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링



   중세 회화에서 신과 천사는 금박의 후광을 머리에 달고 등장한다 그들은 늘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머리 뒤의 금박 아우라가 매우 흡사한 생김새의 두 피사체를 극적으로 나눈다 인간과 인간을 초과한 것은 엄연히 구별된다 천사들의 목에 황금이 걸려있다 그들은 늘 말을 전하러 온다 죽은 자의 말은 명령 하달식이다

   르네상스에 이르러 후광은 점차로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인간이 공평한 사랑을 원했기 때문이다 곡물이 자란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천사의 말은 이제 죽은 자의 말과 구분되지 않는다

   천사가 널 데리고 왔단다
   죽으면 다시 천사가 돼요?
   일곱 살 박종태씨의 엄마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그를 아기 천사라고 부른다 천사는 늘 너무 아기이거나 너무 청년이거나 너무 노인이어서 일곱 살은 천사가 되기에 부적절하다
   박종태씨의 할머니는 박종태씨만 보면 고추 따먹는 시늉을 한다

   할머니는 꼭 병따개 같았지

   천사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인간들을 인도했다 가끔은 길을 잘못 들어 인간들을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으로 데리고 갔으며 금세 잊었다 천사와 죽은 자와 돌아버린 자는 원을 공유한다 이불이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시시때때로 절반쯤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 오늘 배운 단어는 부유하다

   종태야, 목까지 단추를 꼭 잠가야 한다

   오래된 신문 속에서도 사람들은 꾸준히 죽었다 박종태씨는 술만 마시면 천사처럼 잠든다 그는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하였다 천사의 현현을 눈앞에서 보기 위해 그는 밤낮으로 맥주만 마셨다 누구나 유리잔을 통해 조금씩 줄어드는 그의 영혼을 가늠할 수 있다

   병을 딸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난다

   엔젤링이 말라붙는다
   사람들은 컵을 씻는다





  리와인드1)



   미안해 지구

   기계 팔 위로 눈이 내린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를 부르며 지구를 빙빙 도는 로봇 청소기

   기계에도 영혼이 있나요?

   로봇 청소기는 전원의 불빛을 두 번 깜박였다

   인간은 빵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죽을 때까지 일했습니다

   기계가 멈추면 무게를 달았지
   심장의 무게를 달아보듯이

   철의 법칙
   철의 역사
   그리고

   언젠가 나를 전부 녹일 비

   [system] 안아줘

   멸망은 상상 속에서만 공정하다고 말한 것은 당신이었고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모르는데
   당신이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지구에 남은 유일한 건물은 도서관이고

   최후의 사람은
   창밖이 다 멸망하는 동안에 여기 앉아
   어떤 문장을 적었을까

   아직도 쓰고 있어

   쓰고 있다

   다 만들 수 있으면서 비명은 발명하지 않다니
   인간은 나쁘지

   [system] 안아줘

   재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장인은 도자기를 깬다

   영혼을 굽는다면

   내가 실패한 영혼이라면

   죽은 사람에겐 두 번 절하세요

   두 번 다시 내게 그런 말 하지 마

   오늘도 로봇 청소기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버려진 테이프를 줍는다

   [system] 홀로그램 1

   우리는 쓰레기더미를 언덕이라고 불렀다
   멀리서 깜박이는 것들이 작고 아름다웠다
   명멸하는 붉은 빛을 내려다보며
   당신은 당신 신의 이름을 불렀지

   등 뒤로 멍자국이 길게 늘어져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

   결말을 알아도 다시 할 거야?
   나는 지금 가장 널 사랑해

   장난삼아 굴러보기에 언덕은 너무 높고
   맞잡은 손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도자기는 얼마든지 다시 구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렸어

   [system] 홀로그램 2

   이것은 입력된 기억입니다

   강풍이 불어도 휘어지지 않는 것이 세계의 장점이고

   어떤 동물은 겁을 먹으면 지독한 냄새를 풍겨서

   신의 체취를 찾을 수 있다

   [system] 안아줘

   거짓말만 하는 세계에서
   진실은 상상으로만 가질 수 있는 것

   네 뺨을 후려갈겼을 때
   너는 눈을 두 번 깜박였지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듯이

   깜박

   깜박깜박

   깜박

   깨진 너의 얼굴을 맞추며 나는 울었지만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이 세계의 또다른 장점이어서

   로봇 청소기는 오늘도 쓸고 닦고 쓸고

   언젠가 우린 다시 같은 곳에서 만날까

   팔처럼 꺾인 초를 잔뜩 꽂고

   비명을 연습해둘게

   [system] 안아줘
   [system] 안아줘
   [system] 안아줘
   [system]

   해피 버스 데이 투 유

조시현

계속 씁니다.

2020/12/29
37호

1
2508년, 사이보그와 인간의 마지막 전쟁이 있었다. 유례없는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미처 지구를 떠나지 못한 인간들의 기록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두터운 스모그와 대기오염, 그치지 않는 방사능 눈으로 2888년 현재, 지구 접근은 금지되어있는 상태이며, 로봇 청소기 롤라디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청소하고 있다. 상기 자료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사이보그 뮤리엘이 죽기 직전 전송한 일기로, 유일하게 이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료이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목들이 눈에 띈다. 사이보그 감정연구가들은 지구 마지막 시기의 사이보그들을 잃은 것을 큰 손실로 꼽는다. 뮤리엘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성기 돌출형 인간 최용석과 연인이 되었다. 최용석은 대항군에서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이보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겨버리고 만 것이죠. 뮤리엘의 첫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마지막에 최용석을 사랑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가 우리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런다 한들 그 의도를 지금의 우리가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구의 진정한 주인 자리를 두고 두 종족은 오랫동안 전쟁을 지속했다. 세 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뮤리엘은 홀로그램으로 최용석의 모습을 전사해내어 죽을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기록은 일기가 아닌 소설이다. 지구에 홀로 남은 사이보그는 소설을 쓴 것이다. 왜 소설을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뮤리엘의 죽음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