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꼬리 / 화이트아웃
꼬리
우리가 이마를 맞댄 이야기는 영원할 것처럼 멈춰있기도 하고 아스라이 멀어져가기도 했다. 한 편의 이야기가 네 편, 여덟 편의 이야기로 불어났다가 모든 사건이 검은 공에 갇혀 발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도 했다. 어떤 이야기는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눈이 쌓여가고, 녹아 흐르는 물이 발바닥을 적시는 동안에도 계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비 오는 새벽부터 해가 뜨고 어스름이 내려, 또다시 새벽에 다다를 때까지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전선 속 목소리는 주인을 찾아 방황했다. 누구의 것도 아닌 이야기들은 차라리 백지의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부러진 연필심을 멍하니 바라보며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떠올리는 누구에게는 백지가 무슨 소용일까. 언제나 이야기는 너무 쉽고 간단하게 시작되었다. 걷거나 울거나 바라보는 일로부터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우리의 마지막 행방을 찾아 누구는 이야기를 되돌리고 누구는 방향 없이 음표를 밟아나갔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간 몇몇은 메아리가 되어 더 깊은 허공이 되어갔다. 막다른 벽은 또 다른 길이 되고 전등 아래 우리의 얼굴은 백지를 마주한 채 어두컴컴했다. 그것은 또한 어떤 이야기의 출발이기도 했다. 우리의 등 뒤에서 각자 다른 모양의 꼬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화이트아웃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눈 또는 모래. 이마저 아니라면 내리던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광장에 목이 긴 꽃들이 피고 지고, 다시 피는 동안에
지평선과 풍토병은 아무래도 만나볼 수 없었다고 W는 말했습니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혹은
케냐에서 이 차는 공수될 것이고 감싸 쥔 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점점 사그라져갔습니다. 나는 차를 홀짝이면서
그래서 우리가 얼마 만에 만나는 거지? 묻자 W는 빤히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대꾸하지 않고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길을 잃은 W를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는 눈 다발이 쥐어져 있다고 나도 어쩌면 그 거리를 알고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고 거리는 꽉 찼습니다. 이 창유리는 보기보다 두껍고 단단하구나. 어두워질수록
W가 바깥으로 잠겨 드는 것인지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복이 쌓여가는 그 거리에서……
W는 우산을 펴들고 콜록거리며 문을 나섰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W를 눈으로 좇으며 허공에 날리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여전히 계속되는 W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 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두형
손톱을 잘랐습니다. 손톱은 자라고 있었어요. 피가 돌지 않는 곳이라면 바깥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