.
   덕진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물오리 배를 한 번 두 번 세 번 눌렀다.

김멜라

언젠가 목욕탕의 어떤 모습을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축축하고 더 왁자지껄하게 벌거벗은 사람들의 모습을 생기 있게 담고 싶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을 부르는 호칭에 아버지를 붙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에서는 저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2021/03/30
40호

1
르네 지라르, 『희생양』, 김진식 역, 민음사, 2007, 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