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한 점 없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어린 태국 남자애들이 불 쇼를 벌이고 있었다. 몇몇은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비쩍 말랐다. 불빛에 따라 민성 옆얼굴 굴곡이 빛났다가 음영에 묻혔다. 나는 민성을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더구나 코사멧에서 그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불 쇼를 관람했다. 큰 눈이 모자에 그늘져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얼음이 녹아 묽어진 칵테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싸이깨우 해변을 따라 다양한 펍들이 즐비해 있었다. 펍에서는 블랙핑크의 신곡을 비롯해 시끄러운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그중 가장 사람이 없는 펍의 해변 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샌들 사이로 부드러운 모래가 들어와 버석거렸다.
   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오색 조명들, 파도 소리, 불꽃이 뒤섞여 묘하게 들떴다. 어쩌면 벌써 취한 걸지도 몰랐다. 민성은 점멸하는 불꽃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일까. 나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불 쇼를 하는 남자애 여덟은 기껏해야 중학생쯤 돼 보였다. 몸이 기름인지 땀인지로 범벅되어 피부에서 광이 났다. 그들은 해변에 일렬횡대로 서서 깡통에 든 불꽃을 빙빙 돌리거나 양 끝에 불이 붙은 봉을 하늘 높이 던졌다가 받았다. 깡통을 빠른 속도로 돌리면 폭죽이 터지듯 불씨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그 애들이 불에 델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중 한 명이 가운데에서 혼자 깡통을 빠르게 돌렸다. 나는 불씨들이 점점이 하늘에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빈틈없이 별이 떠 있었다. 하늘이 천체 돔처럼 느껴져서 갑갑했다. 빼곡히 박혀 있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초조해졌다.
   관광객들은 펍이나 모래사장에 앉아 불 쇼를 관람하고 있었다. 깡통의 회전 속도가 줄어들면서 불이 점점 사그라지자 박수가 터져 나왔고 덩치가 제일 작은 남자애가 내미는 깡통에 팁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민성은 박수를 치지도, 돈을 넣지도,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구운 새우의 껍질을 까 남은 칵테일과 함께 먹었다.
   바다 편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검고 큰 개가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개는 우리 좌석 앞에 몸을 말고 누웠다. 임신을 했는지 젖이 불어 있었다. 나는 식어빠진 새우를 손에 덜어 개에게 주었다. 개는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며 새우를 받아먹었다. 검은 개의 말캉한 혀가 손바닥에 닿아 간지러웠다. 딱딱한 새우의 껍질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좀 걸을까.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민성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우리는 계산을 하고 싸이깨우 해변을 따라 걸었다. 민성의 짧은 머리가 어색했다. 나는 샌들을 벗어 손에 들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곱고 하얀 모래 알갱이들이 흘러들어왔다. 나는 일부러 발을 모래에 파묻으며 걸었다. 민성은 나를 한번 보더니 슬리퍼를 벗어 들었다. 파도 소리와 음악 소리가 모두 서서히 멀어지며 해변에는 오로지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았다. 우리는 펍들의 요란한 불빛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걷고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모든 건 제자리에 있었다. 바다는 우리의 왼쪽에, 별은 하늘에. 그 풍경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

   가게 안으로 커다란 갈색 개 두 마리가 들어와 누웠다. 태국의 개들은 뻔뻔하고 커다랬다. 나는 고모 몰래 다진 고기를 조금 덜어 개들에게 주었다. 개들은 이를 드러내며 고기를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침이 묻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피부와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가 피자를 먹다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고모가 오븐 앞에서 나를 불렀다. 삼 번 테이블 피자 좀 밀어줘. 나는 다섯 평도 되지 않는 주방에 들어가 손을 닦고 주문서를 확인했다. 오븐의 열기 때문에 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손에 밀가루를 묻힌 뒤 엣지를 살려 도우를 펼쳤다. 그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토핑과 치즈를 올렸다. 내가 피자를 오븐에 넣는 사이 고모는 홀에 나갔다. 나는 타이머를 맞춰두고 오븐 속에서 엣지가 부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포가 방울방울 올라오다 터졌다.
   잠시 후 홀에서 고모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국어도 영어도 아닌 한국어였다. 타이머를 대충 확인하고 홀로 나갔다. 고모 앞에는 민성이 서 있었다. 고모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민성에게 네? 라고 되물었다. 민성은 그 앞에서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고모 옆으로 가 민성이 내 친구라고 소개했다. 고모는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한번 인상을 썼다. 그러더니 애꿎은 갈색 개들을 내쫓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고모가 성격이 좀 급해.
   내가 대신 변명했다. 민성은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할 생각이야?
   내가 물었다. 민성은 어깨를 으쓱하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고모 가게에서 나와 작은 국립공원을 지나면 바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여기서 저녁 여덟 시까지 일해. 내가 말했다.
   민성은 그저 서 있었다.
   피자 먹고 싶으면 언제든 가게로 와.
   민성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응, 이라고 했다. 나는 민성이 비적비적 바다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가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개를 만져주었다. 짧은 털이 아주 뻣뻣하고 거칠었다. 털 사이로 붉은 피부병이 오돌토돌 나 있었다. 그 부분을 긁어주자 개가 뒷다리를 떨었다.
   은진아, 은진아. 가게 안에서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모는 꼭 내 이름을 두 번씩 불렀다. 나는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일 번 가서 주문 좀 받아와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 번 테이블로 갔다. 거기에는 젊은 태국인 커플이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은 콤비네이션 레귤러 사이즈와 닥터페퍼를 주문했다. 그들의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가 나른한 비지엠처럼 가게 안을 맴돌았다.

*

   누구도 민성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은 발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그는 목소리가 아주 작으면서 낮았고, 원체 말수가 없었으며, 말을 할 때마다 지나치게 턱을 당기고 했다. 종종 그런 그를 답답해하거나 다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땅 가장 깊은 곳까지 잠겨 그 밑바닥을 기어다닐 뿐이었다.
   나는 민성과 보육원에서부터 남매처럼 자랐는데, 한 번도 민성의 목소리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본래 사람의 음성이라는 것이 귀 모양처럼 사람의 수대로 있는 것 아닌가. 잠시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못 들을 것도 없는 소리였다.
   너는 어떻게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들어?
   민성은 가끔 나에게 물었다.
   그야 내가 너보다 키가 작으니까. 내 귀가 네 입 바로 옆에 있잖아.
   나는 그때마다 그렇게 답했다. 우리는 그런 대화들을 하며 목적지 없이 함께 걸었다. 보호소는 답답하니까. 무작정 발길 닿는 곳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른 채 그렇게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민성은 어제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삼 년 전 내가 별다른 설명 없이 코사멧으로 와 잠수를 탄 이후 처음 마주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게에 앉아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는 아주 태연했고 그 태도 때문에 그를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던 많은 날들이 한순간에 꿈결처럼 잊혔다.
   고모를 만나기 전까지, 민성은 내게 유일하게 ‘가족 같음’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어쩌면 고모를 만난 이후에도 유일하게.
   우리는 이따금 피 터지게 싸우기도 했지만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웃을 수 있는 사이였다. 아홉 살 여름 방학, 하루는 민성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 동네 애들한테 맞고 왔다. 이유 없이 벽돌로 머리를 내리찍었다고 했다. 오른쪽 이마가 찢어져 피가 줄줄 흘렀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그길로 놀이터에 달려갔다. 그리고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놈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 순간. 가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내 뇌리를 스쳤다.
   여덟시 즈음이 되자 민성은 카오 렘 야무 국립공원 벤치에 와서 앉아 있었다. 나는 고모 몰래 동네 개들에게 밥을 주거나, 피자를 만들거나, 손님을 받거나 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민성이 가게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들뜨기 시작했다. 쓰레기 정리를 하고 상을 닦았다. 고모는 성격이 급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일하는 속도를 늦추면 바로 짜증을 냈다. 나는 설거지까지 모두 마치고 고모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고모는 더 할 일이 없나 마지막으로 점검하고는 나를 내보냈다.
   나는 곧장 국립공원으로 달려갔다. 민성은 가만히 앉아서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았다. 민성은 고개를 돌리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해변가 펍들은 하나둘 화려한 등을 켜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음악들도 흘러나왔다. 모두 아직 그대로였다. 민성도 가게들도 바다도 나도. 우리는 캄캄한 바다와 그 앞에 반짝이는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어깨에서 뼈가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

   민성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불 쇼를 뚫어져라 보았다. 나는 불 쇼와 많은 별과 민성과 적당한 긴장이 마음에 들었다. 손으로 부드러운 모래를 쓰다듬었다.
    그때 어디선가 어제의 그 검고 큰 개가 나타났다. 개는 내 옆에 몸을 말고 누웠다. 개의 엉덩이가 내 허벅지에 닿아 따뜻했다. 나는 개의 털이 매우 부드러워 깜짝 놀랐다. 개를 한 번 보고 민성을 한 번 보았다. 민성도 그 개를 보고 있었다.
   배 좀 봐. 임신했나 봐.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에 검은 강아지들이 들었을까?
   민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개의 부푼 배를 어루만졌다. 개는 배를 뒤집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한눈에도 출산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해 개의 영양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임신한 것 치고 다리가 너무 말라 있었다. 나는 남은 다진 고기를 가져 나올 걸, 후회했다.
   어릴 때, 어른이 돼서 내 집이 생기면 꼭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어.
   내가 검은 개를 만지며 말했다. 민성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내 얘길 들었다.
   어른이 되긴 했는데 아직도 집이 없어.
   민성이 나를 한번 보았다.
   그 개를 키워봐.
   민성이 검은 개를 가리켰다. 나는 고모가 구해준 숙소를 떠올렸다.
   지금 숙소는 너무 작은 걸.
   숙소에서 키우라는 게 아니라, 그냥 너의 개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태국에는 길가에 개가 정말 많다. 나는 왜 그동안 그 개들에게 이름 붙일 생각을 못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지어주려고 하니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개는 엎드린 채 곁눈질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개의 등 부분을 조심스럽게 쓸어주었다.
   좋은 이름이 없을까.
   민성은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나는 수많은 별이 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루돌프라고 하자.
   민성이 잠깐의 정적을 깨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기내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승무원 남녀가 음료 카트를 끌며 양쪽 복도를 느리게 지나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알림음이 울렸다. 기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창밖으로는 비행기 날개와 검은 하늘이 보였다. 나는 승무원에게 따뜻한 차를 받아들고 좌석 앞에 설치된 작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는 세계지도가 떠 있었고, 내가 탄 비행기의 위치가 표시되고 있었다. 태국에 가까워진 게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지도 모양. 익숙한 듯하지만 낯선 하늘. 그걸 보자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살아 있다는 게 억울했다. 그때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기분이 울컥울컥 들고는 했었다.
   삼 년 전 한국을 떠날 때,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쫓기듯 비행기를 탔다.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고모라는 사람이 피자집에서 일할 수 있겠냐고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한 게 시발점이었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시설에서 자라며 내게도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뭘 믿고 덜컥 코사멧까지 왔는지. 지금이라면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만 18세에 보호 종료가 되고 친구 네 명과 작은 방을 구해 함께 살았었다. 보증금에 자립 정착금을 다 써버리고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일이 끝나고 돌아와 좁은 방 안에 촘촘하게 모여 있다 보면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숙식을 제공해 주겠다는 고모의 제안은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저 어디로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당시 민성은 아는 형 집에 얹혀살며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나와 한 주에 한 번은 만나 밥을 먹었다. 외식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못 했고 주로 형이 일하러 간 사이 그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민성은 공장일이 너무 힘들어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다. 만나면 지긋지긋하다는 말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민성에게 떠난다는 말을 못 했다. 나만 탈출하려는 것 같아서. 하지만 여기에 있긴 너무 힘이 들어서, 나는 그냥 사라지기로 했다.

   루돌프는 민성이 코사멧에 오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강아지를 낳았다. 모두 다섯 마리였고, 검은색은 한 마리뿐이었다. 나머지 네 마리는 흰 바탕에 갈색 얼룩이 있었다. 코사멧에 온 뒤로 이런 무늬의 강아지는 본 적이 없었다. 루돌프는 고모네 가게 맞은편 풀숲에 거처를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 한국에서 가져온 보들보들한 담요 하나를 깔아주었다. 민성은 매일같이 루돌프와 나를 찾아왔다. 나는 한가할 때마다 루돌프에게 시원한 물을 떠다 주고, 남는 식재료들을 조금씩 모아두었다가 퇴근 후 잔뜩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새끼들은 분홍 코를 들이밀고 음식 냄새를 맡았다.
   루돌프는 민성과 내가 풀숲으로 다가가는 것이 느껴지면 귀신같이 알고 마중을 나왔다.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둥글게 휜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었다. 검은 얼굴 검은 눈 검은 코. 거기에 헥헥거리는 빨간 혀가 도드라져 보였다. 루돌프가 뛰쳐나올 때 젖을 먹던 새끼가 딸려와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럼 루돌프 대신 우리가 새끼를 주워다가 담요 위로 올려주었다. 루돌프의 새끼들은 한 손으로 들어도 너무 가벼웠다.
   우리는 루돌프와 새끼들을 돌보고 난 뒤, 싸이깨우 해변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는 동안 민성은 내게 삼 년 전 왜 사라졌느냐고 묻지 않았고 나도 민성에게 어떻게 여길 찾아왔느냐고 묻지 않았다.

*

    코사멧에 도착해 고모를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나는 한눈에 고모를 알아보았다. 쌍꺼풀 없이 동그란 눈, 짧은 코, 곱슬머리, 하얀 피부까지 고모는 나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와 비슷한 피가 흐르는 사람을 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일을 하며 고모를 볼 때마다 고모와 내 몸에 흐르고 있는 피에 대해 생각했다. 내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고모와 아빠를 낳았고 아빠와 엄마는 나를 낳았으니 고모와 내겐 얼마만큼의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을까?
   고모는 쉰셋의 싱글이었다. 원래는 한국에서 중등 수학 교사였다는데 여행을 좋아해서 떠돌다가 코사멧에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고모는 애도 개도 싫어했다. 그런데 왜 내게 연락했냐고 물었더니, 내 아빠라는 사람이 죽으면서 나를 돌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단다. 그런 것까진 알고 싶지 않았는데.
   고모는 일에 있어서는 깐깐한 사람이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무뎠다. 나는 내 아빠란 사람이 멀쩡히,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잘살고 있었으면서도 나를 전혀 찾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새 가정을 두 번이나 꾸려 내게 이복형제가 세 명이 있다는 사실을 고모를 통해 전해 들었다. 고모는 내가 그런 것을 알게 된다면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알았다고 해서 별수 있나. 나는 여태까지처럼, 억울했지만 받아들였다.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

   크리스마스이브를 이틀 앞두고 루돌프가 사라졌다. 새끼들도 담요도 모두 감쪽같이. 민성과 나는 풀숲 앞에 멍하니 멈춰서 있었다. 그러다 각자 흩어져 섬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해가 뜰 때까지도 우리는 루돌프를 찾지 못했다. 갓 난 새끼들을 데리고 멀리 못 갔을 텐데. 혹시 몰라 루돌프와 함께 산책 다니던 곳곳에 마실 물을 넉넉히 가져다 두었다. 우기가 아니기 때문에 마실 물이 부족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종이컵에 물을 담아 열댓 곳에 가져다 둔 뒤 우리는 가게로 돌아왔다. 다시 풀숲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루돌프가 항상 누워 있어 단단하게 다져진 흙에 가만히 손을 댔다. 뜨거운 지열이 올라왔다. 새끼들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생수 페트병을 버리러 갔던 민성이 내게 잠깐 와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곳으로 가자 가게 쓰레기를 모아놓는 곳에 다른 쓰레기들과 뒤엉킨 담요가 보였다. 아무 말 못하고 심장이 뛰었다. 화가 난 건지, 두려운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있는 힘껏 고모 가게 창에 집어던졌다.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얇은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

   민성이 묵고 있다는 게스트하우스에 왔다. 낡은 통나무집이었는데, 바닥에서 덜 말린 물걸레 냄새가 심하게 났다. 일박에 삼백 바트밖에 안 하는 숙소라 어쩔 수 없었다. 식빵 쪼가리에 우유와 계란 정도가 다겠지만 조식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일 층에서 사 인용 도미토리 키를 받아 삼 층으로 올라갔다. 민성의 방은 이 층에 있다고 했다. 나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벙커 침대에서 열일곱 시간을 내리 잤다.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니 이미 다음날 해가 밝아 있었다. 어제는 바로 자느라 몰랐는데 방에 나 외에 두 명이 더 묵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 명은 이미 나간 듯 가방만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고, 국적을 가늠하기 힘든 중년 여자가 머리를 말리다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알몸이었고,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나는 검은 루돌프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삼 년간 일하면서 외국인을 거의 매일 상대했는데, 어쩐지 그녀의 인사는 내게 감동적이었다. 나는 옷과 짐을 정리하면서도 슬쩍슬쩍 거울을 보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붉게 그을린 어깨와 등 피부에서 얇은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검붉은 기미가 온몸에 번져 있었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가 돌아보고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길래 싸우쓰 코리아라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베룹’에서 왔고, 치앙마이에서 의학 관련 컨퍼런스에 참여한 뒤 코사멧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컨퍼런스에서 한국인 의사를 몇 만났는데 그들 모두가 아주 뛰어나고 흥미로웠다는 얘기도, 여전히 알몸인 채로, 해주었다.

    ‘베룹’이 어디에도 없는 도시라는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에 알게 되었다. 문득 떠올라 구글에 검색해 보았는데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은 건지 그녀가 잘못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평생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민성은 루돌프를 찾을 겸 근처를 산책 중이라고 했다. 민성과 숙소 앞 작은 식당에서 느아뚠 쌀국수를 사 먹었다. 콜라도 한 병 시켰다. 식당 안은 육수 열기로 뜨거웠다. 선풍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육수 냄새를 맡자 허기가 졌다.
   죽은 건 아니겠지.
   내가 쌀국수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민성은 콜라를 마시려다가 멈칫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루돌프는 그 작은 것들을 줄줄이 달고 어디로 갔나. 문득 하늘을 난다는 루돌프 사슴의 이미지가 머리에 떠올랐다. 코가 빨갛고 뿔이 달린 루돌프가 썰매에 새끼들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그럴 리가.
   나는 매운 고춧가루를 국수에 풀어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얼큰한 국물을 먹자 속이 풀렸다. 면과 건더기를 먹어치우고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그러는 사이 등이 다 젖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루돌프를 찾으러 나섰다. 편의점에서 강아지용 닭고기 간식을 사서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거대한 리조트도 지나고, 마사지 샵들을 지나, 수영복과 기념품 따위를 파는 가게를 지나, 바이크 대여소를 지나, 걷고 또 걸었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걸으면서 숙소에서 인사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부스스하게 눈을 뜨자마자 느낀 뭉클한 감정은 오래도록 기억됐다. 나는 그 장면을 계속 되새김질하며 조금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살아갈수록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나는 비좁았던 친구들과의 방을 떠올리며 말했다. 민성은 내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눈으로는 바쁘게 루돌프를 찾고 있었다.
   걷다보니 웬만해서는 잘 가지 않는 서쪽 해안가가 나왔다. 리조트들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한 동쪽에 비해 섬의 서쪽은 황량했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루돌프가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문드문 바이크를 탄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부터 하늘이 어둡더니 결국 빗방울이 떨어졌다. 처음엔 한두 방울이었던 게 금세 무서울 정도로 퍼부었다. 안 그래도 인적 드문 곳에서 비가 쏟아지고 사방이 깜깜하니 오싹했다. 옷이 젖어 추웠다.

*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민성과 나는 서로 마주보았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민성이 신발을 벗어들었다. 나는 그 뒤에 숨었다. 민성이 조심스럽게 수풀을 헤치자 놀란 청설모가 빠르게 나무를 타고 도망쳤다. 도마뱀도 두어 마리 기어갔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민성은 실망한 기색이었다. 비는 어느새 그쳐 다시 하늘이 개어 있었다. 오늘은 이만 포기하고 바닷가에 가서 쉬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적어도 이만 보는 걸은 것 같았다. 종아리가 땅겼다.
   해변에서 쉬고 있던 새떼가 순식간에 날았다. 경계선이 뚜렷한 태양이 페퍼로니 한 조각 같았다. 해는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동쪽 해변에서는 볼 수 없던 일몰. 깡통에 든 불꽃이 옮겨붙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이 활활 타올랐다. 아까 내린 비 때문에 저 멀리 작은 섬 근처에 흐릿하게 무지개도 떠 있었다. 삼 년을 일하면서 여긴 별로 와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올 걸, 예쁘다, 하는 생각도.
   우리는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해변가를 걸었다. 엷은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파도가 반짝이며 부서졌다.
   바로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루돌프와 새끼들이 우릴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새끼들은 그새 좀 더 오동통해진 것 같았다. 민성이 먼저 루돌프를 향해 달렸고 나도 덩달아 뛰었다. 새끼들은 저들끼리 뒹굴고 물고 놀기도 했는데 루돌프는 우릴 보고 울었다. 아주 슬프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발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루돌프에게 닭고기를 먼저 먹이고 안아주었다. 어디에 있다 온 건지 루돌프의 털은 물기 하나 없이 보송했고, 여전히 매우 부드러웠다. 민성은 새끼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시원한 과일 주스가 먹고 싶었다.

   우리는 잠깐 해변에 주저앉았다. 민성이 내 옆으로 왔다. 루돌프는 조금 떨어진 곳에 엎드려 새끼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새끼들은 천방지축 뛰어다녔다.
   루돌프를 찾아서 다행이야.
   민성이 말했다. 나는 민성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민성의 어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너, 모아놓은 돈 있어?
   내가 일몰을 바라보며 물었다.
   민성은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다고 했다.
   군대 갔다 왔어?
   내가 새삼 놀라 고개를 들어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지 삼 년이나 흘렀으니까 군대를 갔다 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민성과 군대는 어울리지 않아, 한 번도 같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민성을 코사멧에서 처음 본 날 웬일로 머리가 짧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군대를 다녀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모래사장에 벌러덩 누웠다. 루돌프도 어느새 가까이 와서 몸을 기대고 누워 있었다. 새끼들을 돌보느라 지쳤는지 잠이 든 것 같았다. 바람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발아래에서 묵직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그새 깜깜해져 있었다. 노을도, 구름도, 무지개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별이 쏟아질 듯 많이 보였다. 모래의 보드라운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나는 개를 쓰다듬듯이 모래를 쓸었다. 민성은 바다를 향해 앉은 채 말이 없었다. 나는 민성의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달에다 손가락으로 ‘베룹’이라고 썼다.
   우리 그 돈으로 다른 나라 가자.
   내가 말했다.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곳으로.
   루돌프도 같이.
   민성은 아무 말 없이 삐걱거렸다. 어쩌면 어떤 말을 했는데 내가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민성. 민성과 루돌프. 그리고 어디에서 온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나. 나와 우리들. 그뿐이다.

이주현

감당할 수 없는데 막을 수도 없는 일들은 어떻게 하나. 그럴 때 쓰고 있습니다.

2020/08/25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