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표정이 어떤지 알아



   어느 날 우리가 눈 덮인 푸른 들판에서 뛰놀 때 맨발로 밟은 산딸기의 흔적을 간질일 때 우리가 어느 날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을 때 비어 있는 침대 개수만큼 신의 부재를 가늠하며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없을 때

   다시마 숲
   갈조식물을 핥는 물보라의 풍경을 보며 인간의 말을 포자처럼 떠올릴 때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자연의 뜻인지 하늘의 뜻인지 인간의 뜻인지 구분이 가질 않을 때

   무리를 잃고 나가떨어진 벌 한 마리가
   미지근한 물에 얼굴을 박고 엉덩이를 들썩일 때

   의자에 몸을 최대한 파묻고
   묻는 것이다 이렇게

   슬퍼지는 걸 보니 조금 살만한가

   슬픔을 아는 거
   우리의 대화가 남아 있다는 말

   너는 너로 다시 태어나

   한번 더
   죽고 싶어지게 하는 사람
   한번 더
   살고 싶어지게 하는 사람

   인간이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도
   살아가는 생물이라
   입술을 떼고

   다시 만나면 되는 거야

   굴속에서 흘러나온 연체동물
   다리처럼
   맥없이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언제 만난다면

   네가 좋아할 웃긴 사연을
   가득히 들고 가겠다고
   인간은 의자에 앉아 연습한다

   우리가 웃던 표정을
   최대한 지키려고





   무아레



   그는 세상을 걱정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가 말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세상은 이미 어떻게 된 거 아닐까요

   세상이 이미 어떻게 되다니 그는 놀라웠다 이미 어떻게 된 세상을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니 그는 세상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을 걱정했다

   그 사람 어떻게 된 거 아닐까요

   그는 흔들렸다 그가 어떻게 되다니 이미 어떻게 된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니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그를 모두가 미워했다 그는 놀라웠다

   나를 모르는 이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다니 이미 미움을 받고 있다니 그는 이미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죠

   원래 사람이 그런 거 아닐까요

   그는 원래 사람인 자신을 보고 놀라고 싶었으나 놀랄 수 없었다 세상에나 너무 놀라워서 어떤 것도 놀랍지 않은

   시대가 사람들 사이에서 망연히

   뒤돌아보았다

김소형

웃는 사람을 보는 게 좋다. 당신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런 심정으로 쓴다.

2020/11/24
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