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다시 짖기로 한다. 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후로 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근처를 지날 때마다 친구를 생각했다. 거짓말이다. 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지나갈 때마다 자살을 생각한다. 구체성이 결여된 자살이다. 또 개가 짖고 있군, 나는 개다. 하지만 친구는 구체적으로 죽었고 그의 죽음은 조금도 추상적이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3월의 첫번째 금요일, 나는 비둘기 사체가 있는 교량 구간 도로를 지나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친구가 목을 매 죽었다고 했다. 도로 위에서 나는 친구의 사인을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친구가 자살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양말의 숫자를 생각하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나는 양말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나는 앞선 차량의 번호판에 적힌 숫자들을 한자리수가 될 때까지 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누가, 내가. 나는 친구가 자살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친구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 그렇게 들었다. 장례식장에는 친구의 친구들이 여럿 와 있었다. 그들 다수가 내 친구들이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친구의 이름을 확인했다. 친구의 이름을 식별하자마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깻죽지로 눈물을 닦아냈다. 아니다. 3월이었으므로 손등으로 닦아냈을 것이다. 손등에 검은 가루가 조금 묻어났을 것이다. 멀리서 나를 알아본 친구의 친구가, 그러니까 내 친구가 내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아이라인이 번졌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확인했을 것이다. 친구의 부모에게 검은 가루가 묻어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들을 보러 온 사람들이.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큰 규모였고 나는 같은 날 죽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들, 나는 생각했다. 죽음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 없이 태어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살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자살 후 하루 만에 발견되었다. 그렇게 들었다. 나는 부패의 속도를 생각했다. 거짓말이다. 그때는 그런 걸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 나는 부패의 속도를 생각한다. 3월의 첫번째 금요일이었고 애매하지만 바늘 같은 추위가 여전한 계절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춥지 않았다. 맑은 콧물이 연신 흘러내린 뒤에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줄줄, 더 나은 표현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그러니까, 눈물을 다 흘린 뒤에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무엇을 쓰더라도 친구의 죽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든 추상적으로든, 쓰지 못할 것이다. (쓰지 마라.) 그래도 써야 한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쓰겠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방기한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곁눈질해온 죽음들에 대해 쓰겠다는 말이다. 나는 수없이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도망쳤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말이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아니다. 어떤 의미도 없다.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말밖에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 그렇다. 그만둘까, 쓰지 마라. 다시 도망칠까, 쓰지 마라. 쓰지 마라. 다시 시작할까, 쓰지 마라. 쓰지 마라. 쓰지 마라. 하지만,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전에, 고쳐 쓰기 전에, 다시 쓰기 전에, 한 번만 더, 한 번만 다시, 도망칠까. 그러니까 어느 특징 없는 하루, 화창한 봄날이거나 가을날에 서해안고속도로와 서부간선도로를 잇는 교량 구간에서 본 목장갑들을 이야기할까. 나는 그 구간을 얼마나 지나다녔을까, 지금까지 그 숫자를 셀 생각을 하지 않았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는 늘 숫자를 세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늘 숫자를 세는 사람이어서, 어느 날, 서해안고속도로와 서부간선도로를 잇는 교량 구간에서 본 목장갑들의 숫자를 셌다. 구겨지거나 접혀 있었지만 그것들이 각각 단일한 목장갑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어째서 형태가 변했는데도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모두 열 짝이었다. 열 짝의 목장갑이 다섯 켤레의 목장갑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를 바랐다. 왜.
   나는 목장갑들의 출처가 궁금했어, 언젠가 도로 위를 나뒹구는 500밀리리터들이 생수병들을 본 적이 있었다. 트럭에서 쏟아진 거였어, 난처한 표정의 운전수가 의지가지없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그 옆을, 그러니까 트럭과 운전수의 옆을 그대로 천천히 지나쳤지만, 속도가 충분히 느리지는 않아서, 쏟아져내린 생수병들의 숫자를 미처 셀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목장갑들이 그날의 생수병들처럼, 트럭에서 떨어진 것이기를 바랐다는 거다. 아니야, 나는 그때 차를 세웠어야 했다. 그래서 쏟아진 물을 주워 담으려는 사람처럼, 하지만 결코 주워 담을 수 없는 사람처럼, 그렇더라도, 생수병을 주웠어야 했다. 적어도 생수병을 주워 드리겠다는 말을 했어야 했어, 돕겠다는 말을 했어야 했어, 운전수가 거절하더라도 그렇게 말했어야 했다. 죽을까, 죽어버릴까, 나는 생각한다. 도망칠까, 도망쳐버릴까,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양말과 장갑, 생수와 잔해, 도로에는 늘 그런 것들이 있었고 때로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었다. 어렸을 때였어, 나와 가족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했어, 국도를 달리던 차가 갓길에 멈추어섰다. 차만 타면 속이 뒤집혔던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내리누르며 차에서 내렸을 때, 아버지가 외쳤어. 조심해! 나는 놀라서 앞을 바라보았고, 내 쪽으로 돌진해오는 트럭을 보았다. 트럭에는 불이 붙어 있었어, 한낮이었고, 투명한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붉고 노랗고 파란 불길이 보였다. 나는 잘못 봤다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트럭 운전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 그 표정, 그 얼굴, 불붙은 트럭은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쳤다, 아슬아슬하게.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어, 아버지가 트럭을 쫓아 달려갔지만 트럭의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오래전의 일이다. 국도에는 비상전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왜 트럭에 불이 붙었을까, 담뱃불이 옮겨붙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그날 그 시간, 운전수의 표정이 가끔 생각 날 때가 있었다. 그는 나를 치지 않으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종류의 다급함이 떠올라 있었고 나를 치지 않아야 한다는 다급함도 그의 표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그는 살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는 트럭을 쫓아 100여 미터를 달려갔고 다시 100여 미터를 걸어나와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동생은 잠들어 있었고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 아버지에게 무어라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밤송이를 밟았고 무심코 그것을 집다가 가시에 찔려 아팠던 기억이 트럭 운전수의 표정보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니 그날은 아마 가을이었을 것이다, 화창한. 아버지는 담배를 연거푸 피웠고 불붙은 트럭이 지나간 도로에는 아버지가 담배를 세 대쯤 피울 때까지 다른 어떤 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쓰지 마라.

   그래도 써야 한다.

   (쓴다.)

   도로는 여전히 정체중이다. 나는 전방을 응시한다. 자동차들, 근사한 철, 아직 찌그러지지 않은 철, 아직 잔해가 되지 않은 철, 완전한 철. 완강한 철. 나는 오랫동안 운전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시에 살았고 대중교통이 있었고 무엇보다 어릴 때 멀미가 심했던 기억으로 운전이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말했지, 실려다니기 때문에 멀미가 났던 거야, 직접 운전을 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운전을 배웠다. 차창을 내린다. 먼지와 매연과 담배 연기. 해가 지고 있다. 해가 계속해서 지고 있다. 담배 연기가 눈을 덮친다. 눈물이 난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날 트럭 운전수는 살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까, 나는 생각한다. 이십몇 년 전의 일이다. 수백만 명이 살고 죽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성산대교까지 19킬로미터가 남았다고 한다. 누군가가 살고 죽기에 충분한 거리다. 이십몇 년 동안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죽게 했다. 내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이 누군가가 죽어갔다. 나는 계속해서 실려다니기만 했어, 운전을 시작한 다음부터 나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데로나 아무 도로로나 다녔어, 보통은 서부간선도로 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드물지 않게 공항도로를 달렸고 집에서 공항까지 50여 킬로미터를 이십여 분만에 주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어, 공항도로에는 끝이 있었고 그건 어느 도로나 마찬가지였다. 남한은 작은 나라였고 도로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착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얼마나 완전한 사물이었는지, 차 안에서 나는 완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과 동시에 이대로 즉사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분을 가졌다. 내 차로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시속 18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상의 속도를 상상하며 달렸다. 빠르게 더 빠르게, 그건 실재할 수 없는 속도였다. 빠른 것보다 더 빠른 건 없었다. 금요일 저녁의 서부간선도로에서 나는 재갈 물린 기분이었고 그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약속들은 대개 금요일 저녁에 있었고 어떤 부고는 금요일 저녁에 전해졌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나는 더욱 강렬하게 죽음을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야말로 애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상의 의무들을 이행하고 유예하고 무시하며 살았지, 그래서 되도 않는 강의를 계속했던 거야, 그래서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만나지 않았던 거야, 말을 계속하는 한 살 수 있었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죽고 싶었다. 그때의 감정은 비장함도 도취도 슬픔도 기쁨도 아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아무 것도 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죽고 싶었다. 자살하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야, 죽고 싶었다는 말이지 죽이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았고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도 않았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죽고 싶었고 그뿐이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죽음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고 매시간 죽음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늠했다. 내가 죽음의 생각에 골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 거의 친구들이었다. 친구처럼 느껴지던 지인들도 있었다. 많은 친구들이 죽었고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이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해가 지고 있다. 도로는 여전히 정체중이다. 나는 아무 데로나 가고 있다. 그런 기분이 든다. 십 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고작 800미터 남짓 이동했을 뿐이다. 나는 개다. 나는 네 발로 이동한다. 근사한 철, 보호막과 같은 철, 곧 잔해가 될 철. 조심해! 이십몇 년 전의 어느 날, 아버지가 외마디 비명처럼 내지르던 말이 생각이 났다. 누구에게 한 말이었을까, 트럭 운전수에게 한 말이었을까, 혹은 내게 한 말이었을까, 알 수는 없지, 문득 찬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찬란한 비명, 찬란한 트럭, 찬란한 불, 찬란한 도로. 찬란한 햇빛, 이건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찬란한 죽음, 생각보다 덜 사용되는 표현이다. 찬란한 착란, 나는 언젠가 이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날 내가 아버지의 비명을 듣기 직전에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조심해! 그리고 나는 수를 세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자살자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어, 주로 친구들이었다. 먼 지인들도 있었다. 도로는 여전히 정체중이군, 정체가 풀리려면 세 시간 정도 있어야 하겠지만 세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나는 집에 도착할 것이다. 아니다, 세 시간이 지나기 전에 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도착할 것이다. 집에서 신촌 세브란스병원까지는 대략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나는 개다. 네 발로 이동하면 세 시간쯤 걸릴 것이다. 다시 시작할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텅 빈 서부간선도로를 달린 적이 있다. 명절 직후였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4시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십 분도 채 지나기 전에 서부간선도로를 통과해 성산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앞선 차의 꽁무니만을 노려보고 있군, 이래서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 같은 이야기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군, 그러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겠다. 친구가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소식을 전했던 친구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발음했고, 나는 다시 맑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어, 그럴 수가 없었다. 잘못 들었다거나 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이 분명해, 나는 친구의 자살을 확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가 언젠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했지,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자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생각하지 못했고, 그럴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정확한 연도를 알고 있어,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나는 몇 년 전의 일로 기억하려고 하겠지, 몇 년 정도라면 비교적 쉽게 친구의 얼굴과 말투와 몸짓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 벌써 생각나지 않게 된 것들이 있어, 기억나지 않아 빈자리들이 되려 친구를 구성하고 있다는 기분, 그러나 사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친구가 아니라 나라는 기분. 나는 그가 자살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셀 수 없는 수였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는 미안해,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때는 그러지 않았어, 그럴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있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철산교가 보이는군, 차를 돌릴까, 나는 생각한다. 다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볼까, 이번에는 하행으로 간다. 아니면 평택화성고속도로를 타볼까, 정확한 경로는 모르지만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면 될 것이다. 나는 안녕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고 싶다. 안녕 쪽으로 방향을 틀고 싶다.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유의미하다고 해서 딱히 그럴듯한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친구는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유골도 남기지 않았다. 자살자의 유골은 봉안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와 친구들은 친구의 유골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봄이었다. 친구는 몇 년 전 3월 첫째 주에 자살했다. 나는 몇 년 전 3월 첫째 주 금요일 저녁 친구의 장례식장에 갔다. 둘째 주가 되자 날이 풀렸을 것이다. 바늘 같은 추위가 누그러졌을 것이다. 봄이 왔을 것이다. 3월 둘째 주 금요일, 서부간선도로 양쪽으로 개나리가 만개했을 것이다. 옷차림이 서서히 가벼워졌을 것이다. 연한 녹색 이파리들이 늘어나면서 도로의 그늘이 지닌 색도 달라졌을 것이다. 4월 둘째 주 금요일, 서부간선도로 양쪽으로 벚꽃이 만개했을 것이다. 떨어진 꽃잎들의 수를 모두 세고 싶었다. 나는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라는 소설을 벚꽃이 피는 계절마다 한두 번씩 읽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개다.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조심해! 그날 아버지가 외쳤어, 그러니까 어느 화창한 봄날, 아니 가을날이었던가, 한적한 국도를 불붙은 트럭이 지나가던 날이었다. 나는 가끔 그날을 생각했어, 90년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일기를 꾸준히 썼다면 좋을 텐데, 당시 나는 일기를 꾸준히 썼지만 트럭에 관해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일기장에 거짓말만 썼고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들 때문에 구타당하고는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지금은 그날의 불길이 소멸했겠지, 어쩌면 그날의 트럭도 소멸했을 것이다. 한때 불붙었던 철은 고철이 되었거나 다른 철이 되었을 것이다. 고철이 처리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 몰라, 다만 철은 철저히 재활용되는 물질로 알고 있다. 그날의 운전수는 소멸했을까, 그렇지 않기를 바랐어. 하지만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새삼 그의 생사가 궁금해졌다. 나는 가끔 그날을 생각했어, 그날 이후로 처음 몇 달 동안은 거의 매일같이, 몇 년 동안은 몇 달에 한 번, 그리고 지금은 몇 년에 한 번 그날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마담 보바리』를 여러 번 읽었지, 처음 읽은 다음에는 몇 년에 한 번, 그 다음에는 몇 달에 한 번, 그리고 지금은 몇 주에 한 번, 완독과 발췌독을 오가게 되었다. 거기 이런 대목이 있지, 조심해! 아버지의 목소리가 유령처럼 들려오는군, 아무튼 『마담 보바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보비에사르 후작의 무도회에서 돌아온 엠마는 아아, 한 주일 전만 해도…… 두 주일 전만 해도…… 세 주일 전만 해도…… 그때 나는 거기 있었는데! 그러나 그날의 풍경은 기억 너머로 소멸하고 말지, 천천히, 문득, 천천히. 나는 『마담 보바리』에서 가장 기이한 대목이 무도회 장면에서 등장한다고 생각했어, 갑자기 하인이 의자에 올라가 창유리를 두 장 깨뜨리는 거야, 그리고 엠마는 창문에 얼굴을 갖다댄 농부들의 얼굴을 보지,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눈을 감았다. 그때 하인은 왜 창유리를 깨뜨렸을까, 농부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엠마 보바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누구의 얼굴을 보았을까, 나는 생각했다. 불붙은 트럭보다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던 운전수의 겁에 질린 표정, 조심해! 동굴처럼 벌어져 있던 검은 입,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그날의 표정은 기억 너머로 소멸해갔지만 그날 본 표정을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볼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이상한 시간들이 흘러갔어, 이 시간들이 내게 가르쳐준 건 하나다. 앞으로도 이상한 시간들이 지나가리라는 것, 지금까지 죽지 않았다면 언제고 죽게 되리라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오직 자기 자신의 얼굴만을 본다는 것, 앞으로 『마담 보바리』를 읽을 때마다 90년대 초였던 어느 화창한 가을날, 아니 봄날이었던가, 시골 풍경을 갈라놓은 한적한 국도를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불붙은 트럭과 얼어붙은 운전수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성산대교와 나의 거리는 19킬로미터라고 한다. 대략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소수점 이하의 숫자들에 관심이 있다. 강변북로를 차로 달릴 때마다 나는 전날의 교통사고 사망자를 알리는 전광판을 유심히 보고는 했어, 대개 한두 명의 사망자가 있다고 했다. 대개 부상자가 사망자보다 많았지, 현재의 일이다.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은 십만 분의 일,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사백만 분의 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후로 나는 운전을 할 때마다 이미 죽어버린 내 몸의 십만 분의 일을 생각했어,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미 죽어버린 내 몸의 사백만 분의 일을 생각했다. 십만 분의 일씩 십만 번 죽으면 나의 죽음이 완전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새벽이면 가끔 텅 빈 도로를 달리고 싶어졌어, 그렇게 몇 번이고 십만 분의 일씩 더했다. 엉터리 산수였다. 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는 영종대교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어, 오직 통제가 어려워질 때까지 가속하고 또 가속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완벽한 철이 나를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운전하는 여자들이 나오는 소설에 끌렸던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어느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처럼, 오늘과 마찬가지로, 십여 분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 일직-금천 구간에 접어들었다. 오늘처럼, 오늘과 마찬가지로. 화창한 날이었어, 적어도 비가 오지는 않았으므로 일직-금천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속도를 줄여야 했던 나는 도로변으로 밀려난 사물들을 볼 수 있었다. 목장갑 한 짝, 유리 파편들, 검정색 비닐봉지, 부러진 목발, 등산화 한 짝, 운동화 끈, 종이컵 한 묶음, 운전대, 운전대를 볼 때마다 이유 없이 steering과 steel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steering과 steel을 입 속으로 발음해보고는 했어, 그리고 steering steel, steering still, stirring still. 앞의 단어들은 지워야 할 거야, 하지만 지우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웠기 때문이 아니라 지우더라도 다시 쓸 것이기 때문이다. 무용한 단어들이 떠오르고 사라지지만 이런 이유로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무용한 단어들이라도 붙들었어야 했어,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전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시달리고 있다.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모르겠어, 여름과 겨울은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지나치게 덥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춥기 때문이다. 성산대교까지 18킬로미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성산대교까지 13킬로미터가 남아 있다는 표지판이 나타나면 나는 모르는 사이 왼쪽 도로변을 보게 될 것이다. 죽어 누워 썩어 문드러지고 있던 비둘기의 죽음과 누움과 썩음과 문드러짐이 있던 자리를 보게 될 것이다. 죽음. 누움. 썩음. 문드러짐. 나는 운전석에 몸을 파묻고 차창을 내린다. 매연이 들이친다. 매연은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공터가 있었어, 열아홉 살 미만의 아이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폭력적인 일들이 벌어지던 장소였다. 나는 그곳을 잘 피해다녔어, 나는 그곳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고 실제로 무엇도 목격한 적이 없다. 하지만 소문들이 있었지,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게 하는 소문들이었다. 매연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공터에도 매캐한 냄새가 감돌았어, 배기가스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각목 따위를 태우고 남은 냄새도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옆 학교에서 누군가 못 박힌 각목으로 목덜미를 맞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 못 박힌 각목으로 다른 누군가의 목덜미를 가격했다는 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패혈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할머니는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지, 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 우연히 그때의 공터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어, 하지만 공터는 없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지, 더는 각목을 태우고 남은 매캐한 냄새는 없었지만 다른 종류의 매캐한 냄새가 떠돌고 있었고 고작 이삼 년 전에 심은 조경수들로는 냄새를 가릴 수 없었다. 성산대교까지 18킬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이제 막 지나쳤어, 그러니 성산대교까지는 18킬로미터에서 조금 모자란 거리가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정확한 수를 알고 싶었어, 조금 모자란 거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알고 싶었어,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어, 그러니까 내가 너의 죽음에 대해 써도 되는 것인지 나는 늘 알고 싶었다, 네가 죽기 전부터.
   이야기는 언제나 압도적이지, 나를 압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야기의 외설성이다. 나는 어째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 그러나 답을 구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하려면 재단부터 해야 해, 자르고 붙이고 다듬고 잇고 바늘땀을 보이지 않게 처리해야 해, 내가 늘 실패하는 종류의 일이고 사람들은 흔히 이 일이 솜씨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브론테 자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제인 브론테는 벨기에로 유학을 간 적이 있다. 제인 브론테는 거기서 에제라는 사람을 사랑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제인 브론테는 에제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해당 편지를 보여주었다. 편지에 바늘땀들이 있었다. 마치 종이를 움켜쥔 것처럼 보이는 바늘땀들이었다. 연구자는 아마도 에제가 찢어버린 편지를 그의 부인이 바느질로 이어 붙였으리라고 했다. 이야기를 꿰어 맞추기 위해서. 이야기를 잇다. 이야기를 꿰어 맞추다. 이야기를 하다. 선명히 드러난 바늘땀들을 보면서 나는 결국 아무리 이야기를 증오하고 저주하더라도 결국은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더이상 늦을 수 없을 정도로 늦었어, 너는 이미 죽었고 내게는 너의 죽음 이후만이 있을 뿐이다. 무시무시한 문장들, 온갖 단어들을 덕지덕지 붙여 너를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존재하는 언어의 총량은 그 사건을 초과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배열이, 배치가, 언어의 경제적인 운용이 중요한 거라고 했다. 나는 이런 말들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다만 죽음에 관해서라면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야, 그러니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쓰지 마라.) 나는 개다. 그러니 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여름이었다. 개는 왼쪽 뒷다리를 못 쓰게 되어 수술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 나와 가족은 죽은 개를 묻으러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개를 화장하고 그 재를 묻으러 갔다. 나는 동생의 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동생의 차를 타고 대전의 한 동물병원으로 갔다. 부모가 죽은 개를 안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개 화장장이 공주에 있다고 했다. 공주에서 사람이 차를 가져왔다. 동생이 죽은 개를 안고 뒷좌석에 앉았다. 그날이 월요일이었는지 금요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주말은 아니었다. 죽은 개의 삼각형 귀는 여전히 뾰족하게 솟아 있었고 얼굴과 턱 밑의 흰색, 정수리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오렌지색 털은 여전히 풍성했다. 죽은 개는 눈을 뜨고 있었다. 동생이 죽은 개의 눈을 감기려고 몇 번인가 시도했다. 운전석에서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던 죽은 개를 화장하는 사람이 개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했다. 죽은 개의 두 눈이 여전히 까맣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나는 개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여름이었다. 죽은 개가 동생의 무릎 위에서 부패하고 있었다. 나는 부패의 속도를 보고 싶지 않았다. 도로는 한산했고 창밖으로 아무 의미도 없는 한적한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개가 부패하고 있었다. 나는 개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개의 모든 부분과 또 그 부분들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고 그 모든 이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나는 개가 묘사와 서사의 폭력적이고 불명료한 세계로 넘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미처 이름들을 붙이기 전에 개가 부패하고 있었다. 나는 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차가 화장장에 도착했다. 개를 화장하는 사람이 연두색 철망 출입문에 걸린 자물쇠를 풀었다. 백구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나는 다른 개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개를 화장하는 곳에서 개들을 길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와 가족과 죽은 개가 안으로 인도되었다. 개를 화장하는 사람이 장례절차를 설명하는 동안 장례비용을 무이자 할부로 계산하라는 카드사 광고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동생이 수의를 고르는 동안 개를 화장하는 사람은 아버지에게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한때는 정주영의 수행비서로 판문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전형적이었다. 듣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개가 다 타기까지는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백구 두 마리가 교미하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와, 어쩌면 두 마리 모두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백구 한 마리가 사납게 짖었다. 죽은 개가 타고 있었다. 부패가 종료되기 전에 타고 있었다. 백구 한 마리가 사납게 짖으며 내가 달려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목덜미를 쓰다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구는 짖음을 종료하고 내 손 대신 오른쪽 종아리 뒤쪽을 세게 물었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으므로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 종아리였음이 분명하다.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백구를 떨쳐내고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죽은 개가 타고 있었다. 다 타려면 삼십 분쯤 남았다고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켜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개에 물렸다는 생각이 났다. 개에 물린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약 발라, 누군가가 말했다. 나는 물린 곳을 확인했고 청바지가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으나 물린 자리에 욱신거림이 있었다. 짖음. 욱신거림. 탐. 혹은 태움. 탐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벗고 물린 곳을 확인했다. 여덟 개의 이빨 자국에서 피가 비치고 있었다. 개를 화장하는 사람에게 그의 개에게 물렸다고 말하니 그는 믿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상처를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쉬웠다. 그는 자신의 개들이 깨끗하다고 말했다. 광견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가 소독약과 반창고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벗고 상처에 소독약을 부었다. 거품이 약간 끓어올랐고 쓰라림이 있었다. 욱신거림. 쓰라림. 개의 탐이 거의 종료되고 있었다. 혹은 태움이. 나와 가족은 박엽지에 싸인 한 줌의 재를 받았다. 개의 슬개골과 개의 탈구와 개의 고통과 개의 아픔이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줄에 묶인 백구 두 마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의 재를 나무 밑에 묻었다. 슬픔을 착취하는 작은 사업장에서 나의 가족은 개가 죽은 날 내가 개에게 물렸다는 사실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후 우리는 공주의료원으로 갔다. 응급실에는 주취폭력범들과 노인들이 있었다. 치료를 받으려면 바지를 완전히 벗어야 했으므로 나는 환자복을 샀다. 바지 하나에 만오천원이었다. 입고 돌아간 뒤 우편으로 돌려주면 만오천원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이러한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환자복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환자복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상처를 소독했다. 쓰리고 아팠다. 쓰림. 아픔. 그후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따끔했다. 따끔함. 아픔. 맞음. 동생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응급실 침대에서 내 상처를 확인하고는 자기가 물렸더라면 훨씬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바지. 입음. 상처. 입음. 개에게 물린 사람이 나여서 다행이라는 말로 들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치료가 끝나고 나와 가족은 개 없이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근처에 잘하는 식당이 있다고 했다.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개가 죽은 날 개에 물린 일이 한 편의 소설감이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이 나였는지 다른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나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유주

소설가. 반복과 다시 쓰기의 형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2018/01/30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