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이 온 건 시신이 도착하고 세 시간쯤 지난 후였다. 라디오에서는 휴가가 끝나고 부대로 돌아가지 않은 병사에 대한 속보가 오후 내내 흘러나왔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는 없었다. 잘라놓은 삼베에서 비린내가 났다. 비 오기 직전의 흐린 풍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이고 창틀의 먼지를 손으로 닦아냈다. 회색 가루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작업실은 유리로 된 가벽을 사이에 두고 참관실과 나뉘어 있었다. 바닥에 앉아 벽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몽롱한 기분에 쌓여 나는 참관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첫 번째 사람이 누구든 친절히 대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라디오는 아버지가 듣기에 적당한 볼륨이었다.
   뉴스와 일기예보는 하루에 세 번, 아니 새벽까지 합치면 더 많은 횟수의 다른 목소리로 반복됐다. 빈소의 울음소리나 창밖의 흥얼거림, 아나운서의 건조한 목소리들은 적막한 작업실을 채우기에 충분한 소음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적적함을 견디기에 충분했다.
   아버지가 오전에 노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노인의 집은 동네의 중심부로부터 삼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외딴곳이었다. 노인은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는데, 나는 둘의 인연이 시작된 1950년 즈음의 어느 날에 대해 생각하다가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걸 포기한 적이 있었다. 아득한 인연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고, 50년대, 소년들, 소학교, 전쟁, 가난, 시골, 아이들 따위의 풍경은 남의 머릿속을 바라보는 것처럼 까마득했다. 생각하다, 떠올리다, 구상하다라는 말보다 만지다, 보다, 빨다, 맛보다 같은 단어들이 나에게는 훨씬 아군처럼 느껴졌다.
   채널이 고정된 라디오는 하루 종일 울어대는 문조처럼 꺼지지 않은 채 작업실 구석에 놓여있었다.
   시신을 닦을 천과 잘려진 삼베가 작업실 구석에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아군의 지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나뿐인 전우를 잃은 전차 안의 군인처럼 슬퍼했다. 노인의 몸을 닦는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죽은 노인만큼 딱딱하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노인의 두 아들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었을 때 숟가락을 들고 밥상 옆에 누워 있는 노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고 했다. 노인의 다리는 소반처럼 접혀있었고 염을 위해서는 관절을 부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사망선고를 한 의사가 장남과 통화하는 사이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기절했다. 스트레스성 쇼크라고 했다. 나는 잠든 아버지 곁에 앉아 무심하게 늙어버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잠결에 향나무, 향나무를 베라고 말했다. 나는 이내 향탕수를 떠올렸지만 일을 시작한 이후 그것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디서요?
   나는 잠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병원 텔레비전에서 헌병을 태운 장갑차가 도시 곳곳을 달리는 모습이 나왔다. 정수기 앞에 선 남자가 종이컵 가득 물을 받으며 말했다.
   미친놈, 왜 안 들어가고 부모 속을 썩여 지랄이여, 지랄이.
   종이컵을 든 남자의 손이 흘러넘친 물로 축축했다. 잠시 후 바닥으로 떨어진 물이 자그마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빈소 밖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멀리서 나는 소리였다.

   작업실로 돌아왔을 때 장남이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일세. 수척한 얼굴로 아버지가 장남의 손을 잡았다. 수액을 맞은 아버지의 손등 위로 푸른 멍이 나 있었다. 장남의 얼굴도 만만치 않게 핼쑥했다. 고인과 비슷한 얼굴은 낯빛마저 닮아 창백했고 흰 곱슬머리가 성성했지만, 어깨에는 비듬과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너 왔다는 얘기 들었는데. 오랜만이다.
   장남이 나를 보며 말했다. 온 지 좀 됐어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안치실은 지하 1층이었다.
   병원에서 선고받자마자 이리로 왔어. 내가 확인하고 임시로 모셨네.
   잘하셨어요. 고맙습니다.
   둘째는 언제 오나?
   곧 온대요.
   안치실에서 노인을 확인한 장남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노인의 시체를 염습실로 옮겼다. 장남이 참관실에서 눈물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안치실에 놓인 차트를 바라보았다. 정오가 지났지만 밖은 이른 아침처럼 어둑어둑했다. 하늘에는 짙은 회색 구름이 가득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장남이 지켜보는 가운데 염습이 시작됐다. 나는 노인의 얼굴에 난 자잘한 상처와 검버섯을 바라봤다. 눈썹 위로 새끼손가락만 한 자상이 있었다. 누가 색을 칠한 것도 아닌데 상처는 어린아이의 볼처럼 붉고 도톰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상처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내장이 썩기 시작한 시체의 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시신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아버지는 조금 화난 표정이었다. 눈을 감고 노인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 위로 울긋불긋한 검버섯이 도드라졌고 푸른 입술은 마치 간절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조금 열려 있었다. 검버섯은 고목에 핀 늙은 옹이처럼 노인의 얼굴 위에 가득했다. 숱이 적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눈썹 아래 눈두덩이 크고 넓었다. 영정사진 속 노인의 눈에는 눈꺼풀 아래 미처 숨기지 못한 형형한 괴팍함이 깃들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아버지와 퍽 닮았다는 것을 잠시 후 깨달았다.
   참관실의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홀쭉한 볼을 가진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장남이 조용히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노인의 차남은 장남과 달리 체격이 마르고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죽은 노인이 아닌 외가 쪽을 닮은 외모였다. 차남은 손에 든 구형 폴더폰을 만지작거리며 훌쩍였다. 구겨진 바지 아래 드러난 털이 꼭 노인의 눈썹처럼 희미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아들들을 향해 인사한 뒤 시신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탁자 위에는 차례대로 천과 수건, 솜과 빗이 놓여 있었다. 전라의 시신을 덮은 흰 무명천 아래 아버지가 손을 넣었다. 소독약이 묻은 헝겊으로 시신을 닦는 아버지의 손은 어느 때보다도 느렸다. 한 순서를 끝내고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마다 아버지는 시신을 향해 고개를 숙여 짧게 묵념했다. 시신의 머리맡에 선 아버지가 빗으로 노인의 머리를 빗었다.
   시신을 닦을 때는 헝겊을 아끼지 말아라.
   처음 아버지에게 염습을 배울 때 들은 말이었다. 한 번 사용한 헝겊은 바로 버리지 않고 한데 모아두었다가 유품과 함께 태우거나 땅에 묻었다.
   향나무와 쑥으로 우린 물을 써야 하는데 요즘엔 그냥 알코올 솜으로 닦는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아쉬운 이별을 겪는 사람 같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나는 빗에 향나무즙이라도 묻어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지만, 아버지는 노인의 머리맡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떼어낼 뿐이었다. 머리카락과 손톱, 살비듬을 모은 면보를 묶고 아버지는 시신의 샅으로 손을 넣었다. 참관실에 앉은 두 아들이 고장 난 라디오처럼 흐느꼈다. 흐느낌은 이어졌다가 끊어졌다가 다시 반복되었다. 마치 작업실에서 틀어놓은 라디오의 근현대사 드라마 대사 같았고 나는 어느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이승에서 보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작업실로 불러 일렀다. 두 아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노인의 몸을 쓰다듬었다. 슬며시 잡아본 노인의 발목이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냘팠다.
   빌어먹을.
   차남이 주먹을 쥔 손으로 얼굴을 훔치며 속삭였다. 흥분과 두려움으로 달아오른 차남의 벌건 얼굴은 장남에 비하면 건강해 보일 정도였다. 흐느낌을 그치고 자신의 죽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남의 표정은 숱하게 본 상주들의 얼굴과 또 다르지 않을 만큼 고달파 보였고 나는 문득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처럼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평소처럼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는 표정으로 멀찍이 서서 작업대 어딘가를 바라봤다.
   노인의 빈소가 꾸려지고 난 뒤 아버지와 나는 식장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희미한 탄내가 났다. 화장터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건물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어린아이 둘이 나뭇가지를 들고 개를 쫓아 달렸다. 가느다란 사지가 개의 늘어진 아랫배를 지탱하고 있었다. 새끼를 밴 개의 움직임은 아이들을 피할 만큼 재빠르지 않았고 나뭇가지의 위협을 알아챌 만큼 영민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던 남자 서넛이 침을 뱉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빈소가 꾸려진 날에는 소각로 앞에 담배꽁초가 무덤처럼 쌓였다. 노인의 빈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끊이지 않았다. 대절한 버스를 타고 온 해병전우회의 소란에 식장이 어수선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발인이 끝난 출상 행렬이 장례식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영정을 든 여자의 배가 불룩했다. 장지는 동네를 둘러싼 수많은 선산 중 하나였다. 상여가 논길을 가로질렀다. 갓길에서 개와 아이들이 자리에 서서 행렬을 바라보았다. 그때 장갑차 한 대가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다. 잠시 후 군인들이 차에서 내렸다. 선글라스를 낀 헌병들이었다. 그들은 재빠르게 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방문객들의 소란 위로 군화 소리가 요란했다. 로비를 서성이는 헌병들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담뱃재를 떨어뜨렸다. 선글라스를 낀 무표정한 얼굴들이 식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이제 개의 뒷덜미와 등을 쓰다듬었고 개는 이제 바닥에 배를 붙이고 완전히 엎드려 있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복종, 복종이라고 떠들었다.
   무슨 일이시오? 아버지가 담배를 끄고 한 헌병에게 물었다. 무리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버지에게 사진을 건네며 물었다. 그건 오전 내내 라디오에서 반복된 미복귀 병사의 얼굴이었다. 아버지는 본 적 없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하기도 전에 군인은 도로 사진을 집어넣었다. 아버지의 대답에 헌병은 입을 다물었고 이내 선글라스를 추켜올리며 수상한 자가 보이면 바로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개가 일어나 개가 꼬리를 흔들며 장갑차 주위를 알짱거렸다.
   멀어지는 장갑차를 바라보며 아버지가 흰 가운의 소매를 털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건물 주변을 돌며 소금을 뿌렸다. 부른 배를 끌고 다가온 개가 바닥에 떨어진 소금을 핥았다. 주둥이 주변에 묻은 흰 가루가 소금인지 담뱃재인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지 한 계절이 지나 있었다.
   몇 달 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곤약 한 봉지와 새끼줄을 건넸다. 그건 아버지 나름의 환영 인사였다. 나는 새끼줄을 창문에 매달고 커튼처럼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무슨 살을 막는 밧줄이라는데,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많은 신념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풍문을 믿으며 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내가 신념인지 풍문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창문을 열면 새끼줄에 매달린 얇은 종이와 말린 나뭇가지가 서걱거렸다. 길게 늘어뜨린 부적에서는 빈소에서 쓰는 향내가 났다. 거실 천장과 현관문에서는 은은한 유약 향이 났고 그것은 아버지의 몸에서 나던 냄새와 비슷했다. 냄새가 밴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잠을 자면 쉼 없는 악몽에 시달렸다. 한밤중 잠에서 깨 물끄러미 집안을 둘러보면 벽에 붙은 부적에서 노르스름하게 빛이 났다. 창밖에서 우는 취객과 주정뱅이의 흐느낌이 밤의 고요를 부숴댔고 숙면은 이미 먼 곳에 있었다. 중국산 말린 곤약을 다 먹을 때까지 나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눈을 떠 보면 낯익은 동네 어딘가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아마 꿈속이었을 것이다. 그즈음 나에게 악몽이 아닌 것은 계획 없이 시작된 야행뿐이었다. 나는 그게 다 부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공기를 맡고 잠에서 깨면 내가 풍문이 되어 있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건 나쁘지 않은 악몽이었다.
   집을 나서면 관리원이 사는 트레일러 불빛이 켜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의 능선은 밤하늘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농업용수 탱크가 늘어선 외곽에는 격납고로 쓰던 창고가 남아 있었다. 창고의 돔 외벽에는 오래전 그린 벽화의 흔적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꽃과 나비, 웃는 소년과 소녀의 붉은 볼 위로 녹아내린 페인트와 녹물이 눈물처럼 녹아 있었고 그것들 뒤로 펼쳐진 넓은 밭이 끝이 없어 보였다. 페트병과 헤진 모자를 쓴 허수아비처럼 격납고는 동네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불 꺼진 구멍가게를 지나 가로등 하나 없는 비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장례식장의 검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다. 동네를 떠난 사람들은 죽어야만 돌아왔다.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문 닫은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천막으로 둘러싼 가판과 여기저기 쌓인 낡은 상자가 보였다. 골목에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시장 안에는 미처 다 가보지 않은 수많은 골목이 숨겨져 있었고 그것들은 마치 비밀스러운 기지 같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샛길에서는 지린내가 났다. 나는 몇 개의 불 켜진 술집 주위를 맴돌았다. 코끝에 맴돌던 소독약과 향내가 사라지고 토사물과 술, 화장품과 뜨거운 입김 냄새를 향해 나는 걸어갔다. 보라색 시트지를 붙인 술집의 이름은 아가페, 목련, 안나…… 였고 불투명한 검은 유리 너머 신음인지 노래인지 모를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가로등 아래 서서 취한 남자를 지켜봤다. 담장에 등을 기댄 마른 몸이 자꾸 무너졌다. 얼마 뒤 남자는 골목 바닥에 고꾸라져 토를 했고 그의 토악질 소리가 컴컴한 골목에 울렸다. 희미한 노랫소리에 개 짖는 소리와 누군가의 흐느낌이 섞여 있었다.
   골목 반대편에서 군모를 쓴 군인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시장 건물의 쇠문이 끼익하며 거칠게 닫혔다. 군인이 토하는 남자를 발견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골목 안쪽에 서서 조용히 그들을 지켜봤다. 남자는 담장을 짚고 일어서려다 도로 넘어졌고 욕지거리와 하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군인은 남자 앞에 서더니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남자의 손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남자가 고개를 들었고 다시 가래를 뱉었다. 희미했던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고 어디선가 남자와 여자가 깔깔대며 웃었다.
   군인은 남자를 일으키더니 골목 저편으로 함께 걸어갔다. 멀리 군부대의 깃발이 펄럭였고 초소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컴컴한 능선 앞에 덩그러니 놓인 군부대는 조용한 분교처럼 아늑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낯익은 풍경을 눈으로 좇았다. 장례식장으로 돌아가기까지 십여 분, 그러나 한없이 돌아가고자 한다면 더 걸릴 수도 있는 그런 거리였다.
   노인의 두 아들이 싸우기 시작한 건 빈소가 꾸려진 저녁부터였다.
   빈소는 북적였고 아버지는 별다른 말없이 사택과 빈소를 오가며 상주의 시중을 들었다. 매장과 화장을 두고 아들들의 목소리가 커졌고 죽은 노인의 집과 땅을 두고 소란이 일었다. 아들들은 도시로 떠난 뒤 일 년에 두어 번 찾아오는 것이 전부였고 노인은 종종 아버지에게 자식욕을 했다.
   키워봤자 소용없지, 저 혼자 큰 줄 알지.
   빈 막걸리병이 구르는 방 안에서 두 노인이 잔을 튕기는 풍경은 집으로 내려온 뒤 종종 보던 장면 중 하나였다. 유족들은 언제나 아버지를 찾았지만, 아버지가 찾는 건 장례식장엔 없었다. 베어버린 나뭇가지와 잃어버린 부적, 치성용 공물이 든 상자를 아버지는 끔찍이 아꼈다. 노인은 아버지의 상자를 아는 유일한 외부인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게 내가 아는 노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었다.
   차남의 말대로 화장으로 결정한 후 장남은 반나절 동안 보이지 않았다. 화장 직전에 가까스로 모인 유족들을 데리고 아버지는 화장터 앞으로 갔다. 관리인이 아버지와 함께 제를 올렸다. 잠시 후 전기로의 온도가 올라가자 곡소리를 내던 유족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처음부터 자리를 지키던 사람도 있었고 늦게 도착한 사람도 있었다. 화로에 불이 켜진 지 한 시간이 지났을 즈음 문이 열렸다. 마스크를 쓴 관리인이 아들들을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차남이 화로를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나오세요. 어머니!
   다급한 초혼이 이어지고 난 뒤 관리인이 도로 작업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화로 안은 비어 있었다. 상조회사의 광고지가 바닥에 쌓여 있었다. 관리인은 면포를 펼치고 그 위에 노인의 유골을 부었다. 새까맣게 탄 살덩어리와 재가 한데 섞여 있었다. 젓가락으로 뼈를 수습한 지 오 분 정도 지나자 아버지가 작업실 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수습한 뼈를 절구에 넣어 빻은 후 납골용 분쇄기에 넣자 노인은 완전히 재가 됐다. 아버지가 남은 살점과 재를 면포에 넣었다. 소각로 앞에서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연기 냄새를 맡은 까마귀가 건물 주위로 맴을 돌며 날았다.
   노인의 집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인부 몇 명이 손으로 허문 담장과 서까래가 버려진 세간과 함께 마당에 뒹굴었다. 양식으로 어설프게 개조하다 만 한옥의 거실 위로 철골과 나무판자가 비스듬히 얽혀 지붕을 지탱하고 있었다. 대각선으로 세워진 낡은 서까래가 마지막 남은 기둥처럼 지붕을 떠받쳤다. 밖으로 난 부엌과 방 두 칸이 전부인 그 집은 마치 무덤처럼 완벽해 보였다. 용케 부서지지 않은 댓돌 위에 발을 올리고 마루에 앉자 평지로 이루어진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례식장에서 나온 연기가 둥그렇게 움츠린 격납고를 향해 흘러갔다. 멀리 부대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헌병들이 탄 차가 부대를 나와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축축한 내부에서는 곰팡이와 썩은 짐승 냄새가 났고 나는 불현듯 잠이 쏟아졌다.
   눈을 떴을 때 축축한 바닥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 어둑한 사위가 시간을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땀을 흘렸는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자 버스럭거리며 옷가지 스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고개를 들었을 때 방 안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군복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깊은 피로와 경계심이 잔뜩 피어오른 얼굴이 사진 속 남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몸에 걸친 군복에서 술과 체액이 섞인 복잡한 향이 났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를 쳐다봤다. 젖은 흙과 풀냄새가 작은 방 안에 가득했다. 군인은 왜소한 체격이었다. 잠시간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곧 그것이 꿈속의 한 장면, 오랫동안 내가 보고 싶던 그 장면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음영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말린 조화처럼 나는 버석거리는 기분에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문밖에서 새어오는 가로등 빛에 방바닥에 흐트러진 발자국이 드러났다. 방 안으로 들어오고 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마른 먼지와 돌조각이 섞인 동네 어귀의 흔적이 아닌, 깊은 산 속에서 나는 짙은 흙냄새가 방 안에 진동했다. 냄새는 낯설고 깊었다.
   밖으로 나가자 캄캄했던 사위가 점점 밝아오고 있었다. 골목에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개를 만났으나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는 못했다. 창문에 난 새끼줄이 흔들렸고 노인의 집에서 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단 기분에 들었을 즈음 다시 잠에 빠졌다.

   호루라기 소리는 근처 연병장에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장례식장 주변을 돌며 비질을 했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숫자를 복창했고 발걸음에 맞춰 흔들리는 군화 소리가 들렸다.
   서걱서걱, 무언가 자르는 것 같은 비질 소리가 일출 직전의 장례식장 주변에 퍼져나갔다.
   부대의 훈련 소리를 들으며 발인이 시작되었다. 죽음과 징집은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다. 그러나 이내 입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순간적인 의문을 가볍게 몰아버렸다.
   물끄러미 부대를 쳐다보고 있으면 호루라기 소리가 사라지고 아침이 찾아왔다. 불 꺼진 화장터 너머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밤새 화장터에서 태우던 무연고자 시신의 흔적이었다. 화장터의 관리인은 냄새만으로 시신의 타는 정도를 알아내야 했기에 후각이 개처럼 뛰어나야 했다. 시신 타는 냄새와 빈소의 향내가 섞인 관리인의 매캐한 체취는 멀리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몸이 타는 냄새는 모두가 똑같았다. 냄새는 지독했다.
   해가 뜨려는지 캄캄했던 사위가 푸르게 바뀌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주위를 핥던 개가 돌연 크게 짖으며 부대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자 바닥을 핥는 정수리가 보였다. 거친 털 아래 마르고 가느다란 뼈가 도드라졌다. 약하게 떨리는 개의 몸에 가만히 손을 댔다. 화장을 한 날이면 개는 관리인을 찾아오지 않았다. 작업을 끝낸 관리인에게서는 지울 수 없는 탄내가 났다.
   아버지는 매달 구청에서 보내는 무연고 시신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대개 신원확인이 안 된 자들이었다. 거리에서 비명횡사한 노숙자이거나 온몸에 문신을 하고 칼에 찔려 죽은 폭력배, 간혹 진한 쌍꺼풀의 외국인도 있었다. 시신은 일주일간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다가 유족이 찾지 않으면 장례식장으로 보내졌다. 화장을 하거나 무연고자 묘지에 매장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거의 화장이었다.
   안치된 시신의 몸을 닦으며 아버지는 고인의 이름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고는 했다. 부를 이름이 없는 자의 몸을 아버지는 좀처럼 반기지 않았다.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무장한, 군부대, 인근, 주의, 경비 등의 단어가 낡은 라디오의 노이즈에 섞여 들렸다.
   딱 한 번, 아버지가 화로 앞에서 이름을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아치형의 작은 유리창 너머 불길이 치솟았다. 커다란 가마 앞에서 아버지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인적 드문 교외에 자리 잡은 장례식장에는 죽음 말고 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장은 연중무휴였다. 죽음은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홀로 탈영병의 시신을 기다려왔다. 작업대에 누운 평범하고 말간 젊은 얼굴을 떠올렸지만 언젠가 꿈속에서 보았던 깊게 음영진 얼굴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왜 이리 상상력이 없을까.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진짜 살이 타는 게 뭔지, 살아있던 몸뚱어리를 불 속에서 소진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노인의 작은 방 안을 가득 메우던 신선하고 짙은 흙냄새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인의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반투명한 유리가 달린 들창에는 금이 가 있었다. 가로등은 새벽 한두 시간 동안 저절로 꺼졌다. 근처 술집의 노랫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불처럼 뜨겁거나 누군가를 구원하기에 완전한 곳은 아니었다. 그냥 깜깜하고 조용했다. 벽장에는 여전히 탈영병의 총이 놓여 있었다.
   발소리가 들린 것은 살짝 잠이 들었을 때였다. 인기척이 나자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누군가 문밖에서 한참 동안 서성였다.
   문을 열자 군모를 눈썹 아래까지 눌러 쓴 탈영병이 보였다. 여기저기 흙이 묻어 몰골이 엉망이었다. 씻지 않은 퀴퀴한 냄새가 방 안까지 났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닥에 누워 등을 돌렸다. 피곤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대한 숨소리를 죽이고 탈영병의 움직임을 살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더니 탈영병도 방으로 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군화를 벗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좁은 방 안에 쌕쌕거리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울렸다.
   뉴스의 그 사내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구겨진 군모 아래 가무잡잡한 얼굴이 여기저기 상처와 흙으로 지저분했다. 사진으로 봤던 모습보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나는 꿈인 줄 알고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잠시 후 남자가 눈을 감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조용히 숨을 내쉬는 낯선 얼굴의 사내를 나는 퍽 그리운 듯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바라던 꿈을 꿨을 때 시간은 어린아이의 손에 든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 밖은 밝아 있었다. 탈영병은 보이지 않았다. 방바닥에는 흙 발자국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빈소 입구에는 거대한 화환이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는 방 안에 드러누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이름이 수놓아진 흰 가운을 입고 빈소를 지켰다.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유족들 사이로 수척한 여자가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가 나를 보며 짧게 고개를 숙였다. 붉게 부어오른 눈매가 애처로웠다. 염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남자를 볼 수 있도록 유족을 작업실에 들였을 때 여자는 울지 않았다. 나는 여자의 손을 끌어다 남자 이마에 난 실지렁이 같은 붉은 상처 위에 놓아주었다. 여자가 상처를 쓰다듬다 눈물을 흘렸다. 테이블에 앉자 심야 방송을 보던 상조 회사 직원이 국밥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들자 의식하지 못했던 시장기가 뱃속에 감돌았다. 조용한 빈소 안에 후룩거리며 밥 먹는 소리가 울렸다. 다 먹고 그릇을 가져다주며 나는 직원에게 음식을 좀 싸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알겠다는 듯 직원이 빠르게 플라스틱 용기에 수육이며 떡 몇 점을 곱게 넣었다. 앉은 채 꾸벅 조는 헌병, 아내를 보고 나는 빈소를 나왔다. 한밤이었지만 두꺼운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선명했다. 거세진 빗줄기와 함께 번개가 쳤다.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 번쩍, 하고 사위가 순식간에 밝아지는 모습을 보고는 잠에서 깬 듯이 정신을 차렸다. 곧 발인이었다.

지혜

어둡고 텅 빈 방에서 언젠가 들었던 노래를 떠올리려 애쓰는 사람. 식물교.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