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탐도촌. 길을 찾는 마을이라는 뜻이야.”
   소리를 따라 석훈은 뒤를 돌아보았다. 혜진이 한 발짝 다가서며 조금 전까지 석훈이 보고 있던 돌을 보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쭉하고 큰 돌에 探道村이라는 한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석훈이 고개를 꺾어 전신주 위쪽을 보았다. ‘검매울길’이라는 도로명주소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혜진이 말했다.
   “옛 지명이야. 등록된 주소는 석호동 검매울길이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 탐도촌이라고 불러.”
   석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이 돌을 지나쳐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다리 아래에서 강바람이 불어왔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바람에 석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강렬하게 석훈의 눈을 쏘았다. 아직 8월이다. 한참을 걸어 온몸이 땀으로 젖었는데도 바람에 시원함이 아니라 오싹한 기분이 들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안 와?”
   “어, 그래. 그래.”
   석훈은 혜진의 뒤를 따라 다리에 올라섰다. 혜진이 싱긋 웃으며 약간 걸음을 늦춰 석훈의 옆에 섰다. 눈이 마주치자 석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일은 참 알 수 없다. 학교에서 혜진과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녀의 본가에 함께 내려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학교 4학년. 학업과 취업 준비를 동시에 하는 시기였고 석훈도 그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다. 석훈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취업하여 월세방을 구한다. 2년 정도 이를 악물고 모으면 빌라의 원룸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금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거기서 다시 전셋집, 그렇게 살다 보면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모든 계획의 전제 조건은 대학을 무사히 졸업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하려면 석훈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겨울부터 이름도 처음 들어본 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하더니, 학교 측은 그 바이러스에 선제적 대응을 하겠다며 여름방학 기간 동안 기숙사 폐쇄 결정을 내렸다.
   “야, 이렇게 부탁 좀 하자. 방학 기간 동안 안 되면 딱 15일만. 아니 열흘, 아니 일주일만이라도! 밥값도 내고 청소도 할게. 시키는 거 다할게!”
   “진짜 미안한데, 우리집은 좀 그래. 여동생도 있고…… 엄마한테 나 죽어, 인마.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봐라.”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은 얼굴로, 동혁이 석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사람이라니, 피를 나눈 것보다 더 진한 사이라던 절친조차 거절한 부탁을 대체 누구에게 하라는 말인가. 석훈은 완전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고양이도 도망갈 구멍을 남겨 놓고 쥐를 쫓는다던데, 세상이 왜 나에게 이런단 말인가!
   “아, 씨발! 본가 없는 고아 새끼, 서러워서 살겠냐? 엉? 아, 씨발!”
   석훈은 제대로 꼭지가 돌아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발작이라도 하듯 몸을 뒤흔들어봤자, 현실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혜진이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 석훈은 휴대폰으로 계좌의 잔액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시원이라면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다음 학기 등록금에 문제가 생겼다. 최근엔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다 그놈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저기……”
   그때까지만 해도 석훈은 혜진을 같은 국문과 학생이라는 정도로만 알았다. 혜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좀 불편한 애’라고 평가받는 게 혜진이었다.
   “아까 잠깐 들었는데, 너 방학 기간 동안 갈 데 없으면 우리 마을에 같이 내려갈래?”
   석훈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혜진이 붙잡고 있는 캐리어와 조금 전 혜진이 나온 곳으로 보이는 기숙사 건물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 역시 기숙사에 머물고 있었음을, 짐을 챙겨 나오던 길이었음을 깨달았다.
   “아, 아니…… 그건 좀……”
   아무래도 모양새가 이상한 것 같았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남녀가 고향에 함께 내려간다는 것이.
   “오해하지는 마. 내가 살던 마을이 워낙 시골이고 주민들도 다 노인뿐이라서 농번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항상 필요하거든. 곤란해 보여서, 그 동네에 머물면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싫으면 못 들은 걸로 해.”
   혜진은 캐리어를 끌고 석훈의 옆을 지나쳤다. 콘크리트 바닥을 드륵드륵 구르는 바퀴 소리가 석훈을 더욱 조급하게 했다. 석훈은 기숙사 건물을 보았다가, 다시 핸드폰 속 잔액을 보았다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 휙 돌아섰다.
   “갈게!”
   드르륵거리는 바퀴 소리가 멎었다. 혜진이 돌아보았다. 석훈은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 손을 비비면서 혜진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진짜 미안한데, 그럼 부탁 좀 할게. 고맙다.”
   혜진이 웃었다.
   “내가 고맙지.”
   그 대답의 진짜 의미를,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석훈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를 때까지 생각하고 후회했다.

   2
   “진짜로 부모님이 안 계신다고? 이모나 삼촌, 고모, 당숙, 먼 친척 그런 것도?”
   “이장님!”
   혜진이 얼른 이장의 말을 막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어쩔 수는 없었다.
   “괜찮아.”
   석훈이 혜진을 달랬다. 예의가 없는 말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것도 아니다. 악의 없는 호기심의 외피에는 가시가 달려있다. 상대방을 찌르지만 호기심 스스로는 그것을 모른다. 그냥 그뿐이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장은 깡마른 체격에 눈이 컸는데, 일반적인 사람의 눈보다 흰자가 좀더 많이 드러나는 독특한 생김새였다. 석훈의 눈치를 보는 듯 커다란 눈 속의 작은 눈알이 데구루루 굴렀다.
   “아니, 나는 걱정돼서.”
   “괜찮습니다. 고아원에서 컸습니다. 그래서 부탁할 데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할 거는 없어. 잘 지내다가 가면 되는 거야.”
   혜진은 이쯤에서 퇴장할 생각인 듯 자신의 캐리어 손잡이를 잡고 기울였다. 잠깐 잊고 있었지만 혜진은 자신의 집에 온 것이다. 석훈은 혜진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혜진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후 대문을 벗어났다.
   “방으로 안내해줄게.”
   이장이 마당에서 돌계단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현관문을 열자 안으로 상당히 널찍한 거실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신발을 벗고 올라선 석훈은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실과 연결된 방은 세 개인 것 같았다. 거실에 앉아 창문을 바라볼 수 있도록 소파가 하나 있을 뿐, 다른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한쪽 벽면으로 커다란 장이 늘어서 있었는데, 안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나 포클레인, 인형 같은 장난감이 가득했다. 그 옆으로 아동용 미끄럼틀과 커다란 자루에 담긴 볼풀공이 있었다. 벽면에는 사진 액자가 몇 개 붙어 있었는데 이장의 젊은 시절로 보이는 독사진과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자네는 이 방을 쓰면 돼.”
   이장의 말에 사진에서 시선을 떼고 돌아보니 왼쪽 끝에 있는 문을 연 채로 석훈을 보고 있었다. 이장이 안내해준 방은 작지만 아늑했다. 특별한 가구나 짐은 없었고, 창문 아래쪽에 열두 칸짜리 플라스틱 수납함이 있었다. 벽에는 사람이 손으로 그린 지도 같은 것이 커다랗게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것인지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이불은 이따가 갖다줄게. 좀 쉬고 있어.”
   “저는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나요? 농사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가르쳐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다.”
   석훈의 말에 이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해 보였다.
   “혜진이가 젊은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다고……”
   이장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하긴 뭘 해. 여기서 잘 지내다 가면 되는 거야. 쉬어. 아, 참.”
   쉬라던 이장은 마음이 바뀐 듯 주먹을 쥐고 왼쪽의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는 벽에 붙어 있는 지도 앞으로 석훈을 데려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전국 지도를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가운데에 있는 산과 오른쪽 하단 귀퉁이에 있는 강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다른 그림들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그려넣은 찌그러진 타원 모양이 듬성듬성 있거나 한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걸 좀 외워. 한자는 읽는가?”
   “조금…… 모르는 것도 많긴 한데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읽으면 돼요. 그런데 이걸 왜?”
   “이 시골에서 뭐 할게 있겠나? 심심할 텐데 외워둬.”
   “핸드폰도 있는데요 뭐. 읽을 책도 가지고 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외워 둬.”
   매서울 정도로 차갑고 단호한 말투였다. 석훈은 깜짝 놀라 이장을 보았다. 이장의 큰 눈에 안광이 번뜩였다. 왠지 주눅이 들었다.
   “아, 네. 외울게요.”
   이장이 히죽 웃었다. 서슬 퍼런 기색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해. 혜진이가 내 번호 알려줬지?”
   “네. 어디 가세요?”
   “난 바빠. 마을을 지켜야 돼.”
   이장이 들고 있던 모자를 허벅지에 툭툭 털고는 머리에 썼다. 자랑스러운 듯 모자에 수놓아진 ‘이장’이라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슥 훑어 보이고는 방에서 나갔다.
   지도를 보며 석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한 건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진은 시골에 젊은 사람 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한 것일까? 석훈이 미안해할까 봐 핑계를 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혜진이 그런 배려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친하지 않다.
   석훈은 창문 아래쪽에 세워져 있는 수납함으로 다가갔다. 칸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끼워져 있는 것은 서랍이 아니라 플라스틱 바구니다. 손으로 바구니를 빼내 보았다. 역시 생각대로 안에는 장난감들이 가득했다. 손자의 것일까? 하지만 아까 본 가족사진에는 아기가 없었다. 장성한 아들들이 있으니 가족사진이 오래된 것이라면 그사이 손주가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보통 손주 사진 한 장쯤은 걸어놓지 않을까?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까지 붙여놓는 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생각을 이어나가던 석훈은 고개를 저었다. 장난감이야 누가 쓰던 상관없다. 어쨌거나 석훈은 이 집에서 방학 기간 동안 지내야 했다. 괜한 억측으로 불편한 일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석훈은 벽에 붙은 지도로 시선을 옮겼다.

   3
   “괜히 널 곤란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야.”
   그는 마을 회관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혜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석훈의 옆에 앉았다.
   “에이,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내가 심심할 것 같으니까 그러시는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 그렇게 화를 내실 줄은 몰랐어.”
   아침 식사 때의 일이다. 어제는 시골이라 공기가 좋아 그런지 깊은 잠을 잤다.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깼을 때,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계를 보고 정말 단잠을 잤구나 싶었다. 평소라면 새벽에 깨어 뒤척거리기를 여러 번 했었을 것이었다.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방에서 나가 이장에게 인사를 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사모가 석훈을 보고 인사해주었다. 사모는 어제 마을의 부녀회 일 때문에 늦게까지 일을 하고 귀가했다고 했다.
   일은 식사 도중 터졌다.
   “지도는 좀 외웠어?”
   석훈은 된장찌개를 앞접시에 덜며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아뇨. 조금 보기만 했어요.”
   석훈은 태어나 그런 표정을 처음 보았다. 뜨겁게 달궈진 쇠를 얼음물에 담그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이장은 탁, 소리가 나도록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다시 온도가 바뀌었다. 그야말로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내가 시골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어른이 말을 하면 다 이유가 있나 보다 하고 들을 것이지, 소귀에 경을 읽어도 그것보다는 흘려듣지 않겠네! 시골에 사는 무식한 노인네가 뭘 안다고 떠느냐, 이거야?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 듣는다?”
   “아뇨, 절대 그런…… 무시를 하다뇨. 절대 아닙니다.”
   변명을 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이장은 화를 삭이지 않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사모가 말려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석훈이 빌다시피 사과하면서 반드시 외우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사태가 가라앉았다. 그 이후로 무슨 정신에 남은 밥을 입에 쑤셔 넣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혜진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방으로 돌아온 뒤였다. 혜진은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장이 전화를 한 것일까? 뭐 이런 놈을 데려왔느냐고 역정을 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외로 혜진에게 전화를 건 것은 사모라고 했다.
   “아마도 사정을 얘기해 주라고 나에게 전화하신 걸 거야.”
   “사정?”
   “응. 그 지도와 관련된 이 마을의 사정이 있어. 나이 드신 분들이니 그런 데에 좀 민감하신 것 같아.”
   혜진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삼십 년 전 일이라고 하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지. 그때는 마을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주민들이 살았대. 저 멀리 있는 산 보여? 저게 그해에 산사태가 나서 그렇지, 원래는 아주 멋진 산이었대.”
   석훈은 혜진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깎아지른 절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홍수로 마을이 고립됐대. 어제 우리 건너오던 강 있지? 그게 범람해서 다리가 완전히 잠겼고, 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서 집들까지 침수되기 시작했고. 이래서는 위험하다. 일단 산으로 대피하자, 그런 생각에 온 주민들이 산으로 올라갔는데, 하필 산사태가 나서 꽤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거야. 산으로 대피하자고 했던 당시 이장님은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대.”
   석훈은 자살했다는 이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산으로 대피하지 않았다면, 또 일이 어떻게 됐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쨌거나 그게 지도와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다음 얘기를 재촉하듯 석훈이 혜진을 보았다. 혜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마을에 변고가 끊이지 않았대. 동네 임산부들이 죄 사산아를 낳고 가축들이 좀 클만하면 전염병이 돌아 죽었대. 동네 사람들은 결국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했는데, 무당이 하는 말이, 이 마을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저주의 기가 너무 강하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물난리와 산사태도 난 건데, 언젠가는 대환란의 시기가 올 거라고 했대. 그러면서 그 무당이 지도를 그려준 거야. 이 마을에 환란이 오면 눈앞이 어두워지고 천지가 개벽을 한다고 했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익숙한 마을이라고 움직여 봐야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던 길은 불구덩이로 변해서 주민들을 삼킬 거라는 거야. 그때 필요한 게 그 지도라고 했어.”
   “그런 게 두려우면 이사를 가면 되잖아?”
   혜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갔어. 근데 못 가는 사람들도 있었어. 물난리에 집이 잠겼으니 팔 수가 없는데, 돈 한 푼 없이 어디로 이사를 가겠어. 그때 청년 하나가 앞장서서 마을 재건에 힘썼어. 그게 지금의 이장님이고, 이 동네야. 그 뒤로 이장님은 지도를 똑같이 그려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외우게 했대. 무당이 말했던 일이 일어나면 그 지도가 필요하니까. 태어나는 애에게도 가르쳐서 계속 이어질 수 있게.”
   ‘난 바빠. 마을을 지켜야 돼.’
   그렇게 말하던 이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런 게 있으면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
   미리 알았다면 오늘 아침, 그렇게 가볍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달 남짓 있을 너에게도 외우라고 말하실 줄은 몰랐지.”
   석훈에게는 그 지도가 미신에 지나지 않았지만,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트라우마를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는 정이 뚝 떨어질 지경이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짠한 마음이 드는 석훈이었다. 석훈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이따 점심에는 열심히 외운 모습을 보이고 사과를 할 마음이 들었다.
   “아, 참.”
   따라 일어나던 혜진을 돌아보며 석훈이 물었다.
   “이장님 댁에 애들 장난감이 엄청 많던데? 손주가 있나?”
   “아, 그거. 이장님이 일 년에 한 번 바깥 마을 보육원 아이들 불러서 잔치 비슷하게 하거든. 그때 아이들 갖고 놀라고 준비해두신 거야.”
   석훈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장님은 좋은 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4
   “영아야, 영아야!”
   목청을 높여 외쳤지만, 석훈의 목소리는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에 가로막혀 번번이 되돌아왔다. 석훈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같은 이름을 부르는 마을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들의 사이사이로 제복을 입은 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일이 터진 것은 두 시간 전쯤이었다. 인근 보육원 스물다섯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의 인솔하에 마을에 들어왔다. 잔치는 성대했다. 부녀회에서 며칠에 걸쳐 준비한 음식들이 아이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석훈도 기꺼이 거들었다. 식사 후에는 이장의 집 거실이 놀이터가 됐다. 엄청나게 많은 장난감들이 바닥에 부려졌다. 아이들은 마치 거실이 놀이터인 듯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한창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아이가 자꾸만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이장의 눈에 띄었다.
   “영아가 없어요.”
   이장이 아이들의 수를 세었다. 아무리 세어도 스물다섯이 나오지 않고 스물넷에서 셈이 끝났다. 급하게 선생을 찾았지만 선생은 동네 청년들과 함께 마을 회관에서 술을 마셔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이장을 포함한 주민들이 마을 내부를 1차 수색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하고 세 시간 만에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과 마을을 샅샅이 뒤졌고, 이제 남은 곳은 산뿐이었다.
   석훈은 원망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눈앞의 사물이 분간 가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반장님이라고 하셨지요?”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이장이 사복을 입은 중년 남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석훈도 그쪽으로 다가갔다.
   “벌써 어두워집니다. 여기 이 산은 산세가 험하고 절벽이 굉장히 많아요. 잘못하다가는 사고가 납니다. 십 년 전에도……”
   “들은 적 있습니다.”
   곤란한 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반장이라 불린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을 하더니 경찰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철수를 알렸다. 그의 지시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대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금세 많은 사람이 올라왔던 길을 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장이 석훈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일이 이렇게 돼서 자네한테 미안해. 쉬러 온 걸 텐데. 목마르지? 이거라도 마셔.”
   이장은 대각선으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내 뚜껑을 따 석훈에게 건넸다. 비타민 워터였다. 투명 페트병 안에 노란색 비타민 워터가 들어 있는 것을 보니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갈증이 강하게 느껴졌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그 자리에서 벌컥 들이켰다. 이장이 먼저 뒤돌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석훈은 그대로 선 채 음료수를 좀더 마셨다.
   그때 시선이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경찰 하나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손에 들린 비타민 워터를 보고 있었다. 석훈은 그를 향해 페트병을 내밀었다. 그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페트병을 넘겨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이제 바로 눈앞의 길까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5
   찌르는 듯한 두통이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손으로 이마조차 만질 수가 없었다. 극심한 고통에 머리를 뒤흔들고 나서야 석훈은 자신이 어딘가에 묶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동시에 심장에 쿵, 충격이 왔다.
   그는 나무 의자에 묶여 있었다. 자신이 의식을 차리기 전, 몸을 뒤흔들었는지 의자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사방으로 울퉁불퉁한 암벽이 보였는데, 어딘가의 동굴이었다. 석훈은 기억을 돌려 보려 애썼다. 분명 산을 내려와 마을로 왔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눈앞이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잠깐 쉬어가자, 생각하며 길가 경계석에 앉은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석훈은 애써 머리를 들었다. 그의 시야에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 몇 명과 이장이었다.
   “이게 무슨……”
   석훈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헉, 날카로운 숨을 들이켰다. 그들 사이로 단상 같은 것이 보였는데 흰 천으로 덮인 그것 위에, 아이가 반듯이 누워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파랗게 변한 그 얼굴은,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사라졌던 아영이었다.
   “당신들 뭐야!”
   소리를 질렀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걸 보는데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소리를 질러도 상관없다는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즉 이 마을에 그를 구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옮겨.”
   이장이 말하자 남자 세 명이 다가왔다. 석훈은 몸을 버둥거렸지만, 금세 남자들에게 제압되었다. 그들은 줄을 풀고 석훈을 그대로 들어 아영이 누워있는 단상 쪽으로 데려갔다. 시신 옆에 누이려는 것이다, 라고 깨닫자 숨도 쉬지 못할 공포가 찾아왔다.
   “지도 다 외웠지?”
   애를 써봤지만 어느새 석훈은 아영의 옆에 눕혀졌다. 어떻게든 시신과 닿지 않으려 힘껏 몸을 움츠렸다. 남자들은 석훈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외웠어요. 제가 확인했죠.”
   마을 사람들 뒤에 서 있던 여자가 걸어나왔다. 혜진이었다.
   “너 뭐야!”
   “외운 거 맞아요. 제가 아까 보육원 애들 오기 전에 확인했어요.”
   지도를 외웠냐고 묻던 혜진에게 자랑하듯 술술 나불대던 몇 시간 전의 자신을 석훈은 죽여버리고 싶어졌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 줄 알아?”
   혜진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아. 그래서 너도 알아야 해. 알아야, 네가 할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할 일?”
   혜진은 잠시 동굴 바깥쪽을 응시했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숨을 고른 것뿐이었다. 혜진의 이야기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내가 얘기했지? 삼십 년 전 폭우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그때 죽은 아이가 있었어. 이름이 송희였지, 아홉 살이었고. 사람들이 당시의 이장님을 따라 산으로 대피했을 때, 이미 송희의 부모님은 물 위에 시신으로 둥둥 떠 있었어. 모든 것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대피한 마을 사람들은 혈혈단신 살아남은 송희를 돌볼 정신이 없었어. 그래서였는지 비명이 들렸을 때 송희는 깎아지른 절벽에 혼자 매달려 있었지. 미끄러졌던 모양이야.”
   그런데 아무도 구해주지 않았다. 산지가 너무 험했고, 이미 빗물을 잔뜩 먹은 절벽은 언제 꺼질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구해주겠지, 사람들이 주저하는 모습을 송희는 고스란히 보았다. 그리고 얼마 버티지 못해 그 어린 손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나무줄기를 놓치고 말았다.
   마을의 뿌리 깊은 저주 같은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홍수 이후 마을이 간신히 재건되고 안정을 찾을 무렵부터 주민들은 여자아이의 울음소리에 시달렸고, 주민들의 아이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결국엔 무당을 불렀대. 그런데 하는 말이, 송희가 너무 외로워한다는 거야. 그래서 십 년 주기로 딱 한 번, 송희에게 친구를 보내줘야 하는 거야.”
   석훈은 눈을 들어 단상 위의 영아를 보았다. 혜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송희에게까지 가는 길이 멀고 험해서 길잡이가 있어야 한댔어. 그게 그 지도고. 그 한심하다는 얼굴은 뭐야? 이게 무당이 한 거짓말이고 우리가 속은 것 같아? 아니, 실제로 그 말을 따른 후부터 마을에 변고가 일어나지 않았어.”
   그 말을 따랐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석훈의 머릿속에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벌써 어두워집니다. 여기 이 산은 산세가 험하고 절벽이 굉장히 많아요. 잘못하다가는 사고가 납니다. 십 년 전에도……’
   그때도 죽은 송희에게 친구를 바친 걸까? 그 길잡이를 사고로 위장해 함께 보냈다는 건가? 석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혜진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데려온 거지? 왜 나야? 왜 하필 나냐고? 난 너한테 아무 잘못도 한 게 없잖아!”
   혜진은 웃었다.
   “네가 적당했어. 자꾸 여기서 사람이 사라지면 곤란하니까 고민하던 참이었거든.”
   석훈은 혜진이 자신에게 접근한 순간을 떠올렸다. 기숙사를 나와 머물 곳을 찾던 석훈은 친구 동혁에게까지 부탁을 거절당하자 답답함에 소리쳤었다.
   ‘아, 씨발! 본가 없는 고아 새끼, 서러워서 살겠냐? 엉? 아, 씨바알!’
   사라져도, 나서서 적극적으로 찾을 사람이 없는 대상. 그것이 바로 석훈이었다.
   “자, 이제 알았지? 저승에서 눈을 뜨면 네가 외운 지도를 따라서 영아를 송희에게 데려다줘. 널 위해서라도 거부할 생각은 마. 명목 없이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은 불지옥으로 떨어지니까.”
   혜진이 물러서고 이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 밧줄이 들려 있었다. 목을 졸라 죽일 셈이었다. 석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멈춰!”
   누군가의 고함에 석훈은 눈을 번쩍 떴다.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혜진이 상대를 발견하고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술렁이는 그들의 사이로 석훈도 간신히 그를 보았다. 석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분명 경찰 대원 중 한 명이었다. 이장이 준 음료를 나눠 마셨던 사람! 산 어딘가에서 그 역시 석훈처럼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칫, 귀찮게 됐지만 어쩔 수 없지. 처리해.”
   이장의 말에 주민들이 경찰을 향해 다가섰다. 경찰이 움찔, 물러서는 것을 보며 석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지원을 좀더 요청했어야지, 하고 그의 탓을 하려던 때였다.
   탕!
   경찰의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첫발은 공포탄이지만 다음엔 다를 거야. 손들고 물러서. 허튼짓하면 쏜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미 경찰 병력 요청했어. 이제 끝났어.”
   경찰은 총을 겨눈 채로 한 발 두 발 다가섰다. 주민들이 주춤주춤 물러서자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빠르게 걸어와 석훈의 몸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
   “움직일 수 있어요?”
   “네.”
   경찰은 석훈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른 채로 뒷걸음질 쳐 동굴을 빠져나갔다. 동굴을 벗어나며 석훈은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충동과 뒤에서 누군가 덮칠 것 같은 공포를 한꺼번에 느꼈다.

   “어쩌죠? 곧 경찰들이 닥칠 거예요.”
   동굴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혜진이 이장에게 말했다. 이장은 이를 악문 채 가슴을 씨근덕거렸다. 그것도 잠시, 곧 이장의 눈초리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이장은 혜진을 보았다.
   “지도, 외우지?”
   혜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의 손에 들린 밧줄이 혜진의 목에 걸렸다.

정해연

소심한 O형. 덩치 큰 겁쟁이. 호기심이 많지만 식는 것도 빠르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를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장편 소설 『더블』로 데뷔,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유괴의 날』, 『내가 죽였다』, 『홍학의 자리』 등을 출간했다.

2021/11/30
48호